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더 말을 할 순 없었다. 바로 입이 막혔기 때문이었다.

.”
굉장히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조용히 검지로 입을 막은 그는 조심스럽게 퍼블리의 입에서 손을 뗐다. 퍼블리는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그보다 먼저 나온 건 눈물이었다. 손이 물러남과 동시에 혹시라도 환영일까 사라질까 두려워진 퍼블리는 그의 옷깃을 꽉 쥐고 눈물을 조금씩 흘리다가 이내 엉엉 울기 시작했다.

, 아빠...아빠아....”
서럽게 울면서 계속 아빠를 부르는 퍼블리는 머뭇거리며 안는 손길에 바로 품으로 뛰어들었다. 언제 그렇게 컸는지 퍼블리는 이제 품속으로 다 안 들어갈 정도였고 눈물이 흐르는 눈은 어깨 위로 묻었다. 어색하게 등을 감싼 손은 토닥토닥 등을 두드리면서 퍼블리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퍼블리는 어째선지 더 울렁거려 눈물을 더 쏟는 건 물론이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1년 새에 혹은 그 전부터 쌓인 눈물들이 전부 다 쏟아져 나올 기세였다.

..압바가...저도 두고 가..가버린...건지......맨날 부란...불안하고...”
흐느끼며 말하다보니 나오는 말들이 전부 뭉개지고 끊겼다. 속에 있던 말들이 얼음바늘처럼 속을 긁으면서 올라오다가 바로 녹아버리는 느낌이었다. 따끔하고 아프면서도 시원하고 허탈했다. 꺽꺽 우는 소리에 걱정 가득하게 두드려주던 손이 멈췄다. 꽉 안은 손엔 걱정은 물론이고 안타까움과 난감함이 가득했다.

“...퍼블리.”
오랜만에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퍼블리는 더 크게 울었다. 시작은 울음이고 나중은 더 큰 울음이었다. 끝은 탈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우는 퍼블리를 진정시킨 건 그의 말이었다.

여기서 나가야해.”
.....?”
단호한 목소리에 아직 히끅 흐느끼며 울고 있는 퍼블리가 반문하면서 고개를 들었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푸른 눈이 퍼블리의 눈과 마주쳤다.

나를 여기로 끌고 온 건 치트야.”
단호한 말과 함께 퍼블리의 머릿속이 또 멍해졌다.

“...?”
눈물이 딱 멈춘 퍼블리는 머리가 멍해진 기분을 느꼈지만 아직 진정되지 않아 히끅거리는 숨 덕분에 지금이 아직은 꿈이 아니라는 걸 생생하게 되새기고 있었다.

작년 축제 마지막 날 나가려고 했던 나를 아난타로 변장해서 여기로 끌고 온 게 치트야.”
좀 더 자세히 설명해줘도 퍼블리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머릿속이 혼란스럽게 요동치고 있었다. 아무도 없었던 집, 잠겨진 서랍에 있었던 파란 장미가 담긴 유리병, 웃으면서 반가워하던 치트, 웃으면서 바깥의 얘기를 들어주던 아니카, 곤란하면서도 어딘가 미안한 웃음을 지었던 아난타, 웃으면서 말을 길게 늘이던 모드, 웃지 않고 심각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던 아니카, 아무런 감정 없이 무언가 묻기 전에는 빤히 바라보기만 하던 모드, 머리색도 달라지고 눈도 흉흉하게 보이는 인상 쓰던 아난타. 이리저리 뒤섞이고 복잡하게 흔들리는 머릿속에서도 생각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 결과 다다른 결론이 하나 툭 떨어졌다.

그럼...아빠를 찾기 위해서, 몰래 납치하기 위해서 왕국에 아난타 선생님을 보낸 거예요? 모드씨를 통해서?”

순간 방 안이 정적에 휩싸였다. 퍼블리는 더 이상 흐느끼지 않았고 그 말을 들은 상대는 놀란 눈으로 퍼블리를 보고 있었다. 그 반응을 보니 퍼블리는 제가 한 말이 맞았다는 걸 알았다. 징징대며 아빠한테 달라붙는 치트와 아빠를 여전히 사랑하며 계속 찾겠다고 약속한 치트가 순간 희미해지고 그 둘 뒤에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치트가 서 있었다. 확실한 건 희미해진 치트들은 물론이고 뒤에서 숨어있던 치트도 입은 웃고 있었다는 거다. 퍼블리는 반사적으로 팔을 문질렀다.

그럼 그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여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누가 그랬던가, 졸졸 흘려보낸 맑은 물이 나중엔 물벼락과 다름없는 비로 되돌아온다고. 퍼블리는 이번엔 눈물 대신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까 불렀던 모드가 지금 나타났다. 모드가 문을 열어서 들어왔다면 그나마 시간을 벌 수 있었겠지만 모드는 바로 이동 마법으로 들어와 버렸다. 그 때문에 숨지도 못한 채 결국 들켜버렸다.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들켜버릴 줄은 몰랐는지 그는 난감하단 얼굴로 모드를 바라보곤 주먹을 꽉 쥐다가 팔을 뒤로 뻗어 퍼블리를 뒤로 물렸다. 퍼블리는 자기도 모르게 긴장하며 힘이 들어간 그의 손을 꽉 쥐었다.

 

급하게 달리는 소리가 아무도 없는 복도에 울려 퍼졌다. 치트는 퍼블리를 데려왔을 때 혹시 친절하게 나가는 길을 안내하는 부하들이 있을까봐 데려오기 전날에 미리 다른 곳으로 가 있으라고 명령을 내렸었다. 다른 이유로는 부하들이 어린 마녀가 왜 여기로 왔는지 의구심을 품고 행여나 뒷조사를 할 겸 퍼블리에게 다가갈까 미리 만나지도 못하게 하려고 했다.

퍼블리는 당연히 마법사를 찾고 있으니 마법사의 인상착의를 말해줄 게 뻔했고 치트는 이제 더 이상 누군가 마법사를 아는 일은 없었으면 했다. 자신만 기억하고 있기를 바랐지만 그건 이미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적어도 더 이상 아는 자들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집착 가득한 마음으로 행한 명령이었다. 하지만 퍼블리가 바로 그 전날에 왕국을 나와버려 일이 조금 틀어졌지만 크게 틀어지진 않았다. 중간에 퍼블리와 그들이 마주치긴 했지만 모드가 있었으니 그들은 이유는 궁금해도 어떻게 어린 마녀가 왕국을 나왔는지 의심하진 않을 터였다.

그 덕에 마법사는 지금 자신을 잡는 자들 없이 복도를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었다.

정말이지 철저하고 완벽해요, 하지만 그런 만큼 잔인하다고 할 수 있죠.”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마법사는 멈춰 섰다. 꽤 달렸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상대는 빨랐다. 애초에 여기의 주인이라서 당연한 건가 생각한 마법사는 뒤를 돌았다. 치트는 늘 짓던 얄미운 웃음은 물론이고 눈매가 위로 둥글어 늘 웃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눈도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안경, 어쩌면 쓸 일이 있고 이렇게 당신을 회유하기 위한 발판들이 모두 준비되었을 때 당신을 깨우기 위해서 남겨놓은 거지요. 저주상태로 있던 당신은 그 안경이라면 엄청 질색을 했으니 그걸 자율적으로 쓸 거라는 상상은 못했어요. 그런데 본래의 정신이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건 더더욱 상상을 못한 바였죠.”
치트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을 꺼낸다.

패치 어디 있습니까?”

Posted by 메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