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와서 처음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마법사가 마법을 날려대고 있었다. 오히려 익숙한 모습이었다. 검고 짧게 머리를 동그랗게 올려 묶은 곱슬머리와 안경 없는 검은 눈. 제 기억 속에 잘 자리 잡고 있는 아난타의 모습이었다. 퍼블리는 멍하니 앞을 바라보다가 먼지 구름에서 다른 그림자가 아른거리는 걸 발견했다. 그와 동시에 마법이 또 튀어나오면서 먼지구름이 일어났다. 이번에 모습을 보인 건 치트였다.
이 정신 없는 상황에 이게 당황한 퍼블리가 뒤에서도 날아오는 마법들이 방어마법을 퉁퉁거리며 두들기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방어마법을 펼쳤다. 앞으로 날아오는 파편과 먼지구름을 막아내긴 했지만 저 살벌한 마법들이 바로 날아온다면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다행히 눈에는 보이지만 아직 거리가 멀어 앞에서 벌어지는 마법들이 여기까지 닿진 않았다.
계속 이 자리에서 버티기엔 뒤에선 모드가 다가오고 있었고 앞에선 살벌하게 마법을 날려대는 치트와 마법사가 점점 가까이 오고 있었다. 퍼블리가 자신이 만든 방어마법에 최대한 마력을 쏟아 붓고 있는 순간 저 앞에서 치트가 먼저 여길 발견했다.
“패치?”
하지만 한눈을 판 대가는 매우 철저했고 보는 마녀가 안쓰러울 정도였다. 온갖 마법들이 치트를 덮쳤고 그 결과 치트는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마법을 날려댄 마법사는 지치지도 않는지 날려 보낸 후로도 마법을 더 날리다가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퍼블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봤다. 순하고 동글동글한 눈을 마주친 퍼블리는 어쩐지 심장이 따끔했다.
“아빠...”
퍼블리는 조금 앓는 소리로 제 아빠를 불렀다. 뒤에서 움직이는 기척과 함께 저 앞에서 마법사가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순간 긴장이 풀린 퍼블리가 결국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풀며 주저앉았다. 다가오던 마법사가 깜짝 놀라 이쪽으로 빠르게 달려오는 게 보였고 뒤에서 걱정스러운 손길이 제 어깨를 건드리는 것도 느껴졌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빛이 번쩍하더니 앞이 순식간에 하얘졌다. 깜짝 놀란 퍼블리가 숨 쉬는 것도 까먹고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조금 후에 시야가 회복되고 앞이 다시 보였다. 다행히 오고 있던 마법사는 순간적으로 방어마법을 펼쳤는지 크게 다치진 않아보였다. 그리고 그런 마법사를 향해 마법들이 들이닥쳤다. 날아오는 방향은 아까처럼 앞이 아니라 바로 퍼블리의 뒤였다. 퍼블리가 뒤를 돌아보니 모드가 이번엔 마법사를 향해 마법을 날려대고 있었다. 퍼블리의 어깨에 얹은 손이 다시 모드에게 마법을 날리자 모드도 마법사를 향해 마법을 날리던 걸 그만두고 다시 피하거나 막기 시작했다. 마법사가 잠시 비틀거리며 시야를 되찾고 있을 때 언제 왔는지 그의 뒤에서 나타난 치트가 마법을 날려댔고 마법사는 거의 반사적으로 마법을 써서 막아냈다. 정신없는 상황에 누구를 도와야하나 혼란스러워하던 퍼블리는 그냥 얌전히 방어마법에 신경 썼다. 여기서 제 힘을 더 해서 도와준다 해도 들바람 뒤의 휘파람이었다.
이어진 대치 상황은 그다지 유리한 상황은 아니었다. 한 발짝도 움직이지도 못한 채 갇혀있는 거나 다름없는 꼴이었다. 거기다가 저 앞의 마법사들도 뒤에도 점점 지쳐가고 있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결국 깨지는 소리와 함께 모드의 마법을 막아내던 방어마법이 풀렸다. 치트를 견제하면서도 이쪽을 틈틈이 보고 있던 마법사가 재빨리 마법을 날려 모드를 물러나게 했다. 하지만 지쳐버려서 자신까지 챙길 여유가 사라져버린 마법사는 그대로 치트의 마법을 맞아 바닥을 뒹굴었다.
“끝까지...애를 먹이네요.”
지친기색으로 쓰러진 마법사를 보던 치트는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퍼블리 쪽으로 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모드도 마법을 날리던 걸 멈췄다.
“패치.”
치트가 마법사를 부르며 손을 뻗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웃지 않는 얼굴은 굉장히 낯설고 다른 마법사인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손을 따라 뻗으며 갈 일은 없었고 그 전에 쓰러졌던 마법사가 일어나 다시 그에게 공격마법을 날렸다. 얌전히 지켜보고 있던 모드가 맞서 마법을 날려 공격을 무효화 시켰다. 치트는 다시 마법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정말 강하고 엄청 방해되네요. 하지만 여기서 험한 꼴 보이면 점수도 깎이고 미움도 받겠죠?”
애타게 찾던 마법사를 다시 찾아서 그런지 치트는 아까보다 한결 누그러진 기세로 손을 뻗었다. 그에 마법사가 반격할 준비를 했지만 치트는 마법을 안 날리고 바로 손을 물렸다. 경계를 풀지 않고 기다리던 마법사는 곧 이상함을 느꼈다.
“특별히 가고 싶어하실 곳으로 보내드림다~ 하지만 안경도 없는데 저주 가득한 그곳에서 버틸 수 있을지 저도 잘 모르겠군요?”
마법사의 몸이 천천히 투명해지고 있었다. 치트는 이제 다시 웃음을 머금으며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상황인지 도저히 파악이 안 되는 퍼블리는 그저 멍하니 다가오는 치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원래라면 상당히 멀리 가야하는 일을 줘서 아난타를 멀리 보냈어야 했었지만 우리도 예측 못한 일 때문에 계획이 조금 틀어졌고”
뒤에서 들려오는 말에 퍼블리는 고개를 돌렸다. 예측 못한 일이라면 아마 퍼블리가 하루 일찍 왕국을 나온 일이었다.
“원래라면 ‘아난타’는 멀리 나가서 그대로 돌아오지 않고 ‘패치’는 여기 남아서 미끼 역할을 자처해야했는데 당신의 눈치가 좋았던 게 화근이었고”
“아빠?”
퍼블리가 조심스럽게 불러보지만 그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들켜버려서 급한 대로 이렇게 뛰어왔는데 이렇게 일이 꼬여버릴 줄은...그래도 미끼로 남아서 이렇게 만나는 게 목표였으니 어찌됐든 계획은 반쯤은 성공했죠?”
그렇게 말한 그는 퍼블리의 손을 잡고 무언가를 쥐어줬다. 그의 손이 물러나고 뭘 준 건지 조심스레 내려다본 퍼블리의 눈에 익숙하고 화려한 빛이 들어왔다.
“무지개 구슬? 이걸 왜...”
다시 고개를 든 퍼블리는 말을 잇지 못했다. 마주본 푸른 게 검게 변했다. 저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퍼블리는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자네가 나한테 했던 걸 그대로 따라 해 보고 한 번 꼬았을 뿐인데 눈치를 못 채다니, 비밀을 가장 잘 찾는다는 예리한 눈썰미는 어디로 갔나? 이거 참 실망이 크네.”
그 말에 치트도 뒤를 돌아봤다. 아까보다 더 흐릿했지만 아직 형체는 제대로 보였다. 검고 짧은 머리가 점점 붉고 길게 변해가고 있었다. 검은 게 푸르게 변했다.
“패치?”
파삭 깨지는 소리와 함께 퍼블리의 손에서 무지개가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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