“이렇게 급하게 영화를 잡으시다니, 그만큼 저랑 데이트를 하고 싶으셨던 겁니까? 무슨 영화를 볼지 고르는 재미는 없어졌지만 선배님의 마음은 덕분에 아주 잘...아, 아픕니다~ 그리고 운전 중이니 놔주십쇼~”
운전 중이라는 특수한 상황 덕에 패치는 순순히 잡고 있던 치트의 머리를 놨다. 그나마 예매한 곳이 가까운 영화관이었지만 나가는데 준비하는 시간 때문에 조금 빠듯했다. 지금 들어가면 광고가 주구장창 나오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표를 뽑은 패치가 상영관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치트가 붙잡았다.
“저희 아침도 아예 안 먹었는데 팝콘이라도 사가는 게 어떻습니까?”
“필요 없네.”
“여기 커플세트A 주십쇼~”
제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행태에 패치는 혀를 차며 바로 상영관으로 향했다. 잠시 떨어진 지금 상황에 숨통이 조금 트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양손에 콜라와 품에 팝콘을 안은 채 바짝 붙어오는 치트에 패치의 속은 다시 불편해졌다.
한가한 시간대여서 그런지 아니면 영화가 인기 없는 축에 속하는지 빈 자리가 꽤 많았다. 가까운 영화관에 가장 가까운 시간대의 영화를 마구잡이로 고른 거라 재밌을지는 사실 패치도 몰랐다. 언제든 뛰쳐나가기 좋게 복도 바로 옆 자리에 앉은 패치는 광고만 묵묵히 봤다. 콜라를 건네도 받지 않자 컵홀더에 내려놓고 옆 자리에 앉은 치트는 패치의 얼굴만 열심히 쳐다봤다. 그러기를 5분 후, 비상구 위치를 알려주는 안내를 끝으로 영화가 시작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는 재미없었다. 왜 빈 자리가 많았는지 바로 납득이 될 정도로 뻔하고 어디선가 많이 본 요소들이 뒤죽박죽 섞여있었다. 영화 10분 만에 재미없는 걸 느낀 패치는 뛰쳐나가고 싶은 심정을 꾹 참았다. 그렇게 꾹 참다가 조력자가 어디서 많이 본 이중인격 박사의 모습으로 변했을 때 결국 눈을 감았다.
“선배님~ 자는 겁니까?”
“안 자네.”
치트가 작게 소곤거리자 패치는 곧바로 대답했다. 하지만 눈은 뜨지 않고 있었다. 그대로 가만히 있자 고개를 가까이 붙였는지 바로 느껴지는 인기척에 패치는 결국 눈을 떴다. 바로 옆에 바짝 달라붙은 얼굴을 밀어내곤 다시 영화를 보니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막판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날 사랑해서 이런 일을 벌인 거라고?]
왜 하필 저런 대사가 나오는 거지.
앞 내용을 그냥 넘기는 바람에 처음 보는 등장인물이 나타났다. 그 사람은 칼을 주인공에게 겨누고 있었다. 완벽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어느 날의 말이 떠올라 눈만 굴려 옆을 보니 치트도 방금 나온 대사가 흥미로운지 고개가 앞쪽을 향해있었다.
칼을 든 사람이 곧이어 웃어대기 시작했다. 실성한 태도에도 주인공은 칼이 무서운 건지 움직이지 않았다. 화면은 칼에 집중이 되더니 가슴으로 직격했다. 그런데 찌른 가슴은 칼이 잡은 손과 연결되어있었다.
[이게...대체 무슨...]
[내 복수야...]
이게 대체 무슨 영환가. 곧이어 칼을 급하게 뽑는 손길에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올랐다. 원래 칼 같은 날붙이에 찔리면 뽑지 않는 게 당연한데 저긴 그렇지 않아보였다. 결국 남은 사람이 절규하며 화면은 페이드 아웃되고 곧이어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고 있었다.
재밌는 영화를 골랐어도 제대로 보기는 힘들었을 테지만 제대로 본 마지막 장면이 저런 건 영 아니었다. 안 그래도 안 좋던 기분이 바닥까지 떨어지고 있었다. 옆으로 눈을 굴리니 치트의 표정도 굳어있었다. 완벽이니 뭐니 전혀 공감 못할 찬양을 해댔으면서 영화가 최악인 건 남들 느끼는 것처럼 느끼는 듯 싶었다.
“이제껏 본 영화들 중에 최악이네요.”
공감했으나 패치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만약 조금이라도 긍정의 말이 나온다면 굳은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샐쭉 웃으면서 역시 우리의 마음은 같다며 입을 털어댈게 훤했기 때문이었다.
“선배님은 어떠셨습니까?”
치트의 질문에도 패치는 입만 꾹 다물었다. 식은 팝콘이 쓰레기통으로 와르르 쏟아지고 얼음이 녹아 잔뜩 축축해진 종이컵도 함께 들어갔다. 그 때까지도 조용했다.
“선배님.”
화장실도 지나쳐 앞서 나가던 패치의 어깨를 잡아 세웠다. 그러나 돌리진 않았다.
“선배님은 어떠셨습니까?”
질문은 같았다.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이 더 들어가기 시작했다.
“뭐라도 대답해주시죠.”
“내 대답이 중요한가?”
짜증이 올라온 패치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쳐냈다. 그런 패치의 반응에 치트의 얼굴이 환해졌다. 대체 어느 포인트가 저렇게 기분이 좋아질 포인트인지 알 수 없는 패치는 눈을 더 찌푸리며 덧붙였다.
“대신 이해는 될 것 같더군.”
말도 상식도 통하지 않는 끔찍한 사람과 단 둘이 있는 건 고역이었다. 그렇기에 영화 속의 등장인물은 자살을 택했겠지. 그 끔찍함과 고역은 이해가 갔다. 다만 칼을 휘두를 방향은 반대였을 거다.
치트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까보다 더 심각한 충격이 담겨있었지만 패치는 제대로 보기 전에 고개를 돌리고 어깨를 또 잡히지 않기 위해 빠르게 자리를 떴다. 사람이 많은 영화관이라 발소리가 끊임없이 들렸지만 뒤에서 따라오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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