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켜버렸네요~”

마법사는 곤란하다는 미소를 지으며 소매로 땀을 닦았다. 방금 전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순한 얼굴이 과연 동일한 마법사였나 싶을 정도였다. 다른 자들이 봤다면 도통 적응이 안 된다며 몸서리를 쳤겠지만 그나마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치트는 볼만했다.

“어떻게 아셨나요? 정말 날카롭네요~”

“아까도 말했지만 오랫동안 같이 일했는데 눈치 못 채면 당신도 섭섭하고 저도 섭섭하지 않슴까?”

그 말에 마법사가 싱긋 웃었다.

“저는 별로 섭섭하지 않네요.”

“그렇슴까?”

치트도 싱긋 웃었다. 둘 다 주변에 꽃이라도 피울 것처럼 화사하고 밝게 웃었다.

“그래서 비밀을 알게 됐으니 어쩌실 건가요?”

“뭐가 그리 급하심까? 대화할 시간은 많슴다~”

“바쁘신 분 아니었나요?”

“때에 따라 일을 미룰 수도 있는 거 다 기억하시지 않슴까~?”

“글쎄요? 안경 벗었을 때의 기억은 있지만 꽤나 흐릿해서 말이에요~”

“그런 것치곤 말투가 꽤 자연스러웠던 걸로 기억함다~?”

둘의 미묘한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싱글 생글 웃으면서 대놓고 욕이나 험한 말만 안했지 부드러운 말투 아래엔 그 어느 때보다도 아슬아슬하고 치열한 줄다리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대화라는 이름의 간보기였다.

사실 여기서 유리한 건 당연히 치트였다. 지금 있는 데가 바로 치트가 이끄는 곳인데 불리할 게 뭐가 있겠는가. 지금 상황은 치트에게 있어서 그저 눈앞의 상대를 그대로 여기 둘지 아니면 바로 잘라낼지 고민을 가져보는 시간이었을 뿐이었다.

성격만 따지면 원래 성격이 더 나은 건 두말할 것도 없었다. 능력도 원래 성격이 더 능숙한 게 눈에 훤했다. 하지만 능력이 능숙하고 좋다는 건 뒤집어서 말한다면 쥐고 있는 자, 즉 치트의 능력이 부족하거나 상대적으로 그보다 아래라면 통제하기 어렵다는 의미였다. 더군다나 상대는 저주를 받았다고 해도 밸러니의 숲 정화 때 참가했던 마법사였다. 그것도 그냥 참가했던 게 아니라 한 단체를 이끌었던 자였다.

이리저리 저울질을 하던 치트는 고민하느라 풀려있던 미소를 다시 지으며 손에 깍지를 꼈다. 어차피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마련한 게 있었다. 상대가 원하는 건 이미 쥐고 있었다.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름다. 저주에 걸렸던 당신은 지나가던 마법사나 여행하던 마녀한테 마법을 날리고 눈앞에 있는 건 부숴야 직성이 풀려했었죠.”

“그 때의 기억은 꽤 강렬해서 기억해요. 그리고 당신이 저를 속박 마법을 써서 끌고 갔던 게 기억나네요~”

“흐음? 단순히 속박 마법으로 기억하는 검까?”

마법사는 그저 웃음으로 답했고 치트는 이쯤에서 본론을 꺼내고자 종이 뭉치를 꺼냈다.

“밸러니의 숲은 지금 사라졌죠? 정확히 말해선 저주 가득한 마력으로 인해 모습이 보이지 않고 길이 왜곡 되어서 들어가지 못하는 거지 존재는 한다는 걸 압니다.”

“실제로 거기서 깨어난 저도 어떻게 다시 들어가는지 모르죠. 저주로 인해 잠들어있을 때를 떠올려 봐도 흐릿해서 계속 돌아다니기만 했었지요.”

아직까진 웃음이 감돌고 있는 대화가 오가고 있었지만 얼마 가지 않았다.

“하지만 찾았다면?”

“...네?”

“뭘 그리 놀람까? 그 안경을 만들었던 건도 전데 들어가는 길 하나 찾는 건 가능하지 않겠슴까? 어느 한군데는 다른 데보다 저주가 약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죠. 게다가”

부드러운 손짓으로 종이를 툭툭 두드리며 쐐기를 박는다.

“깨워야할 분들이 있잖습니까?”

마법사는 바로 웃음을 거뒀다. 저 종이에 적혀있는 건 얼핏 보기만 해도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었다. 결국 치트는 쥐는 쪽을 선택했다. 상대에게 필요한 걸 전부 쥐고 있었고 생각보다 이르긴 했지만 이렇게 직접 원래 모습과 만나는 것도 언젠가 벌어질 일이었다. 사실 치트 스스로가 욕 섞인 말들을 더 이상 들어주기 힘든 터라 미리 준비하고 안경을 계속 씌웠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저울질을 해봐도 좀 더 생각해봐도 치트에게 있어서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잠시 숨을 깊게 들이쉰 마법사는 다시 웃음을 머금었다.

“정말 철저하시네요? 감탄했어요.”

“이 정도는 해야 비밀들을 얻어서 정보로 장사해먹죠~”

“그보다 아까도 물었지만 바쁘신 분 아니었나요?”

“아까도 말했지만 때에 따라 일을 미룰 수도 있슴다~ 대화는 중요하잖슴까? 지금처럼 대화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래요 대화...대화는 중요하죠.”

마법사는 그렇게 말하며 소매가 덮인 왼쪽 손목을 주무르며 소매를 더 내렸다.

“하지만 대화보다 더 급박한 상황이 있고 당장 뛰어가서 봐야할 일이 있기도 하죠. 언제나 대화가 우선일 순 없는 법이에요. 예상치 못한 상황이지만 바로 잡을 수 있거나 바로 잡지 못하고 그저 멀거니 손만 뻗을 수밖에 없는 상황.”

치트는 마법사가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의아하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여전히 웃음은 거두지 않은채

“흠? 거절이라는 뜻임까?”

“아뇨. 당신이 내민 거절이 희미한 선택지에 대해서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당신에 대한 이야기예요. 제가 아까 말하고 방금 또 말했죠? 바쁘신 분이 아니냐고. 당신이 늘 하던 일이 있잖아요?”

무엇을 말하는지 아직 완전히 파악은 못했는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치트를 보며 마법사가 좀 더 자세히 얘기를 풀기 시작했다.

“당신은 원래 축제 마지막 날에 퍼블리를 데려오기로 했었는데 퍼블리가 바로 그 전날에 왕국을 나가려고 했고 이는 당신이 예상치 못한 일이지만 바로 잡을 수 있는 일이었죠. 그래서 퍼블리가 지금 여기에 와 있잖아요? 그럼 이제 남은 건 예상치 못하고 바로잡지도 못하는 일이죠.”

양 손을 맞잡은 마법사가 환하게 웃었다. 이번엔 마법사가 쐐기를 박는다.

“지금 제 안경은 어디 있을까요?”

그 말을 들은 치트가 박차고 일어나 사라졌다. 일어나자마자 이동 마법을 급하게 썼는지 손에 닿아있던 가장 위에 있던 종이도 사라졌다. 그걸 전부 지켜보고 있던 마법사는 치트가 사라지자마자 문을 열고 달려 나갔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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