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마을에 도착했어도 불타는 마을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암비투스와 마키나의 탐사인형이었다. 그마저도 탐사인형은 안에 들어가서 연결이 끊긴 상태였다.

아까 내가 나오기 직전에도 안엔 아무도 없었다. 나온 후엔 너희를 만났으니 들어갔을 확률은 꽤 낮지.”

그래도 용사님은 방심할 수가 없어요.”

그보다 걘 왜 용사라고 불러? 어디 이름 모를 마왕이라도 때려잡았어?”

얘기하면 복잡하네. 우선 찾는 게 먼저지.”

자연스럽게 의문을 회피한 패치는 용사가 갔을 법한 곳을 세군데 짚었다. 첫 번째는 바로 앞의 불타는 마을이었고 두 번째는 이 근처였으며 세 번째는

우리가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새에 하얀 들판에 들어갔을지도 모르지.”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큰일인데요...”

하지만 아무리 얘기하고 있는 동안에 먼저 갔더라도 그렇게 빨리 갈 수가 있나?”

솔직히 용사님이라면 가능할 것 같슴다~”

암비투스만 빼고 모두 공감했다. 결국 마을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암비투스 뿐이니 정하나 마나였고 하얀 들판 안에서 혹시 마주칠 수 있는 요정을 대비하기 위해 마키나와 안면있는 요정일지도 모른다는 의견으로 헵토미노가 함께 가기로 했다.

초기 여행 일행 셋은 각자 한 명씩 그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따로 신호를 줄 능력이 없는 치트와 퍼블리에게 신호탄을 쥐여주는 걸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용사를 발견했으면 파란탄을 쓰고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빨간탄을 쓰는 거야, 알겠지?”

!”

알겠슴다~”

그리고 넌 다시 들어가는 김에 내 탐사인형 좀 가져와라. 왜 봐놓고선 안 가지고 나온 거야?”

저 비정상적인 마을에서 갑자기 나타난 움직이는 걸 잘도 마음 편히 들고 나오겠다? 그것도 자기네들이 최고인 줄 착각하고 있는 고철덩어리를 말야.”

다시 한 번 다툴 기미가 보이자 시간을 더 지체할수록 용사가 어딘가에서 무슨 사고를 일으킬지 모른다는 걸 다시 상기시키곤 헵토미노를 살짝 눈짓했다. 애 앞에서 보이기 좋은 모습이 아닌 걸 둘 다 알고 있었는지 불만스러운 기색은 가득했으나 순순히 물러났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헵토미노는 요정에 대해 생각하느라 주변을 신경쓰지 못하고 있었다. 동시에 중간탑에서 요정에 대해 격렬한 반응을 보였던 마키나가 떠올라 긴장한 얼굴로 마키나를 올려다봤다. 다만 마키나는 말싸움 때문에 겁을 먹은 거라 생각했는지 안 싸운다며 안심하게하려는 말을 꺼내고 조심히 손을 잡았다.
해가 지면 오히려 우리가 길을 잃을테니 못 찾아도 돌아오게.”

그 말을 끝으로 모두 각자 정한 곳과 방향으로 흩어졌다.

 

바로 앞에 마을이 있었으니 가장 먼저 도착한 거나 다름없는 암비투스는 시선을 아래로 두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발에 무언가 가볍게 툭 채이는 감각이 나자 조금 더 시선을 아래로 내리니 마키나가 말한 탐사인형이 발 앞에 있었다. 인형을 들어올린 암비투스는 그대로 뒤돌아 마을 밖으로 나갔다.

. 들리냐? 보이고?”

탐사인형은 여느 인형처럼 축 늘어진채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암비투스는 아랑곳 않고 흔들어대다가 툭툭 두드려보기도 했다. 8번쯤 두드렸을 때 인형의 손이 암비투스의 손을 탁 쳐냈다.

[, ...불덩...! ...얼마...비싼...!!]

얼마나 비싸고 자시고간에 벌써부터 맛이 갔구만.”

[...두드...대니...!!]

시끄럽고 네 쪽에서 알아듣는 건 문제 없네. 일단 어디까지 작동 가능한데?”

[내려...]

탐사인형을 내려놓으니 다리를 절뚝거리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 주저앉았고 손으로 땅을 짚었지만 암비투스의 손을 쳐낸 오른쪽만 멀쩡하고 왼쪽마저도 삐걱거리며 제대로 지탱하지 못했다.

대단한 듯 떠벌리더니 순 고물이구만?”

[죽을...이 뇌도...워버...]

시끄럽고 옆에 애 듣는 거 아니냐?”

인형은 잠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지금 연결 중인 인형 주인 마키나는 기계를 때려서 고친다는 희대의 망발을 몸소 실천하고 있던 암비투스에 옆에 있던 헵토미노도 깜빡 잊고 화를 내고 있었던 거였다.

잠시동안 조용했던 인형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엔 아까보다 전해져오는 음성이 또렷했다.

[내 목소리가 새어...않게 조절했...근데 네가 두드려대느...전히 고치지 못했...]

, 그만 투덜거려! 이러다 날 새겠네.”

[누구 때문인...!!]

그 놈들 뭐야?”

인형이 곧바로 조용해졌다.

“5년 전 그 사건 터지고 나서 나도 생판 아무것도 없는 일반인이랑 사제놈들 구별하는 눈은 길렀다. 성기사 놈들이야 말할 것도 없이 티 나니 사제 놈들이 짜증났지. 그 기분나쁜 검은 머리 사제잖아?”

몰랐다는 말은 하지 말라며 덧붙였다. 마키나도 똑같이 눈치 챈 부분이었다.

그 빨간머리 마법사가 진짜 그 5년 전의 마법사라면 왜 사제 놈을 데리고 다니는 거야? 사제는 물론이고 종교 관련된 녀석들이라면 질색을 할텐데.”

[사제 녀석들을 날려...그러다가 성기사도 날리...끝도 없이 와서 결국 한 놈만 붙잡아 역감시로...나중에 아예 신전을 날릴...는데.]

미리 맞춰둔 말을 꺼낸 마키나였다. 사실 어느 정도의 사실 또한 포함되어있었다. 마지막의 나중에 아예 신전을 날릴 거라는 대목이 패치의 진심이자 이 여행이 끝났을 때의 목표였다.

신전을 날릴 거라니 아주 크고 정확한 목표구만. 일단 그쪽은 됐고 왜 종교 쪽에서 사제 놈들도 보내고 성기사 놈들도 보낸 거야? 지들이 저지른 짓 생각해보면 날리는 걸로 모자라다는 걸 알 텐데 말야.”
[그건 나도 몰라 계속...을 날려보고 털어보려 했다...데 끝까지 입을 안 열었다고 하...그리고 그 녀석들은 항상 뻔뻔....]

딱히 흠 잡을 데 없는 설명이었다. 자신의 성질 같았으면 여전히 날려버리다못해 아예 묻어버렸겠지만 그래도 납득 가능한 상황과 이유였다. 그런데도 암비투스는 무언가가 석연치 않았다. 자신의 마법처럼 성질이 불같고 자기주장이 심하게 강하다해도 그 또한 사람들을 보고, 파헤치고, 겪어온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 경험으로 이루어진 감이 영 만족을 못하고 있었지만 짚어낼 수 없어 눈만 찡그리고 있었다.

뭐라 더 말을 하려던 순간, 마키나는 헵토미노가 아무 말을 안 해서 여전히 화난 줄 알고 있다며 연결을 끊었다. 더 캐물으려던 암비투스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인형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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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 사이는 썩 좋은 편이 아니었는지 서로를 보는 표정은 그닥 좋지 않았다. 하지만 둘의 표정을 볼 겨를 없이 일행들은 전부 암비투스라는 사람을 보느라 바빴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패치였다.

화염계열 전문 마법사로군.”

...화염 마법사라면 다 온 몸이 불처럼 되나요?”

그럴 리가 있나. 저건 마력을 실시간으로 방출하고 있는 상태일세.”

뭐야, ? 너도 마법사 아니야? 날 몰라?”

마키나에게 신경 쓸 줄 알았던 암비투스가 패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 말하는 걸 보면 기술의 도시 마법사이고 꽤나 유명인사인 듯 했다.

너보다 더 유명한 마법사야. 일단 넌 왜 여기 와 있는 거야?”

왜 오긴? 마을이 위험하다는 구조문이 날아왔다. 와보니까 이 꼴이 되어있지만. 그러는 넌 왜 왔는데?”

난 요정 때문에 요청서가 날아왔지. 일단 네 구조문 줘봐.”

요정은 또 뭐야? 그리고 내 구조문 보기 전에 네 요청서나 내놔봐.”

둘이 옥신각신 싸우는 동안 얘기를 들어보니 둘의 구조문과 요청서 내용은 다른 듯 했다. 결국 동시에 보여지게 된 구조문과 요청서를 보니 요정이 언제 어디에서 나타났다는 상세한 내용의 요청서와 단순히 마을이 위기상황이라는 것만 쓰여있는 구조문이 눈에 띄게 대조됐다. 하지만 찍혀있는 증명 인장을 보면 동일한 마을 내에서 나온 게 확실했다.

이게 뭐야? 요청서 보낸 후에 요정이 이 마을에 불이라도 지른 건가?”

요정이 간혹 장난으로 요술을 쓴다는 건 들어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저건 장난 수준이 아닌 것 같은데요...”

마을에 불을 지르는 게 장난인 수준이라면 요정들은 요정이 아니라 악마라고 불렸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어쩌면 최초의 악마나 다름없는 요정이 나타난 게 아니냐 이런 얘기까지 나오던 와중에 구조문과 요청서를 번갈아 보던 패치가 문득 말했다.

여기 써진 시간과 날짜는 보낸 때를 의미하는 건가, 아님 받은 때를 의미하는 건가?”

보낸 시간과 날짜야. 만약 나중에 잃어버리다 발견하면 시간이 얼마나 경과했는지 알아놔야 하니까.”

시간과 날짜가 똑같네.”

그 말에 둘의 표정이 변했다.

자세히 보니 필적도 똑같은 것 같습니다만?”

똑같은 필적과 똑같은 시간. 물론 보낸 때를 의미하는 시간이니 한 사람이 두 개를 썼을 순 있지만 왜 다른 내용의 요청서와 구조문을 쓴 건가.
“...문제는 어떤 녀석이 쓴 건지도 모르겠고, 이것들이 날아온 마을은 지금 불타고 있고.”

너 저기 안에서 나왔잖아. 뭐 본 거 없어?”

사람이 있었단 흔적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너야말로 고철덩어리를 보냈던데 발견한 거 없나?”

고철덩어리가 아니라 탐사인형이야 온 몸을 불로 떡칠해서 구분도 못하게 됐어?”

마법과 기계가 사이는 여전히 좋지 않다는 걸 증명하듯 조금씩 대화에 마찰이 생기기 시작했다. 여기서 괜한 감정싸움으로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 없는 패치는 우선 이 불타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정보를 자세히 교환하자고 했다. 마을에서 집을 비롯한 물건들이 태워져 재로 흩날리진 않았지만 사람에겐 어찌 적용될지 모른다는 얘기였다.

하얀 들판으로 가기 위한 가장 가까운 입구와 마을 사이 중간 공터에 자리를 잡은 일행들은 암비투스에게 정식으로 자기소개를 했다.

, 네가 그 놈이냐? 웬 미친 사제한테 납치당해서 기술의 도시 탄생계기 제공한 마법사.”

그 미친 사제가 바로 옆에서 웃고 있었지만 현명하게도 자기가 그 사제라고 얘기하진 않았다. 마키나도 마찬가지였다. 마법 뿐만이 아니라 성격과 성질도 불처럼 이루어진 것같은 이 마법사에게 얘기했다간 사정 설명이고 뭐고 마을에서 떨어진 보람 없이 이 공터가 불바다가 될 게 훤했다.

길이 겹쳐 동행했고 마침 입구 근처에 마을이 있다길래 준비를 하려고 했더니 마을이 저꼴이군. 자넨 언제부터 마을에 들어가 있었나?”

오늘 아침에 와봤더니 저 꼴이던데. 다짜고짜 날아온 구조문이라 불난리 난 거와 관련있나 싶어 생존자라도 찾으려고 들어가보니 사람만 없는 상황이지.”

그렇게 말하고는 요청서에 눈짓을 했다. 내용은 읽어봤지만 좀 더 상세한 설명을 원하는 듯 싶었다.

내용 그대로 여기 근처 입구 안 쪽에서 요정이 나타났으니 와달래서 왔어. 요정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나면 수습하기 힘드니까. 자세한 이야기와 나타난 요정의 인상착의를 들으려고 마을에 왔더니 저 꼴이고 탐사 인형 보냈더니 네가 나온 거지.”

이번엔 시선이 일행들로 돌려졌다. 길이 겹쳐서 같이 온 것과는 별개로 왜 여기로 온 거냐는 뜻이 담겨있었다.

여행길에 하얀 들판을 가보기로 결정했었으니 큰 이유는 없네.”

사실 이유는 이상현상 때문이었다. 얼떨결에 떠맡겨져서 여행 목적에 대해 자세히 들은 적이 없던 헵토미노와 늘 머릿속이 꽃밭보다 화려한 용사를 제외한 세 명은 저 불타는 마을이 이상현상이구나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위화감을 느꼈다. 왜 용사가 이렇게 얌전하지?

용사님...?”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용사가 없었다. 언제부터 없어졌는지 모를 정도로 이제야 눈치챈 일행들은 모두 당황했다.

용사라니 그건 또 누구야?”

저희 일행 중 한 명이에요! 혹시 아까 저희와 처음 만났을 때 파란 머리를 지니고 키는 이정도 였던 남자 못 봤었나요?”

전혀 못 봤는데.”

어쩐지 불타는 마을과 불타는 사람을 보고도 조용하더라니!”

그렇담 연기를 보고 달려왔을 때 일행들과 떨어졌다는 얘기였다. 왜 용사가 바로 따라오지 않고 떨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건

호기심 많은 그 녀석이 불타는 마을을 그냥 둘 리가 없어.”

특유의 감탄 가득한 외침과 함께 마을이 불탄다며 반짝이는 눈으로 뛰어들어가는 용사가 저절로 상상됐다. 재앙이었다.

용사에 대해 모르는 암비투스를 제외하고 모두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다시 마을을 향해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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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그 샌들은 왜 들고 오나?”

기왕 산 거 두고 오긴 좀 그렇잖슴까?”

다시 신을 일 없으니 작작하고 넣어놓게.”

치트는 웃음과 계속 손에 들고 있는 걸로 대답하며 패치의 옆에 딱 붙어섰다.

떨어져서 걷게.”

이렇게 넓은 들판에 떨어져서 걸으면 금방 길 잃습니다만?”

한눈 팔지 않으면 길을 잃을 이유가 없고 이렇게까지 가까이 붙을 필요는 없으니 얼른 떨어지게.”

에엥~ 눈치없는 우리 패치! 제가 왜 붙겠습니까!”

자네야말로 눈치가 없군 그래, 내가 왜 경고까지 했겠나?”

가는 내내 티격태격하는 둘에 처음엔 주의깊게 주시하던 마키나도 이젠 그러려니하는 상태가 됐다. 그만큼 둘은 자주 그랬고 끝은 하늘을 나는 대사제였다.

이제 그만하고 얼마 안 남았으니까 조용히 가자.”

그 말에 패치는 연 날리듯 날리던 치트를 내려놨다. 이제는 하늘에 떠있는 게 무섭지 않고 구경까지 할 정도가 된 치트는 여유롭게 땅을 딛었다. 그 모습이 참 얄미워서 한 번은 얼굴만 내놓고 땅에 묻어놨는데 그대로 두고 갈 수도 없고 옷을 세탁해야해서 다시 원래대로 하늘에 띄워두기로 했다. 적어도 하늘에 있으면 말은 안 들리기에.

저 용사 하나만 있어도 엄청 피곤하고 힘들지? 그런데 그런 애들이 여러명 있다고 생각해봐, 생각만으로도 재앙이지?”

...그러네요.”

진짜 요정들 상대하면서 별별 상황을 다 겪었어, 반짝이는 보물은 땅에 묻혀있는 거라며 유리로 된 것들을 죄다 땅에다 파묻은 요정 때문에 졸지에 땅도 파고 자기는 매미라면서 나무로 된 문이나 기둥에 달라붙어가지고 안 떨어지려는 녀석들 떨어뜨리느라 진땀 빼고

마키나가 일행에 합류한 이후로 요정들을 상대하느라 고생했던 이야기들과 기계에 관련된 일화들을 듣는 게 새로운 재미가 됐다. 딱히 얘기를 많이 하지 않는 마법사와 마법사를 놀리는데 집중하는 사제에 이야기를 할만한 사람은 예비 지도제작자밖에 없었다. 헵토미노는 뭔가 재밌거나 흥미로운 얘기를 하기엔 어렸고 용사는 말할 것도 없었다.

사실 하늘을 나는 물고기도 원래는 물고기가 아니라 무난하게 새나 잠자리, 나비같은 걸로 하려고 했어. 그런데 하늘도 물처럼 파라니 물고기가 헤엄치듯이 날아다니는 게 어떠냐고 해서 물고기로 만들어진 거야.”

요컨대 독특한 발상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물고기 종류의 겉모습을 딴 기계들이 탄생해 하늘을 누비게 됐다는 얘기였다.

혹시 새 모습으로 만든 건 없나요?”

있긴 있는데 문제는 너무 진짜같이 만들어서 눈앞에 두고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아.”

그런 이유 때문에 물고기가 더 인기가 있는 모양이었다.

인형들도 많던데 물고기와 마찬가지로 장난감용임까?”

노래하고 춤추는 인형들은 그렇지. 사실 인형에 그리 관심이 없어서 다른 용도는 아는 게 거의 없어. 짐나르기나 탐사용 정도?”

간혹 골리려는 용도로 실물크기의 사람과 똑같이 생긴 인형을 만드는 이들도 있다 했다.

확실히 재밌겠슴다. 패치 제가 여러명이라면 어떨 것 같습니까?”

패치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한지 그 어느때보다 험악해졌다. 그 반응에 아예 치트는 마키나에게 의뢰 제작 되느냐 물었고 뒷 일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이런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며 사흘이 지났을 때쯤, 요청서를 보낸 마을에 가까워졌다.

이제 곧 도착일세.”

헵토미노가 가던 중 놀란 소리를 터뜨렸고 모두들 헵토미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왜 그래?”

저거! 나무 불 탈 때 나는 연기예요!”

조금 멀리 위쪽을 보니 검은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아무리 하늘을 안 보고 앞만 보고 있었다고 해도 왜 못 봤을까 싶을 정도로 굵게 올라오고 있었다. 하필 목표 마을이 있는 방향과 정확히 일치해서 불안이 자연스럽게 다리를 떠밀었다.

안 좋은 예감은 꼭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었고 그 말이 딱 맞는 상황이었다. 불타고 있는 마을에 일행들 누구하나 선뜻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었다. 가장 먼저 움직인 패치는 마법으로 물을 퍼부어 봤지만 불은 꺼지지 않았다. 공기를 차단해 막을 덮는 마법도 사용해봤지만 꺼지지 않고 일정하게 타오르는 불에 이상함을 느낀 패치는 타고 있는 물체들을 자세히 살펴봤다. 계속 불이 붙어있었지만 타서 부스러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물을 부어도, 공기를 차단해도 불길이 일정하고 타서 부스러지지도, 재가 흩날리지도 않는군.”

마키나와 헵토미노를 제외한 일행들은 눈치챘다. 이상현상이었다.

일단 가까이 다가가지 말게. 자연적인 게 아니어도 불이니 위험하고 만약 붙게 되면 타진 않더라도 타는 고통은 느낄지도 모르네.”

하지만 마을인데 안에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렇다고 저 불길을 헤쳐 들어갈 셈인가?”

탐사인형 보내볼테니 잠깐 기다려.”

휴대용이라서 그런지 작은 탐사인형은 마키나의 조종에 따라 불이 가득한 마을로 들어갔다. 불에 가까이 닿자마자 불이 옮겨붙었고 인형의 시야와 자신의 시야를 동일하게 설정한 마키나는 조금 놀랐는지 어깨를 떨었지만 침착하게 인형을 조종했다. 시야에 불이 일렁이는 걸 보면서 인형의 상태를 점검하니 타서 재가 되거나 부스러지는 부분은 없었다. 그냥 불만 계속 붙어있는 상태였다.

마을 안쪽엔 다행이라 할지 아직 사람을 발견하진 못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방금 전까지 사람들이 있던 흔적은 가득했다. 가령 방금 걷은 빨래나 식탁 위의 준비된 식기들이 그 흔적이었다.

완전히 다 둘러보진 못했지만 아직 사람은 못 봤어.”

타들어가지 않고 불만 붙어있는 기묘한 마을.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 것도 목격했었지만 이 경우는 어디서부터 뭘 찾아야할지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진실을 찾기 전에 마을 자체를 사람이 들어갈 수가 없는데 어떻게 해결한단 말인가.

그러던 중 마키나가 당황 가득한 비명을 질렀다.

갑자기 공유된 시야가 끊겼어!”

결국에 불이 붙은 후엔 다 타들어가는 건가 추측하던 그 순간이었다. 불타는 마을 안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마치 불이 붙은 사람처럼 일렁이는 그림자가 일행들이 서 있는 입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보게 된 건

너흰 뭐야?”

불이 붙은 사람을 넘어서 불이 사람 형상을 갖춘 듯한 존재가 나타났다. 갑작스러운 이 상황에 모두가 당황하는 한 편

뭐야! 암비투스 네가 왜 여깄어!”

마키나는 상대와 면식이 있는지 새된 외침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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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이 됐을 때 패치는 일어나자마자 치트의 징징거림을 받게 됐다. 어찌보면 당연할 반응이었으나 패치는 알 바가 아니었다.

어떻게 해 뜰 때까지 저를 하늘에다 매달아놓을 수 있슴까!! 덕분에 전 찬바람을 맞으며 밤을 새고 내려올 땐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단 말임다~!!”

신발도둑에다 거래도 속이는 사기꾼이 말이 많군.”

사기꾼이라뇨, 전 약속을 제대로 지켰슴다! 분명 하루랬고 그 날 하루가 지났으니 말을 거는 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언제부터 하루가 24시간이 아닌 17분이었는지를 모르겠군 그래, 잠을 못 자서 억울한가? 영원히 잠들게 해줄 수 있네만?”

그렇게 말하며 어제 신고 돌아온 샌들을 집어드는 패치였다. 의도는 명확했다. 잽싸게 피한 치트는 여전히 입을 멈추지 않았고 패치는 그 입을 향해 샌들을 던졌다. 던지기가 특기인만큼 정확도는 높았다.

우리도 맞을 수 있으니까 밖에 나가서 던져.”

둘의 소란에 깨어난 마키나가 툭 말하고는 다시 누웠다. 다른 일행들은 피곤이 쌓이고 늦게 잠든 여파인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마키나의 말을 듣고 역으로 자고 있는 일행들 옆에 딱 붙는 치트에 패치는 혀를 차며 밖으로 나갔다. 안에서 계속 둘이 마주보며 열통 터질바엔 밖에서 모두 깰 때까지 돌아다닐 생각이었다.

저도 같이 나갈...얌전히 있겠슴다~”

아직 던지지 않은 한짝을 들어보이자 치트는 다시 일행들 옆에 딱 붙었다. 패치는 언제든 던질 의사가 있다는 듯이 위협적으로 들고 있던 샌들을 흔들어주고 나갔다.

저도 이만 자야겠습니다. 패치 덕분에 꿈 대신 하늘에서 여행하고 왔으니까요.”

치트는 그렇게 말하며 패치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일행들은 사흘간 중간탑에서 지내며 식량과 생활용품을 넉넉히 준비했다. 이렇게 많이 준비해가도 되나 싶을 정도였지만 아무래도 작은 마을보다 이렇게 사람과 물건이 오가는 큰 탑에서 파는 물건들이 기본적으로 더 질이 좋았다.

일단 하얀들판에서 어느 쪽으로 들어갈지 정해야하네.”

어느 쪽이라뇨?”

돌들이 들판을 둘러싸고 있거든.”

치우기엔 너무나도 많은 돌들이 겹겹이 쌓여있고 신기하게도 그 모양새가 하얀 들판을 빙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였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무작위로 쌓인 터라 사람이 들어갈만한 틈이 있고 여러군데에 있었다.

일단 틈이 있다고 알려진 곳은 10군데고 그 중에 웬만한 사람들이 드나들 정도로 큰 곳은 이 4군데지.”

패치가 지도를 짚으면서 10군데에 동그라미를, 그 중에서 4군데에 별을 그렸다. 그걸 보고 있던 마키나가 가장 왼쪽에 있는 별을 가리키더니

여기 근처에 요청서 보낸 마을이 있어.”

결정은 끝났다. 가까운데에 마을이 있는 틈이라면 안 갈 이유가 없었다.

그럼 이 틈에서 요정이 드나들었다는 얘기가 되겠군요?”

그렇지. 급하게 온 요청이긴한데 내용 보면 아예 들판 안에서 눌러 앉다시피 했다는데?”

만약 요정이 떠나지 않았다면 들어가자마자 요정을 볼 수 있는 셈이었다.

요정까지 보게 될 줄은 몰랐어요.”

일단 떠나지 않았으면 볼 수 있는 거겠지. 다만 우리 입장에선, 특히 요청서를 받은 입장에선 떠나있는 게 제일 좋은 상황일세.”

...마키나씨 입장에선 좋은 일인 걸 알겠는데 왜 우리 입장에서도 좋은 일인가요?”

가봤는데 용사가 한 명 더 있다고 생각해보게.”

퍼블리는 부디 요정이 다른 데로 떠나있기를 바랐다.

물건들은 다 챙겼나?”

!”

자네는 딸기 좀 작작 사오게. 안 그래도 과일은 금방 상하는데 뭐하는 짓인가.”

상하기 전에 다 먹을 수 있슴다~”

모두 짐을 챙겨들었다. 헵토미노는 자기도 똑같이 들겠다며 손을 뻗었지만 걷기만으로도 체력을 다 쓰는 어린아이에게 짐을 들려줄 어른은 없었다.

출발하지.”

떠오르는 해와 탑을 등지며 하얀 들판을 향해 7쌍의 발이 땅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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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내려가지.”

, 벌써요?”

벌써라고 하기엔 시간이 많이 늦었네. 12시가 지났지 않나.”

그건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인 퍼블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망원경에 시선을 뒀다. 그리 길지도 않은 시간동안 상황 살피고 얘기를 나누다보니 정작 별구경은 제대로 못해봤기에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그걸 눈치챈 패치도 조금 고민하는가 싶더니 먼저 내려갈테니 원하는 만큼 구경하고 오라고 했다.

! 그런데 사제님은 안 내리셔도 되나요?”

일정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내려올 걸세.”

그 일정시간이 해 뜨는 시간 때쯤이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먼저 말장난으로 약속을 어긴 건 치트였다. 굳이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구경 다 하면 내려오라 덧붙인 패치는 완전히 자리를 떴다.

원래 신던 신발은 치트와 함께 하늘에 있어서 여전히 따각따각 소리가 울려퍼졌다. 상당히 거슬렸지만 맨발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다 문득 뒤를 돌아봤다. 별구경하기 바쁜 퍼블리와 헵토미노, 망원경에 더 이상 흥미가 떨어진 건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용사와 지켜보고 있는 마키나. 유독 선명하게 보이는 일행들이었다.

이상하리만치 선명하군.”

하늘에 떠 있는 치트도 유독 선명해보였다. 오죽하면 분명 높이 떠 있느라 작아서 안 보일텐데도 패치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 근본 모를 집착에 혀를 찬 패치는 바로 뒤돌아 내려갔다.

 

진짜 정신 없네! 이런 녀석을 그동안 어떻게 감당한 거야?”

아하하...”

셋이서 열심히 제어해온 결과였다. 마법이 통했다면 상당히 수월했을테지만 마법이 통하지 않는 용사를 물리적으로 담당하는 건 결국 퍼블리였다. 마키나가 하얀 들판까지 함께 가게 되었기에 이제 물리적 담당은 둘이 되었다. 마법이 통하지 않는 거였지 기계가 통하지 않는 건 아니었기에.

네가 그동안 제일 고생이 많았네. 이녀석 붙잡느라 힘빠지고 저 둘 사이 눈치 보느라 머리 아팠을 테니.”

퍼블리는 힘은 들었을지언정 머리가 아팠던 적은 없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눈치싸움의 몫은 둘이었고 퍼블리는 어디까지나 신탁 때문에 함께한 제 3자였다. 둘의 감정에 깊이 관여할 이유는 없었다.

그보다 진짜 오래 떠있네. 혼자 떠도는 것치곤 실력이 엄청 좋은데?”

도시에선 공중에 떠있는 건물도 있던데요?”

사람이 그렇게 뭉쳤는데 공중에 떠있는 건물은 나올법하지. 그리고 그런 건 개인 마력으로 해결하지 않으니까 가능한 거야. 우리도 공중을 나는 기계의 연료를 다같이 만들어내고 그마저도 보급형이다보니 지속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 걸.”

기술에 관해선 문외한이었지만 막연하게 대단하다는 식으로 알게 된 퍼블리는 문득 페르스토가 자신에게 줬던 비행 장치를 떠올렸다. 건물을 올라간 이후로 쓸 일이 없어 깜빡하고 있었다. 때마침 간소한 물건들을 넣어놓는 가방도 가지고 있었고 그 안에 넣어뒀던 기억이 있어서 바로 꺼내 보여줬다.

그러고보니 선물로 받았어요.”

? 이거 우리 대표 작품이잖아?”

비록 간단한 기계일지라도 자기가 만든 기계까지 줬을 줄은 생각도 못했던 마키나는 잠깐 보여달라며 비행 장치를 가져가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대표 작품이 확실해. 진짜 의왼데? 최근엔 다양한 커피 종류 나오는 기계 만들더니.”

비행 장치를 한창 만지던 도중 마키나가 문득 떠올린 게 있었는지 새로운 대화를 꺼냈다.

그러고보니 보라색 머리인 사람이 마법사쪽 대표였어. 저번에 보라 곱슬머리를 지닌 사람을 알고 있냐고 물었지? 곱슬머리는 아니고 직모에다가 꽤 긴 머리인데 보라색 머리를 지닌 건 그 사람 외엔 본 적이 없어.”

, 혹시 남자였나요?”

아니 여자였어. 그보다 미안한데 이거 당분간 내가 가지고 있어도 될까? 방금 심상찮은 걸 발견했거든.”

얼굴 자체가 가려저서 표정이 보이질 않아 심상찮다는 말을 순간 인식하지 못한 퍼블리가 눈을 깜빡였다. 퍼블리의 반응에 뒷목을 긁으며 말을 고르던 마키나는 비행 장치를 내밀어 어느 한 부분을 가리켰다.

여기 홈이 파인 부분 보여? 여긴 홈이 파일 리가 없는 부분이야. 여기가 일종의 회로 연결 부분인데 이렇게 홈이 파여있으면 이물질 그러니까 먼지같은 게 들어가고 오작동이 일어나기 쉽단 말이야.”

하지만 멀쩡히 작동하는 걸요?”

그래, 그리고 이걸 만든 대표도 그걸 모를 사람이 아니지. 그렇다면 이 홈을 일부러 만들어놨다는 건데 그 이유가 뭘까?”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그걸 지금부터 알아볼려고 해. 그러니까 당분간 나한테 맡겨줄래? 대표가 여기에다 뭘 숨겨뒀는지 알아내고 싶어.”

퍼블리 또한 호기심이 들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어쩌면 인상착의가 서로 다른 페르스토의 비밀에 대해서 알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건 왜 오작동이 안 나는 건가요?”

만든지 얼마 안 됐거나 이 홈 안쪽에 뭔가 판 같은 걸 더 놓은 거겠지. 솔직히 홈을 새기지 않으면 되는 건데 굳이 그랬다는 걸 보면 대놓고 알아봐주길 바란 듯 싶어.”

하지만 전 기계에 관련해선 잘 모르는 걸요?”

만약 홈 안쪽에 판이 없다면 나중에 오작동이 일어나서 결과적으론 기계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을 거야.”

과연 보라머리 페르스토가 의도한 바는 뭐였을까. 퍼블리는 일단 마키나에게 맡기기로 했다. 하얀 들판까지 같이 가니 시간은 넉넉했고 페르스토에 대해 더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기에

마법사쪽 대표가 보라색 머리고 페르스토씨와 친하게 지냈다고 했죠? 그 분의 이름은 뭔가요?”

떠오르며 겹쳐지는 기억이 있었다. 공중 건물, 난간 너머의 야경, 페르스토라고 소개했던 남자, 매우 정교했던 마법진을 보며 만든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들었던 이름은

무토.”

이제 이름만 들어도 아는 마법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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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만 박혀있던 시간이 깨진 건 주위의 시선을 다시 느낀 패치가 이제 놓으라며 발을 뒤로 빼는 걸로 흩어졌다. 다만 여전히 달라붙는 주위 시선들과 패치의 발에 신겨져있는 샌들로 흔적이 남아있었다.

이상하리만치 딱 맞는군. 자네가 왜 내 발 치수를 알고 있나?”

치트는 싱글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루동안 말도 걸지 않겠다는 약속을 충실이 이행중이었다. 이런식으로 써먹는 치트에 혀를 찬 패치는 아예 무시하기로 결정했는지 완전히 시선을 돌려버렸다.

샌들을 벗고 본래 신던 걸 신으려 하니 눈치 빠른 치트는 이미 신발을 벗기던 순간부터 미리 빼돌려놓고 있었다. 표정이 더더욱 안 좋게 된 패치는 여전히 이쪽을 보고 있는 일행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왜들 그런 표정인가?”

몰라서 묻는 건 아닐텐데?”

썩 달갑지 않으니 그리 말하는 걸세.”

미묘한 표정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패치의 불편한 기색에 배려차 시선을 거두는 퍼블리와 자세히는 모르지만 퍼블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는 헵토미노, 표정이 보이지 않는데도 시선으로 말하는 마키나, 자세한 내용은 잘 몰라 아직 구경중인 사람들. 하지만 이들보다 더 패치의 속을 긁는 건 아무 말 없이 아련하게 웃기만 하는 치트였다.

신발 내놓게.”

“.....”

말을 안하기로 한 거지 못 듣는 게 아니잖나. 당장 내놓게.”

둘이 다시 실랑이를 벌이던 말던 용사는 제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있었다.

이게 모야아~?”

별을 크게 보는 도구랍니다.”

우와앙~!!”

, 잠깐...!”

어느새 망원경이 있는 쪽으로 간 용사를 보고 기겁한 마키나가 달려갔다. 다행히 용사가 망원경을 부수기 전에 끌어낼 수 있었고 동시에 본격적인 망원경의 주의사항 및 부수지 않게 다루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앙~!!!”

결국 다른 사람이 대신 망원경을 조작해서 눈에 갖다대는 걸로 그쳤다. 용사에게 시달렸던 직원인 건지 아니면 그 직원들에게 뭐라 언질을 받았었던 직원인 건지 굉장히 긴장 가득한 눈빛으로 용사를 주시하고 있었다.

사람이 붙으니 안심이군.”

“.....”

괜히 붙어있지 좀 말고 떨어지게.”

말을 안 해도 행동으로 속을 긁는 치트에 다음엔 아예 얼굴도 비추지 말라는 조건도 넣어야겠다고 생각한 패치였다. 자리를 뜨기 위해 일어나 걷는 동안 따각 따각 샌들이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사람들이 움직이고 떠드는 소리들이 가득한데도 그 어느 소리보다 크고 선명하게 들렸다.

“...저기, 마법사님.”

왜 그러나?”

혹시 둘이 서로 싸우셔서 틀어지신 거예요?”

패치의 표정이 반사적으로 찌푸려졌다.

저녀석이 일방적으로 잘못한 걸세. 그러니 서로 싸웠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지.”

...래요?”

어떻게 보였길래 그런 반응인가?”

퍼블리는 의아함 반, 호기심 반이 담긴 표정으로 아까의 상황을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뭔가 되게...익숙하면서도 어색해보였어요. ...익숙하다는 건 둘이 그렇게 같이 있는 게 엄청 익숙해보였어요.”

패치는 썩 달갑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퍼블리의 말을 곱씹었다. 한편으론 그 때의 일이 전해지지 않는 거에 대해 답답함을 느끼다 문득 깨달았다.

일행 내에서 특정한 과거는 당사자들끼리만 전해지고 그 특정함의 기준은 신탁의 여행과 관련되어있다.

여행의 목적은 이상현상의 해결이다.

특정한 과거가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도 이상현상이라 할 수 있겠군. 그렇지 않나?”

갑작스럽게 꺼낸 말에 한순간 이해가 가지 않았는지 눈을 깜빡이던 퍼블리는 뒤에서 여전히 웃는 얼굴로 천천히 따라오고 있는 치트를 발견하고 아주 예전의 말을 떠올려 깨달았다.

, 그럼 혹시...”

일단 나중...아니. 그냥 지금 관련해서 얘기해보지.”

뒤에서 따라오는 치트를 발견한 패치는 퍼블리를 데리고 빠른 걸음으로 다시 자리를 벗어났다.

일단 물어볼게 있네. 자네는 5년 전의 일을 어디까지 기억하나?”

“5년 전의 일이요?”

그 때쯤에 들려오던 큼직한 사건이나 자네 주변에 있었던 자잘한 일들 전부 생각나는대로 말해보게.”

...갑자기 그렇게 묻는다고 해도...”

아주 큰 사건이 아닌 이상 누구나 5년 전에 있었던 일을 다짜고자 생각하고 기억해보라고 하면 당황스럽고 떠오르지 않을 게 당연했다. 패치에게 맞춰 멈추지 않고 걸어가던 퍼블리는 문득 무언가 떠올랐는지

그러고보니 5년 전에

그 이후론 아무 말도 잇지 않았다. 왜 말을 하다 마느냐 물으려던 패치는 역으로 입을 다물게 됐다. 퍼블리의 입은 열심히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들리지 않았고 입모양도 이상하게 읽을 수가 없었다.

“...혹시 다른 것도 있나?”

다른 건...기억나는 게 없네요.”

내가 전에 말했지만 전해지지 않았던 녀석은 나와 녀석에 관련된 이야기였지. 자네가 이번에 전하려던 이야기는 뭐에 관련되어 있나?”

한차례 눈을 깜빡이던 퍼블리는 짧게 말했다.

지도요.”

대답을 들은 패치가 그 자리에서 멈춰섰고 동시에 따각 따각 울리던 소리가 멈췄다. 뒤를 돌아보니 치트는 멀리서 천천히 따라오고 있었다. 둘의 대화소리를 듣지 못할 법한 거리였고 주변 사람들의 자잘한 수다들 때문에 들을 수 없을 상황이었다.

방금 한 이야기 당분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용사님에게도요?”

그래.”

용사는 여전히 별을 보느라 바빴고 마키나는 직원과 함께 망원경을 살피면서 긴장하고 있었다. 둘이 멈춰있느라 바로 따라잡은 치트가 능글맞게 웃으며 물었다.

무슨 얘기들을 그렇게 재밌게 하십니까?”

자네 아까 하루동안 말 안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맞슴다~ 하루동안 말 안 했잖슴까?”

시계를 꺼내든 치트는 바늘을 가리켰다. 124분이었다.

어제, 그러니까 오늘 하루가 지나고 내일이 되었지 않습니까?”

잠시 후 용사의 망원경에 무언가 검은 것이 별들을 전부 가려버렸다. 망원경에 눈을 떼고 올려다보니 치트가 또 한 번 하늘의 별들을 가린 채 높이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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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용사님 다 흘리잖아요!”

마이쪙!!”

둘이 늦은 저녁을 마쳤을 때 쯤 별구경이 본격적인 단계로 들어갔다. 난간들에 망원경이 들어서고 사람들은 직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망원경 뒤로 줄을 섰다.

조건 모야아~??”

저건 망원경이네. 기능은...”

망원경에 대해 설명하려던 패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설명을 듣고 자기도 별을 크게 보겠다며 망원경을 막 다루다가 부숴먹는 모습이 생생했다. 같은 생각을 했는지 마키나도 용사와 망원경을 번갈아가며 봤다.

“...미리 말하는데 저건 절대로 아무 생각없이 힘 줘서 들거나 흔들어보거나 던지면 안 되네.”

!”

사용 방법에 대해 끝까지 다 듣고 망가뜨리지 않겠다고 하면 무슨 기능인지 말해주겠네.”

안 망가뜨리께!”

사용 방법 끝까지 듣는 건 왜 빼먹나?”

패치의 얘기가 끝났을 때 차례를 이어받은 건 마키나였다. 여기의 망원경은 기계인 듯 싶었으니 기계에 관해서 설명하는 건 마키나가 더 적합할 게 분명했다.

제대로 듣고 제대로 망원경을 사용해. 안 그럼 아예 만지지도 못하게 할 거야.”

!”

결국 마키나 또한 사고치거나 그럴 예정인 용사를 억제하는 길에 발을 들이게 됐다. 패치는 다 먹고 텅빈 통과 자리를 정리했고 다 끝났을 때가 되어서야 하늘에 올려둔 치트를 내려놓았다. 내려온 치트는 여전히 웃는 낯이었지만 안색은 좋지 않았고 바닥을 딛은 다리는 후들거리고 있었다.

.......너무 무서웠습니다...”

고소공포증이라도 있나?”

“...고소공포증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그렇게 맨몸으로 높이 띄워지면 무서울 수 밖에 없슴다...”

사실 치트가 무서워하던 말던 패치가 알 바는 아니었다.

자네가 어느정도 선을 지키면 나도 자네를 날릴 일이 없겠지. 자네 입장에선 장난이겠지만 내 입장에선 불쾌하기 그지 없네.”

무슨 소립니까? 전 한 번도 장난이었던 적 없습니다만?”

그에 패치의 눈이 아까 전에 날라기 전보다 더 가늘어졌다. 단순히 날리는 선에서 끝나는 게 아닌, 아예 안 보이는 곳에다가 던져놓아야하나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에헤이~ 무서운 생각 마시고 진정하십쇼~ 선물도 있슴다?”

그 말에도 패치는 절대 경계를 내리지 않았다. 자기 자신이 선물이랍시고 애정이 필요한 선물이라면서 끌어안을 녀석이었기에. 다행히 예상이 빗나가고 치트가 꺼내든 건 아까의 상자였다.

“...뭔가?”

선물임다~”

내가 물은 건 내용물일세.”

직접 열어보십쇼~”

패치의 눈에 다시 의심이 가득 찼다가 미리 내용물을 본 퍼블리와 마키나의 반응을 떠올리고 조금 진정했다. 의심 반, 궁금함 반으로 열어본 상자의 내용물은

“...슬리퍼?”

정확히는 샌들입니다.”

엄지와 검지발가락 사이로 끈을 끼워서 신는 샌들이었다. 패치는 퍼블리와 마키나의 반응을 이해했다. 지금 스스로도 같은 심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걸 왜 굳이 비밀이라고 하면서 질질 끌었나?”

깜짝 선물이니까요~”

이건 깜짝 선물이 아니라 뜬금없는 선물일세.”

제 입장에선 뜬금없는 선물이 아닙니다만.”

그건 자네 입장이지. 그래서 이건 왜 선물한 건가?”

왜긴요~ 신으라고 선물한 거죠~”

오늘따라 눈이 가늘어지는 일이 많은 패치였다.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상자째로 머리를 내려칠 기세라 치트는 두 손을 들며 이어 말했다.

제가 예전에 자주 신고 다니던 종류의 샌달입니다!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건데 패치가 신으면 어떨까 싶어서 사온 겁니다!”

생각 흐름이 왜 그렇게 흐르나? 그리고 난 신을 생각 없네만.”

에이~ 그러지 마시고 한 번만이라도 신어주십쇼~”

딱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신어달라는 치트와 싫다는 패치의 실랑이가 시작됐다. 말이 순해 실랑이었지 실상은 발차기와 애원의 손길이 뻗고 있는 난장판이었다.

신어주시면 하루동안 얌전히 말도 안 걸고 있겠슴다!”

영원히.”

너무합니다!”

둘의 소란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니 불편해진 패치는 알았으니 지금 당장부터 말 걸지 말고 닥치라하며 샌들을 꺼내들었다.

, 잠깐! 제가 신겨드리겠습니다.”
내가 분명 지금부터 닥치라하지 않았나?”

이것만 신겨드리고 정말 닥치겠슴다.”

그렇게 말하며 치트는 잽싸게 샌들을 뺏어들었고 패치의 한쪽 다리를 붙잡았다. 균형을 잃고 그대로 앉을 수밖에 없던 패치는 다리를 빼보려고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아 반사적으로 미간을 좁혔다.

패치가 어떤 표정을 짓고있던지에 상관 없이 치트는 제 손을 움직였다. 자연스럽게 신고 있던 신발과 양말을 벗기고 한 손을 뒤꿈치로 옮겨 받쳤다. 오랫동안 정착하지 않고 돌아다닌 발은 굳은 살이 가득했고 물집 흉터와 자잘한 상처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받치지 않은 다른 손이 발을 전체적으로 쓸면서 굳은 살과 흉터와 상처를 건드리고 떨어졌다. 그리곤 옆에 둔 샌들을 집어 천천히 발에 맞추어 신겼다. 발 크기는 또 어떻게 알았는지 작지도 크지도 않게 아주 딱 맞았다. 나머지 발과 샌달도 똑같이 딱 맞았다.

어떻습니까?”

어떻긴 뭐가 어떻나 그냥 샌달이군.”

그렇습니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샀습니다.”

내려다본 치트는 어딘가 익숙한 웃음을 지으며 발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평소같았으면 그대로 차버렸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계속해서 보아하니 이곳에 단 둘만 어디론가 툭 떨어진 느낌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 기묘한 상황에 묶인 듯이 앉아있던 순간 어딘가 익숙한 풀내음이 얕게 코 끝을 스치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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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들은 같이 산다해도 어차피 집 따로, 땅 따로니까 친한 사이 아닌 이상 잘 모르지.”

서로 친한 사람들도 있어요?”

있기야 있지. 대표적으로 우리 대표랑 마법사 대표가 그래.”

마법사 대표라는 말에 퍼블리는 공중 건물의 마법진을 떠올렸다.

난 마법사들이랑 친하지도 않아. 오히려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지. 그러니까 마법 관련해선 그냥 쟤한테 묻는 게 더 빠를걸?”

마법에 관심이 있다기보단 도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가 궁금했어요. 특히 길목같은 거요!”

화제를 돌리다보니 자연스럽게 퍼블리의 주 분야인 길에 대해 시작되었다. 이상현상에 관련해 정보를 얻어서 비교하려고 했던 게 본격적인 대화판으로 넘어가버렸다. 더 이상 페르스토나 마법사들에 관해서 더 얘기가 나오지 않을 걸 눈치챈 패치는 다시 제 할 일을 했다.
지도제작자라니 멋진데? 나중에 완성되면 꼭 말해, 각 지역별로 한 부 살게.”

!”

한창 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던 도중 문 열리는 소리가 났고 아까 나갔던 치트가 작은 상자를 든 채 들어왔다.

재밌게 얘기 나누고 계셨슴까?”

, . 그건 뭐예요?”

지나다니다가 보이길래 산 겁니다. 내용물은 아직 비밀임다~”

그리 말하며 패치를 향하는 눈길에 내용물이 무엇이든 패치에게 줄 거란 게 확실해보였다. 그에 마키나의 경계가 한 층 더 올라간 건 당연했다.

우리한테 못 보여줄 물건은 아니지?”

아님다~ 그저 옛날 생각이 나서 사온 건데 의심가시면 지금 두 분께만 살짝 보여주겠습니다~”

그리곤 패치한텐 아직이라며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의심가득한 기세로 다가온 마키나와 내용물이 궁금한 퍼블리는 얼른 안을 보여달라고 하고 있었다. 멀찍이서 그들을 어이없다는 눈으로 보고 있는 패치가 있었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고개를 숙여 살짝 열린 틈새로 내용물을 본 둘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굉장히 미묘한 표정이 치트를 향했다.

왜 그런 얼굴들이심까?”
, 그게...되게 예상치도 못한 물건이어서요?”

왜 굳이 이걸 비밀로 하는 거야?”

낭만이란 게 있잖슴까~”

만약 마키나가 기계 가면을 쓰지 않았다면 뒤에 있는 패치처럼 표정이 있는 힘껏 구겨졌을 표정이 보였을 텐데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다. 능글맞게 웃던 치트는 별이 뜰 때까지 비밀로 해달라며 상자를 닫았고 둘은 떨떠름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보니 별이 뜰 때까지 이제 얼마 안 남았네요?”

헵토미노랑 용사 깨우게. 저녁 먹고 가면 딱 맞겠군.”

헵토미노는 하품을 하면서 일어났지만 용사는 아무리 흔들어도 일어나지 않았다.

용사님! 일어나세요 용사님!!”

음냐...”

자네 별 본다고 하지 않았나?”

벼어어어얼~???”

별이라는 얘기에 언제 자고 있었냐는 듯이 눈을 번쩍 뜨며 벌떡 일어나는 용사에 어이없다는 시선이 날아왔지만 용사는 시선 자체를 의식하지 못한 채 패치의 손을 잡고 문으로 뛰어갔다.

...멈추게! 아직 아니야!”

벼어어어얼~!!!!!”

멈추라고!!”

그렇게 둘은 단 번에 최상층으로 올라가게 됐다. 갑작스레 일어난 일에 붙잡지 못한 남은 이들은 멀거니 끼익 흔들리는 문을 바라봤다.

“...식당 가서 2인분은 포장할까요?”

그럽시다.”

그래야겠지.”

넷이 식당으로 향하는 동안 용사는 패치에게 혼나고 있었다.

아직 시간이 안 됐다고 했잖나!”

우웅~? 안 했엉!”

사람 말을 끝까지 다 듣고 행동하게!!”

!”

아직 문이 열리지 않았어도 용사는 내려갈 생각이 없어보였다. 패치는 결국 저녁을 포기하고 문이 열릴 때까지 옆에서 용사를 붙잡아뒀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문이 열리자 용사는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가장 먼저 뛰어들어갔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시달린 패치는 그 어느때보다 초췌한 얼굴로 따라 들어갔다.

달이 없는 밤하늘 답게 별이 빼곡이 박혀서 제각각 빛을 내고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본 패치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방금 본 별이 담겼는지 눈을 빛내며 뛰어다니는 용사가 있었다.

별구경하러 온 다른 사람들이 용사를 피해다니는 게 아주 잘 보였다. 패치는 마법이 안 통하는 거에 크게 한탄하며 방에 있을 때 아예 챙겨둔 밧줄을 꺼냈다. 용사는 결국 패치 옆의 의자에 묶여 돌아다닐 수 없게 됐다.

이잉~”

자네 이제까지 하던 행동들을 생각해보게.”

열심히 돌아다녔엉!”

용사에게 마법은 통하지 않더라도 묶어논 밧줄엔 통했다. 더 튼튼해진 밧줄은 용사를 완벽히 잡아놨다.

저희 왔어요!”

고생이 많으심다~”

음식을 포장해온 일행들이 도착했다. 묶여있는 용사와 그 옆에 앉아 쉬고 있는 패치의 모습에 이래저래 납득한 일행들은 각자 둘의 옆에 앉았다.

저녁도 챙겨왔슴다, 사실 시간으로 따지면 저녁이 아니라 야식이겠지만요.”

, 고맙네.”

손을 내밀었지만 치트는 미소만 지은 채 넘겨주지 않았다. 또 뭔짓을 하려는 건가 싶어 패치는 가늘게 좁힌 눈으로 바라봤다.

제가 먹여드리겠습니다.”

치트는 용사와 달리 마법이 통하는 사람이었다. 그 결과 온 몸으로 하늘 한 구석의 별들을 가리게 됐고 패치는 떨어뜨리지 않게 잘 조절하면서 못한 식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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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곤히 자는데 깨워도 될까요?”

저녁도 먹지 않은 상태니 중간에 깨우긴 깨워야하네. 어려서 체력도 약하니 굶으면 면역력도 떨어질 걸세.”

밥을 먹여야할 때 깨우고 묻는 걸로 정한 일행들은 각자 할 일을 했다. 용사는 침대에 눕자마자 잠들었고 한시름 덜은 패치는 오늘 모아본 정보를 살펴보며 옆에 달라붙는 치트를 밀어내기 바빴고 퍼블리는 그동안 스케치를 했던 지도들을 본격적으로 다듬기 시작했다.

그 모습들을 보던 마키나는 조금 떨어진데서 자리잡아 기계들을 손보기 시작했다. 조금만 고개를 들어도 한눈에 볼 수 있게 자리잡은 모양새였다.

저도 잠깐 나갔다 오겠슴다~”

달라붙다 포기한 건지 치트는 그리 말하며 방을 나갔다. 패치는 옆에서 귀찮게 달라붙는 녀석이 없어져서 그런지 찌푸리던 얼굴을 조금 풀었다.

너 정말 저 녀석 싫어하는 거 맞아?”

곧이어 날아온 물음에 조금 풀렸던 게 더 깊게 찌푸려졌다.

그럼 좋아하는 걸로 보이나?”

뭔가 예상만큼 싫어하는 것 같진 않아서 말이야.”

감정을 그대로 다 드러냈다면 사람 많은 이곳은 진즉에 무너지고 녀석은 별 대신 매달아놨겠지.”

안 싫어한다는 게 아니라 굉장히 가라앉아보여. 짜증나서 관심 안 주려고 외면한다기 보단 일부러 외면해야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패치는 가라앉아보인다는 건 동감했지만 일부러 외면해야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부분에서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가 안 되는군.”

네 감정인데도 왜 이해가 안 돼? 보이는 걸로도 그런데 본인이라면 더 잘 알 거 아냐?”

짜증나고 싫어서 외면하는 게 맞는 걸세. 시답잖은 이야기 그만하고 각자 할 일 하지.”

지금 너랑 방금 나간 대사제간의 관계 의심에 대한 이야긴데 시답잖은 이야기로 넘길만 한 거냐는 반박이 돌아왔지만 패치는 무시했다. 나가서 드디어 안 보이는 싫은 녀석 이야기를 굳이 더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혹시 하얀 들판이라는 지명도 비유적인 이름인가요?”

비유라니?”

이전에 들렸던 곳이 각진나무 무덤이었거든요.”

아하 무슨 소린가 했는데 그런 비유? 거긴 딱히 비유할만한 일화가 없어. 말 그대로 하얀 꽃과 풀들로 이루어진 들판이야. 놀라운 건 그 하얀 게 다 자연발생이라는 거고. 어떤 이들은 요정이 심었다고들 하는데 그닥 신용가는 얘기는 아니라.”

마키나 인식 속의 요정들은 꽃과 풀을 뽑거나 침대 삼아 자는 존재들이었다.

그보다 각진나무 무덤이라니, 거기 주인 성격이 장난 아니기로 유명하던데 용케 갔다왔네?”

여기 자고 있는 헵토미노가 그 성격 장난 아니기로 유명한 주인의 아들이란 걸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렇게 생각한 퍼블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을 했다.

거기 말고 또 어디 갔다왔어?”

기술의 도시에 가봤어요.”

! 어때? 거기 정말 멋지지? 내가 거기에서 꽤 인지도도 높고 기계측 부대표거든.”

...구경하기 바빴어서...”

그래? 하긴 이거 말고 다른 의뢰들 때문에 자리를 오래 비우긴 했지. 그래도 우리 대표는 봤지? 애들이 여행자들 지나갈 때마다 입이 닳도록 대신 소개하기도 하고 뭣보다 밤에도 기계를 만들어서 그 소음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없어.”

마법사가 없었던 기술의 도시는 마키나의 말과는 달리 자신들의 대표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기억나는 건 하늘을 날다가 떨어지던 사람들, 하얀 국화꽃, 그리고

혹시 대표 이름이 페르스토인가요?”

맞아. 직접 봤어?”

. 얘기도 나눠봤어요.”

그래? 한창 기계 만지는데 정신 없어서 밖으로 안 나올 줄 알았는데 햇빛도 쐬고 사람도 만나니 안심이네.”

마키나는 도시의 상황을 알지 못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에 대해선 자세히 얘기해야겠단 생각에 퍼블리는 먼저 확인을 했다.

마법사들과 함께 지내는데 사는데도 서로 사이가 안 좋다고 들었어요. 실제로도 그랬고요.”

기술적으로 서로 대립할 수밖에 없어서 그래. 솔직히 효율적이거나 효과가 강하지도 않은데 그걸 인정하질 않으니까 난 마법사들을 좋게 볼 수 없어.”

그럼 마법사들이 위험에 빠지거나 마법사들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어도 오로지 자신들끼리 해결할 건가요?”

그 상황이 얼마나 급박한 상황일까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물론 사람 목숨 걸린 일이라면 당연히 도와야하고.”

그 말에 안심한 퍼블리가 현재 도시의 상황에 대해 얘기하려던 순간

그보다 우리 대표 머리카락은 안전해? 언제 한 번 크게 폭발한 적이 있어서 머리카락이 반 이상은 탄 적이 있거든. 세상에 그 레몬색이 그렇게 시꺼매질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

“...레몬색이요?”

레몬 삐죽 머리! 그거 머리가 타가지고 잘라서 그렇게 삐죽삐죽하게 자르게 된 거야.”

퍼블리 기억 속의 페르스토는 보라색 곱슬 머리였다. 레몬이고 뭐고 밝은 색은커녕 흰머리도 하나 없이 제법 진한 보라색이었다. 한껏 당황을 머금고 눈을 굴려 쭉 둘의 이야기를 듣던 패치와 눈을 마주했다. 페르스토가 누구인지 마주친 적 있어서 눈치껏 알아챈 패치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레몬색에 직모가 확실한가?”

확실하고 뭐고간에 그게 맞는데 왜?”

혹시 보라색 곱슬머리인 기계공은 알고 있나?”

글쎄, 내 주변엔 그런 사람은 없었는데.”

미간에 주름이 하나 더 졌다. 이 상황 또한 이상현상으로 판정해야하는지 애매했기 때문이었다. 원래 레몬 직모였는데 마키나가 없는 동안 페르스토 개인이 보라 직모로 바꾼 거일 수도 있었다.

떠나기 전에 도시에 이상한 점이 없었나?”

이상한 점이라니?”

마법사들의 움직임이라던지.”

걔네야 뭐 늘 마법쓰고 우리랑 비교하고 그랬지. 딱히 이상한 건 없었어.”

패치는 다시 퍼블리를 보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말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둘이서 마키나를 관찰하게 되었고 마키나는 묘한 느낌을 받았으나 패치가 주의를 끌고 퍼블리가 관심 가득한 어투로 물어보는 둥 둘의 연계에 의해 눈치채지 못하고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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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라는 것도 잔소리라는 걸 인식해야 사람들이 알아먹는 거였다. 양심에 찔리면서 듣는 형태든, 듣기 싫어하면서 귀찮아하는 형태든 어찌됐든 그건 이해하고 인식한다는 뜻이었으니. 여기서 패치는 두 유형을 봐왔지만 두 유형 전부 결국엔 쩔쩔 맸다. 그만큼 패치의 기세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고 자연스럽게 눈치를 보게 된 셈이었다.

다만 여기서 기세고 뭐고 잔소리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는 패치가 아직까진 겪어보지 못한 경험이었기 때문에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방금 전까진.

그러다 책장이 쓰러지면 어떡할 건가?!”

도미노~!”

치우는 사람 입장을 생각해보게!”

같이 치우장~”

애초에 쓰러뜨리지 않으면 되잖나!!”

전혀 들어먹지 않는 용사에 패치만 속이 터지고 있었다. 마법으로 제압하려고 해도 요정과 오래 지내면 저항력이 생기는지 듣지 않아 힘으로 제압하려고 했지만 슬프게도 물리적인 면에선 용사가 더 강했다.

처음엔 이렇게까지 소리를 지르진 않았다. 낮게 깐 목소리로 경고를 줬지만 용사를 알아먹지 못했고 결국 이렇게 소리까지 지를 지경에 왔는데도 용사는 여전히 알아먹지 못했다. 치트가 빡치게 하는 걸 대비해서 가져온 혈압약이 용사로 인해 사용되고 있었다.

화내고 소리지르는데 지친 패치는 천천히 머리를 굴렸다. 애초에 상식이 통하지 않는 용사였다. 마키나가 설명해준 요정들과 같게 인간들 사이의 상식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아주 잘 들어맞았다. 그동안 목적지도 들르고 이상현상에 집중하고 노숙도 하며 바쁘게 움직이느라 넘겨버린 게 이렇게 큰 눈덩이로 돌아왔다.

“...자네가 이제껏 행동했던 대로 한다면 곤란해지는 사람이 계속 나타날 걸세.”

왜 곤란행~?”

사람들 사이에 서로 곤란해지지 않기 위해 세워놓은 규칙이 있네. 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테니 거기서 내려오게.”

여기서 하장!”

겨우겨우 가라앉힌 짜증이 다시 올라오려고 했지만 제 목과 머리만 아플 거라는 걸 깨달은 패치는 한껏 낮춘 목소리로 설득을 했다. 물론 올라오려는 감정을 내리누르느라 무의식적으로 나온 기세들이 있었고 근처를 지나가다가 그 기세를 목격한 이들은 잽싸게 다른 곳으로 뛰어서 피했다.

여기서 하기엔 자네는 다른 것들에 정신이 팔리겠지. 그러니 제대로 들을 거라면 당장 내려오게.”

그르믄 나중에 들을랭!”

물리적인 힘은 약했지만 도구를 활용하는 능력은 그 누구보다 뛰어난 패치였다. 짐가방을 두고 와서 사용할 만한 게 조금 챙겨온 손수건들이었지만 이걸 묶고 강화 마법을 사용하니 밧줄 못지 않게 튼튼해졌다. 손목이 묶여 연행되다시피 내려온 용사는 이잉 하고 아쉬운 소리를 내었지만 눈 하나 깜짝할 리 없는 패치였다.

여기는 공공시설 그러니까 누구나 다 쓰는 시설이지. 공공시설인 이유는 그만큼 필요한 곳이고 누구나가 언제든 쓸 수 있어야하는데 무너지고 어지럽혀져서 치우는 중이라고 생각해보게. 치우는 중에 급하게 사용해야할 사람이 오게 되면 어떻겠나?”

같이 치운당!”

당장 사용해야할 정도로 급한 사람일세. 그렇담 정답은 애초에 치울 상황을 만들지 않는 거지.”

수갑처럼 손목을 묶어놓고 끌고 다니며 관광도 하고 기초상식을 가르치는 기묘한 모습에 지나가던 사람들과 자리를 지키던 직원들도 하던 걸 멈추고 구경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렇게 3층 정도 올라갔을 때 용사는 공공시설물을 함부로 다루지 않고 무너뜨리고 망가뜨리지도 않는다는 걸 새기다시피 배웠다. 한시름 놓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손목을 묶어놓은 걸 풀 정도는 아니었기에 관광하는 동안은 지금 상태를 유지했다.

꼭대기 보구 싶당!”

옥상은 비구름도 없고 달도 안 뜨는 밤에 개방한다네. 별을 조사하기 위한 장치들이 있어 별이 잘 뜨는 때에 관광차 개방한다지.”

마침 오늘은 달도 뜨지 않고 비도 내리지 않는 날이었다. 타이밍이 좋아도 너무 좋다는 생각과 더불어 아까 요정에 관한 정보를 적으려 할 때 한 귀퉁이로 보였던 국화그림을 떠올린 패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자네 혹시 돌아다니는 동안 눈에 띄는 이상현상이 있었나?”

몰랑!”

퍼블리와 헵토미노에게 묻기로 결심한 패치는 용사에게 언제까지 돌아다닐 생각인지 물었다.

꼭대기 볼랭!”

지금은 밤이 아니니 못 보네만.”

그르믄~ 밤까지 돌아다닐랭!”

차라리 돌아가서 밤이 될 때까지 쉬면서 기다리는 게 더 나을 걸세.”

다같이 보는 거양~?”

볼 생각이 없는 사람은 빠지겠지.”

그 뒤로 두 층은 더 돌고 난 후에야 용사는 진정했는지 더 이상 뛰어다니려고 하지 않았다. 겨우 진정한 용사에게 일행들에게 돌아가 별을 볼지 안 볼지에 대해 얘기를 나누자했고 용사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여전히 묶인 손에 의해 따라갔다.

구경은 다 했어?”

자네는 다 정리됐나?”

그럭저럭. 어차피 같이 가면서 둘 다 감시할 거니까.”

이미 요정에 관해서라기보단 둘을 감시하기 위해서가 되어버렸다. 마키나는 머리가 아파오는지 관자놀이 부분을 꾹꾹 누르며 함께 들어갔고 들어가보니 헵토미노는 잠들어있었다.

오셨어요?”

오셨슴까?”

별 보러 가장~!!”

다짜고짜 외친 용사의 말에 퍼블리는 당황하며 아직 밤이 아니라고 했고 패치는 묶어둔 용사를 앉히면서 다시 진정시켰다. 화를 내기엔 이미 시달릴 대로 시달려 지쳐버렸으니 더 이상 나지도 않는 상태였다. 손을 묶어놓은 걸 보고 대충 상황을 짐작한 퍼블리 또한 안쓰러운 눈빛으로 패치를 바라봤다.

밤이 되면 별 관광차 옥상을 개방할 걸세. 가겠나?”

!”

~ 낭만적일 것 같슴다. 마침 오늘 달도 안 뜨고 구름도 없는 날이죠?”

잠들어있는 헵토미노는 어떡할까 했지만 밤이 될 때 살짝 깨워서 물어보기로 결정했다. 둘을 감시하겠다던 마키나는 당연히 따라가겠다는 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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