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볼 때랑 선생님한테 들었을 때는 딱히 실감하지 못했는데 직접 보니까 정말 엄청나요!”
“뭐든 한꺼번에 움직이는 게 가장 위협적이면서도 눈이 가는 구경이지.”
마녀들과 마법사들로 이루어진 대규모 행렬이 왕궁의 문을 넘어가고 있었다. 퍼블리는 용사와 컨티뉴를 양 옆에 두고 행렬 사이에 따라 걷는 패치를 보다가 전서구를 떠올렸다. 그리고 아직 눈이 내리지 않는 건 물론이고 구름도 없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혹시 큰 비둘기를 타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더 장관이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니?”
“어, 어떻게 아셨어요?”
“이 광경을 두고 하늘을 보길래 알았단다.”
그래도 전서구를 어떻게 아나 궁금했지만 전서구를 타고 용사를 찾아다니던 기억 속의 패치를 떠올리고 궁금증을 해결했다. 아마 패치가 퍼블리보다 전서구의 등을 더 많이 올라탔지 덜 올라타진 않았을 거다.
“오늘은 여기서 쉽니다!”
중간에 마법사들이 사는 마을에서 쉬거나 노숙을 하는 모습을 보며 퍼블리는 마법사에게 숲이 어디쯤에 있는지 물어봤다. 그 유명한 밸러니의 숲은 정작 어디에 있는지 알려져 있지 않았고 알고 있는 건 왕궁 마녀들이랑 이 때 당시를 기억하고 있는 어른 마녀들밖에 없었다. 한 때 저주가 가득했고 정화했어도 저주가 남아있다고 알려져 있는 이곳을 어린 마녀들에게 알려줄 어른들은 없었고 퍼블리는 메르시가 준 피리를 통해서 이동 마법으로 바로 왔으니 밸러니의 숲이 정확히 지도상에서 어디쯤에 있는지 모르는 건 당연했다.
“바다를 본 적 있니?”
“네. 신성지대에 갔을 때 봤어요.”
“그 해안선을 남쪽으로 쭉 따라가면 나오는 벌판은?”
“직접 가보진 않았고 지도로 봤어요. 거기가 지도 맨 아래쪽이자 남쪽이고 북쪽의 산맥과 서쪽의 바다와 함께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고 있다고만 들었어요.”
“거기란다.”
“네?”
“그 벌판 전부가 숲이었어.”
지도 한가운데에 있는 마녀왕국, 그 주변에 가득한 숲을 조금 지나서 초원으로 이루어져 있는 동쪽을 제외하면 나머지 세 방향은 끝을 보고 완성되어있다고 알려진 게 지금 누구나 쓰고 있는 지도였다. 북쪽은 험준하고 높은 산맥이 있었고 서쪽은 제일 넓고 끝이 안 보이는 바다가 있었고 남쪽은 아무것도 없이 넓은 벌판이 있었다. 그 남쪽의 벌판이 사실은 밸러니의 숲이었던 자리라니 퍼블리는 왜 벌판을 세상의 끝이라고 했는지 이제 이해가 간다는 눈으로 컨티뉴와 함께 노숙을 준비하는 패치를 바라봤다. 아무리 왕국이 한가운데에 있어도 비둘기들처럼 날아가는 게 아닌 이상 남쪽 끝은 멀었다.
“비록 생각했던 방향은 아니지만 끝 너머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니 나쁜 기분은 아니야.”
“어디까지나 조사차 가는 거니 가는 김에 끝 너머를 보는 건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 끝 너머가 세상의 끝 너머였구나. 정화 후 하늘의 현자가 어디에 있는지 한창 얘기가 많다가 결국 죽었다는 결론이 내려졌었는데 사실 살아서 숲 너머로 간 게 아닐까 퍼블리는 추측했다. 어떤 책에서는 현자가 현명하지만 슬픈 방법으로 희생을 자처해서 현자의 죽음과 동시에 숲이 정화되었다고 써져있었다. 물론 그 책을 쓴 자는 하늘의 현자 추종자로 유명해서 믿는 자는 같은 추종자 외엔 별로 없었다. 어쩌면 현자가 멀쩡히 살아있을 거라 점점 생각을 굳히고 있던 퍼블리는 잊고 있던 마법사 하나를 떠올렸다.
“맞다, 용사님!”
“용사?”
이제까지 본 기억들이 뭉친 패치를 만나서 혼란스러웠던 와중에 퍼블리에게 말을 걸었던 용사. 안 그래도 혼란스러웠는데 갑자기 출생의 비밀이 나타나서 정신없는 와중이었고 다 본 후엔 마법사를 찾아 뛰어오느라 용사를 깜빡 잊고 있었다.
“용사님이요! 여기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어요!”
“무슨 소리니?”
“아까 기억들이 뭉친 아빠를 만났을 때 용사님이 나타나서 저한테 말을 걸었어요!”
“말을 걸었다고?”
“네!”
용사를 깜빡 잊은 퍼블리는 생각해보니 출생의 비밀이 담긴 기억을 보고 용사가 그대로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퍼블리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용사가 기억 속에서만 그러는 게 아니라 지금도 숲 어딘가를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용사부터 찾아야하나 고민이 들었지만 역시 제 아빠를 한시라도 빨리 찾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용사는 멀쩡해보였지만 기억이 흩어진 지금 아빠는 어떻게 되어있을지 모르니까. 그래도 일단 용사가 어디 있는지 마법사가 알 수 있을까 싶어 물어보려는 순간 기억 속의 상황이 묘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모두가 한꺼번에 움직이는 데는 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단체에 속해 있어서 단체로 움직이는 데 익숙한 마녀와 마법사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그 단체들도 다 제각 학교생활이나 친구 모임 외엔 단체 생활을 겪어본 적 없는 이들도 많았다.
“개별적으로 가도 결국 뒤처질 이들은 뒤처질 수밖에 없어요.”
“역시 훈련과 실전은 다르네요.”
지쳐있는 이들을 이대로 두고 갈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더 지체할 순 없었다. 하루 빨리 숲으로 가서 저주가 흘러나오는 원인을 알아내야했다. 이대로 있다간 겨울이 다 지나가고 봄이 올 거다. 숲이 다시 생기를 되찾을 테고 저주가 더 빨리 흘러나올지도 모른다.
“이미 지쳐있는데 숲으로 데려간다고 해서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진 않습니다만.”
누군가가 냉정하게 말을 꺼냈고 그 뒤를 이어 두고 가자는 말들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지친 이들은 그래도 따라갈 수 있다며 남은 힘을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면 한꺼번에 가지 말고 나눠서 가는 게 어떻습니까?”
지친 이들은 잠시 쉬어서 그 뒤를 따라오는 게 어떠냐는 의견이 나왔다. 더 좋은 말로 포장하자면 선발대와 후발대로 나누자는 거였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말이 좋아 후발대지 못 따라가는 자들은 아예 못 따라가서 결국 따라가지도 못하게 된다는 게 아니냐는 불만이 나왔다.
“그렇다면 저희가 후발대에 남겠습니다. 저희의 가장 큰 특기 마법은 치유와 회복 계열이니까요.”
신성의 대표 홀리가 나서서 말했다. 회복 마법을 쓰면서 이들을 이끌면 충분히 뒤따라갈 수 있다는 말에 반대하던 이들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신성은 후발대에 남았고 지친 이들을 이끌기 시작했다. 그리고 퍼블리는 왜 신성 측이 다른 이들에 비해 멀쩡해보였는지 이 기억을 통해 눈치 챘다.
그들은 애초에 저주에 걸리지 않았다. 후발대는 숲에 들어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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