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트가 다시 일행들에게 돌아오니 모두들 짐을 다 정리하고 챙긴 상태였다. 치트의 짐은 본인이 제일 먼저 정리를 해놔서 들기만 하면 끝이었다. 치트는 묻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일행 가운데 섞여들었다. 전서구는 나흘 후 쯤에 찾아가겠다며 어디에 갈 건지 물어봤다.

다음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나?”

마을 두어개는 들려야함다.”

각 마을간의 거리는?”

특별한 일이 없다면 이틀거리임다.”

그렇담 첫 번째 마을에서 자네를 기다리겠네.”

마을 어디서 만나요? 이래봬도 시선 많이 끄는 몸이라

입구에서 만나지.”

깜빡하지 말라는 말을 듣는 걸 끝으로 일행들은 움직였다. 발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보던 전서구는 그들을 보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거 참 기묘한 조합일세...”

혼자여도 소란스러운 비둘기 마저 떠나고 도시에 남은 건 정적뿐이었다.

 

여행길은 꽤 조용했다. 도시 사람들의 상태가 어떤지 제대로 소식을 듣기 위해선 다른 길로 빠져선 안 됐고 용사도 그런 분위기를 느꼈는지 아니면 더 이상 눈길을 사로잡는 게 없어선지 웃는 얼굴로 얌전히 따라오고 있었다. 다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패치는 정말 준비성이 대단한 것 같슴다.”

저리가게.”

요즘 날씨가 맑아서 고려도 안 했는데 이렇게 우산과 우비도 준비하다니 정말 대단하심다.”

아니까 좀 떨어지게.”

비가 오니 체온도 떨어지는 것 같네요. 이렇게 붙어가면 문제 없겠죠?”

꺼져.”

그동안 비가 안 온 걸 전부 몰아서 내리는 건지 꽤 많은 양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패치는 우산과 우비를 이미 가지고 있었지만 일행들과 여행하기 전에 마련했던 건지 각자 하나씩만 가지고 있었고 우산은 퍼블리와 용사가, 우비는 패치 본인이 입고 있는 상황이었다. 우산은 세 명이서 쓰기엔 좁았고 우비는 당연하게도 1인용이었다.

저 비 맞습니다만?”

맞게

감기 걸릴지도 몰라요?”

걸리게.”

열나고 앓아누우면 곤란함다~”

곤란하지 않네.”

떼놓고 가면 된다며 덧붙이는 말에 치트는 매정하다며 우는 소리를 했지만 패치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기어이 우비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었고 한바탕 난리가 났다. 난리난 둘 말고도 퍼블리와 용사쪽도 그리 얌전하진 않았다.

용사님! 비 다 맞아요!”

오와아아아앙!!!!”

감기 걸린다고요!!”

용사는 오히려 비를 맞는 감각이 좋은지 어느 순간부터 열심히 뛰어다니기 시작했고 우산을 든 퍼블리가 재빨리 그 뒤를 따랐다. 하지만 용사는 순순히 우산 아래로 갈 생각이 없어보였다.

비가 겨우 그쳤을 때 가장 덜 젖은 건 퍼블리였고 가장 많이 젖은 게 나머지 셋이었다. 우비 속으로 파고드는 걸 두고 실랑이를 벌인 끝에 결국 우비가 찢어졌고 그 대가로 치트는 비오는 날 하늘을 날아야했다. 결국 비가 그칠 때까지 비를 전부 맞아버린 셋은 저체온증에 시달렸고 예정에 없던 휴식을 갖게 됐다.

모닥불이 따뜻함다~ 이런 게 여행의 낭만이죠.”

낭만이 다 얼어죽었군.”

~ 아직 춥슴까? 이리오십쇼. 옷이 젖었을 땐 벗은 채로 서로를 끌어안아야 함다.”

벗은 채로 하늘 날고 싶으면 언제든 말하게.”

일행 중에서 그나마 멀쩡한 퍼블리가 수건을 돌리고 불을 더 지필 장작을 가져왔다.

수고가 많네.”

우산 덕분에 비를 피했으니까요.”

그보다 불 안에 넣는 종이는 자네가 그리던 지도 아닌가?”

.”

불 아래에서 까맣게 타들어가는 종이는 페르스토가 안내하고 마법진이 있었으며 그 자리에 흰 국화가 나타난 건물에서 그린 지도였다. 그리던 시간과는 다르게 순식간에 타들어가서 재만 남아버렸다.

괜찮아요.”

조금 멍한 눈으로 보던 퍼블리는 눈을 한 번 깜빡이며 대답한다.

바로 뒤집혀버렸는 걸요.”

급하게 밑그림만 그린 지도는 제대로 완성하기도 전에 하룻밤만에 뒤집혀버린 도시 때문에 의미가 없어져버렸다. 뒤집히기 전에 이렇게 생겼다는 정보로 남기기엔 길만 간략하게 그린 밑그림만으론 의미가 없었다.

길이 전혀 달라졌는 걸요.”

대답을 들은 패치는 납득했는지 불로 시선을 돌렸다. 장작과 종이를 연료삼은 불은 당분간 꺼질 기미가 없어보였다. 하늘은 비가 그친 이후론 어둑해지고 있었다. 예정대로라면 훨씬 더 다음 마을 가까이로 갔을 텐데 비로 인해 늦어졌다. 얌전히 갔다면 좀 더 갔을 테지만 들러붙는 치트와 신나게 비 맞고 뛰어다니는 용사로 인해 거의 나아가지 못하다시피 했다.

다시 비가 안 내린다는 가정이 없으니 다음엔 빨리 가야하네.”

쉬엄쉬엄 갑시다~ 마을은 어디 안 도망감다~”

마을에 와야할 전서구가 떠나겠지.”

아직 이틀도 안 됐슴다.”

이 정도 속도면 일주일도 부족할걸세.”

다시 말싸움을 벌이는 패치와 치트였고 퍼블리는 이제 익숙하게 둘의 말싸움을 바람소리 삼아 야영준비를 시작했다. 옆에서 담요 한 장만 몸에 두른 용사가 자기도 같이 나무 세우고 싶다며 옆에 따라붙었다.

패치와 치트의 대화를 빙자한 말싸움과 협박, 협상 끝에 내일은 오늘 지체한 만큼 더 가겠다며 패치가 선언했다.

하지만 다음날 감기에 걸렸는지 열로 앓아누운 둘로 인해 더 가긴 커녕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비를 많이 맞고 모닥불도 덜 쬔 용사는 일행 중에서 가장 쌩쌩했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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