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정말 쉽게 믿는 것 같으면서도 신중하구나.”
마법사는 조금 고민하는 기색으로 손을 들어 턱과 입을 감쌌다.
“뭐부터 말하고 어디서부터 얘기해야할지 고민이란다. 하지만 그 전에 선택하렴. 넌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알고 싶니, 아니면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니?”
갑자기 들이밀어진 선택지에 퍼블리는 당황해서 마법사를 바라봤지만 여전히 모자에 가려져 눈이 안 보이는 마법사는 그 말을 꺼낸 후론 입을 딱 닫아버렸다. 퍼블리는 눈을 꼭 감고 신중하게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저를 기억하고 아니카도, 선생님도, 마녀 왕국도 기억하는 건 물론이고 단순히 기억이 모여 대답만 하는 아빠가 아닌, 숨기기 바쁘면서도 먼저 말도 걸었던 적이 있고 함께 축제를 즐기고 저랑 계속 같이 살았던 제 아빠가 어디 있는지 알고 싶어요.”
퍼블리의 대답을 들은 마법사는 잠시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퍼블리가 무언가 더 자세히 말했어야 했나 고민하던 중 머리에 손이 올려지는 걸 느껴 깜짝 놀랐다.
“신중하게 대답했구나.”
묘하게 기특한 느낌을 담아 쓰다듬는 손은 조금 차가웠다. 퍼블리는 물러나지 않고 가만히 있었지만 어쩐지 굉장히 어색했다. 이렇게 제 머리를 쓰다듬는 건 아니카를 제외하면 별로 없어서 그런 건가 생각해도 어색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아 어찌해야하나 고민하던 순간 손이 물러났다.
“어차피 보다보면 네가 궁금했던 건 알게 될 거란다.”
그렇게 말한 마법사는 쓰다듬었던 그 손을 바로 옆의 안개 속으로 뻗더니 그대로 옆으로 치우듯 움직이자 안개들이 손길에 따라 걷히더니 기억이 나타났다.
“기억은 역시 임의로 보여주신 거였나요?”
“지금부터 볼 기억은 그렇지만 그 전에 네가 봐왔던 기억은 내 말대로 흩뿌려져 있었던 거란다.”
마법사는 딱히 뭔가를 꾸민 적은 없다며 덧붙였다. 하지만 중요한 부분을 말하지 않고 피한다는 건 퍼블리도 알고 있었다. 이렇게 계속 기억을 봐야하나 조금 고민했지만 어차피 달리 방법이 없었다. 계속 물어봐도 지금처럼 직접적인 대답은 피할 뿐이니 그냥 더 묻지 않고 기억을 보기로 했다. 어차피 보다보면 알게 될 거라고 하지 않았나.
“근데 아빠는 멀쩡하셔요?”
“무슨 뜻이니?”
“저는 기억을 보기 시작한 이후로 아무것도 안 먹고 잠도 안 잤는데 일단은 멀쩡하잖아요, 아까는 피곤함이 느껴지긴 했지만 지금은 또 괜찮아요. 그런데 아빠가 저처럼 괜찮을지는 모르잖아요?”
“...네 아버지는 어디다 던져놔도 정말 잘 살 거란다. 병에 걸려도 그 병을 죽일 자고 목에 바로 칼이 들어와도 그 칼에 목 한 번 베여주고 칼을 들이민 자를 없앤 후에 태연하게 목을 치료할 마법사야. 내 모든 기억을 걸고 장담해.”
굉장히 섬뜩한 비유에 퍼블리는 마법사를 한 번 보다가 다시 제 앞에서 움직이고 있는 기억 속의 패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패치는 아무것도 모르고 묵묵히 훈련을 받으면서도 컨티뉴와 이번에 만들어낸 저주막이를 이루고 있는 마법 이론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기 바빴다. 저렇게만 보면 마법 공부와 연구에 열의가 가득한 마법사처럼 보이는데 곰곰이 생각해보고 자세히 살펴보면 열의 수준을 뛰어넘었다는 걸 여실히 느꼈다. 새삼 퍼블리는 아빠가 뭘 하고 싶었던 걸까 궁금하기도 했다.
“안녕하세요오?”
열 띈 토론이 한창이던 중 익숙한 마법사가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바로 아난타였다. 퍼블리는 원래부터 안경을 안 쓰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하며 아난타의 뒤에 있는 자들을 살펴봤다. 아마 그들이 아난타의 동료인 전장과 분노에 속한 이들 같았는데 모두 마법사인 건 아니었다. 마녀들도 속해있었지만 마법사측이라고 책에 적히고 그렇게 소개된 이유가 아마 상대적으로 마법사가 더 많아서인 것 같았다. 격투가라는 말에 걸맞게 그들의 팔다리 근육은 평범한 마녀와 마법사보다 더 뚜렷하고 튼튼해보였다. 컨티뉴와 패치는 하던 얘기를 멈추고 인사를 받았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격투가로 유명하신 전장과 분노군요.”
컨티뉴가 먼저 그들을 안다면서 운을 뗐고 패치는 가만히 있었다. 아난타는 숲으로 같이 가게 될 마녀와 마법사들에게 인사를 하고 얼굴을 익히러 온 거였지만 뒤의 동료들은 소문으로 듣던 하늘의 현자를 보게 되어 굉장히 영광스럽고 기쁜 기색이 만연했다. 패치는 익숙하단 얼굴로 펼쳐놓은 이론 종이들을 모았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직 식지 않은 기세를 보아하니 지나가던 마녀나 마법사 하나 붙잡고 의견을 나누거나 여의치 않으면 혼자서라도 이론을 파헤치는 걸 넘어서 아예 머릿속에 새길 기세였다. 그런 패치를 잡은 건 아난타였다.
“실례가 안 된다면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던 건지 여쭤도 될까요?”
그렇게 해서 아난타까지 합류했다. 물론 뒤에 있던 동료들도 대표인 아난타가 합류했으니 자신들도 합류해서 이론을 살펴보고 의견을 내거나 모르겠는 걸 물어보게 되는 시간을 가지게 됐지만 현자가 괜히 현자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다. 의견을 내기는커녕 의견들을 듣는 데 바빴다. 내고 있는 건 지금까지 그래왔던 컨티뉴와 패치, 관심을 보이며 합류한 아난타 이 셋뿐이었다.
“새삼 생각난 건데요.”
“뭔데?”
“아난타 선생님도 임시지만 괜히 선생님을 했던 게 아니란 거요.”
아난타는 이제 자신의 동료들이 아직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하나씩 짚어 가르쳐주고 있었다. 아마 가르치는 능력만 따지자면 여기 앉아있는 마녀와 마법사들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할 수 있었다. 꽤 기억에 오래 남는 아난타의 수업을 떠올린 퍼블리는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었지만 내용이 내용이다 보니 아난타가 설명하고 있어도 아직 학교에서만 마법을 배우던 어린 마녀가 이해하기엔 굉장히 어려운 축에 속해있었다.
그림자가 조금 길어질 때쯤 아난타는 이제 다른 분들에게도 인사하러 가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동료들도 따라 일어났다. 패치도 컨티뉴와 아난타랑 의견을 나누는데 푹 빠지느라 용사를 깜빡한 걸 떠올리곤 자리에서 일어나 저 멀리 하늘을 나는 마법을 쓰며 비둘기와 놀고 있는 용사에게로 달려갔다.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던 아난타가 그런 패치를 보고 깜빡했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저 분의 이름을 듣지 못했네요.”
다시 다가가 이름을 물어보기엔 용사를 천천히 땅으로 내려오게 하는 패치는 바빠 보였고 아난타는 아쉽다는 눈으로 보다가 어차피 같이 숲에 가는 상황이란 걸 떠올리곤 나중으로 기회를 미뤘다.
'장편 > 마녀를 키우는 마법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녀를 키우는 마법사 chapter 5 -choice.5- (0) | 2018.03.10 |
---|---|
마녀를 키우는 마법사 chapter 5 -choice.4- (0) | 2018.03.08 |
마녀를 키우는 마법사 chapter 5 -choice.2- (0) | 2018.03.05 |
마녀를 키우는 마법사 chapter 5 -choice.1- (0) | 2018.03.04 |
마녀를 키우는 마법사 next chapter opening short story 4 (0) | 2018.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