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일단 물러나세요! 만지지 마시고요!”
바로 울려 퍼지는 메르시의 외침에 약새풀밭을 바로 앞에 둔 이들이 흠칫 어깨를 떨며 물러났다. 메르시가 꽤 급하게 마법을 쓰느라 제대로 목소리 크기 조절이 안 됐는지 메르시 가까이에 있던 마법사와 마녀들이 얼굴을 찌푸리며 귀를 막고 있었다.
“진짜 약새풀이야?”
“그럼 가짜겠냐.”
“아니 이렇게 많이, 그것도 한꺼번에 자라있는 건 처음 봤으니까 그렇지!”
귀한 약새풀이 한꺼번에 자라있었지만 섣불리 손을 뻗는 마녀나 마법사는 없었다. 저주를 먹고 자란다는 약새풀이었다. 돈 벌려고 약새풀 캐러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마녀와 마법사는 이게 무슨 일이야 놀라면서 좋아했겠지만 지금 같은 시기에 이렇게 저주를 조사를 하러 나온 이들에겐 전혀 좋은 일이 아니었다.
“여기서부터 저주가 강하게 나타날지도 몰라, 아니 나타날 거야.”
긴장과 두려움을 가득 담은 눈들이 드넓고 새하얀 약새풀밭을 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물러나는 마녀와 마법사는 없었다. 곧바로 마음을 가다듬고 메르시의 외침에 따라 제 일행들과 함께 약새풀밭 위로 발을 내딛었다.
“온통 새하얗당~!!”
약새풀을 사진 말고 실제로는 처음 봤을 용사는 눈을 빛내면서 제 발 주변의 약새풀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나마 당부했던 대로 손대진 않았지만 계속 아래만 보니 뒤에 있는 마법사와 부딪힐까싶어 패치가 주의를 주고 있었다.
“끝이 없어...”
계속 걸어도 약새풀은 끝을 보이지 않았다. 더 걸으면 걸을 수록 처음 들어온 이후의 나흘이 아니었다면 이 숲의 땅에 자라있는 풀은 모두 약새풀일 거라고 생각하게 될 정도로 나뭇잎을 제외하면 녹색은 하나도 안 보이게 됐다. 퍼블리는 이 광경을 보며 잠시 제 뒷마당을 떠올렸다가 아니카를 생각했다. 전서구와 함께 무사히 왕국으로 돌아갔을까. 메르시에게 무슨 말을 들으러 갔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조금 울적해졌다. 이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아니카는 멀쩡하다 못해 퍼블리네 집 뒷마당에서 약새풀을 뜯어 팔면서 밸러니의 숲 옆에 진을 치고 있었고 세상 돌아가는 소식도 전서구를 통해 알아내고 있었다. 물론 퍼블리가 이 사실을 알 길은 없었다.
“원인을 찾아도 돌아갈 수 있을까?”
“못 돌아가도 어쩔 수 없어. 애초에 각오하고 온 거잖아?”
“그래도 원인을 전할 전령은 있어야지.”
아직 저주에 영향을 받은 이들은 없었지만 갈수록 약새풀 때문에 세상이 하얗게 보이는 것만 같아 불안해하는 모습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었다. 옆에 있는 동료들이 괜찮을 거라는 격려와 어차피 각오한 게 아니냐는 결심까지 꺼내며 안정시키고는 있지만 그들도 마찬가지로 불안해 보였고 자신에게 하는 말 같기도 했다.
“우웅?”
“왜 그러나?”
“조오기~ 뭐가 이썽!”
용사가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지만 같이 가는 선발대 무리들로 가려져 있어 잘 안보였다. 패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용사의 손끝이 가리키는 데를 빤히 봤지만 그래도 마법사의 몸 너머를 꿰뚫어 보는 재주는 없었다. 결국 패치는 보는 걸 포기하고 용사에게 물었다.
“뭘 봤나?”
“우웅~ 멀어서 잘 안 보이눈뎅~”
용사는 제가 본 걸 자세히 보려고 까치발을 들다가 콩콩 뛰기도 했다.
“막 빤짝빤짝 빛나!”
“빛난다고?”
빛난다면 눈에 띌 법도 한데 패치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옆에서 같이 보고 있을 컨티뉴에게도 물어봤지만 컨티뉴도 안 보인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용사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었기 때문에 눈을 떼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계속 여기 있거나 용사가 말한 반짝이는 게 있는 데로 갈 순 없었다. 이런 곳에서 단독으로 움직이는 것만큼 위험한 건 없었고 그렇다고 선발대 모두가 갈 수도 없었다.
“아직 반짝이는 게 그대로 남아있나?”
“웅!”
“그렇다면 저긴 나중에 가보도록 하지.”
나중이라는 말은 그만큼 기약 없는 말이었지만 그렇게라도 말해두지 않으면 용사는 당장 그 쪽으로 튀어갈 것 같았다.
“이봐! 왜 그래?!”
그런데 그 때 반대편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패치와 컨티뉴도 소란이 일어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멀리 있던 메르시가 비행마법을 써서 그 쪽으로 날아갔다.
“무슨 일입니까?”
“제 일행이 갑자기 쓰러졌어요!”
그 말을 끝으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은 물론이고 기억을 보고 있던 퍼블리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가까이에 있던 이들이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고 있었고 퍼블리는 자기도 모르게 옆에 있는 마법사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모두! 진정하고 저주막이 마법을 확인하세요!”
분명 자신도 놀랐을 메르시는 침착하게 외치고 쓰러진 마녀를 살펴봤다. 메르시에게 대답했던 마녀는 겁먹은 얼굴로 쓰러진 제 일행을 보다가 메르시의 외침에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마력을 담아 마법진을 그렸다.
마력이 강하거나 저주막이 마법을 쓰는데 능숙한 이들은 저주막이가 멀쩡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의 저주막이는 어느새 얇아져있었다. 메르시가 쓰러진 마녀의 저주막이를 확인해보니 얇아진 이들보다 더 얇은 저주막이가 드러났다.
“정신을 가다듬고 저주막이가 얇아지신 분들은 다시 저주막이 마법을 사용해서 원래 상태로 돌려놓으셔야 합니다! 저주막이가 멀쩡하신 분들은 다시 저주막이가 완성될 때까지 저주막이를 같이 쓰고 계세요!”
멀쩡한 이들은 재빨리 제 주변에 얇아진 이들에게 저주막이를 씌웠고 여기저기서 마법 취소와 마법 발동이 일어났다. 패치와 컨티뉴도 메르시의 말을 따라 저주막이를 확인해보니 멀쩡했다.
“용사 자네도 얼른 확인을...?”
패치가 용사에게도 저주막이를 확인해보라며 고개를 돌렸지만 용사가 있어야 할 그 옆엔 정신없이 저주막이를 확인하는 마법사와 저주막이를 고치는 마녀 밖에 없었다.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저주막이를 잡은 채 패치를 마주보고 있는 컨티뉴만 있었다. 용사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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