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간 거야?!”
그 짧은 새에 어디로 사라졌는지 용사의 파란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 마녀와 마법사가 많이 뭉쳐 있는데다 모두 저주막이를 확인하고 다시 만들고 있다 보니 그 사이를 지나가기 곤란하고 힘들었다. 그럼 용사도 마찬가지로 지나가기 힘들 텐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사라졌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어쩐지 용사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기억을 비록 제 삼자로서 본다고 할 수 있었지만 주인은 역시 패치였기 때문에 패치의 시점에 따라 보이는 게 달라져서 용사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퍼블리도 못 본 터라 초조해하고 있었다.

...어어어어어어쩌죠?!!”
진정하렴, 기억이란다.”
아니 기억이래도...!”
그러다 문득 퍼블리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게 있었으니 아까 직접 만난 용사였다. 여기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있었다고 한 용사의 말이 떠오르면서 소름이 돋은 퍼블리는 열심히 마녀들과 마법사들 사이를 헤쳐 용사를 찾고 있는 패치를 봤다.

그럼 아빠는...지금 용사를 놓친 이후로 찾지 못했다는 거예요?”

마법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대답을 바란 건 아니었는지 퍼블리는 기다리느라 숲에 온 이후로 나가지 않았다며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던 용사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용사라는 분을 이해 못할 것 같아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생각도 그렇고 행동도요. 물론 다른 이들을 완전히 이해할 순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해서 이해하는 거라면...”

이해라...”

어쩐지 묘하게 가라앉은 어투에 망연히 기억을 보고 있던 퍼블리가 마법사를 돌아봤다. 마법사의 분위기를 자세히 보니 가라앉았다기 보단 뭔가 누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의아함이 가득 담긴 퍼블리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마법사가 입을 열었다.

예전에 들었던 말들 중에서 가장 우스웠던 말이 떠올랐단다.”
우스웠던 말이요?”
마법사는 퍼블리의 아빠에 대해서 얘기할 때 외엔 그다지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마저도 우연히 감정이 격해져서 나온 것 같았으니 만난 이후로 감정을 드러낸 건 딱 한 번뿐이었다. 그 한 번 이후로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던 마법사가 입매를 조금 비튼 채 말을 꺼낸다.

마법사가 이해할 수 있는 건 마법사지 않느냐는 말.”
?”
그게 무슨 소리냐고 되묻기도 전에 기억 쪽이 소란스러워졌다. 짙은 회색 안개가 다시 끼기 시작하는 게 기억이 사라지나 싶었더니

뭐야? 갑자기 웬 안개야?!”
저주들이 날뛰기 시작하는 건가?”
기억 속에서 안개가 끼고 있었다. 새벽도, 아침도 아닌 햇빛이 쨍쨍한 낮이었는데 갑자기 안개가 끼는 건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퍼블리가 맨 처음 왔을 때처럼 옆에 있는 일행 그림자도 안 보일 정도로 짙게 깔려 시야를 막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쪽에서 비명 섞인 외침이 들려왔다. 그 뒤로 여러 방향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는데 소리만 들리고 보이지 않다보니 실제로 겪고 있는 것도 아닌데 퍼블리도 무의식적으로 식은땀을 흘리면서 긴장하고 경계하고 있었다. 비명들 사이로 제 일행을 부르짖는 목소리도 들려오고 넘어진 건지 털썩 쓰러지는 소리도 들려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마벨린? 마벨린이야?”
누가 쓰러졌어!!”

패치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을 집중해서 들으며 옆을 쳐다봤다. 다행히 컨티뉴가 옆에 있었다. 용사를 찾으려고 마녀들과 마법사들 사이를 헤치며 지나갈 때 조금 떨어져 있었는데 컨티뉴가 안개가 끼는 동안 빨리 패치의 옆으로 왔었는지 짙은 안개 속에서 둘만 서로 보일 정도로 가까이 있었다.

이거 큰일이군.”
컨티뉴가 조심스레 손을 뻗어 한 바퀴 돌며 안개를 휘저어봤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주변에 있는 모두가 공황에 빠져 어디론가 뛰어간 게 아닌 이상 바로 옆에 있었을 다른 일행들이 손에 걸리는 게 당연할 텐데 무언가 부딪히는 느낌 없이 안개만 휘젓고 있었다.

이렇게 한 순간에 갑자기 안개가 끼고 주변에 있던 모든 마법사들과 마녀들이 사라지다니, 보통 일이 아니야.”
저주 가득한 숲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 건가 싶습니다.”
우선 여기 마냥 있을 순 없으니 움직여야겠군, 어서 다른 이들을 찾으러 가야지.”

그렇게 말한 컨티뉴는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는데 패치는 움직이지 않았다. 따라오는 발소리가 들리지 않자 열 발자국 앞으로 갔던 컨티뉴가 뒤돌아 패치를 불렀다.

가만히 서서 뭐하나? 이럴 시간 없어.”

컨티뉴가 까딱 손짓하며 재촉을 하지만 패치는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팔짱까지 끼며 눈을 가늘게 뜨고 컨티뉴를 노려보고 있었다. 세 번쯤 재촉이 돌아왔을 때 패치가 입을 열었다.

첫째, 아무리 온 사방에 끼어있는 안개라 해도 직접 손을 뻗는 성급한 행위는 금물.”

무슨 소리를
둘째,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안개 속에서 마냥 가만히 있을 순 없겠지만 무작정 앞으로 나가는 건 더더욱 금물.”

패치는 상대방이 뭐라 묻기도 전에 제 말이 아직 안 끝났다는 듯이 단호하게 끊어내 말을 이었다. 손까지 뻗으며 재촉하던 컨티뉴는 어느새 손을 내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셋째, 반복해서 말하지만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건 물론이고 바로 옆에 있는 마법사도 안 보이는 안개 속에서 제법 떨어졌는데도 모습이 보이는 수상한 이를 따라가는 건 금물.”

거기까지 말한 패치는 한숨을 쉬며 쐐기를 박았다.

연기를 하려면 제대로 하게.”
저 멀리 아무 말 없이 우두커니 서 있는 컨티뉴가 말한다.

들켰네?”
어디선가 멀리서 깔깔 비웃는 소리와 함께 가짜가 기괴하게 녹아내리며 안개처럼 사라졌다. 굉장히 소름끼치는 상황인데도 패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지금 패치는 완전히 혼자였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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