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광경을 보고 있던 퍼블리는 갑자기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순간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깨어나니 안개 때문에 주변이 보이지 않았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다가 다시 한 번 피리를 불어보고 아무런 변화가 없어서 결국 무작정 걷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와 급하게 그곳으로 가보니 저 세 마법사가 대화하고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퍼블리는 한달음에 달려가 그들에게 말을 걸고 손을 뻗어 건드려보기도 했지만 그들은 퍼블리의 목소리에 반응도 하지 않은데다가 건드리자마자 안개마냥 흩어지고 다시 선명해지고를 반복했다. 어느새 그들이 있는 눈앞은 숲이었는데 퍼블리의 뒤는 여전히 안개만 잔뜩 깔려 있었다. 결국 퍼블리가 할 수 있는 건 얌전히 그들이 움직이는 걸 지켜보는 거 외엔 없었다.
“비밀이란 게 이런 거였구나.”
퍼블리는 신기하단 눈으로 용사를 지켜보고 있는 패치를 바라봤다. 해맑은 얼굴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용사는 퍼블리가 보기에도 어디로 튈지 몰라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용사를 챙기고 뒷수습까지 하는 패치의 표정은 당연히 좋지 못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찡그리는 표정에 피곤함은 가득 담겼지만 싫어하는 기색은 없었다. 행동에서부터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가득했다.
처음 보면서도 제 아빠다운 패치의 행동을 묘한 기분으로 보고 있던 퍼블리는 용사가 일곱 번째로 패치가 준 꽃을 망가뜨렸을 때 뒤돌아 다시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왜 더 안 보고 가니?”
뒤에서 누군가가 퍼블리를 향해 묻자 깜짝 놀란 퍼블리가 다시 뒤를 돌아보니 방금 전까지 보던 광경은 사라지고 짙은 안개 속에 누군가가 선명하게 서있었다.
“누...구세요?”
“글쎄, 그보다 더 안 보니?”
“어...계속 보고 있기는 좀 그래서...근데 진짜 누구세요?”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아니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려던 말을 삼킨 퍼블리는 조심스레 그를 살펴봤다.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있어 눈이 잘 안 보이는데다가 망토로 온 몸을 둘러 싸매다시피 해서 정체가 영 가늠이 가지 않았다. 키가 퍼블리보다 살짝 크다는 거 외엔 크게 특징이 보이지 않는 체격이었다. 퍼블리는 일단 처음 듣는 목소리였으니 모르는 분이라는 생각에 인사를 해서 먼저 제 소개를 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그보다 상대가 더 빨랐다.
“일단 마법사라고 부르렴.”
“제 이름은 퍼블리예요. 마녀고요.”
“그래 마녀라고 생각하는구나.”
뭔가 묘한 말에 그게 무슨 말이냐 물을 새도 없이 마법사가 바로 말을 이어 처음부터 건넨 의문을 다시 꺼낸다.
“왜 더 안 보고 그냥 가는 거니?”
“계속 더 보고 있는 게 좀...그래서요.”
“왜?”
정말 의아하다는 어투에 퍼블리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꿋꿋이 대답했다.
“난데없이 이렇게 누군가의 과거를 보는 건 당혹스럽고 의아하잖아요? 게다가 찜찜하고...”
“하지만 궁금했잖니?”
순간 제 심장을 망설임과 악의 없는 손길이 꺼냈다가 다시 넣어놓는 기분에 퍼블리는 퍼뜩 어깨를 떨며 입을 꾹 다물었다.
“어째서 네가 알고 싶어 하던 걸 뒤로 하고 다른 데로 가려는 거니?”
“그렇긴 하지만...이런 건 직접 본인에게 듣는 게 의미가 있고 예의인 것 같아요.”
“그렇지만 넌 피리를 불었잖아.”
마법사의 말대로 결국 지쳐버린 퍼블리는 피리를 불어 비밀이 뭔지 보려고 했다. 예상한 바는 아니었지만 퍼블리가 궁금해 했던 아빠의 과거를 굉장히 생생하고 제 삼자 역할로 볼 수 있게 됐으며 간간히 들어온 용사의 모습도 알게 됐다. 이는 퍼블리가 알고 싶은 것 이전에 일종의 목표였고 지금까지 여행해왔던 이유였다. 어떻게 안 건지 의문스럽지만 상대는 굉장히 핵심을 잘 짚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요.”
퍼블리는 기쁘지 않았다. 신기하고 궁금했지만 껄끄러웠다. 지쳐서 피리를 분 건 사실이었지만 사실 거의 충동이었다. 만약 처음부터 비밀을 이런 식으로 알게 된다는 걸 미리 알고 있다 해도 이미 지쳐있는 퍼블리에게는 충동이 더 강했으니 피리를 불었을 거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겪고 다시 피리를 불기 전으로 간다면 퍼블리는 피리를 제 주머니 안으로 다시 넣었을 거다. 겪어보니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신기하네.”
퍼블리의 대답을 들은 마법사는 그렇게 짧게 감상을 남겼다.
“결국 직접 물어보겠다는 거구나.”
“네...생각해보니 직접 물어보기로 결심했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그런데 너는 여기 들어온 이상 보고 싶지 않아도 결국 보게 될 거란다.”
단언하는 마법사의 말에 퍼블리가 그게 무슨 소리인가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니 담담한 목소리로 폭탄과 다를 바 없는 엄청난 말들을 던지기 시작한다.
“여긴 밸러니의 숲.”
“...네?”
“원래는 들어올 수 없지만 넌 들어올 수 있었고 네가 본 과거는 이 숲에 흩뿌려져 있지. 이 숲을 돌아다니는 동안 넌 보고 싶지 않아도 과거를 볼 수밖에 없어, 과거는 기억이고 기억이라는 건 있었던 사실이자 단순히 그 때 있었던 일만 나타내는 게 아닌 존재를 이루어주는 거니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고 중요해. 그러니 이렇게 기억들이 날뛰는 거란다. 그리고 네가 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이 숲을 돌아다녀야 해.”
지금 퍼블리가 있는 장소가 밸러니의 숲이라는 것도 놀라운데 그 숲에 패치의 기억이 흩뿌려져 있다는 게 굉장히 놀라웠다. 확실한 건 본인의 머릿속에만 있어야할 기억이 이렇게 다른 자들도 볼 수 있게 형상화 되고 있다는 건 기억의 주인에게 무슨 일이 있다는 거였고 그게 썩 좋지 않은 일이라는 건 퍼블리도 알 수 있었다. 문제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이런 상황이 벌어졌냐는 거였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에 퍼블리는 순간 숨을 멈췄다. 기억이 흩뿌려져 있다고 했고 마법사가 말하길 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숲을 돌아다녀야한다고 했다. 퍼블리가 불안한 얼굴로 마법사를 바라보자 쐐기를 박는다.
“네 아버지는 이 숲에 있어.”
그 말을 듣자마자 퍼블리는 안개 속으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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