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그 쪽이 아니어도 다른 곳에도 단서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네. 이상현상이 말 그대로 현상을 의미하니 그렇게 작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네.”

나무들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주변을 탐색해보자는 의견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 외엔 마땅한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디까지나 각진나무 무덤이라고 알려진 곳의 이상현상이었으니 너무 멀리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사제님이 금언 마법 좀 풀어주면 안 되냐는데요?”

“어차피 따로 찾는 동안 말할 필요가 없잖나?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풀리니 우는 척 그만하게.”

역시나 먹히지 않는 가짜울음에 치트도 금방 손을 내리고 한숨을 쉬면서 조사할 방향을 고르는데 동참했다.

“그런데 용사님 혼자 둬도 될까요?”

“우리가 언제까지고 옆에서 잡아줄 순 없네. 그리고 우리가 찾아오기 전에 환각의 숲에서도 멀쩡히 있던 걸 보면 스스로를 지킬 능력은 있는 것 같으니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걸세.”

그리 말한 패치도 사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용사의 행동이 훤해 찜찜했지만 본인이 한 말대로 언제까지고 옆에 붙어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북쪽을 선택한 용사에게 패치는 나무 주인들을 찾아가거나 만나게 되더라도 자극하지 말라는 주의를 준 패치는 서쪽을 골랐고 치트는 남쪽, 퍼블리는 동쪽을 골랐다.

“돌아오는 시간은 해가지기 직전, 올 때 사소한 거라도 좋으니 이상하다 싶은 건 뭐든 가져올 수 있음 가져오게. 가져올 수 없다면 어디서 봤는지, 특징이 뭐였는지를 이 종이에다 적고.”모두에게 각각 종이 한 장과 펜이 쥐어졌다. 패치는 신나게 종이접기를 하는 용사에게 주의를 한 번 주고 혹여나 위험한 일이 있을 때를 대비해 방어막과 경보를 울리는 뱃지도 나눠줬다. 치트에게 주려고 할 땐 줘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는 기색이 가득했지만 치트가 방금 받은 종이에다 악연과는 별개로 지금은 함께 여행하는 일행이니 공정해야한다는 항의를 적자 마지못해 줬다.

“선물 아니니 기분 나쁘게 웃지 말게.”

뱃지를 받자 늘 웃는 얼굴에서 더 환하게 웃는 치트를 보던 패치는 입을 막아놓은 게 정말 현명한 판단이었다는 걸 깨달으며 출발하자는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쪽으로 달려가려는 용사의 방향을 북쪽으로 다시 되짚어주며 뒤를 돌아보던 패치는 그대로 먼저 갔다.

“이따 봐요!”

일행들이 전부 떠나고 나무들만 남은 자리에 바람이 불어왔지만 그 무엇도 달려있지 않아 무덤처럼 바람소리만 내려앉았다.

남쪽으로 쭉 가던 치트는 꽤나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역시 꿍꿍이가 있었구만? 다른 녀석들 어딨는지 당장 말해!”

이곳의 주인 헥소미노와 딱 마주쳐버렸고 저렇게 윽박지르고 있었지만 치트는 앞으로 1시간하고도 몇 십분은 말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헥소미노는 난감하게 웃으면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치트가 더더욱 의심스러웠는지 가뜩이나 흉흉하게 뜬 눈빛의 세기가 더 거세졌다. 급한대로 치트가 수화로 지금은 말할 수 없다고 뜻을 전했으나

“너 아까 인사하면서 나가지 않았냐?”

치트는 속으로 패치를 불렀다. 당연하게도 패치에겐 전해지지 않았다.


“아직 떠나지 않았군요?”

다행이라는 말과 함께 아까는 남편 때문에 미안하다며 대신 사과하는 신시어와 마주친 건 퍼블리였다. 생각지도 못하게 마주친 퍼블리는 당황했지만 주의해야할 건 헥소미노 쪽이었다는 걸 떠올리고 오히려 패치가 말한 이상현상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사과를 받아들였다.

“저흰 괜찮아요. 그보다 저희를 찾으러 나오신 거예요?”

“네.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멀리 가진 않았을 거라 생각해서 얼른 나왔어요. 아까 보니 정말로 여행하는 분들처럼 보였는데 이대로 보내면 사과할 기회도 없을 것 같았어요.”

여행하는 건 맞지만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 사실이었으니 퍼블리는 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남편이 저번부터 외부에서 온 사람들을 경계중이에요. 하는 말로는 죄다 우드가 열리는 나무를 훔치려고 하는 사람들이고 열리지 않자 그 방법을 알기 위해서 온 도둑들이라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그냥 모르는 사람들이 여기에 오는 거 자체를 싫어하는 것 같아 보여요.”

“그런데 왜 나무들을 그냥 놔두는 거예요? 처음에 왔을 땐 울타리도 없었고 사유지처럼 보이지 않아서 엄청 당황스러웠어요.”

그에 신시어는 흐리게 웃으며

“나무들이 전부 말라 죽은 거나 다름 없는 상태라 그냥 놔두고 있다네요.”

씁쓸함이 가득한 말을 건넸다.


“확실히 다시 피워내고 싶다고 하는군.”

돌아가면 용사의 언어 선정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한 패치는 주변을 둘러봤다. 각진나무들이 있는 자리를 제외하면 주변은 그냥 흙밭이었다. 마땅히 눈에 띄는 게 없어 더 가봐야하나 고민했다. 여기서 더 가게 되면 어느순간 각진나무 무덤이라는 장소를 벗어나게 되는 게 아닌가가 고민의 이유였다.

“무덤 보러온 별난 손님이 또 왔나보네?”

그 때 처음 듣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옆으로 돌아보니 열 걸음 정도 떨어진 데에서 누군가가 서 있었다.

“자넨 누군가?”

“무덤 주인이라고 할 수 있지.”

“내가 아까 주인을 직접 봤으니 안 통할 거짓말은 그만두게.”

“그 주인이라는 녀석은 엄연히 땅 주인이고 난 무덤 주인이라니까? 뭐, 지금 당장 알아먹게 말하자면 무덤 말고도 땅과 나무는 물론이고 우드 전부를 갖고 싶어했던 주인 희망자?”

“쉽게 말하면 도둑이군.”

“그래 정확히 말하자면 도둑이었지. 이젠 훔치지도 못하지만.”

햇빛 아래에 있어서 앞모습이 그림자가 져 자세히 보이지 않는 상대의 얼굴에는 언듯 보라색과 하얀색이 뒤섞여 있었다.

“그런데 그 쪽도 단순히 관광하러 온 손님은 아닌 것 같아 보이는데? 나처럼 훔쳐보려고?”

“훔칠 가치나 있는지도 모르겠네.”

“이야 완벽물질을 홀대하는 사람은 또 처음이네? 아주 인상깊었어.”

비꼬듯이 말하는 어투에 패치는 더 이상 상대할 가치를 못 느꼈는지 무시하고 가려고 했다.

“성질 급하긴, 아주 재밌는 얘기가 있는데 들어보지 않겠어? 비밀을 아등바등 숨기고 있는 살인마 얘긴데.”

패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걸어갔다. 저렇게 말하는 사람은 스스로 말한 살인마 만큼 비밀과 검은 속내가 있는 법이었고 귀 기울여 듣는 사람들을 이용하기 위해 저런 말을 미끼로 흔들고 있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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