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고민한 패치는 살짝 문을 당겨봤다. 삐걱거리는 소리도 없이 잘 열렸다. 망설임 끝에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안은 굉장히 조용했다. 아니 조용한 수준을 넘어서 아무도 없었다. 식당이 딸려있는 건지 식탁들과 의자들만 있고 계산대를 지키는 사람도 없었다.

계십니까?”

혹시 안으로 들어갔나 싶어 불러봤지만 돌아오는 대답도, 사람도 없었다. 휴업 상태라면 문을 잠가두지 않았을 텐데 왜 아무도 없을까. 치트, 아니면 종교 측에서 심어놓은 사제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아예 사람 자체가 없었다. 이상함에 계산대로 다가가보니 계산대도 계산대라 부르기엔 애매했다. 단상이라고 부를 정도로 좁았다.

애초에 숙소가 맞나?

의심스러운 눈으로 패치는 조심스럽게 안을 살펴봤다. 식탁들도 식당에서 흔히 쓰는 둥근 식탁이 아닌 네모에 길이가 긴 식탁이었다. 전체적으로 다시 보니 음식을 파는 식당이라기 보단 한 단체가 사용하기 위한 식당처럼 보였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부엌으로 통하는 문이 보였다.

계십니까?”

부엌문을 두드리며 한 번 더 불러봤지만 조용했다. 평소 같았으면 처음 들어오고 불러봤을 때 나갔을 테지만 치트가 말한 장소라는 게 신경 쓰였다. 치트는 왜 숙소도 아닌 이곳을 말했을까.

 

퍼블리는 길 안내를 하는 사람을 뒤따라갔다.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는 게 익숙한지 발걸음이 느려지지도 않았고 부딪히는 일도 없었다. 마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비켜주는 것 같았다.

도시 구경은 즐겁나요?”

날아온 질문에 눈을 깜빡인 퍼블리는 주위를 훑고 대답했다.

아직은 다 못 둘러봐서...처음 왔을 땐 신기했어요.”

그렇담 지금은요?”

퍼블리는 조금 고민하더니 단어를 골라냈다.

복잡해요.”

복잡하다는 건 두 가지의 의미였다. 신기한 만큼 처음 보는 게 많았고 길거리가 꽉 찰 정도로 사람이 가득한 것도 처음이었다. 처음인 광경은 어느 정도 상식이 섞인 상상만큼 신기했다. 다만 그 이상으로 많았고 길도 좁았다. 말 그대로 복잡했다.

다른 의미는 워낙에 상식 밖의 광경에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곤혹스러웠다. 하늘을 헤엄치는 물고기는 상식 밖이기에 신기하다고도 여길 수 있지만 상상 속에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신기하단 마음은 들지 않았다. 놀라운 광경에 비해 심장은 그리 크게 뛰지 않았다. 그렇기에 퍼블리는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여기가 꽤 복잡하긴 하죠? 다른 데는 꽤 오랫동안 안나가봐서 잘 모르겠지만 제가 지금까지 본 바로는 지금 이 도시가 제일 복잡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살았던 마을이랑 들렸던 마을은 여기에 비하면 굉장히 한적해요. 여기가 제일 복잡한 게 맞을 거예요.”

그런데 어쩌다가 여행을 하게 됐습니까? 요즘엔 여행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어서 여행물품 물가가 꽤 올랐으니 적절한 때는 아니거든요.”

퍼블리는 또 한 번 고민했다. 신탁에 대한 내용을 함부로 말해도 되는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제가 지도제작자 지망생이라 원래 여행을 할 생각이었는데 마침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거든요.”

신탁에 관한 건 숨기기로 했다. 사실 퍼블리의 선택이 퍼블리의 입장에선 좋은 선택이었던 게 지금 기술의 도시는 종교계를 경계하고 있는 대표적인 입장이었다. 그런데 도시 한 가운데에서 신탁이라는 단어만이라도 꺼내게 되면 전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게 훤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퍼블리는 이에 대해선 몰랐기 때문이 운이 좋은 선택을 한 거라고 할 수 있었다.

기회는 있을 때 잡을수록 좋죠. 특히 여행 같은 경우엔 혼자가 아닌 단체로 여행하는 게 가장 편하고 즐거운 편이니 이해합니다. 꽤나 조건이 좋았나보군요?”

5년 동안 여행자금을 모아온 퍼블리였다. 이것도 언젠가는 바닥이 날 게 분명하니 일해서 돈을 모으고 여행하고 다시 돈을 모으는 삶을 사는 건 당장은 좋을지 모르나 오래 지속된다면 꽤나 막막할 게 뻔했기에 나름의 각오도 있었으니 지금의 여행이 둘도 없는 기회였다. 퍼블리는 그에 고개를 끄덕였고 사람 사이를 돌아다니느라 바빴는지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퍼블리도 뒤에서 따라오지 않고 옆에서 함께 걷고 있었다.

도착했습니다!”

다른 건물보다 유독 높은 이 건물은 꽤 특이했다. 각지고 네모난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원기둥 모양에 건물 자체가 공중에 떠 있었다. 안 그래도 높은데 공중에 떠 있으니 더 높아서 유독 튀어보였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도구가 없는 퍼블리는 당연히 당황스러워 했다.

이걸 쓰면 됩니다.”

등에 무언가 찰싹 붙었고 동시에 발이 땅에서 떨어지자 깜짝 놀란 퍼블리가 크게 움직이자 곧바로 건물의 입구까지 날아올랐다.

우와악?!”

혹시 날아봤습니까?”

처음인데요!?”

와오! 처음치곤 굉장한 실력이네요!”

더 이상 날아오르지 않게 문고리를 붙잡은 퍼블리는 등에서 도구를 떼어내는 동시에 안으로 들어갔다. 도구를 붙여준 안내자도 뒤따라 들어왔다.

다음엔 미리 말씀해주세요...”

저랑 다음에도 만나시려고요?”

도시에 며칠 정돈 머무를 테니 다음에도 만나지 않을까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군요.”

도구를 돌려준 퍼블리는 주위를 둘러봤다. 건물 내부는 굉장히 휑했다. 사람이 앉을 의자는 물론이고 물건 놓을 탁자도 없는 건물 내부에 유일하게 눈에 띄는 건 바닥에 그려진 그림 밖에 없었다. 동그란 테두리 안에 복잡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고 퍼블리가 호기심에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림 하나하나가 굉장히 정교해보였다.

...”

굉장하죠?”

! 그리는데 굉장히 정성이 들어갔을 것 같아요.”

그 그림 위에 올라가보실래요?”

?”

이 정교하고 정성스러운 그림을 밟으라는 거나 다름없는 말에 퍼블리는 당황했고 그에 안내자는 얼른 올라가보라며 부드럽게 등을 밀었다. 얼떨결에 그림 위로 올라선 퍼블리는 당황하며 발밑의 그림을 내려다봤고 그 순간 빛이 반짝이더니 한순간 시야가 가려졌다. 당황한 퍼블리가 눈을 꾹 감고 빛이 잠잠해졌을 때 조심스럽게 눈을 떠봤다.

?”

눈을 뜨자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는 휑한 건물 내부가 아닌 지평선 저 너머가 빨갛게 타들어가는 하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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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치~? 이만 내려주세요~ 날아다니는 사람들은 많지만 전 발이 땅에 닿는 걸 좋아함다~?”

저 아래서 난 자네 얼굴 안 보는 게 좋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늘을 날던 사람들이 등이나 신발을 보면서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보거나 아예 다가와 장치를 소형화 했냐며 묻기까지 했다. 당연히 이에 관해선 설명할 게 없는 치트는 그저 미소만 보였다.

하늘에 떠있는 시간을 1시간으로 설정한 패치는 사람들 틈새로 모습을 감췄다. 어디로 가는지 치트가 알 수 없게 조금 돌아갈 생각이었다. 숨어있는 상대를 알기 위해선 패치는 직접 가볼 필요가 있었다.

내가 간 걸 알면 거기에 사람을 심어뒀겠지.

 

괜히 용사님 혼자 두고 나왔나?”

퍼블리는 불안한 얼굴로 연신 뒤돌아보았다. 본격적으로 도시를 구경하기 위해 짐만 풀고 간단하게 준비하고 나오던 도중 용사와 같이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용사를 찾아갔다. 하지만 용사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누워서 잠들어 있었다. 굳이 깨워서 같이 나가야만 하는 이유는 없었지만 돌아다니던 사이에 용사가 깨어나서 밖으로 뛰어나가면 과연 용사를 찾을 수 있을까하는 고뇌가 퍼블리를 잡고 놔주지 않았다.

결국 선택은 용사를 깨우지 않고 혼자 나오는 거였다. 그래도 완전히 걱정이 가시지 않았으니 이렇게 뒤돌아보기 바빴다. 그러다보니 앞을 덜 보게 되어 하마터면 맞은편에 오던 사람과 부딪힐 뻔 하거나 이미 부딪히는 일들이 생겼다.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걱정을 떨치고 앞을 본 퍼블리는 얼마 안 가 도시 구경에 푹 빠졌다.

하늘색 긴 머리 분! 혹시 가방 필요 없어? 보니까 여행자 같은데 들거나 메고 다닐 필요 없이 따라다니는 가방이야, 특별히 할인해줄 테니까 한 번 봐봐!”

괜찮아요!”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야!”

사람이 워낙 많아서 그런지 조금 거리가 있으면 크게 소리쳐야 들렸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퍼블리는 척 봐도 초행인 여행자였는지 많은 가게에서 이런 식으로 물건 보러 오라는 말들이 자주 나왔다. 가방을 비롯해 생필품을 파는 곳에서도 불렀지만 결국 퍼블리의 발을 다가오게 한 건 지도관련 물품들을 파는 가게였다.

이걸 누르면 거리 계산이 시작되고 자동으로 저장돼요.”

우와~”

매끈한 판을 들고 걸으니 판 위로 걸음의 수가 떠올랐다. 지도제작자인 퍼블리에게 있어서 이 가게는 동화나 전설 속에 나오는 신비로운 보물 상자처럼 보였다.

요즘엔 지도에 관해선 그럭저럭 길이 그려져 있거나 간략화된 걸 선호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이렇게 좋아해주시는 분은 참 오랜만이라 기분이 좋네요.”

혹시 예전 지도도 있나요?”

아쉽게도 예전 지도는 없어요. 어쩌다가 사라지게 된 건지 몇 년 동안 한 번도 보질 못했어요.”

퍼블리는 예전 지도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지도들이 사라졌고 사람들이 급하게 지도를 제작한 게 현재의 지도들이었다. 급했던 만큼 개인적으로 다니는 길이나 간략화 된 지도가 찍어내듯이 튀어나왔고 지도에 그려진 길들을 사람들이 이용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모두가 쓰는 길이 되었다. 더군다나 복잡하게 그려지지 않아 오히려 이런 지도를 더 선호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났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여러모로 아쉬워요. 간략하니 크게 길 잃을 걱정은 없긴 하지만 한 지도 안에 여러 길이 그려져 있는 게 참 매력적이었는데...”

혹시 더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제가 지도제작자 지망생이거든요!”

완전한 지도제작자라고 하기엔 아직 제대로 된 지도 하나를 완성하지 않았으니 지망생이라고 말하자 가게 주인의 눈이 빛났다. 안타깝게도 제대로 손님 잡았다는 눈빛이었다. 처음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물건 성능에 대해 설명하고 지금이 아니면 이 가격에 살 수 없다며 고민을 흔들어놓았다. 그에 당황한 퍼블리는 나중에 여유로울 때 오겠다며 재빨리 밖으로 나왔다.

어지럽다...”

가게 안은 말로 정신없었고 밖은 지나다니는 사람들로 혼란스러웠다. 누군가가 띄우는 물고기에 하늘을 올려다본 퍼블리는 같이 날아다니는 사람들과 그 뒤에 더 높은 건물을 눈에 담았다. 뚫어져라 위를 보다가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려 사람들 사이로 길을 밟았다. 간간이 위를 보고 다시 앞을 보며 길을 찾아갔다.

오랜만에 여행자군요?”

열심히 걷던 중 갑자기 퍼블리 앞으로 불쑥 나온 사람이 있었다. 깜짝 놀란 퍼블리가 뒤로 물러났다.

와오!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여행자를 보는 건 꽤 오랜만이거든요?”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게 선글라스였고 그 다음은 짧고 둥글게 풍성한 보라색 머리였다. 하지만 퍼블리는 모습보다 먼저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여행자가 오랜만이라뇨?”

물건 사러 온 사람과 여행자는 다르니까요!”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던 퍼블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조금씩 몸을 옆으로 움직였다. 가던 길을 마저 가겠다는 거였다. 그러자 상대가 움직이는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혹시 어디 가고 싶은 데 있나요? 여행자를 만났으니 친절을 매우 베풀고 싶군요. 이래봬도 여기 길이 제일 빠삭한 사람이라서요?”

그에 퍼블리는 조금 고민했다. 무턱대고 처음보는 사람을 따라갈 정도로 어리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위를 잠깐 보고 주위를 둘러봤다. 위에도 사람이 있고 주위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고민은 짧았다.

저기 높은 건물까지 안내 부탁드려도 될까요?”

! 전망 좋은 데를 아주 잘 찾으시는군요! 금방 가지요!”

그렇게 혼자서 아무 말 없이 가던 길에 안내와 더불어 말동무가 붙었다. 요즘 도시 밖은 어떤지 도시는 어떤 이미지인지 물으며 착실하게 안내를 하기 시작했고 퍼블리는 그에 맞춰 대답했다.

그리고 둘이 그 자리에서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패치가 도착했다.

“...숙소가 맞나?”

퍼블리가 서 있던 자리 옆이 바로 치트가 말한 그 숙소였다. 치트와 마주치는 바람에 시간을 소요한 패치는 그 건물을 유심히 살펴봤다. 간판도, 창문도 없어서 숙소는 물론이고 가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문이 다른 가게들과 같이 넓고 잠금이 걸리지 않은 문이라 들어갈 수 있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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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큼 기술이 넘쳐나는 도시죠?”

하늘을 날아다니는 건 시작에 불과했다. 분홍색 구름이 터져 나오면서 주위를 감쌌고 사람들은 신나는 모습으로 구름에 뛰어들었고 손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사람들이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민물에 있어야할 물고기가 하늘에서 헤엄치며 불을 뿜기까지 했다.

...성적인 기술이 많네요...”

이 정도는 해야 기술이라는 전제가 깔려있겠지.”

굉장하네요...”

눈에 보이는 게 워낙 비현실적이라서 신비롭다는 느낌보다는 당황스럽다는 감정이 먼저 나온 퍼블리는 그렇게 말하며 쭈그려 앉아 작은 사람들을 구경했다. 하늘에서 헤엄치면서 불을 뿜는 물고기는 아직까진 가짜라도 눈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어보였다.

사람을 작게 만드는 마법이 있다면 반대로 크게 만드는 마법도 있나요?”

그건 진짜 사람이 아니라 만들어진 인형이네.”

?”

작은 사람들은 노래만 부르면서 그 외의 말을 하지 않았고 춤만 추면서 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대단하네요, 진짜 사람이 작아진 줄 알았어요. 어쩌면 나중엔 진짜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인형이 나오게 되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예요.”

그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인형을 만든 장본인인지 철로 된 막대를 든 사람이 뿌듯한 얼굴로 다가와 대답했다. 그리고는 인형들의 등을 누르고 서 있던 배치를 바꿨다. 그러자 인형들이 새로운 노래를 부르면서 새로운 춤을 췄다. 찬사에 대한 보답인 듯 싶었다.

안에 넣은 재료가 회색 돌과 은색 돌을 섞은 겁니까?”

? 맞아요. 어떻게 아셨나요?”

이쪽 분야에 관심이 있어서 말임다~”

그리고는 꽤 전문적인 내용들이 오갔다. 퍼블리와 용사는 무슨 소린지 모르니 멀뚱히 있다가 인형들에게로 눈길을 돌렸고 패치의 눈초리는 당연히 좋지 않아졌다. 대화를 나누던 인형장인은 간만에 말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 굉장히 흥분하면서 다른 얘기들도 쏟아냈고 엄청난 기세에 치트는 난감한 웃음을 지었다.

짐들도 놔야하고 알아서 갈 테니 갈만한 숙소가 어디에 있는지 말하게.”

에이 무슨 소립니까? 같이 가아죠~”

닥치고 말해.”

확신과 노기 어린 눈빛에 치트는 순순히 말했다. 그리곤 바로 퍼블리와 용사를 데리고 자리를 떴다. 인형 장인에게 붙잡힌 치트는 결국 먼저 가서 쉬고 있으란 말을 하며 쏟아져 나오는 말들을 맞춰줬다.

실례합니다. 저쪽에 갈만한 숙소가 있습니까?”

? 저 강아지 동상을 지나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패치는 결국 치트가 말한 데와 정 반대에 있는 숙소를 잡았다. 퍼블리는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얼굴로 치트를 두고 온 방향을 돌아봤다. 용사는 아무것도 모른 채 까르륵 웃으면서 짐들을 내려놨다.

잠깐 나갔다 오겠네.”

, 저도 같이 나가요!”

혼자 돌아다녀볼 생각이네만.”

사제님을 만나면 저희 여기에 방 잡았다고 해도 되나요?”

상관없네.”

그렇게 대답한 패치는 숙소 밖으로 나가자마자 바로 후드를 썼다. 패치는 이미 이 도시 내에 사제가 잠입해 있다고 확신을 한 상태였다. 어디서 마법사 아니면 정비공 모습으로 일행들을 지켜보고 있을지 몰랐다. 패치가 가장 먼저 간 곳은 치트가 말해준 숙소였다. 종교의, 치트의 속셈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했다.

 

인형 장인에게 붙잡힌 치트는 약 30분 후에 풀려났다. 즐거운 대화였다며 춤추던 인형 중 하나를 치트의 손에 쥐여 준 인형 장인은 방금 나눈 대화를 토대로 새로운 인형을 만들어야겠다며 자신의 공방으로 뛰어갔다. 치트는 인형을 내려다봤다. 손으로 잡기 전까지만 해도 작아진 사람처럼 노래하고 춤추던 인형이었는데 지금은 원래부터 인형이었다는 걸 주장하기라도 하듯이 축 늘어져 있다. 치트는 인형을 살펴보던 걸 멈추고 고개를 들어 앞으로 걸어간다.

진짜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인형이라~ 오히려 만들기 쉬운데 말이죠.”

사람들은 모두 길거리에서 벌어지는 광경들을 구경하거나 자신이 만든 것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더 화려하게 움직이는지에 대해 관심을 쏟느라 아무도 치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 치트는 끝을 이었다.

인형에다 사람을 쓰면 되는데.”

주위는 고요했다. 광장에서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온 치트는 어두운 골목 안쪽으로 인형을 툭 던졌다.

사람을 안 쓰고도 만들 수 있긴 하지만 노래하고 춤추는 인형으로만 쓰는 건 아깝지 않슴까?”

대답은 없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치트는 고개를 꺾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 위엔 물고기 말고도 풍선이 가득했다.

축포는 불이 가장 잘 보일 때 쯤이 최곱니다.”

치트는 그렇게만 말하고 골목에서 나왔다. 골목 안은 여전히 조용했지만 떨어져 있던 인형은 어느새 산산이 조각나 망가져있었다.

다시 길거리로 돌아온 치트는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했다. 패치의 성격상 자신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리가 없었고 분명 다른 숙소를 잡았을 게 훤했다. 능숙하게 기술에 대해 대화를 나눈 자신의 모습을 보고 이 도시 내에 사제가 숨어들었다고 확신을 내렸을 패치가 눈앞에 그린 듯이 나타났다.

“...길 한가운데에 멀뚱히 서서 뭐하나?”

패치가 어디로 갔을까 하고 고민했슴다~”

패치는 표정을 구기며 혀를 찼다. 이 도시가 초행인 건 패치도 마찬가지였다. 사람 많고 복잡한 길을 돌아다니다보니 길을 헤맸고 가는 시간 또한 지체됐다. 그러다가 마침 골목에서 나온 치트와 마주치게 된 거였다.

그보다 패치는 어디 가심까?”

신경 끄게.”

어디에 방을 잡으셨는지 저도 알아야죠~”

자네가 말한 데 가서 잡게.”

치트는 패치에게 끈덕지게 따라 붙었다. 사람이 많은 거리에서 능력을 써서 떼어놓기엔 휘말릴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런 패치의 속내를 읽었는지 치트는 능글맞게 웃으면서 속삭였다.

이러니 단 둘이 데이트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곧이어 치트는 물고기와 풍선들을 바로 눈앞에서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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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라고 해봤자 마법도구 파는 가게에 들어가서 기계를 찾거나 기계 고치는 정비소에 들어가서 마법도구를 고쳐달라고 하는 게 아닌 이상 주의할 건 없슴다.”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기계들을 보러 갈 때 나와 동행하지 않아야 하겠지.”

그렇게 따지면 전 아예 도시에 들어가면 안 됨다~”

치트는 그렇게 말하며 사제복을 가리기 위해 온 몸을 둘러싸는 로브를 꺼내 입었다. 그러던 중 퍼블리는 퍼뜩 떠오른 게 있는지 다급하게 물어봤다.

혹시 하늘을 날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이나 기계도 있어요?”

지금 당장이라도 쓸 수 있네만.”

퍼블리의 눈이 용사만큼 반짝이기 시작했다. 사람에게 쓸 때 좋은 용도로 쓴 적이 없었지만 패치는 굳이 그런 얘기를 덧붙이지 않았다. 바로 앞이 도시니 하늘을 나는 건 도시에서도 가능한 건지 살펴본 다음에 하는 게 나을 거라며 눈빛을 피한 패치는 도시 입구를 쳐다봤다.

패치도 기술의 도시에 온 적은 없었다. 마법과 기계가 뭉쳐져서 기술의 도시라고 불리게 된 것도 자신이 겪었던 그 사건 때문이니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시선이 제게 쏠리는 건 당연했으니 패치 입장에선 전혀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갈 수 있긴 했지만 일부러 가지 않았고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이상 올 생각 자체가 없었다.

어서오세요~ 기술의 도시는 처음인가요?”

아뇨, 예전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이전엔 상업도시라고 불렸던 만큼 초행인 여행객들에게 안내를 붙여주는 일이 남아있었다. 치트가 그렇게 말하며 안내를 거절했다. 와봤다는 말에 패치의 눈이 자연스럽게 좁아졌다.

그렇게 열렬한 눈으로 보면 부끄럽슴다~”

헛소리 집어치우고 여기에 왜 왔었는지 말하게.”

뭉쳐서 커지면 당연히 내부조사 하러 오지 않겠슴까?”

당당하게 하는 말에 어처구니없다는 눈빛이 따갑게 쏘아졌지만 치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곱게 접은 눈을 마주해 빤히 쳐다보자 패치가 먼저 눈을 피했다. 얼굴 가득히 자리 잡은 찡그림에 주름 생긴다고 길다란 손가락이 다가오자 안 그래도 살벌했던 기세가 더욱 흉흉해졌다.

그래서 저 안에 사제들은 몇이나 있나?”

사제들이라뇨~ 사제들이 어떻게 저깄겠슴까?”

종교에 속했다고 해서 기술을 못 쓰는 건 아니지. 꾸준히 내부조사하려면 저 안에 사제 몇 명을 마법사나 정비공으로 만들어서 저 안에 숨겨놔야 하지 않나.”

치트는 계속 모르쇠로 일관했고 패치는 의심과 확신 가득한 눈으로 치트를 노려봤다. 치트가 끝까지 말할 생각이 없어보이자 패치는 추궁하는 걸 포기하고 길이나 안내하라며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그럼 어디부터 가는 게 좋을까요~ 가보고 싶은 데가 있슴까?”

...처음 와보니까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구경하고 싶어요.”

구경할래!”

그럼 잘 따라오십쇼~”

도시 안쪽으로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 위로 무언가가 휙 날아갔다. 용사와 퍼블리가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엔 꽤나 많은 사람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사람만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물건들도 날아다니고 있었다.

!”

날아다니던 사람들 중 일부가 초행인 일행들을 봤는지 가까이 날아와 근처에 있는 물건들을 잡고 곡예를 펼쳤다. 일종의 환영인사였다. 퍼블리는 당연히 신기해하며 즐거워했고 치트와 패치는 신기해하진 않았지만 예의상 인사로 화답했다. 가장 의외의 반응을 보인 건 바로 용사였는데 용사는 늘 짓는 웃는 표정 외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그들을 멀뚱히 보고 있었다. 가장 눈을 빛내면서 즐거워할 거라고 생각했던 용사가 가만히 있으니 나머지 셋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조오기 등에 달린 건 모야~?”

하늘을 날게 해주는 장치입니다!”

~ 아래 뿜뿜! 하는 건?”

이것도 하늘을 날게 해주는 거예요.”

용사의 질문에 친절한 대답들이 돌아왔고 퍼블리는 감탄하며 등에 붙어있고 신발로 이루어진 비행도구들을 살펴봤다. 돌연 용사가 또 이렇게 물었다.

그냥 날 수는 없엉?”

?”

고것들 없이 둥둥!”

그 말에 친절히 대답해주던 도시의 사람들이 눈을 껌뻑였다. 제대로 들었다는 걸 조금 지나서야 인식했는지 난처하면서도 환상을 품은 여행자를 보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론상으론 가능할 거 같긴 한데 성공한 사람은 한 번도 못 봐서 모르겠네요.”

치트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패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패치는 바로 표정을 찌푸렸다.

솔직히 불가능할 겁니다. 어지간히 오래 연구한 사람들도 도구 없인 힘들었거든요.”

치트는 다시 패치를 돌아봤다. 패치는 두 번 봐주진 않았다.

내 칭구는 되던뎅?”

이야~ 눈속임이 굉장한 분이신가 봐요. 혹시 공연에 관심 있으면 저희에게 연락 좀 주라고 전해주세요!”

그들은 즐거운 도시 관광되라며 그대로 떠났다. 퍼블리가 옆을 보니 치트는 땅에 쓰러져있었다. 패치는 이걸 이대로 버리고 가고 싶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야야 너무 아픔다~”

앞서 찾아온 사제들과 성기사들처럼 해주려고 했지만 보는 눈이 많아 그걸로 참았으니 엄살 작작 부려.”

엄살 아님다!”

용사는 눈속임이 뭐냐고 퍼블리에게 물었고 퍼블리는 보이지 않은 부분을 이용해 실제로는 불가능한 걸 눈에 보인 것처럼 하게 하는 거라고 설명해줬다.

눈속임 아니었는뎅?”

퍼블리는 조금 혼란스러워 했지만 마법과 기계의 원리에 관해선 잘 몰랐으니 도구 없이 날아다니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감을 잡지 못했다. 그렇군요라고 긍정하며 패치를 보고 속으론 마법사님은 도구를 이용하시려나? 의문을 품으며 만약 도구를 이용한다면 굳이 패치에게 부탁할 것 없이 여기에서 비행도구를 구매해야겠다는 걸로 생각에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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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돼서 들어온 사람을 이렇게 냉정하게 내쫓을 거냐는 말도 꺼낼 법한데 치트는 아무 말 않고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검은 건 그림자뿐이었고 더 이상 노란 건 방 안에 없었다. 햇빛만이 창문을 통해 환하고 뜨겁게 자극했다. 패치는 자신의 표정이 어떤지 알 수 없었다. 거울이 있지만 멀리 있었고 볼 생각이 없었다. 손을 들어 천천히 입을 가리듯이 눌렀다. 언제나 그랬듯이 화난 것처럼 입꼬리가 아래로 내려가 꾹 다물어져 있었다. 검사를 마친 패치는 일어났다.

내가 제일 늦게 일어났나?”

아니요! 저도 방금 나왔어요!”

푹 잤엉?”

패치를 제외한 모두가 1층에 내려와 있었다. 평소보다 체력 소모도 더 하고 심적 소모까지 했다지만 갑자기 잠들어버리고 이렇게 늦게 일어났다는 게 이상하다고 느낀 패치는 아까부터 조용한 치트를 쳐다봤다. 언제나 그림처럼 웃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림 아래에 뭐가 있을 지는 가려졌으니 보이지 않았지만.

출발하지.”

가기 전에 사야할 게 있느냐 물으면서 완성한 목록을 들고 패치가 앞장섰다. 퍼블리는 아무래도 패치 혼자서 주문할 것 같은 느낌에 사고 있는 동안 마을을 둘러봐도 되냐고 물었고 패치는 어제의 장난 같은 걱정이 떠올라 고개를 끄덕였다. 가벼워도 말을 한 걸 보면 꽤 오래 붙잡을 것 같으니.

용사는...이미 갔군.”

부디 먼저 마을 밖으로 나가지 않거나 나가더라도 입구 근처에 있길 바라며 패치는 치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 시선에 담긴 의미를 치트가 모를 리 없었다.

혼자 들려면 무겁잖슴까.”

자네 신전에서 들어본 무거운 게 뭔가?”

신전의 책은 두껍답니다?”

신전의 책들을 가방에 넣고 들고 다녔나? 한 권씩, 아니면 손수레를 이용했겠지.”

. 그러고 보니 손수레 어떻습니까? 힘들게 들거나 메고 다닐 필요 없이 손수레에다 담아서 끌면 편하지 않겠슴까?”

울퉁불퉁한 흙길에서 뒤집어지지나 않으면 다행이네.”

결국 가게엔 둘이 들어가게 됐지만 패치는 옆에 있는 걸 신경 쓰지 않게 됐다.

그거에다가 이 끈까지 함께 사면 딱! 떨어지고 좋아요.”

생각 없네.”

싸게 얹어드릴 게요.”

됐네.”

빈틈을 공략하려는 창과 창으론 어림없을 돌 벽의 전투에 치트는 얌전히 아무 말 않고 기다렸다. 다른 건 하나도 사지 않고 적어놓은 목록 물건들만 전부 구매했을 때 퍼블리가 용사를 데리고 돌아왔다. 마을을 돌아다니다보니 용사와 만난 듯 싶었다.

적당한 때에 돌아왔군. 무게는 비슷하게 나눴으니 각자 들게.”

나눠놓은 짐가방을 들고 이리저리 휘두르는 용사의 팔을 잡아 제대로 메게 한 퍼블리는 미리 와서 도와주지 못한 거에 대한 미안함을 건넸다.

어차피 사는 것과 나누는 것밖에 할 일이 없었네.”

어이구 용사님 급하시네~ 우리도 얼른 뒤따라가죠?”

가방을 제대로 메자마자 뛰어나가는 용사를 따라 치트가 따라 나갔다. 퍼블리는 바로 따라가지 않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패치에게 물었다.

...괜찮으셨어요?”

물건 사느라 바빠 별 일 없었네.”

패치는 그렇게만 말하고 먼저 밖으로 나갔다. 가게 주인에게 꾸벅 인사한 퍼블리는 아침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걱정스러운 눈으로 앞서가는 뒷모습을 봤다.

일어나고 방 밖으로 나왔을 때 보였던 건 마침 나오고 있던 치트였고 일어나셨냐며 인사하려고 했지만 그 방이 패치가 있던 방이었다는 걸 깨닫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서로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패치는 치트에게 단순히 싫어한다는 수준으로 끝나지 않을 적대감과 경계를 보였고 치트는 웃으면서 그런 패치를 계속 자극했다. 그리고 나오면서 치트가 지었던 표정은...

퍼블리는 정말 별 일 없었냐고 물으려다가 말았다. 묻어놓은 건데 자극하는 걸 수도 있었고 아니면 정말 말한 대로 별 일이 없었던 걸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묻는 것 자체가 자극이 될 수 있었다.

목적은 따로 있긴 하지만 일단 여행을 하겠다고 한만큼 처음과 같은 싸움은 가급적 일어나지 않게 할 테니 눈치 볼 필요 없네.”

...”

퍼블리는 아침에 용사가 나오기 전, 치트와 단 둘이 있었을 때 5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봤다. 그 때 치트는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아주 큰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패치는 잘못 알고 있는 게 있죠. 더 말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이 정도만 말할 수 있슴다.”

퍼블리는 그 다음엔 기운차게 뛰어나오는 용사에게 5년 전에 무슨 큰 일이 있었는지 들어본 적 있냐며 물어봤다. 용사는 친구들과 마지막으로 함께 신나게 날아다녀봤다고 얘기했다.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물어봤지만 그 때 사제 하나가 마법사에게 무슨 일을 저질러서 마법계가 떠들썩해졌다는 식으로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었다.

기술의 도시엔 마법사도 많나요?”

거기 사는 사람들 전부가 마법사 아니면 공학자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네. 마을 내에서의 개인제작이 아닌 이상 지금 쓰는 모든 마법도구와 기계 전부 거기에서 제작되다시피 하고 있지.”

사실 본격적으로 뭉쳐서 기술의 도시라고 불린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종교가 태도를 바꾸기 전에는 마법과 기계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 기술의 도시가 된 땅의 터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땅 위로 자라는 게 없어 땅을 갈아엎고 교통지로 쓰기 적당했다. 다만 적당하다는 게 바퀴가 덜컹거리거나 빠질 일이 없다는 거였지 그 넓이가 작다는 게 아니었다.

도시를 이룰 정도로 큰 땅이었으니 거리가 꽤 되어 중간에 거리를 줄이기 위해 한 마법사가 가게 겸 작은 개인 연구소를 차린 걸 계기로 연구자와 장인, 그것들을 파는 상인들이 늘어나 도시가 만들어졌다. 그 과정에서 경쟁판매 전략 또한 세워져 마법과 기계가 뒤섞였고 더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기 위해 기술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래서 기술의 도시라고 정식으로 불리기 전엔 손님이었던 다른 마을 사람들은 임시적으로 상업도시라 불렀었다.

갈등의 골이 깊었던 만큼 이 도시는 갈등이 대놓고 일어났었다. 그러다가 종교라는 공공의 적이 등장했고 마침 도시는 신전과 제법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종교를 견제하기 알맞았지만 계기가 없어서 여전히 붙어만 있는 상태였었다. 그리고 5년 전 계기가 될 만한 사건이 벌어졌고 한 공학자가 기술이 넘치는 이 땅은 단순히 상업도시라고 불리기는 아깝다는 말을 꺼내 이 땅은 기술의 도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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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마저 가볼까요?”

용사는 본인이 납득한 대로인지 아니면 이제 더 이상 주변에 흥미가 없어서인지 잘 따라오고 있었다. 대신 묻는 게 많아졌다.

요기 나비는 왜 색깔이 달라?”

나비도 사는 데마다 색이 달라요.”

사는 데마다 왜 달라~?”

일행 내에서 두 번째로 큰 용사는 말투는 물론이고 행동과 호기심 모두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았다. 그래서 퍼블리는 용사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혼란스러웠다. 자칫하다간 진짜 어린아이를 대하듯이 대해버릴 것 같아서 주의 깊게 말을 고르기 위해 잠시 침묵했다.

사는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색이 다르다네.”

패치가 대신 대답하자 용사의 시선이 패치에게로 돌려졌다.

숲 안쪽에 꽃밭이 있었나?”

!”

그럼 그 꽃잎과 비슷한 색을 지녔거나 숲에 사니 나뭇잎처럼 보이게 색을 가졌겠지. 숲엔 나무가 많은 만큼 새 둥지도 많으니.”

녹색 풀이 가득한 가운데 조금씩 머리를 들고 있는 꽃들 위에 화려한 색의 나비들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여기는 나무가 적지.”

용사는 이해를 했는지 더 신기하다는 눈으로 나비들을 둘러봤다. 그 이후부턴 자연스럽게 둘로 나뉘어 앞서가는 건 치트와 퍼블리였고 뒤따라가는 건 패치와 용사였다. 용사는 계속해서 물었고 패치는 조금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자신이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는 부분까지 대답했다. 간혹 가다가 나오는 어려운 단어에 용사는 그 단어가 무엇인지도 물었고 처음에 뭘 묻고 있었는지 까먹기 까지 했다. 그러다보니 패치는 용사의 곁에서 쉽게 떠날 수 없었고 떠날 생각도 없어보였다. 퍼블리는 옆에 같이 걷고 있는 치트를 힐끔 쳐다봤다. 혹시 마법사님은 일부러 이렇게 움직이게 되는 상황을 의도한 걸까.

드디어 마을이 보이네요.”

해가 완전히 저물기 직전, 마을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마을에 들어가면서 가장 먼저 찾은 건 여관이었다.

“1인실 넷으로.”

“2인실 하나에 1인실 둘도 좋습니다.”

헛소리 말고 가서 짐들이나 나눠서 정리하게. 자네가 2인실 쓸 건가?”

당연히 제가 쓰려고 물은 겁니다. 그러니까 저랑 같은 방 쓰는 게 어떻습니까?”

자네는 기억을 선택적으로 삭제하는 능력이라도 가졌나?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같이 방을 쓰자고?”

싸우지마아아앙~”

다시 터져 나오는 살벌한 기세를 진정시킨 건 용사였다. 덕분에 대화 흐름이 끊겨 진정한 패치는 다시 1인실 네 개를 말한 후 바로 돈을 내고는 열쇠를 챙겨들어 던졌다. 열쇠를 받아든 치트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짐을 챙겨들어 2층으로 올라갔다. 패치는 퍼블리와 용사에게 열쇠를 건네고 자신의 짐을 챙겨들었다.

여행에 필요한 물품은 내일 날이 밝으면 둘러보지. 혹시 당장 필요한 물건 있으면 찾아오게.”

!”

퍼블리는 열쇠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용사를 끌고 2층으로 올라갔다. 패치는 그 자리에 남아 여행 물품을 파는 가게가 어디쯤에 있는지 물었고 두 건물 지나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바로 나온다는 대답을 들었다.

하지만 오늘은 이미 해가 져서 문을 닫았을 거예요.”

해가 져도 아직은 저녁인데 빨리 닫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요즘 여행객은 물론이고 마을 들리는 사람도 적어서 그런 것 같아요.”

그 가게 주인이 오랜만에 오는 손님을 붙잡아 많이 팔아치우려고 할 게 분명하니 조심하는 게 좋을 거라며 걱정 아닌 걱정이 들려왔지만 패치에겐 의미 없는 걱정이었다. 이제껏 걸어왔기 때문에 마을을 돌아다니고픈 마음도 없어 패치는 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방은 계단과 꽤 가까운 방이었다.

씻는 곳이 방마다 딸려있는지 물이 나오는 기계와 함께 세숫대야가 구석의 칸막이 안쪽에 있었다. 아쉽게도 찬물밖에 나오지 않는 것 같았지만 겨울도 아니었으니 못 씻을 정도는 아니었다. 손을 씻고 얼굴을 씻던 패치는 문득 더운 여름에도 뜨거운 물로 씻어야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떠올렸다. 어디서 들었는지, 누가 말했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았지만 이 얘기가 떠오른 이유는 고운 옷과 따뜻한 물로 씻으면서 살아왔을 게 뻔한 사제가 과연 이 찬물로 씻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피곤하긴 정말 피곤한가보군.”

걱정은 아니었지만 이런 의문이 든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패치는 거친 손으로 물기를 닦았다.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치트를 신경 쓰고 있는 스스로에게 못마땅했다. 그 아래에 깔린 게 의심과 경계라 해도, 지금처럼 곁에 없는 순간에도 생각과 감정을 소모하는 건 불쾌한 일이었다.

침대에 걸터앉은 패치는 가지고 있는 짐들을 살펴보며 내일 사야할 게 뭔지 짚어보았다. 작은 종이에다가 목록들을 적어놓고 퍼블리에게도 뭐가 필요한지 물어보러 가야겠다 생각하며 일어나던 순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제는 문에서 들린 게 아닌 창문에서 들린 소리였다. 돌아보니 창문 너머엔

용사?!”

대체 어떻게 서 있는 건지 용사가 환하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당황한 패치가 창문을 열었고 용사는 놀리듯이 멀어졌다. 패치가 용사를 노려보며 마법도구나 기계가 있는지 살펴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비행마법을 쓸 줄 알았나?”

칭구가 해줬엉!”

그 친구가 대체 누구냐며 물으려고 하니 갑자기 창문과 벽이 사라졌다. 이것도 그 용사의 친구가 한 짓인가 싶어 더 가까이 다가가 따지려고 할 때 뒤에서 누군가가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문을 잠그지 않았나 싶어 돌아보니 옷자락을 잡고 있는 건 그림자였다. 손만 올라와 잡고 있던 그림자가 바닥에서 서서히 떨어져 똑바로 섰고 그림자 때문에 보이는 건 온통 검은 색 뿐이었다. 한 번 눈을 깜빡이니 그림자 안에서 노란 빛이 반짝이며 존재감을 키워나갔다.

일어났습니까?”

패치는 어느새 누워있었고 바로 앞에 저를 내려다보는 치트를 눈을 뜨면서 제일 처음 봤다. 고개를 천천히 돌리니 목록을 적다가 잠들었는지 쓰다만 종이가 손에 쥐여져있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치트와 눈을 마주한 패치는 치트가 뭐라 말하기 전에 딱 한 단어만 말했다.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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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발을 뗀 여행에서 걱정되는 건 치트와 패치 사이의 살벌한 분위기였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바로 용사 때문이었다.

오와아아아앙!! 나무들이 없어!!”

여기는 숲 밖이라서 나무들이 없다기 보단 적은...저기 용사님? 잠깐만요!”

숲 밖으로 나온 용사는 갖은 기행을 벌였다. 하늘을 보면서 뛰다가 넘어지고 그 김에 풀밭을 구르다가 일어나면 손에 뱀이나 달팽이가 쥐여져있는 건 기본이었다. 잠시 눈을 떼면 머리가 하늘과 겹쳐 보일 정도로 멀리 가 빨간 망토 색으로 용사를 찾아야했다. 숲에서 나온 이후로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보니 자연스럽게 역할들이 주어졌다.

용사가 어디로 튈지 모르니 지켜보는 담당이 패치, 잠깐 놓친 순간에 용사를 찾아내는 담당이 치트, 바로 달려가서 용사를 데려오는 담당이 퍼블리였다. 치트는 관찰력이 좋아 대상을 금방 찾아낼 수 있었고 용사의 힘과 체력은 만만치 않아 용사를 따라잡고 데려올 수 있는 게 일행 중에선 퍼블리밖에 없었다.

아예 빛을 뿌려놔야겠군. 이러다간 하루만 노숙할 거리가 사흘로 연장될 걸세.”

얼마 전까진 지망생이었던 퍼블리는 지도 제작이 이번이 처음이었다. 비록 지도제작자는 아니지만 꼼꼼하고 실용주의를 선호하는 패치에게 어떻게 표시하면 더 직관적이고 알아보기 쉬울까 의견을 나누면서 조언을 받고 있었다. 몸이 두 개는 아닌 패치는 퍼블리에게 조언하는 동안엔 자연스럽게 신경이 그쪽으로 쏠리게 됐고 용사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으면 치트를 불러 용사가 어디로 갔는지 찾아내는 과정을 반복했다.

반짝반짝!”

빛가루를 뿌리며 이동하니 용사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혹시 질려서 다른 데로 눈 돌릴까 싶어 중간에 변칙적으로 흩날리거나 폭죽처럼 터지도록 뿌리며 순순히 뒤를 따라오게 했다.

편하네요~”

언제 또 한 눈 팔지 모르니 아예 자네가 보고 있게.”

주변을 둘러 볼 사람은 필요하잖슴까?”

이 넓은 풀밭에 위험한 건 용사가 잡아왔던 뱀 외에 더 있나?”

제대로 가고 있는지 주위를 둘러보긴 봐야죠.”

가면서 지도 만드는 중인데 무슨.”

패치가 바빠서 그런지 말투에 날이 서 있진 않았다. 비록 정신없긴 하지만 한결 풀린 분위기에 퍼블리 또한 안심했는지 표정이 편해졌다. 하지만 이런 상황 또한 얼마 가지 않았다.

가까이 붙지 말고 떨어지게.”

여행 동료인데 사이가 돈독해져야죠~”

돈독이고 뭐고 간에 자네와 내 사이가 좋아질 일은 없을 거야.”

그래도 노력은 해야지 않겠슴까?”

다시 시작되는 살얼음판에 퍼블리는 종이를 들고 슬며시 멀어져 용사 곁으로 갔다. 용사는 정신없이 뛰어다녀도 불편하진 않았으니 숨 쉬기가 편했기 때문이었다. 퍼블리도 마음 편히 용사 옆에서 흩날리는 빛가루들을 구경했다. 뒤돌아볼 때 더 이상 숲이 안 보일 정도로 멀어질 때 쯤, 앞선 둘의 살벌한 대화도 멈춰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흰 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 여행이지만 목적지가 있을 것 같은데.”

이런, 급하다보니 여행에 대해서만 말했군요? 목적지라기 보단 거쳐야할 곳들이 있습니다.”

거쳐야할 곳들은 총 네 군데였다. 기술의 도시, 각진 나무의 무덤, 하얀 들판, 사막. 가장 가까운 곳이 기술의 도시였고 먼 곳이 사막이었다. 이 둘 간의 거리는 꽤 멀었지만 거쳐야할 곳들 사이간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사막 너머를 제외하면 상세지도까진 아니었지만 가는 길이 간략하게나마 있어 여행하기 적절한 곳들이었다.

그러니 지금 목표는 기술의 도시지요. 가장 가까우니까요.”

기술의 도시는 처음 가 봐요!”

기대 가득한 퍼블리의 말에 패치는 용사를 흘끗 돌아보고는 말했다.

기술의 도시까진 지금 여기에서 작은 마을을 두 번 정도 거쳐 가야하네. 빠르게 가면 나흘은 걸리겠지만.”

퍼블리도 용사를 돌아봤다. 패치가 빛가루를 뿌리는 걸 멈추니 용사는 바로 주위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아주 잘 아는 퍼블리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빛가루로 따라오도록 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퍼블리는 결심한 눈으로 용사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용사님 저희는 기술의 도시까지 가야해요.”

기수르 도시?”

기술의 도시오. 그런데 용사님이 갑자기 어디론가 가버리면 저희가 용사님을 찾느라 도착하는 게 늦어질 거예요.”

그르면 가기 전에 다 둘러보장~!”

그러면 시간이 너무 걸려요.”

그 말에 용사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여행은 천~천히 다 둘러보면서 해도 되는 거 아니양?”

맞는 말에 퍼블리는 뭐라 더 말할 수 없었다. 거쳐 가야하는 곳이 있다곤 하지만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행 자체가 가보고 싶은 곳을 가보고 둘러보는 것이니 용사의 말이 여행에 가장 부합하는 말이었다. 용사의 말에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퍼블리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패치가 나섰다.

갑작스럽게 모인 감이 없잖아 있어서 마땅한 준비를 못 했네. 평소에 돌아다니는 편이라 식량과 침낭을 챙겨뒀지만 지금은 네 명이고 여행하면서 굶거나 맨 바닥에서 잘 순 없는 노릇이잖나.”

그럼 푹신푹신한 풀들 찾고 오께!”

그렇게 말하며 달려가려는 용사를 붙잡아 말리는 퍼블리와 기절시켜서 데려가야 하나 고민하는 패치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치트가 결국 나섰다.

기술의 도시를 빨리 보고 싶어서 그렇슴다. 꽤 기대하던 곳이거든요.”

퍼블리를 바라보면서 하는 말이니 본인이 기대하다기 보단 퍼블리의 기대를 읽어서 하는 말이었다. 퍼블리는 너무 과하게 반응했다 민망해하며 과연 그게 용사가 납득할 수 있는 말일까 의아해했다. 퍼블리에게 잡힌 채로 달려가려던 용사는 그 말을 듣자마자 멈춰서더니

우웅 그렇구나~ 그릏담 빨리 가장!”

바로 납득하는 모습에 진작 그렇게 말할 걸 그랬다는 속을 누르고 용사의 팔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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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의 어법에 잠시 동안 해석 과부하가 걸린 퍼블리는 눈을 깜빡이면서 물었다.

, 호로록? 갔다고요? 잠들었다고...”

잠들었는데 호로록 갔엉!”

어디로요?”

위로!”

용사의 말에 혼란이 온 퍼블리는 나머지 둘을 향해 돌아봤다. 나머지 둘도 용사의 말뜻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는지 퍼블리와 눈이 마주쳤다. 이들의 속도 모르고 용사는 이들 주위를 신나게 빙빙 돌기 바빴다. 우선 신탁을 전해야할 의무가 있는 치트는 용사를 멈춰 세우고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용사님?”

우웅? 내 이름 용사야?”

이름이 아니라 역할을

용사!!”

치트는 더 말하지 않고 얌전히 물러났다. 저를 향해 돌아보는 그린 듯한 미소에 패치는 한숨을 쉬었다. 이제 패치의 차례였다. 신탁을 따라 용사가 되는 이에게 치트에 대한 경고를 하려고 했는데 경고고 뭐고 말이 통할지부터가 의문이었다.

자네 말대로 자넨 용사일세.”

빨간 칭구!”

신탁에 따르면 나를 포함한 이 셋과 함께 여행을 떠나야한다네.”

여행 조아!!”

다만 저 검은 머리는 이 여행을 정말 해야하나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정도로 위험한 사람이지.”

칭구끼리는 사이좋게 지내야지~!”

여기까지 말한 패치는 더 말하기를 그만뒀다. 이 일행은 망했다. 가장 믿음이 가득해야할 대사제는 납치범에 속내를 모를 위험인물이고 가장 믿을 수 있어야할 용사는 요정이 키우기라도 했는지 순수하다 못해 텅 빈 종이를 보는 듯했다. 다만 패치가 예상치 못했던 게 있었다.

그럼 난 이제 돌아가겠...놓게.”

사이좋게 지내야징!”

사이좋게 지내긴 글렀네.”

싸웠으면 화해하는 거양!”

아니, 애초에 싸운 게 아니라

용사의 힘은 생각보다 엄청났다. 패치는 팔을 잡은 손을 떼어내려고 하거나 뿌리칠려고 애를 썼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실랑이라고 하기엔 용사의 힘이 너무 강해 일방적으로 잡혀있다고 할 수 있는 패치는 이대로라면 절대 안 놔줄 거라는 걸 깨달았는지 잡히지 않은 다른 손을 저었다. 환각에 영향 받지 않게 하는 건 물론이고 환각도 걸 수 있었다. 빛이 아른거리며 용사의 눈을 훑다가 터지면서 반짝였다

반짝반짝!”

용사가 눈을 빛내며 즐거워했지만 팔은 여전히 놓지 않았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패치는 손을 뻗어 용사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그러자 용사가 새로 인사하는 거냐며 자유로운 팔을 들어 마주 손을 흔들었다. 그 반응에 패치는 질린 기색이 가득한 얼굴로 용사를 바라봤다.

내성도 아니고 저항이라니.”

이를 통해 용사가 왜 환각의 숲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떻게 사물을 분간하며 돌아다니는지 알 수 있었다. 환각 자체가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 환각의 숲이란 그냥 평범한 숲이나 다름없었다.

화해 축포야?”

축포 아니니 얼른 놓...”

내 칭구들도 자주 쓰던 거야!”

그 말을 들은 패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특유의 건조한 눈으로 용사를 바라본 후 한숨을 쉬며 용사에게 들릴 정도로만 작게 말했다.

애초에 저 녀석은 용서도 빌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았으니 화해 자체는 불가하네.”

사과하면 화해할끄야?”

화해를 강요하는 것 또한 좋은 일은 아니란 걸 알아두게. 다만 기회를 원한다면 이 여행이 그 기회가 될 거고 나와 저 녀석의 화해를 바라는 자네라면 이 기회를 그냥 떠나보내게 둘 생각은 없겠지, 그러니 조건이 있네.”

건조함으로 제 감정을 덮은 패치는 용사에게 마지막으로 무언가의 말을 속삭였고 용사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대해선 비밀로 하는 것 또한 조건이라며 덧붙인 패치는 그대로 뒤돌아 멀뚱히 서 있는 둘에게 향했다.

여행을 하기로 했네.”

정말요?!”

기대감이 완전히 사그라든 건 아니었는지 퍼블리는 반사적으로 기쁨이 담긴 웃음을 지었다. 치트는 미소를 지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퍼블리는 용사가 패치를 설득한 거라고 생각했는지 용사에게 달려가 감사인사와 어떻게 설득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했다. 자연스럽게 둘만 남은 터라 패치는 슬핏 눈썹을 찌푸렸다.

무슨 거래를 했습니까?”

그 질문에 패치는 여전히 눈썹을 찌푸린 채로 노려봤다.

이 세상 그 누가 당신을 설득하겠습니까? 의무도 일도 없는 당신을 흔들 말은 없죠.”

능청스레 덧붙이는 말들은 꽤나 확신에 가득 찼고 패치에 대해 잘 파악한 내용들이었다. 패치의 입장에선 꽤 거슬렸는지 건조했던 눈에 다시 날이 서기 시작했다.

그렇담 용사님께서 당신이 원하는 걸 갖고 있단 건데 그게 뭔지 참 궁금합니다~”

아주 잘 알고 있군. 그렇담 이것도 알겠지, 내가 그걸 말할 것 같나?”

물론 아니죠, 그러니 패치에게 직접 물을 생각은 없슴다~”

그렇담 용사에게 묻겠다는 말이었다. 패치는 혀를 차며 뒤돌아 용사와 퍼블리에게 걸어갔고 치트는 그 뒤를 따랐다. 용사에게 궁금한 걸 묻다가 오히려 용사의 이야기에 말려든 퍼블리는 다가오는 그 둘을 반갑게 돌아봤다.

자네 여기서 챙길 게 있나?”

없엉!”

그럼 이제 이 숲에서 나가지.”

와앙!”

용사는 앞장 서는 패치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원래부터 따라오던 치트도 그 옆에 나란히 걸었다. 그들을 보고 있던 퍼블리는 땅에 떨어져있는 물건들을 한 번 내려다보다가 빠른 걸음으로 뒤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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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용사 있는데로 제대로 안내하는 게 맞나?”

맞습니다만?”

왜 길이 신전으로 가는 길인가? 설마 용사는 진즉에 신전으로 데려갔나?”

아뇨 그건 아님다. 마침 용사가 신전 근처에 있기도 해서 이렇게 나중에 보러 간 것도 있지만 다른 이유가 더 큽니다.”

신전방향으로 가는 건 맞았지만 가기 직전에 길을 꺾었다. 신전 가까이에 있는 숲이 목적지였다. 그 숲이 어떤 숲인지 아는 패치는 이유가 뭔지 깨달았다.

환각의 숲이군. 나를 먼저 데려오지 못하면 여기도 못 들어가지.”

환각마법에 관해선 가장 뛰어난 게 패치죠.”

대체 왜 환각의 숲 근처에다 신전을 지은 건가? 실수로 깊숙이 들어가서 실종되는 신관들이 매년 있다고 들었는데.”

글쎄요. 왜 여기에 지었는지는 맨 처음 설계한 사람만이 알겠죠?”

패치는 혀를 차면서 손을 휘저었다. 손끝을 따라 빛이 흩뿌려지며 치트와 퍼블리를 감쌌다. 퍼블리는 신기함에 빛을 잡아보려 손을 뻗었지만 잡히지 않고 빙글빙글 주위를 돌다가 사라졌다.

! 이런 마법들은 처음 봐요! 역시 마법 도구와 마법사가 직접 쓰는 마법은 다르구나.”

대부분의 마법사들이 도시로 떠났다고 들었죠. 도구만 나오는 상황이라 어찌된 거냐며 사람들이 궁금해 하던데 같은 마법사로서 아시는 바 있슴까?”

그 대부분에 속하지 않아서 모르네만.”

, 어차피 이유는 얼마 안 있어 알게 되겠죠.”

패치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치트를 돌아봤지만 더 이어지는 말은 없었다. 환각의 숲에 한 발짝 내딛은 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두 조용히 걷기 시작했다. 숲의 초입 부분은 환각이 약한 편이라 사람들이 열매나 풀을 캐기 위해 오는 경우가 많아 길이 나 있었다. 조금 더 걸으니 이제는 흙보단 빽빽하게 자란 풀들이 자주 밟히기 시작했다. 발에 무언가 단단히 채일 때마다 내려다보면 짐 가방이나 휴대전등 같은 사람들이 숲으로 들어올 때 가져오는 물건들이 있었다.

겉보기엔 다른 숲들이랑 다를 게 없는데 대규모 환각마법 말고도 다른 뭔가가 있나?”

다른 뭔가요?”

여기 들어와서 실종된 사람들은 가득한데 사람은 없고 물건만 남아있군.”

시체가 없다 이 말이군요?”

심상치 않은 말에 퍼블리의 안색이 좋지 않아졌다. 환각의 숲에서 실종되고 못 찾은 이들은 전부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취급한다는 얘기가 한창 돌았었다. 땅을 짚으면서 사람들의 흔적을 찾는 둘을 보던 퍼블리는 종이를 한 장 꺼냈다.

대체 용사는 무슨 생각으로...자네 뭐하나?”

환각의 숲의 지도를 만들면 사람들이 더 안전해지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 전에 환각대비부터 해야 지도도 볼 수 있네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을 거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흔적을 찾던 패치는 몸을 일으켰다. 물건들은 새 것같이 멀쩡했는데 사람의 발자국이 전혀 없었다.

용사가 이 숲에 있는 게 맞나? 아주 예전이라면 모를까 최근에 들어왔다면 발자국이라도 남아있어야 정상이네. 근래 들어서 비도 내리지 않았으니 지워질 일이 없을 텐데.”

글쎄요, 최근에 들어왔는지 좀 더 오래 전에 들어왔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거울에 비춰진 건 이 숲이었으니까요.”

혀를 찬 패치는 이러다 환각의 숲을 전부 돌아다니게 되겠구나 싶어 한숨을 쉬었다. 들어와도 초입에 있어서 잠깐 들어왔다가 나갈 줄 알고 아무 말 없이 따랐는데 준비도 마땅치 않은 상태에서 숲을 돌아다니기란 여간 위험한 일이 아니었다.

“...할 말이 아주 많지만 그냥 따라온 내 책임도 있으니 이에 대해선 나중에 말하겠

우오와아아아아앙!!!!!”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흠칫 놀란 패치는 일행들을 돌아봤다. 그 둘도 마찬가지로 놀란 걸 보니 여기서 큰 소리를 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엇보다 목소리가 다른 목소리였다.

죠오오오기 서 있는 애들 있다아아앙!!!!”

저 멀리서 달려오는 형체가 있었다. 목소리가 매우 커서 사람인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사람은 얼굴 자체에서 빛이 나는 것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이 상황이 당황스럽기는 패치와 퍼블리는 물론 치트도 마찬가지였다. 용사의 얼굴은 알아도 용사가 어떤 사람인지는 몰랐기 때문이었다.

칭구들!!!”

달려와서 부딪히기 직전에 멈춘 용사는 고개를 숙여 패치와 눈을 마주했다. 바로 코앞에서 바짝 붙는 얼굴에 당황한 패치는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오랜만에 보는 칭구들이다!!”

친구라니 처음 보는...”

새 칭구!!”

패치의 눈가가 살짝 찌푸려졌다. 정체도 모르는데 막무가내로 친구라 외치는 상대에 호감이 갈 리가 없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치트는 언짢은 패치의 기색을 느꼈는지 항상 짓는 미소를 지으며 패치에게 말했다.

그 분이 용사님입니다.”

“...?”

특정하진 않았지만 예상했던 용사의 이미지가 전부 무너져 내렸다. 퍼블리 또한 크게 뜬 눈으로 용사를 바라봤다. 파랗게 뻗친 머리를 지닌 용사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이들을 둘러보기 바빴다.

나보다 큰 칭구도 있다!”

용사는 환각에 자체적으로 저항이 있는지 기본 말투를 제외하면 멀쩡해보였다. 다만 어떻게 대화를 끌어가야하는지 감을 못 잡아 패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때 퍼블리가 앞으로 나섰다.

혹시 여기 다른 사람, 그러니까 친구들도 있나요?”

우웅~? 칭구들 다 코~ !”

그 중에서 노란머리를 반쯤 묶어 올린 분이 있나요?”

노랑 칭구는 못 봐써!”

살짝 실망한 기색을 보인 퍼블리는 잠들었다는 사람들이 어디 있는지 물으려고 했지만 용사가 먼저 말을 이었다.

그른데 칭구들이 호로록! 가버렸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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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리는 어색한 웃음을 머금으며 노력해보겠다고 했고 패치는 아예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짐을 챙겨들었고 패치의 빠른 걸음을 선두로 마을을 나섰다. 밖으로 가는 내내 패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치트는 그저 웃고만 있었으며 퍼블리는 기쁨을 잠시 깊숙이 넣어두고 둘을 살펴봤다.

퍼블리의 입장에선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우선 먼저 서로의 태도를 보는 걸로 둘의 선, 정확히는 패치의 선을 체감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퍼블리는 넣어둔 기대감이 천천히 사그라드는 걸 느꼈고 패치는 후회가 안쪽부터 서서히 쌓이는 걸 느꼈다.

예전에 볼 때보다 더 살이 쪽 빠지셨네요. 그러니까 그 때 가만히 있었으면 이렇게 살도 빠질 일 없었을 텐데 정말 슬프네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꺼내는 걸 봐줄 패치가 아니었다. 마을에 나오자마자 온갖 마법들이 눈 아프게 쏟아졌다. 사제들이 기본적으로 쓸 수 있는 방어막이 위태롭게 막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패치는 마법만 쓰는 게 아니었다. 그대로 뛰어가 방어막을 뚫으며 물리 공격까지 감행했다. 이 난장판에 낄 수 없고 끼어들 이유가 없는 퍼블리는 엉거주춤 선 채로 이 사태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긴 다리를 열심히 움직인 덕분에 공격을 피한 치트는 그대로 날아오는 패치의 주먹을 가볍게 감싸 잡아 오히려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 끌어당겨진 패치는 그 반동을 이용해 명치에 주먹을 꽂아 넣었고 쿨럭 기침을 터뜨린 치트는 그대로 나머지 손도 잡아채고 체중을 실어 패치 위로 쓰러지면서 쓰러뜨렸다.

패치가 이렇게 작으니 쉽게 쓰러지는군요.”

안 비켜?!”

비키면 공격할 거잖슴까~”

천천히 고개를 숙이는 치트에 패치의 눈에 불이 더 크게 튀었다. 그대로 머리를 들어 박치기를 시도하려 했지만 치트의 입이 움직이는 게 더 빨랐다.

기억을 잘 더듬어보세요.”

?”

전해지지 않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눈을 감고 앞에 있는 걸 묘사해봐야 의미가 없잖습니까?”

뜻 모를 눈빛과 미소가 패치의 눈 바로 앞에 있었다. 치트가 꺼낸 말은 굉장히 의미심장했지만 우선 자신을 깔고 있는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패치는 다리를 휘둘러 치트를 제 위에서 치웠다.

쓸데없는 입 그만 놀리고 안내나 제대로 하게.”

차인 옆구리를 부여잡으며 우는 시늉을 해봤자 날아오는 건 반대쪽 다리였다. 다시 일어난 치트는 패치의 말을 충실히 들으며 옆에 바짝 섰다. 말만 충실히 들었다.

사람어깨 팔걸이로 쓰지 말고 얼른 꺼지게.”

“....”

팔이 거추장스러우니 잘라달라는 의미였나?”

“....”

침묵은 긍정으로 알겠네.”

말만 안 했지 행동으로 패치의 속을 긁어내리고 있었다. 옆에서 보는 퍼블리도 아슬아슬한 심정으로 걷고 있었다. 분명 온 사방이 멀쩡한 흙바닥인데 옆에 절벽을 둔 기분이었다. 입을 다문채로 패치의 어깨에 팔을 두르던 치트는 명치를 맞고서야 물러났다. 패치는 마음 같아선 자신이 말한 대로 하고 싶었지만 퍼블리의 눈을 존중하기로 했다.

이번에 명치를 때린 게 효과가 좋았는지 그 이후로 치트는 얌전히 있었다. 입도 열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패치 또한 먼저 말을 거는 성격이 아니었다. 침묵이 무겁게 깔리자 이런 분위기에 익숙치 않은 퍼블리는 식은땀을 흘렸다. 퍼블리는 이제 이 둘에 대한 기대보단 앞으로 만날 용사에게 기대를 걸었다. 용사라는 역할을 부여받을 정도면 이 분위기를 꽤 환기시키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아직 겪지 않은 일이지만 이런 퍼블리의 기대는 과하게 충족되었다.

저기! 두 분은 어쩌다가 만나게 되셨어요?”

아까 전해지지 않았던 내용이 그 내용일세.”

, 그럼 어쩌다가 사이가 안 좋아지신 거예요?”

그 내용도 마찬가지지.”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 이야기라도 하려고 했지만 꺼낸 주제마다 막히자 퍼블리는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냥 묵묵히 따라가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 패치가 돌연 물었다.

그러고 보니 지도제작자 지망생이라고 했나?”

? !”

마법과 기계가 충돌이 멈추지 않은 상태고 종교까지 나선 시기엔 힘겨운 직업이군. 굳이 지망하는 이유가 있나?”

예전에 지도를 보고 땅 위에 있는 모든 길을 한 눈에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갈 수 있는 모든 땅의 지도를 만들어서 합치면 멋질 것 같아서 직접 지도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둘은 순조롭게 이야기를 하며 가라앉은 분위기를 없앴다. 지도에 관한 이야기에서 자연스럽게 지냈던 마을의 이야기와 식당 딸린 여관에서의 일화까지 나왔다. 패치만큼 술버릇이 장난 아닌 사람들도 있었다는 대목에서 패치는 침묵했고 퍼블리는 침묵을 눈치 채지 못했는지 신나게 얘기했다. 한결 편안하고 웃는 얼굴로 열심히 말하던 퍼블리는 앞쪽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잠깐 말을 멈추고 고개를 바로 했다. 그러자 묘한 웃음을 머금고 있는 치트와 눈이 마주쳤고 너무 둘끼리만 대화했나 싶어 민망함을 담아 마주 웃었다.

퍼블리님이 있어서 정말 다행임다. 만약 둘만 있었다면 난리도 아니었을 겁니다.”

이미 난리가 났지 않았나 싶었지만 퍼블리는 애써 그 말을 담아두었다. 이 순간을 시작으로 대화의 흐름이 패치와 퍼블리에서 퍼블리와 치트로 넘어갔다. 소소하게 신전에선 무슨 일을 하는지와 성수로 만든 거울의 기능과 효과의 이야기에 퍼블리는 신기했는지 집중에서 들으며 궁금한 걸 물었고 치트는 성실히 대답했다. 패치는 그런 둘을 보고 있다가 그다지 끼어들고 싶은 주제가 아니었는지 말없이 걷기만 했다. 신탁이 여행을 할 생각이 없는 것과 별개로 어찌됐든 여행을 시작하면 아무리 맞지 않는 사람이 있어도 다른 자리에 서로의 관계가 잘 굴러가게 만들 사람들을 뽑아놓아 여행이 이어지게 한 걸까 생각하며 신탁의 내용을 다시 한 번 곱씹었다. 패치는 반발 가득했던 처음과 달리 나머지 용사에 대해서 꽤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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