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발을 뗀 여행에서 걱정되는 건 치트와 패치 사이의 살벌한 분위기였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바로 용사 때문이었다.

오와아아아앙!! 나무들이 없어!!”

여기는 숲 밖이라서 나무들이 없다기 보단 적은...저기 용사님? 잠깐만요!”

숲 밖으로 나온 용사는 갖은 기행을 벌였다. 하늘을 보면서 뛰다가 넘어지고 그 김에 풀밭을 구르다가 일어나면 손에 뱀이나 달팽이가 쥐여져있는 건 기본이었다. 잠시 눈을 떼면 머리가 하늘과 겹쳐 보일 정도로 멀리 가 빨간 망토 색으로 용사를 찾아야했다. 숲에서 나온 이후로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보니 자연스럽게 역할들이 주어졌다.

용사가 어디로 튈지 모르니 지켜보는 담당이 패치, 잠깐 놓친 순간에 용사를 찾아내는 담당이 치트, 바로 달려가서 용사를 데려오는 담당이 퍼블리였다. 치트는 관찰력이 좋아 대상을 금방 찾아낼 수 있었고 용사의 힘과 체력은 만만치 않아 용사를 따라잡고 데려올 수 있는 게 일행 중에선 퍼블리밖에 없었다.

아예 빛을 뿌려놔야겠군. 이러다간 하루만 노숙할 거리가 사흘로 연장될 걸세.”

얼마 전까진 지망생이었던 퍼블리는 지도 제작이 이번이 처음이었다. 비록 지도제작자는 아니지만 꼼꼼하고 실용주의를 선호하는 패치에게 어떻게 표시하면 더 직관적이고 알아보기 쉬울까 의견을 나누면서 조언을 받고 있었다. 몸이 두 개는 아닌 패치는 퍼블리에게 조언하는 동안엔 자연스럽게 신경이 그쪽으로 쏠리게 됐고 용사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으면 치트를 불러 용사가 어디로 갔는지 찾아내는 과정을 반복했다.

반짝반짝!”

빛가루를 뿌리며 이동하니 용사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혹시 질려서 다른 데로 눈 돌릴까 싶어 중간에 변칙적으로 흩날리거나 폭죽처럼 터지도록 뿌리며 순순히 뒤를 따라오게 했다.

편하네요~”

언제 또 한 눈 팔지 모르니 아예 자네가 보고 있게.”

주변을 둘러 볼 사람은 필요하잖슴까?”

이 넓은 풀밭에 위험한 건 용사가 잡아왔던 뱀 외에 더 있나?”

제대로 가고 있는지 주위를 둘러보긴 봐야죠.”

가면서 지도 만드는 중인데 무슨.”

패치가 바빠서 그런지 말투에 날이 서 있진 않았다. 비록 정신없긴 하지만 한결 풀린 분위기에 퍼블리 또한 안심했는지 표정이 편해졌다. 하지만 이런 상황 또한 얼마 가지 않았다.

가까이 붙지 말고 떨어지게.”

여행 동료인데 사이가 돈독해져야죠~”

돈독이고 뭐고 간에 자네와 내 사이가 좋아질 일은 없을 거야.”

그래도 노력은 해야지 않겠슴까?”

다시 시작되는 살얼음판에 퍼블리는 종이를 들고 슬며시 멀어져 용사 곁으로 갔다. 용사는 정신없이 뛰어다녀도 불편하진 않았으니 숨 쉬기가 편했기 때문이었다. 퍼블리도 마음 편히 용사 옆에서 흩날리는 빛가루들을 구경했다. 뒤돌아볼 때 더 이상 숲이 안 보일 정도로 멀어질 때 쯤, 앞선 둘의 살벌한 대화도 멈춰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흰 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 여행이지만 목적지가 있을 것 같은데.”

이런, 급하다보니 여행에 대해서만 말했군요? 목적지라기 보단 거쳐야할 곳들이 있습니다.”

거쳐야할 곳들은 총 네 군데였다. 기술의 도시, 각진 나무의 무덤, 하얀 들판, 사막. 가장 가까운 곳이 기술의 도시였고 먼 곳이 사막이었다. 이 둘 간의 거리는 꽤 멀었지만 거쳐야할 곳들 사이간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사막 너머를 제외하면 상세지도까진 아니었지만 가는 길이 간략하게나마 있어 여행하기 적절한 곳들이었다.

그러니 지금 목표는 기술의 도시지요. 가장 가까우니까요.”

기술의 도시는 처음 가 봐요!”

기대 가득한 퍼블리의 말에 패치는 용사를 흘끗 돌아보고는 말했다.

기술의 도시까진 지금 여기에서 작은 마을을 두 번 정도 거쳐 가야하네. 빠르게 가면 나흘은 걸리겠지만.”

퍼블리도 용사를 돌아봤다. 패치가 빛가루를 뿌리는 걸 멈추니 용사는 바로 주위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아주 잘 아는 퍼블리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빛가루로 따라오도록 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퍼블리는 결심한 눈으로 용사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용사님 저희는 기술의 도시까지 가야해요.”

기수르 도시?”

기술의 도시오. 그런데 용사님이 갑자기 어디론가 가버리면 저희가 용사님을 찾느라 도착하는 게 늦어질 거예요.”

그르면 가기 전에 다 둘러보장~!”

그러면 시간이 너무 걸려요.”

그 말에 용사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여행은 천~천히 다 둘러보면서 해도 되는 거 아니양?”

맞는 말에 퍼블리는 뭐라 더 말할 수 없었다. 거쳐 가야하는 곳이 있다곤 하지만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행 자체가 가보고 싶은 곳을 가보고 둘러보는 것이니 용사의 말이 여행에 가장 부합하는 말이었다. 용사의 말에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퍼블리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패치가 나섰다.

갑작스럽게 모인 감이 없잖아 있어서 마땅한 준비를 못 했네. 평소에 돌아다니는 편이라 식량과 침낭을 챙겨뒀지만 지금은 네 명이고 여행하면서 굶거나 맨 바닥에서 잘 순 없는 노릇이잖나.”

그럼 푹신푹신한 풀들 찾고 오께!”

그렇게 말하며 달려가려는 용사를 붙잡아 말리는 퍼블리와 기절시켜서 데려가야 하나 고민하는 패치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치트가 결국 나섰다.

기술의 도시를 빨리 보고 싶어서 그렇슴다. 꽤 기대하던 곳이거든요.”

퍼블리를 바라보면서 하는 말이니 본인이 기대하다기 보단 퍼블리의 기대를 읽어서 하는 말이었다. 퍼블리는 너무 과하게 반응했다 민망해하며 과연 그게 용사가 납득할 수 있는 말일까 의아해했다. 퍼블리에게 잡힌 채로 달려가려던 용사는 그 말을 듣자마자 멈춰서더니

우웅 그렇구나~ 그릏담 빨리 가장!”

바로 납득하는 모습에 진작 그렇게 말할 걸 그랬다는 속을 누르고 용사의 팔을 놓았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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