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탁? 동료?”

헛소리일세. 귀담아 듣지 않는 게 좋네.”

신탁을 헛소리로 치부하다니 역시 대단하심다.”

자네 입에 나오는 모든 말은 헛소리지.”

매정하다며 징징대는 대사제에 패치는 인상을 찌푸리며 쳐다보지도 않았다. 다만 옆에서 둘의 말과 행동을 보고 있던 사람은 당황한 표정을 지은 채 엉거주춤 서 있었다.

, 이런. 그러고 보니 새 동료님의 성함을 모르네요.”

, 퍼블리 셔예요.”

그럼 퍼블리님, 자세한 얘기가 필요하실 테니 우선 앉을 자리가 있는 곳으로 가지 않겠습니까?”

이로써 패치 또한 마을에 묶이게 되었다. 저보다 나이 더 많은 성인 마법사를 납치하는 대사제 앞에다 아직 성인도 안 되거나 이제 막 성인 됐을 법한 사람을 두고 떠날 순 없었기 때문이었고 그 대상인 퍼블리는 앞서 회상했듯이 본인이 큰 실례를 저질렀으니 더더욱 두고 갈 수가 없었다.

결국 다시 아까의 식당으로 들어오게 된 패치는 퍼블리의 옆에 앉았다. 마주보는 게 짜증나고 혹시 무슨 일을 저지르지 않을까 싶어 바로 옆에 앉아 이상한 낌새가 보이는 즉시 공격할 생각이었지만 멀쩡한 사람 앞에서 피 튀기는 상황을 보이는 건 좋지 않을 거란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었다. 여차하면 위급 상황일 때 바로 퍼블리만 데리고 도망갈 경우도 생각해 놨다.

우선 자네가 얘기하기 전에 자넨 그렇다쳐도 우리 둘이 신탁에서 가리키는 사람인 게 확실한가? 마을 입구에서 우연히 만난데다가 이름도 듣기 전엔 몰랐잖나.”

신탁이 내려올 때 모습 또한 성수로 만든 거울을 통해 나타났슴다. 패치가 나올 때 한바탕 난리가 났었죠.”

묘하게 상상이 가는 당시 신관들의 상황과 성수가 따로 남아있었다는 거에 대한 언짢음에 눈을 좁힌 패치는 툭 쏘아붙였다.

그것만으론 부족하네. 증거를 대게.”

성수로 만든 거울임다? 엄청 대단한 거라고요?”

그건 종교계에서나 통할 물건이지, 난 마법사고 옆은 민간인일세.”

이 의심 많은 마법사님을 어떻게 만족시켜야 할까~”

이런 의심을 예상했는지 대사제는 그리 난감해 보이는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뭔가를 기대하고 즐거워하는 얼굴이었다. 패치를 보고 있던 노랗고 검은 눈이 그대로 구슬처럼 굴러 퍼블리를 향했다. 멀뚱히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퍼블리는 시선이 제게 오자 반사적으로 긴장했다.

퍼블리님, 혹시 5년 전의 사건에 대해 아십니까?”

? 5년 전에요?”

종교와 마법에서 꽤나 떠들썩했고 워낙 큰 사건이라 두 분야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물론이고 소수민족들에게도 유명했던 사건인데 모르십니까?”

그 땐 워낙 바쁜 일이 있어서...죄송해요.”

아뇨, 아뇨 죄송할 거 없슴다, 바쁘셨다면 당연히 모를 수도 있죠~”

둘의 짧은 대화가 끝나고 노란 눈이 다시 굴러 패치에게로 향했다. 패치는 왜 대사제가 그 때의 얘기를 꺼냈는지 반응을 더 살펴보기 위해 잠자코 있었다.

하셔도 됩니다.”

?”

뭐긴요? 방금 제가 말한 사건 말임다. 제 입으로 말하는 것보단 스스로 말하시는 게 더 정확하지 않나요?”

자신에게 전혀 좋을 것 없는 얘기를 꺼내는 의중이 의심스러웠지만 한편으론 퍼블리가 그에 대해 모른다는 거에 난감함을 느끼던 패치는 일단 말해두는 게 퍼블리의 입장에서도 눈앞의 대사제와 신탁에 대한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퍼블리는 불안함에 눈을 깜빡였다.

“...5년 전 나는 저 녀석에게 마력구속구가 채워진 채로 납치당했었네.”

?”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건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전 날 자네를 만났을 때처럼 술을

, 잠깐만요, 마법사님! 다시 한 번 얘기해주세요!”

패치는 꽤나 충격적인 내용이니 이런 반응을 보일 법하다고 생각하며 다시 한 번 말해줬지만 퍼블리는 여전히 당황스러워하며 연신 네? ? 하면서 반문하기 바빴다. 왜 이러나 싶었던 패치도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자네 제대로 듣고 있나?”

입만 뻐끔거리셔서 모르겠는데요...”

?”

이게 무슨 소린가. 입만 뻐끔거렸다니 패치 본인은 그런 적이 없었다. 뭐라 더 말하려던 순간 묘한 웃음을 짓고 있는 대사제가 눈에 들어온 패치는 눈가를 찌푸렸다.

자네 내가 지금 하는 말을 따라 해보게. 혹시 소리가 안 들리면 입 모양을 따라하게.”

당황스러워하던 퍼블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에 잔뜩 힘을 주고 패치의 입을 쳐다봤다.

나는

나는!”

저 대사제에게

저 대사제에게!”

납치당했다.”

도아? , 돌아?”

입모양을 보면서 따라 해도 납치 부분에서 전혀 다른 단어가 나왔다. 뭐가 이상한지 제대로 눈치 챈 패치는 대사제를 노려보며 이 현상에 대해 당장 털어놓으라는 눈빛을 보냈다.

제가 말한 신탁 기억납니까?”

사람 넷을 말하는 대목 말인가, 아니면 여행에 관한 내용 말인가.”

여행에 관한 내용입니다. 정확히는 세계의 정상화와 함께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무엇인지 깨닫기 위한 여행을 떠날 것이라는 부분이죠.”

그게 이 현상과 무슨 연관이 있느냐고 묻기 전에 먼저 말이 이어졌다.

특정한 과거는 당사자들끼리가 아니면 다른 동료들에게 전해지지 않습니다. 저와 패치가 관련된 그 과거는 우리 둘이 당사자이니 당사자끼리는 알지만 그 때의 당사자가 아닌 퍼블리님께 아무리 말해도 방금처럼 전해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특정함의 기준은 신탁의 여행과 관련되어있죠.”

대사제는 여전히 뜻 모를 묘한 미소를 지으며 즐겁다는 어투로 말을 꺼낸다.

, 그 과거는 세계의 정상화,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가, 자신이 무엇인가 이 세 가지 중 하나 혹은 둘 아니면 전부와 연관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 말에 패치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졌다. 전해지지 않는다면 퍼블리는 저 대사제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적의를 보이는 마법사와 능글맞게 웃으면서 다가가는 대사제만 눈에 남는다. 저 녀석을 믿으면 안 된다고 백 번 말해봤자 이유를 모른다. 아무리 말해봤자 이유가 없으면 납득하지 못하는 게 사람의 당연한 심리였다.

패치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다.

이대로 떠나 아무것도 모르는 퍼블리를 포함한 다른 한 명도 저 녀석과 다니게 하느냐, 신탁대로 같이 다니면서 끝없이 경계하느냐.

Posted by 메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