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했당~!!”
용사가 콩콩 뛰듯이 까치발을 들며 외쳤다. 이제까지 지나쳤던 숲보다 나무가 크고 넓게 자라있는 숲이 나타났다. 양 옆을 돌아봐도 끝이 바다처럼 안 보일 정도로 굉장히 넓었는데 이 숲이 한꺼번에 사라지고 벌판만 남았다니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퍼블리는 묘한 눈으로 용사 옆으로 다가가 숲을 둘러봤다.

용사가 숲 바로 앞에 서 있는 건 아니었다. 흑기사단과 메르시, 그리고 다른 일행들이 먼저 앞서서 숲 앞에 서 있었고 그 많은 마녀와 마법사들 때문에 가려진 숲을 보려고 용사가 콩콩 까치발을 들면서 뛰고 있었다. 용사는 패치와 함께 그 뒤를 따라가고 있었고 컨티뉴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는데 앞쪽에서 나타나 다시 둘의 곁으로 돌아왔다.

세상의 끝에 오게 되니 기대되지 않나?”
“...진심으로 하는 소립니까?”
당연히 진심이야.”
패치가 컨티뉴의 말에 떨떠름한 얼굴을 짓는 것과 동시에 저 앞에서 누군가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메르시였다.

모두들 각오하고 오셨다는 걸 알고 있지만 마지막으로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바로 앞에 저주 그 자체인 숲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 기회입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고 싶으신 분은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메르시는 같은 내용을 두 번 더 외치고 반응을 기다렸다. 앞에 있는 마녀와 마법사들의 표정이 어떤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돌아가겠다고 손을 들거나 무리에서 빠져나오는 자들은 없었다. 메르시는 아무도 비난하지 않을 거고 비난할 수 없다고 덧붙이며 외쳤지만 그래도 움직이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면 출발합니다!”
메르시는 그 외침을 마지막으로 다시 땅으로 내려왔고 여기 모인 모든 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가는 패치와 용사를 보던 퍼블리는 이렇게 뒤에 있는데도 보일 정도로 큰 나무들을 눈에 담았다.

이 때는 안개가 없었네요.”
이제 막 들어섰을 뿐이지만 밸러니의 숲은 다른 숲보다 나무가 더 큰 걸 빼면 다른 숲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안개는커녕 나무가 크고 빽빽한데도 햇빛이 잘 내려와 주위가 환하면서 선명하게 보였고 나무 외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들도 피어있어 만약 밸러니의 숲인 줄 모르고 들어왔다면 저주 가득한 숲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였다. 바람이 불어와서 주위를 흔들고 가니 나뭇가지에 잔뜩 붙어있는 나뭇잎들이 흔들리고, 햇빛이 나뭇잎 그림자와 함께 흔들리면서 주위를 반짝이는 모습은 숲을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위화감이 들었다.

용사는 언제나처럼 환하게 웃으면서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고 퍼블리도 그 옆에서 어째서 이렇게 위화감이 드는지 알아내기 위해 둘러보다가 싸늘하고 날카로운 눈으로 나무들을 쏘아보는 패치를 보고 흠칫 놀랐다. 이제 보니 패치만 표정이 심각한 게 아니었다. 얼굴이 안 보이는 컨티뉴와 늘 웃는 용사를 제외하고 주위에 있는 모든 마녀와 마법사의 표정들이 굉장히 심각했다.

“...예정보다 조금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아직 한겨울이고 봄이 오려면 멀었는데...”

그제야 퍼블리는 어째서 위화감이 들었는지 알아챘다. 지금은 한겨울이고 여긴 마치 여름을 맞이하는 숲처럼 울창했다. 소름이 돋은 퍼블리는 팔을 쓸어내리며 패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비록 기억이라 기댈 수는 없지만 그래도 기분 상으로는 든든하게 기댈 수 있었으니까.

여기 직접 와 있으면서 하는 말치곤 웃긴데요, 사실 기억 보는 내내 저주 가득한 숲이라길래 다 말라 죽어가는 나무들과 동물 시체들이 잔뜩 쌓여있는 음침한 숲이 아닐까 상상했었어요.”
직접 와 있는 이 숲은 나무도 안 보일정도로 안개가 가득하니 그렇게 상상하는 건 무리가 아니란다.”
그런데 이렇게 안개도 없고 선명하고 예쁜 숲인데 왜 지금은 이렇게 안개가 가득한 거죠?”
퍼블리는 새삼 생각해보니 여기 달리면서 나무에 부딪힌 적이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안개가 아무리 짙어도 이렇게 나무가 크고 빽빽한데 바로 안 보인다는 것도 이상하고 앞도 제대로 안 보고 정신없이 달리기도 했는데 나무에 부딪히지도 않은 게 이상했다. 아까 호수를 발견했을 땐 나무에 손을 짚기도 했지만 역시 부딪히지 않은 건 말이 안 됐다.

지금 이 숲은 어떻게 되어있는 거죠?”
어차피 기억에서 다 나올 테지만...한 번 맞춰보렴. 맞으면 맞았다고 얘기할 테니.”
퍼블리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물었다.

일단 순백의 날 이후로 이렇게 된 거죠?”
맞아.”
퍼블리는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게 정화의 영향으로 이렇게 된 게 아닐까. 문득 떠오른 생각에 이렇게 되면 안개는 모르겠지만 나무들이 부딪히지 않았던 건 이해가 간다고 생각한 퍼블리가 자신 있게 제가 생각해낸 걸 말했다.

순백의 날 때 사용된 정화 방법이 혹시 숲의 나무를 태우거나 전부 없애는 건가요?”
아니란다.”

마법사의 단호한 대답에 퍼블리는 고개를 숙였다. 막연하게 정화라고만 하고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했는지는 아무도 알려주지도 가르쳐주지도 않았다. 숲이 사라졌다고 하니 당연히 숲을 아예 없애서 그걸 정화했다고 하는 건가 싶은 생각에 나온 방법이었다.

모든 건 기억에서 다 나타날 거란다.”

그 말에 퍼블리는 그냥 얌전히 기억이나 보기로 했다. 어느새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고 숲도 아까보다 어두워졌다. 어두워졌어도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갔지만 주위의 풍경은 아까와 다를 게 없었고 곧 있으면 날이 완전히 저물어버릴 테니 이제 더 이상 갈 수 없었다.

오늘은 여기에서 멈추겠습니다!”
저주 가득한 숲에 오래 있어봤자 좋을 게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어 최대한 빨리 숲을 조사하고 나가길 바랐지만 밤에, 그것도 숲 속에서 움직이는 건 매우 위험한 짓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말에 따라 모두 누울 자리를 더듬어 앉기 시작했다. 각각의 일행마다 불침번을 정했지만 긴장이 가득한 표정들을 보아하니 불침번을 당장 서지 않아도 쉽게 잠들지 못할 것 같아보였다.

잘 자네.”

물론 용사는 예외였다. 용사는 불침번을 세워도 한밤중에 혼자서 숲을 돌아다닐지도 몰라 애초에 제외됐다. 패치는 그 옆에서 컨티뉴와 번갈아가며 불침번을 섰다. 긴장 가득한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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