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에 울창한 것도 이상했지만 이상한 게 또 있어요. 여기 동물은 물론이고 벌레들도 없어요.”
기억에서 밸러니의 숲속이 나타난 지 사흘이 지났을 때 퍼블리가 확신하는 투로 말했다. 사실 퍼블리는 첫날 밤 풀벌레 울음소리가 들려오지 않을 때부터 의심하고 있었지만 혹시 몰라 계속 주위를 살펴보니 날벌레는 물론이고 숲이라면 흔히 있는 모기도 안 보이는 걸 보니 확신했다. 물론 나뭇잎과 풀이 이렇게 무성해도 진짜 날씨는 눈이 한창 내리고 있을 한겨울이니 모기가 없다고 할 순 있겠지만 여긴 정말 식물만 있었다.

동물들이 저주를 피해간 걸까요?”
숲이 거부를 했으니 동물들도 따른 거란다.”
숲이 거부를 해요?”

정확히는 숲을 만든 자가 거부를 한 거지.”
마법사는 거기까지만 말하고 입을 딱 다물었지만 숲을 만든 자라면 이름을 붙이게 된 밸러니라는 마녀인 게 분명했다. 식물 외에는 아무것도 살지 못하게 숲을 만들어낸 걸까. 어찌 생각해보면 동물이 없어서 다행일지도 몰랐다. 적어도 식물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모르겠지만 직접 다가오거나 공격하진 않으니.
같은 자리를 돌고 있는 건지 아니면 숲이 워낙 커서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 모르겠군.”
일단 남겨온 표시가 없는 걸 보면 같은 자리는 아닌 것 같아.”
사흘이 지났는데도 숲은 여전히 아무 이상이 없을뿐더러 울창하고 아름다웠다. 다른 말로는 변화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정말 저주가 흘러나오는 숲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몸 상태는 이상이 없나요? 어디 아프거나 졸리진 않나요?”

저흰 괜찮습니다!”
들려오는 외침에 돌아보니 아난타가 이끄는 전장과 분노였다. 그 중에서 콧수염이 두껍게 자라있는 마법사가 꽤 눈에 띄었다.

아난타 선생님의 동료 분들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요.”
첫 수업을 할 때 신성지대에서 온 마법사라고 소개를 했었고 전장과 분노에 대해 이야기 할 때 한 때 그들의 대표를 맡았다는 말을 하며 씁쓸한 웃음을 짓던 아난타가 동료들과 함께 있는 아난타 위로 잠깐 덧씌워졌다. 퍼블리에게 있어서 제 아빠만큼이나 잘 모르겠는 마법사는 바로 아난타였다. 마지막에 제 아빠와 모습을 바꾼 마법을 풀며 무지개 구슬을 건네줬던 모습이 떠올라 퍼블리는 손을 들어 반대쪽에 낀 팔찌에 손을 올렸다. 익숙한 구슬 장식이 퍼블리의 손을 둥글게 눌렀다.

숲에 들어간 모든 분들, 여기 있는 마녀와 마법사들 전부 저주를 받은 건가요?”

그래.”

그렇담 저들도 메르시처럼 잠들어 있을까, 흑기사단처럼 살아있는데도 온 몸이 썩고 있을까 아니면....

안뇨옹~!”
잠깐 생각에 잠기고 있을 때 언제 거기로 갔는지 용사가 전장과 분노 쪽으로 가 있었다.

너는 누구지?”

용사!”
아난타를 제외한 전장과 분노의 마법사들과 마녀들은 갑자기 다가온 용사에게 약간의 경계심을 보였다. 물론 용사는 개의치 않고 웃으면서 그들에게 다가갔고 얼마 안 가 경계심이 풀린 채 용사와 함께 웃고 떠드는 그들을 볼 수 있었다. 평소라면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을 패치도 오랜 움직임에 조금 지쳤는지 용사가 있는 쪽을 흘깃 보고만 있었다.

그들도 패치의 시선을 눈치 챘는지 패치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패치가 주목하고 있는 게 용사라는 걸 알고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아난타는 제 동료들이 오랜만에 밝게 웃으면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게 기분이 좋은지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패치와 눈을 마주치고 손을 흔들곤 했다.

왜 용사님한테 아빠 이름을 물어보지 않는 걸까요?”
직접 물어보고 직접 듣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닐까.”
용사는 그 이후로 다른 일행들에게 찾아가 인사한 후 같이 놀곤 했다. 정확히는 놀고 있는 건 용사뿐이었고 용사와 인사를 나눈 이들은 옆에서 용사가 노는 걸 지켜보고 있는 게 대부분이었다. 용사의 활기찬 모습에 힘을 얻어 웃는 이들이 많았지만 몇몇은 좋은 눈빛을 보내진 않았다. 심각하고 예민한 와중에 정신 사납게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용사.”

?”

용사는 패치가 부르는 소리에 다시 패치 옆으로 돌아왔고 그렇게 다시 조용해졌다. 아니 조용해졌나 싶었더니 용사가 다시 돌아다니려고 했고 패치는 용사를 잡아서 제 옆에 두고 있었다. 좋지 않은 눈빛을 보내는 이들이 시비를 걸 수도 있기 때문에 잡아두는 것 같았다.

다른 칭구들이랑 놀구 싶엉!”

패치가 용사를 계속 붙잡아두는 건 당연히 불가능했다. 결국 패치는 한 발 양보했는데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 이들에게만 가라는 거였고 용사는 다 같이 놀아야한다고 했지만 쉬고 싶은 마법사들과 마녀들이 있을 지도 모른다며 용사를 설득했고 용사가 납득하며 성공했다.

과보호야.”
저도 그렇게 생각은 합니다만 상황이 상황입니다.”
이해는 해.”
컨티뉴도 뭐라 더 말하지 않고 용사를 지켜봤다. 그나마 용사가 숲에 들어오기 전에 약속한 대로 주변 식물들에 섣불리 손을 안 대고 있는 거에 많이 안심하고 있었던 터라 크게 신경을 안 쓰고 있기도 했고 용사의 친화력을 믿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았지만 예민해진 이들을 자극할 수도 있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이 저주 가득한 숲에 들어온 이상 주의해야할 건 많았고 특히 주변의 다른 이들을 자극하지 않는 게 제일 중요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고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 와중에 누군가가 비명인지 탄성인지 모를 외침을 질렀다.

무슨 일이야?”
..저기...!!”
그 자에게 다가간 이들도 하나같이 깜짝 놀라 외치거나 숨을 들이켰다. 패치와 컨티뉴도 그 쪽으로 달려갔고 용사도 패치의 뒤를 따라 갔다. 마녀와 마법사들의 어깨너머 언뜻 하얀 게 보인다. 얼핏 봐선 눈이 쌓여 눈밭이 이루어졌나 싶었는데

전부 약새풀이잖아?!”

약새풀들이 눈밭처럼 새하얗게 자라있었다. 퍼블리네 집 뒷마당처럼.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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