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치가 했던 말대로 자고 일어나니 감기는 깔끔하게 나아있었다. 평소와 같은 안색으로 목을 가다듬던 패치는 계속 자신에게 향하는 시선을 무시하며 이번 마을에서 구매해야할 목록들을 쭉 훑어보고 있었다.

“패치.”

“왜.”

“할 말 없슴까?”

“없네.”

항상 짓고 있던 치트의 미소가 진해졌다.

“정말 없슴까?”

“없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패치는 그제야 짜증가득한 눈으로 치트를 돌아봤다. 담긴 감정이 어쨌든 드디어 제대로 봐주니 마냥 좋은지 미소가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저만 쏙 빼놓고 중요한 얘기를 한 것에 대한 서러움임다~”

표정과 행동을 보면 서러움은커녕 오히려 지금 상황을 즐기고 있음이 분명했다. 표정과 행동에 서러움을 담았다해도 통하지 않았을 패치는 찬물 가득 삼킨 말을 꺼냈다.

“용사에게 들었을 게 아닌가.”

“무엇을 말임까?”

빨간 눈썹 끝이 다시 한 번 위로 치솟으니 치트는 장난이라며 뒤에 말을 덧붙였다.

“제가 묻기 전까지 말하지 않은 건 꽤나 불공정한 처사라고 생각함다? 여행엔 가장 중요한 게 바로 협동과 공정인데 그게 깨지면 여행길이 상당히 위험해지죠.”

“그렇담 역으로 묻지. 왜 그 때 바로 무언가 더 발견한 건 없냐고 묻지 않았나? 바로가 아니어도 여기까지 오는 나흘간 물어볼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네.”

짙은 미소가 옅어졌다. 살짝 가라앉듯이 그어진 호선에서 나온 말은

“말해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살짝 내려간 눈매와 눈썹 덕분에 장난스럽던 표정이 한순간에 처연해졌다. 마침 내려오려다가 둘의 대화에 어정쩡하게 다시 올라가려던 퍼블리의 마음 속에 당황과 미안함이 깃들었고 표정에도 떠올랐다. 반면에 정면으로 보고 있던 패치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그래, 이번은 불공정했네. 사과하지.”

다만 나온 말이 꽤나 의외였다. 퍼블리는 물론이고 치트 또한 놀라서 눈을 크게 떴지만 패치는 다음엔 내용 누락을 하지 않고 공정히 말해주겠다고 하며 다시 목록으로 시선을 돌렸다. 분위기가 풀어지자 퍼블리는 다시 아래로 내려왔고 치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속내를 탐색하려고 훑어보는 시선은 여전히 짜증났는지 패치는 자리를 떴고 치트의 시선은 끈질기게 그 뒤를 따라갔다.

“어제 수프 가져가면서 무슨 일 있었습니까?”

마침 가까이 온 퍼블리에게 질문이 갔지만 짐작가는 게 없는 퍼블리는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러고보니 어제도 유하게 넘어간 게 있었지만 이 또한 말하기 애매했으니 꺼내지 않았다.

“저희가 이번에 가는 데가...”

“음? 아, 각진나무 무덤 말입니까?”

“네, 좀 생소한 지명이라서요.”

“그럴만 합니다. 사실 지명 자체가 은유적인 표현이지요.”

잠깐 목을 가다듬으며 고를 말을 나눈 치트는 쉽게 설명했다.

“예전에 그 어떤 걸로도 부숴지지 않는 물질이 열리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물질들은 하나같이 전부 네모지게 각이진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물질들은 어느순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앙상한 나무만 남았지요. 나무 자체도 그 물질처럼 꽤 각이져서 그런지 사람들은 그곳을 각진나무 무덤이라고 부릅니다. 무덤이라는 단어가 참 은유적이죠?”

사라져버린 물질들이 대상일지 그 자리에 남아버린 나무들이 대상일지는 개개인의 해석에 따라 달랐다. 신기하단 표정으로 듣고 있던 퍼블리는 네모낳게 각져있는 나무의 모습을 상상하는 듯 싶었다.

“그 물질 자체도 매우 귀한 거라 사라진 이유는 누군가가 작정하고 훔쳐갔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압도적이지.”

아까 전 자리를 떴던 패치가 다시 돌아와 있었다. 옆에 눈을 빛내는 용사가 있는 걸 보면 용사를 데리러 간 듯 싶었고 데려오던 도중 얘기를 듣게 된 셈이었다.

“네모네모오~?”

나무가 네모낳게 각졌다는 부분이 용사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지금 당장이라도 그곳으로 달려갈 기세라 모두가 합심해서 용사를 진정시켰다.

“아직 저흰 준비가 덜 됐습니다. 게다가 지금 온 만큼 더 가야 나올 장소라 하루종일 뛰어가도 오늘 안엔 도착 못합니다.”

“날아가자~!”

“나는 것도 한계가 있고 사람이 많아 지속시간이 얼마 안 가니 나는 것도 불가능하네.”

퍼블리는 반사적으로 전서구를 떠올렸지만 고개를 저었다. 소리치며 소란을 일으킬 전서구가 눈에 훤했다.

“이잉~”

“장소는 움직이지 않으니 지금처럼 가요 용사님, 네?”

여러 가지 힘든 이유와 설득 끝에 용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대신 오늘 바로 출발하게 됐다. 치트는 어제까지만해도 감기로 고생했던 패치가 걱정된다며 끌어안았고 그에 당연하게도 응징이 가해져 옆구리를 붙잡고 일행들 제일 뒤쪽에서 뒤따라가게 됐다.

“사실 가도 나무들은 못 볼 확률이 높네. 왜냐면 거긴 엄연히 사유지니 말일세.”

“네? 그럼...”

“주인이 있다 이 말이지. 다만 희귀한 물질을 개인이 독점하고 있는 건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아 찾아오는 누구나 가져가지 않는 대신 물질을 볼 수 있게 했지만 나무는 그렇지 않네.”

“걱정 마십쇼~ 요즘엔 사라진 물질 대신 물질이 열리지 않는 나무를 보여주는 듯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각진나무 무덤이라고들 부르지 않습니까?”

“어디까지나 소문이니 직접 가서 봐야 알겠지.”

“출입금지라고 해도 신탁에 관해 얘기하면 들여보내주지 않겠슴까?”

“거기 주인이 종교인이란 얘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네만.”

“여기서도 종교인은 저뿐이잖슴까?”

네모난 나무에 대해 기대하고 있던 퍼블리는 둘의 대화에 점점 불안함과 아쉬움이 올라오고 있었지만 가장 앞서 걷고 있는 용사는 기대가 매우 가득해 온통 머릿속에 나무 생각만 있어 둘의 대화를 못 듣고 있었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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