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 마법사는 아까처럼 생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가고 싶은 곳으로 갔겠죠?”
순간 귀 끝이 베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한 바람이 훙 하고 마법사의 옆을 잔뜩 쓸어갔다. 요란하게 벽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파편들이 바로 앞에 있는 어깨를 쓸었다.
“다시 묻죠. 패치 어디 있습니까?”
“이렇게 물을 시간에 마저 더 뛰어다니시는 게 찾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같이 작전을 세웠을 자를 먼저 발견했다면 그 자에게서 정보를 털어내는 게 헛걸음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니까 이렇게 묻고 있잖습니까?”
“그렇다면 다시 말해드릴게요.”
아난타는 대답하기 전 지었던 웃음보다 더 환하게 웃어보였다.
“가고 싶은 곳으로 갈 게 당연하니 이렇게 대답하고 있잖습니까?”
그 말을 끝으로 대화는 끝났다. 굉음과 함께 벽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 방에 얌전히 계십쇼.”
그렇게 말한 모드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아까와 다를 바 없는 모습과 말에 퍼블리는 조금씩 긴장을 풀었지만 퍼블리를 뒤로 물린 그는 절대 긴장을 풀지 않았다. 퍼블리는 설득을 해볼까 고민했지만 상관, 즉 치트의 명령이 우선인 듯 하고 저 말을 들어보면 이 방 안에 얌전히 있게 두라는 명령을 받아서 온 것 같아 애초에 설득이 불가능할 것 같았다.
모드는 여기로 들어오기 전에 미리 방 안에 걸어뒀던 감지 마법으로 퍼블리가 자신을 부르는 걸 들었지만 그보다 먼저 수정구를 통해서 치트에게 누가 나오든 간에 잡아두라는 명령을 받았다. 일단 퍼블리는 방 안에 있으니 그대로 있으면 잡아둘 이유는 없었다. 그럼 치트의 명령에서 가장 먼저 의미하는 자는 아난타였다. 모드는 아난타를 찾기 위해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감지 마법이 퍼블리가 문을 열었다고 알리자 곧바로 들어가라고 말하러 가야할까 싶었지만 바로 문이 닫히고 퍼블리는 방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조금 더 아난타를 찾으러 돌아다니던 모드는 아난타를 발견했지만 근처에 치트가 가까이 다가가는 걸 보고 뒤쫓는 걸 멈췄다. 그래서 퍼블리가 아까 자신을 불렀으니 지금이라도 부름에 응답하고자 했고 늦었으니 이동 마법을 쓰자는 생각에 바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존재가 방 안에 있었다.
“하필이면...”
모드도 그가 누군지는 알았다. 시선을 순식간에 사로잡는 붉은 머리에 동그랗고 커다란 안경 너머로 보이는 날카로운 푸른 눈. 치트는 그를 직접 보여준 적은 없었지만 늘 그의 특징을 머릿속에 거의 새길 정도로 알려주면서 찾아내라고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못 알아볼래야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치트가 보여줬던 집착이 엄청났었다.
“저항할 생각은 없지만 밖으로 보내줄 생각은?”
“없습니다.”
단호하게 말하는 모드에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이 틀렸고 처음 짰던 계획과 상당히 어긋났던 터라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다른 마법사나 마녀라면 몰라도 상대는 모드였다. 설득이나 협상이 통하기 이전에 애초에 치트의 명령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명령 외의 것들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 마녀였다. 부하들에게 내렸던 치트의 명령이 의외의 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완전히 안 나가도 이 방 밖으로 나가는 건...”
“누가 나오든 간에 잡아두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누가 머리 굴리면서 비밀 캐고 사는 마법사 아니랄까봐 명령 내리는 것도 굉장히 잘 굴리는 치트였다. 혼자였다면 상관없겠지만 뒤에는 퍼블리가 있었다. 무언가를 하려고 해도 모드가 눈도 깜빡이지 않고 둘을 지켜보고 있었다. 일단 잡아두라고 했으니 방 밖으로 내보내려고 하진 않고 나가려는 시도만 하지 않으면 무슨 짓을 해도 신경 쓰지 않을 거다. 하지만 이렇게 방 안에만 있으면 세웠던 계획도 이렇게 퍼블리를 찾아온 의미도 없었다. 어찌해야하나 머리를 굴리다가 뒤에서 옷깃을 잡아끄는 손길에 뒤를 돌아보니 퍼블리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에 안심하라는 의미인지 머리를 쓰다듬자 고개를 숙인다. 쓰다듬을 받고 있는 퍼블리는 순간 어색함을 느꼈다. 그 때였다.
“와악?!”
갑자기 밖에서 들려오는 굉음에 깜짝 놀란 퍼블리가 비명 아닌 비명을 질렀고 그와 동시에 퍼블리를 쓰다듬던 손길이 떨어지더니 방 안이 크게 번쩍이며 굉음이 눈앞에서 울렸다. 뒤늦게라도 귀를 막을 새도 없이 퍼블리는 저를 잡아끄는 손길에 덩달아 달리기 시작했다.
“계속 달려!”
퍼블리를 잡아끌던 그는 이젠 퍼블리를 앞세워 뒤에서 등을 밀며 달리기 시작했다. 굉음은 두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다. 동시에 무언가를 부수는지 요란하게 무너지는 소리들도 함께 들려오고 있었고 그 소리들을 타고 뒤에서 먼지구름과 파편이 잔뜩 어깨와 뺨을 쓸기 시작했다. 뒤에서 전기 공격이라도 하는지 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빛이 번쩍거리는 게 순간 앞의 시야를 다 가릴 정도였다. 그와 동시에 퍼블리는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질 뻔했지만 뒤에서 자신을 잡아주는 손 덕분에 간신히 중심을 잡아 계속 달릴 수 있었다.
뒤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가 싶어서 궁금했던 퍼블리는 살짝 고개를 돌려 뒤를 봤다. 몸을 반쯤 뒤로 돌린 채 자신을 잡아주는 손 말고 남은 손으로 뒤에다 계속해서 마법을 써대는 아빠와 그 마법들을 피하고 못 피하는 건 쳐내거나 막아대는 것도 모자라 반격으로 마법을 날리는 모드, 그 뒤에 피하고 쳐낸 마법들이 복도 벽에 부딪혀 벽돌들이 전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마치 재난이라도 일어난 것 같았다. 그런 광경에도 모드는 미간도 찌푸리지 않은 채 쫓아오고 있었다. 이쯤 되면 저 무표정이 꿈에서도 나올까 두려울 정도였다.
굉장한 실력의 마녀와 마법사가 공격을 주고받고 피하고 쳐내다보니 꽤나 가까이에 있는 벽들이 무너지느라 굉음이 뒤에서는 물론이고 앞에서도 들려오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착각이 아니었다. 다시 앞을 돌아본 퍼블리가 기겁해서 외쳤다.
“아빠!! 잠깐! 멈춰요, 멈춰!!”
퍼블리의 외침에 그가 견제용으로 날리는 마법들을 멈추고 급하게 방어마법을 펼쳐 앞을 보니 저 앞에서도 마법들이 여기저기 날아다니고 벽을 부수고 있었다. 퍼블리는 뒷 상황이 재난이라고 하는 걸 취소했다. 진짜 재난은 바로 앞이었다. 여기보다 더 하다면 더 하다고 할 광경이었다. 여기는 제압이 목적이라면 저 앞은 정말 죽이려고 하는 것 같았다. 앞에서 벌어지는 뿌연 먼지구름에서 그림자가 아른거리더니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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