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까지 평범한 숲인 척 가장하고 이렇게 한 번에 일을 터뜨릴뿐더러 저렇게 대놓고 속이기 시작하다니, 숲 자체가 그런 건지 숲을 만든 자가 그런 건지 상당히 악취미군.”

패치는 주위를 다 둘러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안개가 매우 짙어 주변이 다 보이지 않는 건 물론이요 비록 가짜긴 했지만 컨티뉴의 말대로 여기에 마냥 있을 순 없었기 때문이었다. 팔짱낀 팔 사이로 나와 있는 손의 검지손가락을 까딱이며 고민하던 패치는 팔짱을 풀고 손바닥 위에 공처럼 둥근 빛을 만들어냈다.

듣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쉽게 당하진 않을 걸세.”
그리고는 그대로 앞으로 나아갔다. 앞으로 무작정 가는 건 위험했지만 달리 선택지도 없었다. 옆으로 가나 뒤로 가나 결국에는 길 자체가 안 보이는데 길을 잃을 걱정을 하는 건 우스운 일이었다. 가짜가 패치를 어디로 데려가려고 했을지는 모르겠으나 따라가면 좋지 않은 건 물론이고 아까 의 비명들의 뒤를 마저 이었을지도 몰랐다.

걷는 내내 패치는 가짜가 아니라면 누구든 마주쳤으면 좋겠지만 웬만하면 용사이길 바라고 있었다. 컨티뉴는 멀쩡히 있는 건 당연하고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훨씬 더 오래 버티는 걸 넘어서 저주의 근원을 찾아낼지도 몰랐다. 괜히 하늘의 현자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용사는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불안했다.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알았다.

누구 없어요?!”
나 여기 있어!!”
도와주세요!”

사방에서 누군가를 찾고 도움을 요청하는 외침들이 들려오고 있었지만 패치는 입을 꾹 다물고 계속 앞으로만 걸어갔다. 저 목소리에 반응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할 수 없었다.

...려줘....”
“...죽는 거야?”
여기 오는 게 아니었어...”

비명과 외침들 사이사이로 이번엔 후회가 가득한 말들이 생생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정신적으로 말려 죽이려는 건가 싶을 정도로 목소리들은 처절했고 안개 때문에 눈으로 보는 것보단 귀로 듣는 데에 더 집중이 되다보니 듣고 있는 입장에선 고역도 이런 고역이 없었다.

나를 따라왔으면 바로 나갈 수 있었을 텐데.”

뒤에서 들려오는 말에 패치가 뒤돌아보니 아까 사라졌던 가짜가 나무처럼 서 있었다.

지금이라도 따라오지 않겠어? 이 숲 밖으로 안내해줄게.”
패치는 그 말을 듣고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손에 있는 빛을 가짜에게 쐈다. 가짜의 몸이 절반은 날아갔는데도 피는 물론이고 남아있는 상반신이 공중에 떠있는 모습은 마치 그림이 찢어져있는 것처럼 이질적이고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다.

뭘 믿고?”
눈도 안 깜빡이고 단호하게 말하는 패치에 가짜는 또 사라졌고 가짜가 말하는 동안 조용했던 주위는 다시 비명과 외침으로 가득 찼다. 패치는 혀를 한 번 차고는 다시 뒤돌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패치야~!”
익숙한 목소리가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패치는 바로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상황이 개판이 되기도 전에 갑자기 사라진 용사였다.

숲이 막! ! 안개로 가득차구~”
안개 너머로 그림자가 보였다. 여기저기 삐죽 솟은 머리카락 그림자를 보면 용사 같은데 패치는 아직 섣불리 확신할 수 없어 다가가지 않았다. 반면에 그림자가 점점 커지고 있는 걸 보니 패치가 안 가고 있는 만큼 용사가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았다.

숲이 이상해!”
그 말과 동시에 용사가 제대로 보일 정도로 안개를 헤치며 나왔고 패치는 아까 가짜에게 했던 것처럼 둥근 빛을 쐈다. 용사도 가짜였다.

어떻게 알았어~?”
용사의 모습을 한 가짜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아까 사라진 가짜처럼 몸의 반이 날아갔는데도 움직이는 남은 부분과 그 중에서 해맑게 웃는 용사의 얼굴은 분위기를 섬뜩하게 만들고 있었다. 얌전히 보고 있는 퍼블리도 무서움을 느끼고 있는데 정작 기억 속의 당사자인 패치는 눈썹만 한 번 까닥이곤 이렇게 대답했다.

그걸 순순히 알려주겠나?”
그렇게 18번 째 가짜 용사가 패치의 공격에 날아간 이후론 가짜 쪽도 포기했는지 더 나타나지 않았다. 하나같이 숲이 이상하다느니 같이 나가자느니 나가는 길을 찾았다느니 나중엔 그나마 교묘했지만 안개 낀 이후로 패치와 컨티뉴를 찾으려고 돌아다녔다는 용사가 절대 안 할 말들만 꺼내는 터라 속고 싶어도 못 속는 상황이었다. 물론 패치는 그 말을 친절히 꺼내줄 생각이 없었으니 입만 계속 꾹 다문 채 공격마법만 쓰고 있었다.

비명과 외침들도 더 이상 들리지 않고 조용해져서 드디어 끝났나 싶었는데 앞에 또 가짜가 나타나는 건지 안개 너머로 그림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패치가 멈춰서 말없이 공격마법을 준비했는데 그림자는 아까처럼 먼저 다가오지 않았다. 패치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공격마법은 없애지 않고 안개 너머의 상대를 불렀다.

혹시 누구 있나?”

그러자 안개 너머 그림자가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대답을 하지 않는 걸 보면 상대도 패치처럼 꽤 시달렸는지 아니면 가짜가 고도의 전략을 짜고 있는 건지 아직 알 수 없었다.

일단 그림자는 보이니 맞으면 위 아래로, 아니면 양 옆으로 몸을 움직이게. 내 목소리를 아는가?”
그림자가 질문을 들었을 땐 잠시 움직임을 보이지 않더니 조금 지나서 위 아래로 움직였다.

내 이름을 아는가?”

이번엔 양 옆으로 움직였다. 그에 패치는 상대가 진짜라면 한 번쯤은 말을 섞은 인가 싶어 잠시 생각에 빠졌다. 굳이 말을 섞지 않았어도 어쩌다 가까이 있느라 제 목소리를 들은 이들도 많이 있을 게 분명했다. 물론 들어본 것과 기억하고 있는 건 별개이니 질문을 어떤 식으로 할까 또 무슨 질문들로 확인을 해봐야할까 고민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상대방이 먼저 움직였다.

자네는...”
안개를 헤치고 나타난 상대방은 패치도 아는 마법사였다. 사실 안다고 하기엔 미묘했지만 모습이 꽤나 강렬해서 패치는 물론이고 퍼블리도 기억하고 있는 마법사였다. 뚜렷하고 튼튼한 팔다리 근육과 함께 눈에 띄는 콧수염. 아난타가 인사하러 왔을 때 곁에 따라왔던 일행 중 하나였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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