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보다 공주님은 무슨 생각이실까~”
전서구가 부리에다 물고 오는 바다 소식은 변함없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가을 끝자락쯤에 흑기사단이 기습적으로 신성지대로 들이닥쳤다는 소식이 아니카에게 왕국의 그 누구보다 빠르게 날아왔다. 바다를 계속 경계했는데도 신성측이 기습을 예측하지 못한 이유는 배를 댈 수 있는 땅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지금도 그 땅이 어딘지는 흑기사단과 메르시를 제외하면 갈매기와 전서구만 알고 있었고 아니카도 굳이 어딘지 알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래서 바다가 아닌 바로 땅을 통해 기습해 들어왔고 메르시가 진실을 외치며 물러났다고 한다. 그리고 그러기를 열 번 정도 계속 반복했고 아니카가 여기 머무른지 닷새 째 되는 날 그만두고 다시 바다로 돌아갔다고 한다. 과연 효과가 있을까 의문스럽지만 더 의문인 건 그동안 기습할 때마다 기습목표인 신성측에 상처 하나 없이 제압만 하고 돌아갔다는 얘기였다.
내가 높은 데 날아다닌다 해도 자리에 앉아있는 마녀나 마법사 생각은 나도 모른다.”

전서구는 그렇게 대답하며 따뜻해진 날개를 거두고 반대쪽 날개를 난로 가까이에 댔다. 따뜻한 불을 쬐며 전서구는 마지막으로 그 날의 일을 외치고 배에 오르던 메르시와 흑기사단에게 무슨 일인가 묻기 위해 다가갔던 일을 떠올려봤다. 그저 웃던 메르시와 나중에 만나자라고 당당하게 외친 흑기사.

꼭 어디 멀리 갈 것처럼 그러더라.”

 

용사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 울고 있던 퍼블리는 용사가 사라지고 난 후에 바로 발밑을 내려다봤다. 흙은 그대로 볼록 튀어나와있었다. 저기서 장미가 자라 피어났구나, 그것도 파란장미가. 제 품속의 유리병을 꼭 쥔 퍼블리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나무 뒤에서 용사를 기다리고 있던 패치가 기억이 나타나기 전처럼 서 있었다. 퍼블리는 너무 울어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지만 그 아픔이 오히려 머릿속을 선명하게 만드는 것 같이 느껴졌다. 지금 안개에 둘러싸인 이 숲보다 퍼블리의 머릿속이 더 깨끗해지고 있는 순간이었다.

아빠.”

패치는 부르는 목소리에도 여전히 그림처럼 서 있기만 했다.

혹시 저 알아요?”
아니.”

“GM할아버지는요?”
알고 있네.”
아니카는요?”
아니.”

아난타 선생님은요?”
전장과 분노의 대표를 말하는 거라면 알고 있네.”
퍼블리의 눈동자는 어떤 마법사와 색이 같았지만 빛은 다르게 빛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눈물에 젖어있던 눈동자가 순간 거울 같은 호수처럼 반짝였다.

왜 용사를 따라다니면서 챙겨줬는지 그 이유가 기억나요?”
아니.”
퍼블리는 대답을 듣자마자 바로 뒤돌아 안개 가득한 숲으로 달려갔다. 패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안개들이 퍼블리를 막는 것처럼 퍼블리의 시야를 가렸지만 다리를 막을 순 없었다. 그나마 보였던 나무들도 안 보일 정도로 주변엔 안개만 남았다. 나무에 부딪힐지도 모르는데 퍼블리는 계속 달리기만 했다. 그동안 지나올 때는 아프지 않던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고 느껴지지 않던 피곤함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가쁠 일 없던 숨이 가쁘기 시작해도 퍼블리는 계속 달리기만 했다.

왜 그러니?”
목소리가 들려오자 퍼블리는 바로 멈췄다. 처음 이 숲에서 만났을 때처럼 주위에는 안개가 가득했고 마법사는 덩그러니 서 있었다. 중간에 헤어졌던 마법사는 그 이후로 이 자리에 서 있었는지 아니면 달려오는 퍼블리를 마주 보러 온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둘은 다시 만났다. 퍼블리는 헉헉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마법사는 잠시 기다렸다가 퍼블리의 숨소리가 다시 고르게 될 때 입을 열었다.

왜 여기로 뛰어온 거니?”

, 후우...아빠를 찾으려고요.”
찾았잖니?”

아니요. 못 찾았어요.”

너를 기억하지 못해서?”
그것도 그렇지만 아빠는 대답만 하지 않아요.”
마법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퍼블리는 숨을 크게 들이쉬면서 아까 호수에 두고 온 패치를 떠올렸다. 아빠라고 불러도 반응을 안 하고 묻는 것만 대답하던 패치. 안아 봐도 되냐고 요청했을 때 아무 말도 안 했었다. 거기 있던 패치는 질문에는 답했지만 요청에는 답하지 않았다. 거기 있던 패치는 GM과 용사를 기억하고 있었지만 퍼블리와 아니카를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거기 있던 패치는 왜 용사를 챙겼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거기 있던 그동안 퍼블리가 계속 봐왔던 기억속의 패치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퍼블리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아빠는 아무도 섣불리 제 옆에 두지 않고 쉽게 누구 곁에 있으려고도 하지 않아요. 그리고 숨기는 것도 많고 그나마 말 나누는 GM할아버지한테도, 그 유명한 하늘의 현자한테도 웬만하면 말하지 않으려고 하는 게 아빠예요.”

퍼블리는 마법사를 똑바로 보며 물었다.

당신은 누구예요?”

속내도, 말도, 모습도 전부 숨기는 제 아빠를 그렇게 잘 안다고 말하고 실제로도 잘 알고 있는 당신은 대체 누구인가.

퍼블리는 왕국으로 들어와 산 이후로 제 아빠가 학교 입학에 대해 나왔을 때와 작년의 축제 때를 제외하곤 만나고 대화했던 건 같이 사는 퍼블리 자신 외엔 없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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