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책에서 순백의 날에 대해 쓴 마녀와 마법사들은 전부 후발대였던 거예요?”
전부라기 보단 대부분은 그렇단다. 살아 돌아왔어도 저주 때문에 일상생활도 힘드니까.”

진실이 담긴 내용을 썼어도 책으로 내지 못했을 자들이 많았을 게 뻔했다. 퍼블리는 집에 돌아가면 역사책부터 태우기로 결심했다. 세상이 사기꾼 천지였다.

용사는 여행하는 게 잘 맞는 것 같아 보이네.”
지금 이 상황은 여행이 아닙니다만.”
용사에게 있어선 여행이지 않을까?”
아직 숲에 도착하진 않았지만 선발대에 속한 대부분의 이들이 긴장을 하고 있었다. 패치와 컨티뉴도 아예 긴장감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고 숲으로 들어간 이후에 어떻게 될지 미리 걱정도 하고 있었다. 다만 패치는 본인보다 용사를 더 걱정하고 있는 눈치였다. 이를테면

숲으로 들어간 이후엔 절대 아무거나 따서 먹으면 안 돼, 열매는 물론이고 버섯과 풀 그 외 모두.”
패치는 숲으로 가는 길 내내 용사를 붙잡고 거의 상식수준의 얘기들을 당부하고 있었다. 아무리 용사라도 아무거나 주워 먹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었다. 눈에 띄는 버섯을 바로 제 따서 제 입에 넣은 전적이 있는지라 패치가 얼굴을 몇 번이나 쓸어내렸는지 바로 옆에서 본 컨티뉴와 퍼블리는 잘 알고 있었다.

우웅~ 나뭇잎은?”
안 돼.”

미리 챙겨온 식량들 외엔 입에 절대 넣어선 안 된다고 단호하게 얘기하니 그제야 용사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패치는 여전히 미심쩍다는 눈으로 용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용사는 그런 패치의 속도 모르고 메르시와 흑기사단과 놀다 오겠다고 말하며 흑기사단이 있는 데로 뛰어갔다. 당연하게도 선발대로 온 메르시는 숨을 돌리고 싶을 때 흑기사단 사이로 모습을 숨겼고 남들이 다 지쳐 쉬고 있을 때도 기운이 넘치는 용사가 신나게 뛰어다니다가 우연히 보게 된 이후로는 매번 쉬어가는 시간마다 흑기사단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흑기사단은 놀러오는 용사를 반갑게 맞이했다. 유쾌한 그들의 분위기는 용사와도 아주 잘 맞아 용사를 오랜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빨간 머리 마법사와는 무슨 사이야?”
칭구!”
얼굴 가린 마법사는?”

칭구!”
우리는?”
칭구!”
정말 잘 맞는 친구들을 제대로 만난 모습이었다. 이따금씩 컨티뉴도 그 사이에 자연스럽게 끼어들어 함께 얘기를 나누기도 했고 패치는 한 발짝 물러나 지켜보고만 있었다. 몇몇 흑기사단원이 그런 패치에게 말을 걸며 다가갈 때도 있었는데 패치는 대답을 길게 하지 않았고 아예 대답이 없을 때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안 듣거나 자리를 피하지도 않았다. 다만 용사가 흑기사단과 함께 있는데도 자리를 피할 때가 있었는데 흑기사가 어디서 가져왔는지 술통을 들고 올 때였다.

아빠가 술을 싫어하나요?”
술 자체보단 술을 먹어서 취한 모습을 보이는 걸 좋아하지 않지.”
아빠가 술을 마신 걸 본 적이 없어서 몰랐어요.”
굳이 마실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란다.”
그럼 마실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긴장을 풀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선발대 모두에게 술잔이 한잔씩 돌아갔고 패치처럼 안 마시는 자들은 다른 이들에게 제 술잔을 넘겼고 나머지는 신나는 얼굴로 받은 술을 한 번에 넘기기 시작했다. 용사는 술을 마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구석에서 곤히 잠들었고 패치도 용사 옆에 있는 나무에 기대 앉아 눈을 감았다. 이번 술판은 여러모로 긴장을 푸는데 성공적이었다.

숲에 도착하기까지 얼마나 남았습니까?”
이대로만 간다면 열흘 정도.”
이제 마을도 나오지 않겠군요.”
곧 나눠서 마을들을 들리고 모이겠지.”
술판에서 벗어나 옆으로 온 컨티뉴와 얘기를 하던 패치는 감고 있던 눈을 뜨고 곤히 자고 있는 용사를 봤다.

결국 끝까지 말리지 못했습니다.”
가고 싶은 마음도 자유고 말리는 마음도 자유지만 가고 싶은 마음이 더 크고 단단해서 그런 거지.”

가고 싶어 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이유야 모르는 게 당연하지, 가고 싶은 마법사 마음에 있으니까. 사실 나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일이 벌어지기 훨씬 전부터 용사가 밸러니의 숲에 가고 싶어 한 걸 본적이 있어.”
그 일은 지금 숲으로 향하게 된, 모든 일의 발단인 왕궁 마녀들이 숲 근처에서 왕과 왕후의 시신을 숨겼던 사건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용사가 이런 일이 벌어지기도 전에 밸러니의 숲에 가고 싶어 했다니, 패치는 용사를 만난 이후로 용사에게 밸러니의 숲에 대해 한 번도 얘기를 꺼낸 적이 없었고 그건 용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때 용사는 자고 있었는데 꿈결에 이렇게 말하더군, 밸러니의 숲에 도착했다고.”
꿈이라는 말에 퍼블리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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