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저 이후로 대화 못 한 거예요?”
그건 아니겠지만 가는 자들이 저들 뿐만은 아니었으니 시간이 부족했던 거 아닐까 싶단다.”
확실히 흑기사단과 신성만 봐도 마법사들이 수두룩한데 여기에 마법사들뿐만 아니라 마녀들도 있으니 과연 모두와 인사를 나눌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거기다가 저주막이 마법 수련과 오랜 시간동안 단체 이동에 대해 훈련도 하다 보니 일일이 인사를 나눌 시간은 더더욱 적었다. 그래도 아난타와 그의 동료들은 꿋꿋하게 인사를 나누러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퍼블리가 보기엔 신기할 따름이었다. 때마침 훈련이 끝나자마자 한창 저주의 위험성과 저주면역 마법에 대해서 가르쳐주는 왕궁 마녀가 나타났다.

모두 집중해서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이어지는 설명에 컨티뉴는 여전히 얼굴이 안 보이니 잘 모르겠지만 패치의 얼굴이 썩 좋진 않았다. 찌푸리거나 아예 외면해버린 건 아닌데 한기가 저절로 느껴질 정도로 싸늘한 얼굴로 왕궁 마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나마 왕궁 마녀에게 다행이라고 하면 다행일지 둘 사이의 거리는 꽤 먼데다 그 사이에 다른 마법사나 마녀들이 있어서 왕궁 마녀는 패치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없었다.

전에 말씀하신 거와 비슷한데 맞습니까?”
맞아.”
둘의 의미심장한 대화는 주변에 있는 마녀와 마법사들은 못 알아들었지만 퍼블리는 알아들었다. 저 왕궁 마녀가 바로 왕과 왕후의 시신을 숨긴 마녀들 중 하나라는 걸. 사실 말만 떼어놓고 듣는다면 퍼블리도 조금 머리를 굴려야했겠지만 싸늘한 패치의 얼굴이 매우 결정적이었다. 물론 패치는 컨티뉴한테 확인 받은 후 바로 원래의 딱딱한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능숙한 표정 갈무리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퍼블리는 그 마녀가 설명하는 내용을 집중해서 듣기 시작했다. 비록 숲에서 장미와 책을 훔치고 왔던 이들 중 하나긴 하지만 저주에 걸리지 않고 멀쩡히 나온 마녀이니. 그런데 퍼블리는 잠깐 이상한 점을 또 이제야 느꼈다.

생각해보니 저 지금 계속 이 숲에 있는 건 물론이고 엄청 오래 있었는데 이미 저주에 걸린 거 아니에요? 원래 저주는 발현이 늦어요?”
넌 저주에 걸리지 않았단다. 그리고 미리 말하는데 저 마녀가 지금 설명하고 있는 건 엉터리야.”
그럼 저 마녀는 왜 멀쩡해요? 그리고 저는 왜 저주에 안 걸린 거예요?”

저 마녀를 포함한 도둑들은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뿐이란다. 하지만 처음 들어왔을 땐 모르지만 그 뒤는...그리고 너는 나중에 얘기해줄 거란다.”
패치와 컨티뉴도 마녀의 얘기를 주의 깊게 듣고 있진 않는 것 같았다. 숲에 들어갔다가 저주 없이 나왔다는 걸 알고 모르고를 떠나서 아예 신뢰를 할 수 없는 자들이기에 나오는 모든 말이 둘에게 닿을 일은 없었다. 용사는 이미 패치의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느라 안 듣고 있었다.

마녀의 설명은 훈련보단 빨리 끝났다. 그리고 매일 반복해서 설명하러 올 거라고 덧붙인 후 그대로 다시 왕궁 안으로 돌아가고 남은 마녀와 마법사들은 저게 정말 진짜일까 미심쩍어 하면서도 종이와 필기구를 꺼내들어 방금까지 들었던 설명을 적기 시작했다.

일단 꽤 자신에 차 있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이유라고 생각하지?”

근처에 있어도 얼마든지 닿을 수 있지만 그만큼 미약하고 무사한 자들도 많았으니 아마 직접 들어갔다 나온 게 아닐까 싶습니다.”
오래된 종이를 발견해서 나름의 흥정으로 높은 의자를 샀고.”
그럼 들어간 김에 멋대로 갖고 나온 거로군요. 그리고 용사가 저번에 선물을 받은 게 있는데 그것도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몇 마디 설명과 거기에 실린 어투와 태도로 역으로 비밀을 추측해서 털어버리는 둘의 대화에 퍼블리는 소름이 돋아 팔을 쓸었다. 물론 퍼블리가 알게 된 비밀들도 아난타로 변신한 제 아빠가 알려줘서 알게 된 거였고 기억 속에서 비밀들을 알아내는 건 당연하겠지만 이런 식으로 알아내는 건 전혀 상상치도 못했다. 게다가 그저 단순히 제 머리 속에서 추측한 비밀을 섣불리 말할 마법사도 아니었으니 나중에 추측이 맞아들었다는 증거와 정보를 얻었을 게 분명했다.

솔직하게 말하는 이유는 뭘까요?”
글쎄 역시 불안감?”

둘은 이제 왜 마녀가 순순히 저주 없이 숲에 들어갔다 나온 방법을 설명해주는지 추측하기 시작했다. 불안감은 역시 저주 때문이겠지만 패치의 시큰둥한 반응을 보아하니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 것 같았다. 컨티뉴도 그냥 해본 말이었는지 하하 웃으며 다른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아직 둘도 상대방이 지금당장 무엇이 목적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목적은 생각보다 빨리 알게 됐다.

저와 함께 일하는 제 동료들을 포함해 여러분과 함께 밸러니의 숲으로 갈 겁니다.”
너무 뒤에서 가만히 있으면 의심을 사는 건 당연하니 이제 직접 나서서 시선을 환기시키려는 게 목적이었다. 물론 여덟 마녀 전부 다 가는 건 아니고 그 중 반인 네 명이 다시 숲으로 가는 거였다. 일단 자신들만 멀쩡히 돌아오면 더 의심이 갈 게 분명하니 같이 가는 이들도 멀쩡히 돌아오게 하는 것도 목표라면 목표였다.

꽤 크게 뒀군요.”
뭐얼~?”
마녀가 호수에 돌을 던졌네.”

호수에 돌 던져도 됑?”

안 돼.”
안 되는 걸 했구낭!”

용사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호수에 돌 던지는 건 안 되는 거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근처에 있던 마법사와 마녀들이 용사가 외치는 소리에 잠깐 흘끗 돌아보다 다시 제 할 일을 하려고 시선을 뗐고 패치는 그 틈에 뛰어다니는 용사를 붙잡아 자리에 앉혔다.

패치가 예상하길 용사가 숲에 가고 싶다고 했지만 왕국에 와서 훈련을 받다가 다른 흥밋거리를 발견하고 그만둘 줄 알았는데 의외로 용사는 꾸준히 훈련을 받으며 숲으로 가는 걸 포기하지 않았다. 패치는 제 예상처럼 용사가 다른 흥밋거리를 발견해서 숲에 흥미가 떨어져 가지 않기를 바랐지만 용사는 예상보다 숲에 가고 싶은 마음이 단단해 보였다.

물론 꾸준히 훈련을 받는다고 해서 용사 성격이 달라지는 건 아니라 천진난만함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점은 여전했고, 그 때문에 왕국 밖이나 안이나 용사를 챙기는 패치의 일상은 훈련을 제외하면 똑같았다.

왕국으로 들어왔을 때 시간은 여름의 끝자락에 머물러 있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여름은 어디가고 어느새 낙엽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 나무가 나뭇가지만 남아 앙상해지기 시작할 때쯤 간간히 흑기사단을 만날 때와 훈련 받을 때를 제외하면 왕궁에 있었던 메르시가 드디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출발합니다!”
왕국에 모인 모든 마법사와 마녀들이 밸러니의 숲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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