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저물어가고 있는데도 둘이 돌아오지 않자 패치의 눈썹 끝은 당연한 수순으로 치켜올라가고 있었다.

대형 정보를 물어오느라 늦는 걸수도 있잖슴까~?”

얻더라도 돌아오지 못하면 빈 손으로 오는 것만도 못하다는 걸 모르나?”

최소한의 추적 기능도 달아놨어야 했다며 표정을 찌푸리던 패치는 나무들을 쭉 훑어봤다. 네모난 나무 막대들을 이어붙인 모양새들은 이질감이 상당했다. 흙을 보니 심었다기보단 막대를 박아 놓은 모양새였다. 패치의 눈매가 가늘어지면서 치트를 돌아봤다.

차라리 용사랑 있는 게 더 나은 것 같군.”

당사자 앞에서 대놓고 그렇게 말씀하면 제 마음이 아파요~?”

왜 끝이 의문형인가? 그리고 자네 마음이 아프던 말던 내 알 바가 아니네.”

그에 치트가 매정하다는 둥 뭐라 더 말했지만 패치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단 둘이 남게 되면 늘 저러니 최대한 길게 무시하는 게 상책이었다.

둘이 약속장소에서 만난지는 꽤 된 상태였다. 패치는 이상하고 기묘한 사람을 만났었고 치트는 땅 주인을 만났었다. 그런데 둘 다 정보를 교환하지 않고 내놓지도 않았다. 지독한 눈치 싸움이었다. 일단 여기서 마냥 기다릴 수도 없고 경계심이 한 없이 0에 가까운 용사라도 먼저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패치가 북쪽으로 고개를 돌리던 때였다.

헵토미노!!”

처음 듣는 이름을 부르며 누군가가 달려오고 있었다. 여기서 처음 만났던 신시어였다. 동쪽 방향에서 달려오길래 그 쪽으로 간 퍼블리의 행방을 물어볼 수 있을까 했지만 달려오는 기세와 점점 보이는 표정이 심상치 않아 패치도 잠시 주춤했다. 그 틈을 타 달려오던 신시어가 먼저 패치에게 물었다.

혹시 남자 아기 못 보셨나요!? 아직 제대로 기어다니지도 못하는 아기인데 혹시 누가 데리고 있는 모습 못 봤나요?!”

아기?”

반문하는 패치에 본 적이 없다는 걸 눈치 챘는지 신시어는 다시 바쁘게 뛰어갔다. 패치는 뛰어가는 신시어를 잡진 않았다. 다만 가라앉아 싸늘한 시선이 그 뒤를 좇았다.

자네 집에 들렀을 때를 기억하나?”

기억 함다~ 아무리 봐도 애가 있을 법한 집은 아니었는데 말이죠.”

아기 용품 하나 없던 집. 아기를 키우지 않는 이들도 알다시피 아기를 키우는 덴 많은 수고가 든다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이상하네요? 얼핏 봤을 땐 집 안에 아기용품은 하나도 없었던데 말이죠~”

그런만큼 아기용품이 아주 눈에 잘 띄고 바로 쓸 수 있는 곳에 두는 게 편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상한 게 훤히 보이는데 정작 뭐 때문인지가 보이지 않는군.”

이상한 걸 다 대면 되지 않겠슴까?”

그걸 다 어디다 대고 말하나?”

그것도 찾아야죠~”

전형적인 말은 쉽다의 표본이었다. 패치의 눈살이 찌푸려진 것도 잠시, 문득 든 생각이 있었는지 이렇게 말한다.

생각해보니 해결 방법이 같으리란 법은 없잖나?”

, 그렇죠?”

장소만 찾아내면 끝이란 거군.”

짐작 가는 데가 있슴까?”

패치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둘이 있는 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있었다.

아직도 안 갔냐?”

땅 주인 헥소미노였다. 나타난 방향과 처음에 비해 꽤나 흥분이 가라앉은 태도를 보았을 때 치트를 만났던 게 틀림 없다고 생각한 패치는 잠시 탐색하려는 건지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금방 간다더니 언제까지 여기 죽치고 있을 거야?”

죄송함다~ 시간이 더 필요한가 봄다~”

정확히 얼마나 더 필요한데?”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는지 표정이 처음 만났을 때처럼 험악해져가고 있었다. 치트가 난감하게 웃으며 대답하려던 때였다.

그러고보니 방금 전 당신의 아내를 만났었네만.”

헥소미노의 표정이 더욱 험해졌다. 패치는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우리더러 아직 기어다니지도 못하는 아기를 보지 못했냐고 묻고 헵토미노라는 이름을 부르며 저쪽으로 뛰어가더군.”

그 말에 헥소미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으면서 패치가 가리킨 방향으로 바로 뛰어갔다. 잠시 지켜보던 치트는 패치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고 물었다.

순순히 보내주시네요?”
계속 얘기를 나눠봤자 좋을 게 뭐 있나? 보아하니 얼른 떠나지 않으면 아주 감시할 기세던데.”

패치는 그리 말하며 잠깐 여기 기다리라고 한 후 어디론가로 가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왔는데 양 손에 삽을 든 채 나타났다.

삽은 어디서 얻었슴까?”

처음부터 챙겨왔네만.”

하지만 삽이라니 보통은 잘 안 챙기는데 말이죠? 준비성이 남다르시네요~”

언젠가 자네를 묻을 때 사용할 건데 당연히 챙겨야하지 않겠나?”

치트는 하하 웃으며 농담이시죠? 물었지만 패치는 대답하지 않았다. 치트의 뒷목에 식은땀이 살짝 흘러내렸지만 삽을 들고 나무들 가까이 걸어가던 패치는 못 봤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게 한 둘이 아닐세. 도시에서는 이상한 게 무엇 때문인지 아주 명확했지만 여긴 그렇지 않지, 대놓고 이상하다는 걸 보여줬지만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고. 여기와 도시의 차이점은 방금 말한 거고 공통점은 이상한 걸 대놓고 보여주는 걸세.”

삽자루를 쥐던 패치는 이어서 설명했다.

또 차이점을 짚자면 도시는 누군가가 해결책을 알려줬고 여긴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것도 차이점이지.”

그렇게 말하며 패치는 나무 한 그루 앞에서 멈췄고

이제 겨우 두 번째긴 하지만 사람이든 물건이든 아니면 다른 무언가든 간에 어떻게든 우리에게 해결책을 전하려고 한다고 가정한다면

패치는 나무가 꽂혀있는 것처럼 심어진 흙부분을 삽으로 쿡 찌르며 말을 끝낸다.

명칭 자체가 의미와 같다고 예상해볼 수 있지.”

패치는 그리 말하며 무덤을 파내기 시작했다.

 

헵토미노! 헵토미노!!”

여보!!”

신시어를 따라잡은 헥소미노가 그대로 붙들어 멈추게 했다.

헵토미노! 내 아기 어디갔어?! 헵토미노!!”

여보, 신시어! 진정해, 헵토미노 무사해!!”

어떻게 진정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진 절대 안심할 수 없어!”

헵토미노 다른 분들한테 맡겼어! 기억 안 나?!”

우리가 멀쩡히 있고 어디 갈 일도 없는데 왜 맡겨? 맡길 이유가 없잖아! 왜 거짓말을 해?!”

거짓말 아니야!”

그럼 누구한테 맡겼는데?!”

헥소미노의 표정이 희게 질렸다. 심상치 않은 반응에 신시어가 붙잡고 자세히 캐묻기 시작했다. 그런 끝에 나온 대답은

“...요정.”

“...?”

완전히 넋을 놓은 듯한 표정으로 신시어가 툭 말을 뱉었다.

당신 제 정신이야?”

헥소미노가 고개를 푹 숙였다. 신시어가 덜덜 떠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개 들어.”

그 말에도 헥소미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결국 목소리처럼 덜덜 떨고 있는 손이 고개를 들어올렸다. 헥소미노의 표정은 한껏 구겨져 있었다. 마치 여러 감정을 전부 다 구겨넣은 듯한 모양새였다. 그 안에 담겨 있는 감정들은 슬픔, 공포, 당황, 혼란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자리를 차지하는 건 후회였다. 신시어 또한 혼란스러운 눈으로 마주하며 입을 벌린 순간

“...여보?”

 

패치는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냈다. 땅을 팠기 때문에 흐른 땀인지, 지금 막 발견한 진실 때문에 흐른 땀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는 몰랐지만 그만큼 목격한 진실은 꽤 충격적이었다. 해가 점점 저물고 완전히 어두워지기 직전, 흙이 아닌 다른 게 나타났다. 조금 더 넓게 파보니 상자처럼 보였고 완전히 흙들을 걷어내니 상자처럼 보였던 건 관이었다. 누구의 관인지 이름이 적혀있을 부분은 칼자국이 거칠게 난 상태로 지워져있었다. 하지만 누구의 관인지는 열어보는 순간 바로 알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보였던 건 죽은 이들에게 애도의 표시로 바치는 흰 국화였다. 하지만 이게 진실이 된 이상 이 국화는 마냥 애도의 표시로 보이지 않았다.

“...죽은 자가 살아 움직이다니...”

흰 국화에 둘러싸여 있는 신시어는 이제 영원히 눈을 뜰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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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서 들른 도시보다 더 대놓고 이상현상을 보이는 이 상황에 대해서 퍼블리는 대체 뭐라 반응해야할지 애매한 모습을 보였다. 용사는 애초에 이상하고 멀쩡하고를 구분하지 않는 듯 싶었다. 바둑이와 노는 게 더 중요해보였다.

? 할머니 오셨나봐요!”

아이 그러니까 헵토미노는 할머니가 돌아왔는지 알아보는 방법이 있는 건지 닫혀있는 현관문만 얼핏 보고도 그렇게 말했다. 문을 똑똑 두드리더니

할머니! 손님들이랑 같이 들어가도 돼요?”

그러자 안쪽에서 언듯 희미하게 그러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워낙 작아서 놓칠 뻔 했지만 다행히 헵토미노는 들었는지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들어오세요!”

실례한다는 인사말을 꺼내며 조심스럽게 들어오자 휠체어에 앉아있는 노인이 보였다. 나이가 들면 거동이 불편해진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지만 코에 꽂혀있는 산소호흡기, 손등에 꽂혀있는 호스가 휠체어 뒤에 수액과 이어져있는 모습을 보니 누워있어야 할 환자였다.

, 안녕하세요...?”

“...아가. 들어가있거라.”

노인의 말에 헵토미노는 의아해했지만 바둑이를 안고 살금살금 방 안으로 들어갔다. 심상찮은 분위기를 눈치 챈 퍼블리는 미리 용사의 입을 막았다.

외부인이 여기까지 오는 건 처음이군. 전에 왔을 녀석들은 저 무덤을 보러 가다가 그 못난 녀석에게 내쫓겼겠지.”

못난 녀석이 누구인가는 금방 떠올릴 수 있었다. 일행들을 어서 이곳에서 내쫓으려고 했던 건 바로 헥소미노였으니까.

너희들은 왜 여기까지 온 거냐? 쫓겨난 녀석들은 우드가 없으니 우드가 열렸던 나무라도 뽑아가려고 안달이 났었지만 너흰 우드는 안중에도 없구나.”

아픈 몸상태를 대변하듯 잔뜩 쉬고 가라앉은 목소리였지만 내용과 기세만큼은 창보다 더 예리했다. 퍼블리는 조금 긴장한 얼굴로 어디까지 얘기해야하나 고민했고 동시에 용사의 입을 막고 있던 손에 힘이 풀렸지만 용사가 바로 입을 열기까지 인식하지 못했다.

이상한 거 찾으랭~!”

용사에게 시선을 준 노인은 한숨같은 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퍼블리가 좀 더 상세히 설명하려던 순간 노인의 입이 열리는 게 더 빨랐다.

보다시피 그리 오래 움직일 수 없는 몸이라 가장 최근 상황은 몰라도 뭐가 어떻게 이상하고 달라졌는지는 알고 있지. 제대로 된 목적도 모르는 낯선이들에게 함부로 말할 수도 없는 얘기이기도 하니까 들을지 듣지 못할지는 너희들이 하는 말에 달려있다는 걸 알아두거라.”

경고인 듯 싶으면서도 언뜻 들으면 충고같은 말에 퍼블리의 표정에 의아함이 깃들었지만 곧이어 솔직하게 말하는 게 최고라는 걸 알아채고 여행 이야기와 신탁의 내용까지 전부 말했다. 묵묵히 듣고 있던 노인은 문득 말했다.

넌 사람의 선의를 쉽게 믿거나 아니면 속이는 것 자체가 힘들어하는구나.”

?”

네가 솔직히 모든 걸 말한다고 해도 상대방도 마찬가지로 모든 걸 알려줄 거란 생각은 하지 마라. 함부로 모든 걸 내보이는 순간 눈 뜬 채로 네 손을 벨 녀석들이 수두룩 한 걸 모르진 않을 테니.”

그렇지만 음...어르신은 제 손을 벨 생각은 없잖아요?”

그러자 노인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 표정에서 어딘가 익숙함을 읽은 퍼블리는 하하 웃으며 시선을 피했다.

그래 네 말대로 난 네 손을 벨 생각은 없다. 이용해먹을 생각도 없지. 지금 솔직히 말한 건 옳은 판단이긴 했다.”

그리고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몸이 좋지 않은 만큼 말하는데 힘이 부쳐보였다. 숨소리가 안정 되었을 때 나온 말은

무덤으로 가봐라.”

거긴 나무 밖에...”

나무만 봐서 뭘 하느냐? 상자도 뭐가 들었는지 살펴보기 위해선 열어보는 법인데 나무만 멀뚱히 보면 쉽게 찾을 답도 영원히 못 찾는 건 당연하지!”

결국 큰소리가 나오자 찔끔 놀란 퍼블리가 옆이 훤하다는 걸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용사는 어디로 갔는지 옆엔 아무도 없었다.

고 덩치만 큰 어린녀석은 헵토미노 따라 나갔다. 키도 큰 녀석이 잽싸긴 다람쥐만큼 잽싸더구나.”

방 안에 있는 게 심심했던 헵토미노는 나름 몰래 나간다고 몰래 나갔지만 못 본 건 퍼블리뿐이었다. 노인은 봤어도 모르는 척 했고 용사도 심심했는지 바로 따라 나갔다.

어쨌든 내가 할 말은 이게 끝이니 얼른 가봐라. 해질 때 가면 더 찾아보기 힘들 거다.”

노인은 그렇게 말하고 눈을 감았다.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뜻처럼 보였다. 퍼블리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나가기 전, 이제야 생각난 표정으로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고보니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잠시 기다려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결국 문을 열고 나갈 때 완전히 닫기기 직전, 작은 목소리로 말하길

펜토미노.”

대답은 제대로 들렸지만 다시 문을 열진 않았다. 퍼블리의 머릿속엔 빨리 돌아가서 지금 겪은 일들을 얘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우선 헵토미노와 같이 나간 용사를 찾는 게 먼저였다.

용사님! 어디계세요?”

확실히 어두워지면 돌아가서 다시 뭔가를 살펴보는 건 물론이고 돌아가는 것 자체도 힘들 게 분명했다. 용사가 그리 멀리 가지 않았길 바라며 돌아다니자 곧이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내 칭구들이랑 비슷해!”

정말요? 사실 아빠가 절 맡겼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안 오고 그래서 저 혼자라 너무 무서웠었는데 그 때 할머니가 나타났어요!”

둘은 흙바닥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거의 헵토미노가 자기 얘기를 하고 용사는 특유의 웃는 얼굴로 들으면서 호응하는 식이었다. 바둑이는 막대 물어오기로 체력을 다 썼는지 헵토미노의 무릎에 잠들어있었다. 퍼블리는 멀리 가지 않았다는 거에 안도하며 용사를 부르기 위해 다가갔다.

사실 아빠는 저를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절 맡긴 이후론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거든요.”

? 엄마는?”

? 엄마요?”

헵토미노의 의아함 가득한 표정과 함께 나온 말에 퍼블리는 그만 그 자리에서 멈춰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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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이제 막 성인이신가요?”

? , 얼마 안 있으면 성인이 돼요.”

! 그럼 벌써부터 여행을 떠나는 거예요?”

자신도 한 때는 여행하는 게 꿈이었다면서 어디를 들려봤는지 요즘 길은 여전히 흙길인지 궁금하다며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에 퍼블리는 아직 많은 곳을 돌아다닌 게 아니며 제대로 가본 데가 기술의 도시라고만 했다.

기술의 도시요? 처음 듣는 지명이에요. 언제부터 생겼나요?”

...아마 5년 전부터요?”

“5년 전이라...그 땐 여기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았으니 한창 바쁘던 때였네요. 혹시 여기서 얼마나 떨어졌는지...”

중간에 마을을 거쳐서 와야하지만 엄청 멀진 않아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가보고 싶어지네요.”

다시 한 번 기묘한 느낌을 받은 퍼블리는 처음 이상한 반응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하며 결혼하기 전, 즉 이 나무 무덤에 나가지도 않고 살기 전엔 주로 어디서 살았는지를 물어봤다.

여기가 아니더라도 여기 근처에서 살았었어요. 우드 덕분에 이 근처가 꽤 유명해져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고 덕분에 살던 곳도 가게가 많이 들어오고 그랬죠.”

그러고보니 선대님이 있다고 하셨죠? 그 선대님이 우드를 유명하게 하신 분이신 거죠?”

, 펜토미노님이 우드의 특성을 알아내신 덕분이에요.”

그리고 그 특성을 이용해서 한 가지 놀이를 만들어내셨고요?”

역시 멀리까지 알려졌군요? 당시에는 굉장하고 파격적인 놀이었으니 엄청나게 소문이 돌고 부풀려지기도 했어요.”

듣고 있던 퍼블리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무언가 계속 기묘하고 위화감이 느꼈는데 단순히 신시어가 말하는 이야기들이 통상적인 상식이나 정보들과 어긋나있어서 뿐만이 아니었다. 퍼블리는 이 이야기들을 지금 처음 듣는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문제는 이 이야기들을 어디서 들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기, 신시어씨? 갑자기 딴 얘기를 하는 것 같지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데요...”

뭔가요?”

혹시 요즘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낀 적 있으세요?”

그 말대로 갑작스러운 질문이라고 느꼈는지 신시어는 눈을 깜빡이며 잠깐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잠깐 생각에 잠기는 게 짚이는 부분이 없잖아 있는 듯 싶었다.

있긴 있지만...물어보는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요즘들어 기시감을 느끼거나 사소한 거에 대해서도 이상하다고 느끼는 일들이 많아져서요. 잘 알고 있던 걸 까먹고 있거나 하는 일도 생겼어요. 혹시 다른 사람들도 그런가 싶어서 물어봤어요.”

신시어는 기억을 더듬는 건지 조용해졌다. 퍼블리는 재촉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리다가 하늘을 봤다. 아직 완전히 해가 지진 않았지만 노란 빛이 보이기 시작하는 걸 보고 시간이 꽤 흘렀다는 걸 느꼈다.

이상한 점이라면...역시 오던 사람들 발길이 뚝 끊어졌다는 거랑, 요즘 헥소미노가 많이 날카로워진 거? 이 두 가지네요.”

대답을 들은 퍼블리는 조금 더 직접적인 걸 꺼냈다.

지금 아들은 누가 돌보고 있어요?”

제가 이렇게 나와있으니 헥소미노가 돌보고 있을 거예요.”

그럼 아까 저희가 집으로 초대받았을 땐 누가 돌보고 있었나요?”

그 때도 그 이가 오기 전까진 저 혼자 여러분을 만났으니 역시 또...?”

스스로도 이상하다는 걸 느꼈는지 신시어는 꽤 혼란스러워보였다. 신시어가 일행을 초대했을 땐 집 안엔 아무도 없었고 그 이후로 들이닥친 헥소미노도 혼자였다. 아직 기어다닐 시기도 안 됐다는 아기를 혼자 둘 리가 없었다. 그런데 둘 모두 곁엔 아기가 없었다. 한순간에 핏기가 가신 얼굴로 일어난 신시어는 무작정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잠깐만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퍼블리는 얼른 일어나 그 뒤를 따라 달렸다. 여행 준비를 하기 전엔 운동도 틈틈이 해왔던 퍼블리의 달리기는 결코 느리지 않았지만 이상하리만치 신시어가 더 빨랐다.

신시어씨!!”

결국 신시어의 모습은 퍼블리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무작정 달리다보니 방향이 지금 어디쯤인지도 까먹은 퍼블리는 난감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신시어씨! 어디 계세요? 신시어씨!”

신시어를 찾던 도중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뭇가지와 풀을 밟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가보니 사람은 없었고 웬 하얀 강아지가 그 자리에 있었다.

바둑아!”

곧이어 어린 아이 목소리가 들려와 퍼블리는 흠칫 놀랐다. 저 멀리서 달려오는 소리도 함께 들렸다. 그런데 발소리가 하나가 아니었다.

막대기 어디갔징~?”

너무 멀리 던졌어요!”

그른가~?”

북쪽으로 갔던 용사였다. 퍼블리는 그럼 여기가 무덤에서부터 북쪽 쯤 되려나 짐작했지만 아이와 신나게 노는 용사의 모습을 보면 아주 정확하게 북쪽 방향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난감함에 둘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 불리다~!”

퍼블리예요.”

펍리~!”

아이는 퍼블리를 보고 다가오길 머뭇거렸지만 용사랑 아는 사이라는 걸 보고 안심했는지 다가와 물었다.

혹시 용사님 동료예요?”

? 저 분이 용사님인 건 어떻게 알았어?”

같이 다니는 친구들이 자길 용사님이라고 부른대요!”

아무 말 하는 용사에 아이가 눈치껏 알아먹은 거였다. 아이는 용사님이랑 바둑이랑 막대기를 던지고 물어오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고 덧붙였고 강아지 옆엔 제법 길다란 막대기가 놓여있었다.

혹시 이 근처에서 뛰어가는 사람 한 명 못 봤니? 다홍색 머리의 여자분인데.”

못봤어요. 사실 다른 사람이랑 이렇게 직접 얘기하는 거 할머니 제외하면 처음이에요. 저는 그동안 계속 이 숲에서 살았거든요.”

숲에서 살았다는 말이 조금 의아했는지 퍼블리는 근처 마을에 가보지 않았냐 물었다. 그러자 나온 대답은 할머니가 숲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는 거였다.

할머니가 말하길 제가 요정들한테 끌려갈 뻔 했고 언제 요정들이 또 나타날지 모른대요. 요정은 숲에서 사니 숲에 계속 있으면 데려와놓은 거라고 착각해서 저에 대해 더 이상 신경쓰지 않을 때까지는 있어야 한대요.”

요정에 대해선 자세히 아는 바가 없는 퍼블리는 그랬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할머니라는 분을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무덤에서 조금 떨어진 이 숲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신시어에 대해서도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판단 또한 있었다.

혹시 할머니가 어디 계신지 안내해줄 수 있을까?”

할머니가 자리 비울 땐 어딨는지 저도 잘 몰라요. 대신 저희 집으로 가실래요?”

퍼블리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다. 해는 아직 떠 있었지만 저 하늘 끄트머리가 조금씩 빨갛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해가 지기 직전까지 돌아가기로 했는데 시간이 애매해졌다.

혹시 여기서 머니?”

아뇨! 바로 근처예요!”

그럼 잠깐만 들려도 될까?”

아이는 할머니와 단 둘이 사는 집에 난생 처음으로 사람이 오자 신이 났는지 막대기와 바둑이를 안아 들고 신나게 앞장 서서 뛰어가기 시작했다. 용사도 덩달아서 같이 뛰어갔고 퍼블리는 아이의 뜀박질에 맞춰 빠르게 걸었다.

아이의 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집이 나타났다. 가까이 다가가기 전엔 나무들의 그림자가 때문에 잘 안 보였지만 아이와 할머니가 단 둘이 산다기엔 상당히 큰 집이었다. 집을 살펴보던 퍼블리는 문득 아이의 이름을 묻지 않았단 걸 깨달았고 이름을 묻자 아이가 대답하길

전 헵토미노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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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질 급하네, 일터에서 아주 잘 내치게 될 성격이야 안 그래?”

당신은 그래서 내쳐졌나보군 그래.”

정곡을 찔렸는지 상대의 숨소리가 더 거칠어져 씩씩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목적이 더 급했는지 곧이어 진정하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래그래, 내가 초면에 참 무례했지? 그런데 그거 알아? 너도 곧 내꼴 날 걸?”

그림자가 져 앞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패치는 감흥이 없었다. 그저 그림자였다.

눈치가 꽤 빨라보이는데 살인마가 누군지는 눈치챘지? 하지만 살인마가 숨긴 비밀이 뭔진 모르고.”

숨길 비밀이야 뻔하지.”

뻔하지 않은 비밀이니까 내가 이렇게 길게 말하는 거 아니겠어?”

길게 말하는 사람만큼 속이 빈 사람도 없다는 걸 모르나?”

사람? 사람이라고?”

그림자가 순간적으로 한 발 뻗어 다가왔다.

사람이 아닌 것처럼 반응하는군.”

...하하....그래 사람...사람이지? 사람이었지?”

실성한 듯이 웃으며 하는 말에 패치는 애초에 상대하지 말아야했던 걸까 싶어 미묘한 표정으로 더 멀어졌다. 상대는 그 모습에 오히려 더 반응이 묘해졌다.

같은 신세끼린 사람처럼 보이는 건가? 이제보니...”

잘 보이진 않아도 쭉 훑어보는 시선을 느낀 패치는 한 번 노려봐준 후 바로 뒤돌았다. 더 이상 얘기를 나누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간만의 외부인이라고 생각해서 반가웠는데 같은 처지라니. 자기가 죽었는지도 모르는 빨간머리 애송아, 너도 외부인을 발견하면 살인마를 죽여달라고 애원하거나 나처럼 비비꽈서 말을 듣게 만들어야할 걸? 안 그러면 이렇게 너덜너덜한 상태로 영원히 여길 떠돌테니까!”

묻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얘기를 하는 상대에 패치는 어이가 없었지만 말을 섞을 생각도 없었으니 계속해서 멀어졌다. 그림자가 져서 애초에 모습이 잘 보이지도 않는데 너덜너덜하다고 한 들 감흥조차 들지 않았다. 스무 걸음 더 걸어간 패치의 뒤엔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가 서 있었던 자리에 CGA라고 적힌 이름패만 떨어져 있었다.

패치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죽었다느니 살인마를 죽여달라고 애원하게 될 거라느니 같은 무례하고 중구난방인 말 자체가 불쾌하게 다가와서 그런 게 아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해가 지기까진 아직 시간이 남았고 패치는 고민했지만 미리 가는 게 더 좋을 거라고 판단했는지 무덤으로 돌아갔다.

 

헥소미노는 떨떠름한 얼굴로 사제의 증표와 치트의 얼굴을 번갈아봤다. 증표가 위조 증표인지 구분할 능력은 없었지만 둘러싼 로브 아래에 확실히 사제들 그것도 높은 직위의 사제가 입을 법한 옷을 입었고 자수 또한 꽤나 정교하게 놓여있어 모방한 가짜옷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사제를 밖에서 보는 건 또 처음이네.”

세간의 인식처럼 사제는 신전에 박혀서 특별한 일이 아닌 이상 나오지 않는 걸로 알고 있었는지 헥소미노는 의심을 완전히 거두진 않았지만 적대감은 많이 내리눌렀다.

옷도 보니까 짬도 높은 것 같은데 굳이 봉사를...여기 온 이유가 나무들이 저 꼴 나서 봉사차 온 거야?”

밖으로 나오는 사제는 딱 하나였다. 봉사를 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사제. 특별한 일이 바로 그거였다. 치트는 제 목소리가 돌아온 걸 느끼고 조금 기침을 한 후 편안한 얼굴을 했다.

아이고 드디어 목소리가 나오네요~ 짧은 금언이 걸려있어서 진즉 말하지 못했네요. 맞습니다, 봉사차 왔지요. 비록 해결이 어렵더라도 어려운 곳을 찾아오는 게 도리 아니겠습니까?”

여기가 어려워 보여?”

나무들이 무덤이라고 불리고 이제 관광객도 안 오는데 어렵지 않은 상황이라고 하기엔 외부인이 봐도 좀 그렇잖슴까?”

당사자가 괜찮으니까 부디 신경 꺼달라고 온 세상에 전해주는 게 도와주는 거야.”

아내분과 여유롭게 지내는데 방해받고 싶지 않으신가 보군요? 걱정마십쇼, 저희도 명분이 필요한 거지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 명분만 생길 정도로 잠깐 머물다 갈검다. 그리고 돌아가서 부부는 좌절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하며 오붓하게 지낸다고 소문을 내면 관심도 완전히 사그라들겠죠?”

헥소미노는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온 말이 만족스러웠는지 더 이상 뭐라하진 않았다.

들쑤시지 말고 적당히 우리 눈에 안 보이게 박혀 있다가 얼른 가라.”

네네~”

치트는 그리 말하며 왔던 방향 그대로 되돌아갔다. 팔짱끼며 노려보던 헥소미노는 한동안 자리에서 떠나지 않다가 그림자가 한뼘 더 길어질 때 쯤에서야 움직였다.

 

사실 그 이는 우드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늘 제 앞에서 하기 싫다, 힘들다, 그만두고 싶다 이렇게 외치고 다녔죠.”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니었나봐요.”

태어나자마자 한 일이 가문의 일을 이어받기 위해 훈련하는 거였어서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가 없었다네요. 그래서 뭘 하고 싶냐고 물어봤더니 저랑 결혼하고 싶다고 하는 거 있죠?”

근처에 있는 평평한 바위에 걸터앉은 두 사람은 신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둘 모두 이렇게 소소한 이야기를 편안하게 나누는 게 오랜만이었는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터놓고 있었다.

그동안 여행을 다니면서 목적에 대한 이야기나 넓게 쳐도 여행에 관련된 얘기만 나눠왔던 퍼블리는 오랜만에 자잘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얼굴이 한결 편안해 보였고 그동안 남편 외의 사람을 본 적이 거의 없어 외로웠던 신시어의 심정이 얼마나 편안해졌을지는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어보였다.

마을은 멀지, 집안일은 많지, 애도 봐야하지 얼마나 바빴는지 쉬는 날이 드물었어요. 언제 하루는 더 이상 못 참아서 가출을 했었는데 그 이가 얼마나 울며불며 소리를 지르며 저를 찾아다니던지...”

? 아이도 있으셔요?”

! 헵토미노라고 아주 귀여운 아들이에요.”

사실 거의 자기 혼자서 돌보다시피 했는데 가출한 이후론 남편도 같이 공동육아를 하게 됐다며 덕분에 한 숨 돌릴 시간이 났다고 하는 말에 퍼블리가 이렇게 물었다.

...아들이 몇 살이에요?”

아직 기어다닐 시기도 안 됐어요. 그래도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는 걸 보면 아기는 정말 금방 크는 걸 느껴요.”

그 대답에 퍼블리의 표정이 굳었다. 기억을 더듬어봐도 집 안에 아기가 살고 있다는 흔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자주 청소한다하더라도 아기가 있다는 가정하에 너무 깔끔했던 바닥과 얼룩은 물론이고 흠집도 없는 식탁, 의자는 어른이 앉을만한 의자 밖에 없었고 무엇보다 얼핏 떠오르던 시야 한 귀퉁이의 빨래더미엔 어른 옷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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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그 쪽이 아니어도 다른 곳에도 단서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네. 이상현상이 말 그대로 현상을 의미하니 그렇게 작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네.”

나무들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주변을 탐색해보자는 의견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 외엔 마땅한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디까지나 각진나무 무덤이라고 알려진 곳의 이상현상이었으니 너무 멀리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사제님이 금언 마법 좀 풀어주면 안 되냐는데요?”

“어차피 따로 찾는 동안 말할 필요가 없잖나?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풀리니 우는 척 그만하게.”

역시나 먹히지 않는 가짜울음에 치트도 금방 손을 내리고 한숨을 쉬면서 조사할 방향을 고르는데 동참했다.

“그런데 용사님 혼자 둬도 될까요?”

“우리가 언제까지고 옆에서 잡아줄 순 없네. 그리고 우리가 찾아오기 전에 환각의 숲에서도 멀쩡히 있던 걸 보면 스스로를 지킬 능력은 있는 것 같으니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걸세.”

그리 말한 패치도 사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용사의 행동이 훤해 찜찜했지만 본인이 한 말대로 언제까지고 옆에 붙어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북쪽을 선택한 용사에게 패치는 나무 주인들을 찾아가거나 만나게 되더라도 자극하지 말라는 주의를 준 패치는 서쪽을 골랐고 치트는 남쪽, 퍼블리는 동쪽을 골랐다.

“돌아오는 시간은 해가지기 직전, 올 때 사소한 거라도 좋으니 이상하다 싶은 건 뭐든 가져올 수 있음 가져오게. 가져올 수 없다면 어디서 봤는지, 특징이 뭐였는지를 이 종이에다 적고.”모두에게 각각 종이 한 장과 펜이 쥐어졌다. 패치는 신나게 종이접기를 하는 용사에게 주의를 한 번 주고 혹여나 위험한 일이 있을 때를 대비해 방어막과 경보를 울리는 뱃지도 나눠줬다. 치트에게 주려고 할 땐 줘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는 기색이 가득했지만 치트가 방금 받은 종이에다 악연과는 별개로 지금은 함께 여행하는 일행이니 공정해야한다는 항의를 적자 마지못해 줬다.

“선물 아니니 기분 나쁘게 웃지 말게.”

뱃지를 받자 늘 웃는 얼굴에서 더 환하게 웃는 치트를 보던 패치는 입을 막아놓은 게 정말 현명한 판단이었다는 걸 깨달으며 출발하자는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쪽으로 달려가려는 용사의 방향을 북쪽으로 다시 되짚어주며 뒤를 돌아보던 패치는 그대로 먼저 갔다.

“이따 봐요!”

일행들이 전부 떠나고 나무들만 남은 자리에 바람이 불어왔지만 그 무엇도 달려있지 않아 무덤처럼 바람소리만 내려앉았다.

남쪽으로 쭉 가던 치트는 꽤나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역시 꿍꿍이가 있었구만? 다른 녀석들 어딨는지 당장 말해!”

이곳의 주인 헥소미노와 딱 마주쳐버렸고 저렇게 윽박지르고 있었지만 치트는 앞으로 1시간하고도 몇 십분은 말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헥소미노는 난감하게 웃으면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치트가 더더욱 의심스러웠는지 가뜩이나 흉흉하게 뜬 눈빛의 세기가 더 거세졌다. 급한대로 치트가 수화로 지금은 말할 수 없다고 뜻을 전했으나

“너 아까 인사하면서 나가지 않았냐?”

치트는 속으로 패치를 불렀다. 당연하게도 패치에겐 전해지지 않았다.


“아직 떠나지 않았군요?”

다행이라는 말과 함께 아까는 남편 때문에 미안하다며 대신 사과하는 신시어와 마주친 건 퍼블리였다. 생각지도 못하게 마주친 퍼블리는 당황했지만 주의해야할 건 헥소미노 쪽이었다는 걸 떠올리고 오히려 패치가 말한 이상현상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사과를 받아들였다.

“저흰 괜찮아요. 그보다 저희를 찾으러 나오신 거예요?”

“네.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멀리 가진 않았을 거라 생각해서 얼른 나왔어요. 아까 보니 정말로 여행하는 분들처럼 보였는데 이대로 보내면 사과할 기회도 없을 것 같았어요.”

여행하는 건 맞지만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 사실이었으니 퍼블리는 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남편이 저번부터 외부에서 온 사람들을 경계중이에요. 하는 말로는 죄다 우드가 열리는 나무를 훔치려고 하는 사람들이고 열리지 않자 그 방법을 알기 위해서 온 도둑들이라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그냥 모르는 사람들이 여기에 오는 거 자체를 싫어하는 것 같아 보여요.”

“그런데 왜 나무들을 그냥 놔두는 거예요? 처음에 왔을 땐 울타리도 없었고 사유지처럼 보이지 않아서 엄청 당황스러웠어요.”

그에 신시어는 흐리게 웃으며

“나무들이 전부 말라 죽은 거나 다름 없는 상태라 그냥 놔두고 있다네요.”

씁쓸함이 가득한 말을 건넸다.


“확실히 다시 피워내고 싶다고 하는군.”

돌아가면 용사의 언어 선정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한 패치는 주변을 둘러봤다. 각진나무들이 있는 자리를 제외하면 주변은 그냥 흙밭이었다. 마땅히 눈에 띄는 게 없어 더 가봐야하나 고민했다. 여기서 더 가게 되면 어느순간 각진나무 무덤이라는 장소를 벗어나게 되는 게 아닌가가 고민의 이유였다.

“무덤 보러온 별난 손님이 또 왔나보네?”

그 때 처음 듣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옆으로 돌아보니 열 걸음 정도 떨어진 데에서 누군가가 서 있었다.

“자넨 누군가?”

“무덤 주인이라고 할 수 있지.”

“내가 아까 주인을 직접 봤으니 안 통할 거짓말은 그만두게.”

“그 주인이라는 녀석은 엄연히 땅 주인이고 난 무덤 주인이라니까? 뭐, 지금 당장 알아먹게 말하자면 무덤 말고도 땅과 나무는 물론이고 우드 전부를 갖고 싶어했던 주인 희망자?”

“쉽게 말하면 도둑이군.”

“그래 정확히 말하자면 도둑이었지. 이젠 훔치지도 못하지만.”

햇빛 아래에 있어서 앞모습이 그림자가 져 자세히 보이지 않는 상대의 얼굴에는 언듯 보라색과 하얀색이 뒤섞여 있었다.

“그런데 그 쪽도 단순히 관광하러 온 손님은 아닌 것 같아 보이는데? 나처럼 훔쳐보려고?”

“훔칠 가치나 있는지도 모르겠네.”

“이야 완벽물질을 홀대하는 사람은 또 처음이네? 아주 인상깊었어.”

비꼬듯이 말하는 어투에 패치는 더 이상 상대할 가치를 못 느꼈는지 무시하고 가려고 했다.

“성질 급하긴, 아주 재밌는 얘기가 있는데 들어보지 않겠어? 비밀을 아등바등 숨기고 있는 살인마 얘긴데.”

패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걸어갔다. 저렇게 말하는 사람은 스스로 말한 살인마 만큼 비밀과 검은 속내가 있는 법이었고 귀 기울여 듣는 사람들을 이용하기 위해 저런 말을 미끼로 흔들고 있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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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 뭐야!?”

갑작스런 상황에 퍼블리는 당황했고 패치는 어이없단 눈으로 남자를 쳐다봤다. 뭐라 더 소리치려던 남자를 진정시킨 건 신시어였다.

자기야? 왜 그래?”

괜찮아?”

그건 오히려 내가 물을 말이야, 왜 갑자기 그래?”

남자는 그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고 굉장히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일행들을 노려보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네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나무들 뽑아가봤자 우드는 열리지도 않을 거고 소용 없을 테니까 좋은 말로 할 때 썩 꺼져.”

헥소미노!”

신시어의 외침에도 남자, 헥소미노는 굳은 표정에 변화 하나 없었다. 난데없는 적의에 당황한 퍼블리가 정말 나무를 구경하러 왔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전혀 들어먹지 않았다. 패치의 눈썹 끝이 한 없이 위로 치솟은 걸로 보아 이 상황은 결코 가볍게 넘어가지 않으리란 걸 깨달은 치트가 사제의 증표를 꺼내려던 순간이었다.

다시 주렁주렁 달고 싶대!”

?”

주렁주렁!”

뜬금없는 용사의 외침에 헥소미노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그러나 다음 말을 듣는 순간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나무들 모두 다시 주렁주렁 달고 싶대!”

순식간에 핏기가 싹 가신 얼굴로 용사를 노려보던 헥소미노는 재빠르게 용사에게로 다가왔다. 하지만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생각이 없는 패치로 인해 앞이 막혔다.

비켜!”

누구 하나 죽일 듯한 얼굴로 다가오는데 비킬 사람이 어딨겠나?”

그 말이 신경을 건들기라도 한 건지 더욱 험악해진 눈빛에 불길이 튀었다. 곧이어 빠악! 크게 맞는 소리가 울렸지만 맞은 사람은 패치가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나중에 제대로 사과하고 초대할게요! 일단 제가 이 녀석 좀 말릴게요!”

불안한 얼굴로 지켜보던 신시어가 결국 나섰다. 헥소미노가 고개를 숙인 채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동안 치트가 인사하며 용사와 패치의 팔을 잡고 나왔다. 퍼블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돌아보다가 일행들을 뒤따라 나왔고 문이 닫히자마자 안에서 소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다시 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보지.”

그치만 저대로 둬도 괜찮을까요?”

적어도 한 소리 할까 했지만 다시 들어가봤자 상황만 악화시킬 것 같군. 그리고 용사가 말한 나무들이 다시 달고 싶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궁금하네.”

주렁주렁!”

그게 무슨 의미냐고 물어봐도 용사는 계속 나무들이 주렁주렁 달고 싶다고만 말했다. 용사 나름의 최대한의 표현인지 설명은 거기서 끝이었다. 결국 나무들이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온 일행들은 나무들을 살펴봤지만 여전히 달라진 게 없었다.

가아아아아득!”

나무가 그리 말하기라도 했나?”

!”

치트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퍼블리는 어색하게 웃었다. 패치는 표정이 한층 더 좋지 않아졌지만 한순간 바로 펴졌다. 달라진 낌새를 놓치지 않은 치트가 무슨 일이냐 묻자

“...바람소리였군.”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잡으며 나무들을 살펴보던 패치는 더 볼 게 없다고 판단했는지 이 근처에 자리를 잡을 만한 곳이 있는지 알아봐야겠다고 했다. 마침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작은 쉼터가 있었다. 오랫동안 아무도 쓰지 않았는지 먼지가 쌓여있었지만 청소를 하면 제법 머무를만 했다.

“...신탁 내용은 이곳에 와보는 거 외엔 없었나?”

저번의 도시처럼 이상현상도 해결하는 거죠.”

너무 추상적이지 않나. 이상현상이야 바로 눈에 보일테니 이상현상이지만 저번의 해결 방법도 들어보니 다른 이의 도움으로 해결됐던 걸로 기억하는데.”

신탁이 괜히 내려온 게 아님다~ 저번은 운이 좋았던 편이죠.”

패치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졌다. 패치의 말대로 이상현상은 그렇다쳐도 신탁 내용이 해결 방법도 알려주지 않고 막연했기 때문이었다.

이상현상을 발견하다보면 해결 방법도 나오지 않겠슴까? 마법진이 있었던 그 건물처럼 말임다.”

두드리고 꽃에다 말하는 방식처럼 조건이 있다면?”

찾은 것부터 반 이상은 한 거 아니겠슴까~”

지나치게 낙천적이군. 찾는다한들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자칫하다간 여기서 평생 머무를지도 모르네.”

? 전 좋슴다~ 패치랑 오랜만에 함께...”

그간 잠잠하다 싶었지만 결국 터졌다. 한기와 함께 날아다니는 얼음 가시들과 피하기 바쁜 치트. 얼음가시들에 손을 뻗어보는 용사와 붙잡고 뒤로 물러나는 퍼블리. 치트에게는 불행이었지만 나머지 모두에게는 다행이게도 쉼터 안이고 밖보다 좁았던지라 금방 구석에 몰렸다. 패치의 성질을 긁은 대가로 2시간의 금언이 내려졌고 쉼터는 평화와 함께 극히 고요해졌다. 치트가 손을 들어 눈물 훔치듯이 우는 시늉을 해봤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저 일단 이상현상을 찾아봐야하지 않을까요? 해결 방법도 이상현상을 발견한 다음에야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요.”

이상한 건 이미 발견했네, 아까 그 사람이잖나.”

“...그 분은 경계가 심하고 예민한 게 아닐까요?”

남자쪽 말고 여자쪽을 말한 걸세. 신시어라고 했던 그 사람.”

헥소미노의 첫인상이 강렬하게 박혀있던 터라 그제야 아. 하고 깨달은 퍼블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들이닥치기 전까지는 패치가 신시어에게 의심과 의문이 가득한 질문을 날렸고 신시어의 반응이 이상하다고 한다면 확실히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하고 반응을 보였을 때 헥소미노라는 자가 너무 때맞춰 돌아왔지. 저 둘에게 뭔가 있는 건 확실해 보이네만.”

굳이 구분하자면 이상현상을 지니고 있다고 예상되는 쪽이 신시어, 그걸 인식하고 숨기려고 하는 게 헥소미노처럼 보인다고 정리하는 패치의 말에 용사가 불쑥 말하길

그름~ 물어보러 가장~”

자네 아까 쫓아내려고 했던 거 기억 안 나나?”

용사는 용사다운 말을 꺼냈고 말리는 건 패치의 몫이었다. 다시 돌아간다면 머리를 맞는 건 용사가 될 것이고 날아오는 건 아까처럼 주먹이 아닐 거라는 걸 아주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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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하고도 반나절만에야 도착했고 패치의 예상과 퍼블리의 불안은 빗나갔다. 그렇다고 치트가 했던 말처럼 주인이 나무를 보게 허락한 상황도 아니었다.

“...여기 정말 사유지 맞아요?”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게 바로 그토록 기대한 나무들이었다. 여기서 도착하자마자 보였다는 건 별다른 방해물이 없었다는 거였다. 집에서 설치하는 담이나 하다못해 낮은 울타리조차 없었다.

나뭇가지만 달려있는 채로 휑하니 널려있는 나무들은 얼핏보면 무덤에 흔히 있는 비석들처럼 보였고 실제로도 이곳 분위기자체가 스산해 무덤이라해도 이상하지 않아보였다.

은유적이 아니라 직접적이었나보네요~”

그래도 기본 관리는 되어있나보군.”

흙 상태를 살펴보니 땅 자체는 고르고 발에 채일만한 돌도 없었다. 흙을 갈거나 물을 준 흔적이 있는 걸 보면 완전히 방치하는 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 일행들은 그 외에 더 흔적이 있는지 살펴봤다.

더 이상 물질들이 열리지 않는다 해도 나무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을 텐데 이렇게 놔둔 걸 보면 차라리 누가 훔쳐가길 바라는 듯 싶어보이는군.”

자라나는 조건 자체도 까다로워서 아무데나 심는다 해도 금방 죽어버린다고 하니 그걸 믿고 방치해논 게 아닐까 싶슴다?”

조건이 까다로운 거지 불가능한 게 아니잖나.”

둘이서 왜 이렇게 방치를 해놨을까에 대한 의견과 추측을 하는 동안 용사는 이미 나무를 툭툭 두드리고 있었다.

나뭇잎도 네모낳게 각진 모양일까요?”

글쎄요~ 나뭇잎이 났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서 말임다.”
네모네모~!”

어이구 용사님 올라가면 위험함다~”

나무도 물질 못지않게 단단하고 튼튼한지 용사가 나무위로 올라타는 걸 넘어서 뛰고 있는데도 부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내심 감탄했지만 그래도 엄연히 주인 있는 나무 위에서 그러는 건 굉장한 실례였으니 일행들은 용사를 잡아 내려오게 했다.

나무 멀쩡행!”

멀쩡하다고 해서 거기 올라타도 되는 게 아닐세.”

우웅? 괜찮다는뎅?”

패치가 뭐라 더 말하려던 순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려보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누군가가 서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표정을 수습하더니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나무 구경하러 오셨나요?”

나무를 보러오는 구경꾼이 많았는지 그렇게 묻는 말에 일행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부차적인 목적이었지만 그래도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예전엔 많이 보러왔는데 요즘엔 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오랜만에 오신 손님분들이네요.”

, 혹시 여기 주인이세요?”

정확히는 제가 아니라 제 남편이 주인이에요.”

오랜만의 손님이니 여기 이렇게 세워두긴 그렇다며 집으로 초대하겠다고 하는 말에 거절하려던 패치와 그런 패치의 입을 막고 감사하다며 눈짓하는 치트가 가장 먼저 뒤따라갔다.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패치에게 작게 들릴 정도로 말하길

여기만 마냥 보고 있기엔 우리는 아는 게 없잖습니까?”

아무리 맞는 말이어도 말하는 사람이 사람이다보니라는 의미가 가득 담긴 눈빛이 날아왔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치트에겐 통하지 않았다. 이젠 둘의 반응이 익숙해진 퍼블리가 안내자에게 다가갔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 이름은 퍼블리예요. 저 분들과 함께 여기저기 여행하기 시작했어요.”

! 저도 예전엔 여행해볼까 고민했었는데, 굉장하시네요. 제 이름은 신시어예요.”

신시어가 안내한 곳은 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데에 지어져 있는 오두막이었다. 똑똑 문을 두드리더니

자기야! 오랜만에 손님들 왔어!”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문을 여니 안엔 아무도 없었고 탁자와 난로만 덩그러니 보였다.

아무래도 아들이랑 산책나갔나 봐요. 의자 꺼내올테니 기다려주실래요?”

, 괜찮은...”

오랜만에 사람들이 찾아온 게 그렇게나 반가웠는지 괜찮다고 말하며 창고에서 나무 의자들을 들고 오기 시작했다. 용사는 웃으면서, 퍼블리는 미안한 얼굴로, 치트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고 패치는 무언가 미심쩍어 보이는 얼굴로 신시어를 보고 있었다.

, 모두 앉으셔요.”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일행들 모두 앉았다. 사람이 많다보니까 자연스럽게 둘씩 한 줄로 짝지어 앉게 되었고 치트와 같이 앉게 된 패치의 표정은 당연히 좋지 않았다.

이젠 우드에 대한 관심도 완전히 식었는 줄 알았는데 아직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으니 반가워요.”

우드요?”

옛날에 나무에 열렸던 것들의 이름이 우드예요.”

정식 명칭은 처음 들었기에 모두 다음 얘기도 자세히 경청했다. 무엇으로도 자르거나 부술 수 없는 우드는 일렬로 일정한 줄을 맞추면 터지면서 소멸된다는 특성을 발견해 선대이자 남편의 어머니인 분께서 우드를 독점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도 들었을 때 패치가 잠시 말을 막았다.

그런 정보를 함부로 말해도 되는 건가?”

? 이건 잘 알려져 있는 얘기 아닌가요? 누구나 다 알고 있는데...”

들어본 적 없네. 관련 책자도 본 적이 없고.”

그 말에 신시어는 당황과 혼란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패치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의문을 꺼냈다.

그리고 방금 한 말대로 누구나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잘 알려진 얘기라면 왜 굳이 설명한 건가?”

스스로의 모순을 깨달은 신시어의 표정이 멍해졌다. 그대로 아무 말도 꺼내지 않고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멍하니 있기만 하는 모습에 패치가 다시 말을 꺼내려던 순간

여보!!”

한 남자가 거칠게 문을 열어젖히며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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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치가 했던 말대로 자고 일어나니 감기는 깔끔하게 나아있었다. 평소와 같은 안색으로 목을 가다듬던 패치는 계속 자신에게 향하는 시선을 무시하며 이번 마을에서 구매해야할 목록들을 쭉 훑어보고 있었다.

“패치.”

“왜.”

“할 말 없슴까?”

“없네.”

항상 짓고 있던 치트의 미소가 진해졌다.

“정말 없슴까?”

“없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패치는 그제야 짜증가득한 눈으로 치트를 돌아봤다. 담긴 감정이 어쨌든 드디어 제대로 봐주니 마냥 좋은지 미소가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저만 쏙 빼놓고 중요한 얘기를 한 것에 대한 서러움임다~”

표정과 행동을 보면 서러움은커녕 오히려 지금 상황을 즐기고 있음이 분명했다. 표정과 행동에 서러움을 담았다해도 통하지 않았을 패치는 찬물 가득 삼킨 말을 꺼냈다.

“용사에게 들었을 게 아닌가.”

“무엇을 말임까?”

빨간 눈썹 끝이 다시 한 번 위로 치솟으니 치트는 장난이라며 뒤에 말을 덧붙였다.

“제가 묻기 전까지 말하지 않은 건 꽤나 불공정한 처사라고 생각함다? 여행엔 가장 중요한 게 바로 협동과 공정인데 그게 깨지면 여행길이 상당히 위험해지죠.”

“그렇담 역으로 묻지. 왜 그 때 바로 무언가 더 발견한 건 없냐고 묻지 않았나? 바로가 아니어도 여기까지 오는 나흘간 물어볼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네.”

짙은 미소가 옅어졌다. 살짝 가라앉듯이 그어진 호선에서 나온 말은

“말해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살짝 내려간 눈매와 눈썹 덕분에 장난스럽던 표정이 한순간에 처연해졌다. 마침 내려오려다가 둘의 대화에 어정쩡하게 다시 올라가려던 퍼블리의 마음 속에 당황과 미안함이 깃들었고 표정에도 떠올랐다. 반면에 정면으로 보고 있던 패치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그래, 이번은 불공정했네. 사과하지.”

다만 나온 말이 꽤나 의외였다. 퍼블리는 물론이고 치트 또한 놀라서 눈을 크게 떴지만 패치는 다음엔 내용 누락을 하지 않고 공정히 말해주겠다고 하며 다시 목록으로 시선을 돌렸다. 분위기가 풀어지자 퍼블리는 다시 아래로 내려왔고 치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속내를 탐색하려고 훑어보는 시선은 여전히 짜증났는지 패치는 자리를 떴고 치트의 시선은 끈질기게 그 뒤를 따라갔다.

“어제 수프 가져가면서 무슨 일 있었습니까?”

마침 가까이 온 퍼블리에게 질문이 갔지만 짐작가는 게 없는 퍼블리는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러고보니 어제도 유하게 넘어간 게 있었지만 이 또한 말하기 애매했으니 꺼내지 않았다.

“저희가 이번에 가는 데가...”

“음? 아, 각진나무 무덤 말입니까?”

“네, 좀 생소한 지명이라서요.”

“그럴만 합니다. 사실 지명 자체가 은유적인 표현이지요.”

잠깐 목을 가다듬으며 고를 말을 나눈 치트는 쉽게 설명했다.

“예전에 그 어떤 걸로도 부숴지지 않는 물질이 열리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물질들은 하나같이 전부 네모지게 각이진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물질들은 어느순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앙상한 나무만 남았지요. 나무 자체도 그 물질처럼 꽤 각이져서 그런지 사람들은 그곳을 각진나무 무덤이라고 부릅니다. 무덤이라는 단어가 참 은유적이죠?”

사라져버린 물질들이 대상일지 그 자리에 남아버린 나무들이 대상일지는 개개인의 해석에 따라 달랐다. 신기하단 표정으로 듣고 있던 퍼블리는 네모낳게 각져있는 나무의 모습을 상상하는 듯 싶었다.

“그 물질 자체도 매우 귀한 거라 사라진 이유는 누군가가 작정하고 훔쳐갔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압도적이지.”

아까 전 자리를 떴던 패치가 다시 돌아와 있었다. 옆에 눈을 빛내는 용사가 있는 걸 보면 용사를 데리러 간 듯 싶었고 데려오던 도중 얘기를 듣게 된 셈이었다.

“네모네모오~?”

나무가 네모낳게 각졌다는 부분이 용사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지금 당장이라도 그곳으로 달려갈 기세라 모두가 합심해서 용사를 진정시켰다.

“아직 저흰 준비가 덜 됐습니다. 게다가 지금 온 만큼 더 가야 나올 장소라 하루종일 뛰어가도 오늘 안엔 도착 못합니다.”

“날아가자~!”

“나는 것도 한계가 있고 사람이 많아 지속시간이 얼마 안 가니 나는 것도 불가능하네.”

퍼블리는 반사적으로 전서구를 떠올렸지만 고개를 저었다. 소리치며 소란을 일으킬 전서구가 눈에 훤했다.

“이잉~”

“장소는 움직이지 않으니 지금처럼 가요 용사님, 네?”

여러 가지 힘든 이유와 설득 끝에 용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대신 오늘 바로 출발하게 됐다. 치트는 어제까지만해도 감기로 고생했던 패치가 걱정된다며 끌어안았고 그에 당연하게도 응징이 가해져 옆구리를 붙잡고 일행들 제일 뒤쪽에서 뒤따라가게 됐다.

“사실 가도 나무들은 못 볼 확률이 높네. 왜냐면 거긴 엄연히 사유지니 말일세.”

“네? 그럼...”

“주인이 있다 이 말이지. 다만 희귀한 물질을 개인이 독점하고 있는 건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아 찾아오는 누구나 가져가지 않는 대신 물질을 볼 수 있게 했지만 나무는 그렇지 않네.”

“걱정 마십쇼~ 요즘엔 사라진 물질 대신 물질이 열리지 않는 나무를 보여주는 듯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각진나무 무덤이라고들 부르지 않습니까?”

“어디까지나 소문이니 직접 가서 봐야 알겠지.”

“출입금지라고 해도 신탁에 관해 얘기하면 들여보내주지 않겠슴까?”

“거기 주인이 종교인이란 얘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네만.”

“여기서도 종교인은 저뿐이잖슴까?”

네모난 나무에 대해 기대하고 있던 퍼블리는 둘의 대화에 점점 불안함과 아쉬움이 올라오고 있었지만 가장 앞서 걷고 있는 용사는 기대가 매우 가득해 온통 머릿속에 나무 생각만 있어 둘의 대화를 못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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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나서 둘러봤을 때 초록색 인형 친구를 봤다 이 말이군요?”

!”

그 초록 친구는 어떻게 했나요?”

묻어줬어!”

...어줬군요. 누가 묻자고 했습니까?”

빨간 칭구!”

그 대답에 치트의 미소가 진해졌다. 때마침 대답이 끝난 순간 주문한 요리가 나왔고 자연스럽게 대화는 끊겼다. 중요한 정보를 빼낸 치트는 만족스러운 얼굴이었고 용사는 배가 꽤 고팠는지 나온 음식을 빠르게 먹기 시작했다.

그른데~ 까만 칭구는 빨간 칭구랑 왜 싸웠어~?”

?”

용사가 이에 대해 물어볼 줄은 생각하지 않았는지 치트는 크게 뜬 눈으로 용사를 보고 있었다.

~ 얘기하긴 꽤 복잡해서 말임다~ 서로가 서로에게 잘못했는데 제가 좀 더 크게 잘못했죠?”

~ 그렇구나아~ 둘이 언제 화해할 거양?”

글쎄요, 저도 모르겠네요.”

패치 입장에서는 이렇게 같이 다니는 것 자체가 기회를 주는 거나 다름 없었지만 용사는 완전한 화해를 바라는 듯 싶었다.

패치의 마음이 풀려야 말이죠~”

서로 사과하고 화해하면 되는뎅!”

그게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우선 패치 마음이 풀려야지요?”

그럼 얼른 풀러가장!”

치트는 용사의 어깨를 잡아 다시 자리에 앉혔다. 지금 들이닥쳤다간 아무리 패치에게 조금 유한 태도를 받는 용사라 해도 서늘한 눈빛을 받을 게 분명했다.

아직은 안 됨다~”

화해는 빠를수록 조아!”

싸우고 감정이 상한 상태라면 누구나 시간이 필요한 법임다. 그리고 이건 저와 패치의 일이니 저희 둘이 잘 해결해볼 테니 용사님은 마음만으로도 괜찮슴다~”

얼마나~?”

글쎄요~”

둘의 대화도 빙빙 돌기 시작했다. 빠른 화해를 원하는 용사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치트의 말이 끝도 없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빠른 화해가 좋다, 시간이 필요하다, 얼마나 필요한가, 자신도 잘 모르겠다, 다시 빠른 화해가 좋다 식으로 빠져 나갈 굴레 없이 빙빙 돌고 있었다.

 

사실 지도제작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땅들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한 눈에 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하늘을 나는 도구들을 구매하기엔 작은 마을 동네는 생필품 들어오기도 바빴고 기껏해야 비눗방울을 연속으로 나오게 하는 장난감이 최대였다. 높은 건물이라고 해봐야 2층집이 대부분인 곳엔 그리 대단한 경치를 기대할 순 없었다.

이렇게 보면 신탁과는 별개로 이번 여행에 가장 목적성이 뚜렷하고 가장 의미가 있는 건 퍼블리였다.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지만 패치의 입장에서는 퍼블리가 지금 여행을 그만뒀으면 했다. 하지만 이유가 전해지지 않는다.

“...말을 할 수 있는데도 전해지지 않는다는 건 참 답답하군.”

아예 말도 안 꺼내고 혼자서 삭히는 분도 있었는 걸요.”

패치는 입을 다물었다. 만약에 퍼블리가 신탁 및 여행과 관계가 없었다면 패치는 진즉에 그 때 있었던 일을 속으로만 삭히고 절대 말하지 않았을 터였다.

그런데 누구였더라? 몇 년전에 있었던 일이라 그런지 가물가물하네요. 자주 못 본 분도 많았으니까요.”

가져온 수프는 이미 다 먹은지 오래였다. 퍼블리는 얘기를 들어주는 게 좋은지 아직은 밖으로 나갈 생각이 없어보였고 패치도 듣는 게 그리 나쁘진 않았는지 적당히 반응하면서 조금씩 말도 꺼냈다. 따뜻한 수프 덕분인지 기침도 꽤 멎은 패치는 얘기를 듣는 한 편 갑작스럽게 면역력이 떨어진 상황에 의문이 들었다.

주량이나 멀미 같은 부가적인 면에서 체질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별개로 체력과 면역력은 평균적인 수준보다 훨씬 더 좋은 편이었고 감기에 걸려도 실제론 하루, 길어봤자 이틀을 넘긴 적이 없었다. 스트레스 때문일수도 있지만 그렇게 넘기기엔 굉장히 찝찝한 느낌에 패치의 눈매가 자연스럽게 가늘어졌다.

그러고보니 나머지 둘은 뭐하고 있나?”

, 저한테 수프를 가져다주라고 했으니까 두 분이서 밥 먹고 계......”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스스로 다짐했건만 무의식의 위력은 무서웠다. 마침 패치의 눈매도 가늘어져 있었으니 퍼블리는 하하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퍼블리를 보던 패치는 아예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웠다.

자네도 가서 식사하게.”

, 아뇨 괜찮...”

수프 덕분에 목도 안정 됐으니 잠을 자면 완전히 나을 걸세.”

치트가 시켰냐고 따지지도 않았다. 온건하게 넘어가려는 패치의 태도에 머뭇거리던 퍼블리는 푹 주무시고 나으라는 말을 남기며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고 계단 쪽으로 향하는 발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눈을 감고 있던 패치가 짜증 가득한 얼굴로 짐가방을 돌아봤다.

“...일부러 함구하고 있었던 걸 알아챘겠고

폭탄 챙긴 것도 눈치챘겠군.

누군가는 적과 머리 싸움하는 게 즐겁다고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패치는 그렇지 않았다.

 

마법사님 상태가 많이 좋아졌어요.”

정말 다행임다~ 역시 따뜻하고 제대로 된 걸 먹이는 게 최고죠.”

한숨 푹 주무시면 완전히 나을 것 같대요.”

저도 함께 아프긴 했지만 오는 내내 아팠던 건 패치가 유일했으니 마음이 아팠는데 한숨 돌렸네요~”

퍼블리가 내려왔을 땐 식사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열심히 먹던 용사는 배가 부르자 노곤해졌는지 의자에 기대 꾸벅꾸벅 고개를 흔들며 졸고 있었다.

꽤 오래 있으셨던데 패치도 오랜만에 길게 이어지는 대화가 즐거웠나봄다?”

대화라기 보단...저 혼자 실컷 얘기하고 들어주셨어요. 도시에서의 일은 당황스러웠지만 여기 오는 나흘간 여행이 이런 거구나 싶어서 여행 떠나기 전이 떠올랐거든요.”

그랬군요. 어이구 용사님? 그러다 머리 부딪히면 큰일남다?”

용사를 흔들어 깨운 퍼블리는 비몽사몽한 상태의 용사의 팔을 잡아 지탱하며 먼저 올라가겠다고 말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포크로 빈 그릇을 깡깡 두드리던 치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식사값을 치르고 뒤따라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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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하게 도착했네요~”

콜록! 자네들은 먼저 가서...”

네네~ 몸 멀쩡한 저희가 전서구씨 연락을 받겠슴다. 아직 다 안 나은 우리 패치께선 어서 가서 푹신한 침대에 누워계셔야죠?”

밀지 마핡! 콜록!”

저기...어차피 약속 시간도 얼마 안 남았는데 그냥 여기서 모두 기다리고...”

왔다아아아아!!!”

! 크게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숨을 몰아쉬는 커다란 비둘기의 모습에 지나가던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아이고 날개 아파라~ 최고 속도로 날아오니 날개가 다 쑤시네~!”

사람들의 시선과 전서구가 쨍쨍 외치는 소리가 골을 울렸는지 안 그래도 창백한 패치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콜록! 사람, 들 상태는 어, 떤가?”

움머? 감기걸리셨어요?”

대답.”

걱정해줘도 까칠하다며 궁시렁거리던 전서구는 점점 가늘어지는 패치의 눈매에 잽싸게 대답했다.

사람들 상태는 처음이랑 달라진 게 없어요. 다들 색색 숨만 잘 쉬면서 잘 자던데요?”

수척해지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전혀. 숨만 쉬는 거 빼면 사람모양 인형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달라진 게 없던데?”

그렇다면 패치의 말대로 그들의 시간이 고정되어 있다는 게 증명됐다. 걱정을 조금 덜은 퍼블리는 방문해야할 장소가 여럿 남았다는 거에 다시 긴장했다. 또 무슨 이상한 일이 벌어져있을지 몰랐고 기술의 도시처럼 장소가 뒤집어지고 사람들이 잠들어서 시간이 멈춰있을지 몰랐다.

, 콜록! 수고했네.”

, 알면 공짜로 부려먹지 마시고요!”

몸이 콜록! 나으면...벌레라도 잡아 주겠네.”

필요없거든요!?”

왁왁 크게 소리치는 전서구를 무시한 패치는 시간 고정에 대해 신경이 쓰였다. 만약 패치가 거기 계속 있었다면 외부 영향에 고정이 깨지는지, 그로 인해 사람들이 깨어날지 실험을 해봤을 테지만 당장 다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전서구에게 또 부탁을 하면 비둘기 날개 혹사시킬거냐며 난리를 피울 게 뻔했기에 패치는 다음 목적지인 각진 나무 무덤에서 같은 현상이 벌어진다면 그 때 가서 해보기로 결정했다.

수고하셨슴다. 일단 패치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자세한 얘기는 우선 숙소를 잡고 할까요?”

자세하고 뭐고간에 내가 얘기한 게 끝인뎁쇼?”

그렇담 먼 길을 날아온 거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마실 거라도 사 드려야겠네요~”

그 말에 전서구는 조금 풀어진 표정으로 고민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할 일이 있어 바쁘다는 거였다. 그렇게 말하며 주위를 쓱 둘러보는 게 지금에서야 발견했는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어 약간 무안해보이기도 해보였다.

그럼 전 갑니다, 웬만해선 다시 보지 말고요!”

전서구는 그렇게 외치며 날아올랐다. 보고 있던 치트는 전서구가 엄지손톱만큼 작아질 쯤에 얼른 숙소를 찾자며 일행들을 재촉했다. 전서구가 날아갈 때도 올려다보지 않았던 패치는 서늘한 눈으로 치트를 노려보고 있었다. 시선을 느낀 치트는 눈웃음을 지으며 패치의 팔을 잡아 끌었다. 때마침 터져나온 기침 때문인지 패치는 그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패치는 바로 가서 쉬십쇼. 보니까 아직 팔이 뜨겁던데요?”

그러지.”

순순한 패치의 대답에 놀랐는지 검은 눈이 크게 뜨였다. 패치는 그런 반응도 신경쓰지 않고 먼저 올라가 방으로 들어갔다.

흐음...이건 이것대로 신경 쓰이네요~”

, 신경쓰이지 않았던 적이 없었으니 말이죠.

치트는 마저 올라가려던 퍼블리를 불러세웠다.

퍼블리님, 따뜻한 수프를 시킬 생각인데 패치에게 전해주시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용사를 보고 있으니 아무래도 치트는 용사를 담당할 생각인 듯 싶었다. 퍼블리는 감사하단 말을 붙이며 잠시 기다리자 나온 수프를 들고 올라갔다. 발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기다리던 치트는 용사를 끌고 창가 자리로 데려갔다.

용사님, 드시고 싶은 거 있나요?”

꼬기!”

네네~ 다 될 때까지 좀 걸릴테니 얘기나 해볼까요? 짐과 뒷정리를 하느라 도시를 많이 돌아다니지 못했슴다. 혹시 본 게 있습니까?”

! 인형 칭구!”

다른 건요?”

~ 자고 있는 칭구들!”

그 둘이 얘기하고 있는 동안 퍼블리는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안에서 기침 섞인 허락이 돌아왔다.
좀 드실래요?”

콜록! 고맙네.”

퍼블리는 대사제님이 시켰다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패치가 치트를 싫어하는 건 옆에서 계속 봐왔으니 그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퍼블리는 갈까 싶었지만 시간이 애매했고 배도 그리 고프지 않아 패치와 대화하기로 했는지 옆에 앉았다.

이렇게 여행을 나온 건 처음이에요. 사실 지내고 있던 마을에서 나온 일도, 기술의 도시에 들렀던 일도 전부 깨어나면 바로 까먹는 꿈이 아닐까 싶어요.”

꿈은 본 적 없는 걸 만들어낼 수 없네. 자네는 기술의 도시를 본 적이 없으니 지금은 꿈이 아닐세.”

따뜻한 게 목을 넘어가니 조금 괜찮아졌는지 기침이 가라앉은 패치는 조금 편안해보였다.

돈은 모아두긴 했지만 어딜 가장 먼저 가는 게 좋을지, 야영은 어떻게 하는지는 몰랐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굉장히 무턱대고 나온 것 같아요. 그리고 신탁이란 걸 들었을 땐 정말 놀랐어요! 전설로만 들었는데 제가 그 당사자라니!”

패치는 수프를 넘기면서 묵묵히 들었다. 아직은 목이 부어있어서 말을 많이 한다면 기침이 터질 게 분명했고 함께 여행하는 일행의 생각과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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