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치는 한 번 더 확인 차 종이에다 써서 보여줬지만 퍼블리는 무슨 내용이 써져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고 했다.

, 그럼 퍼블리님께도 신탁 내용을 알아야하니 다시 한 번 말해드리겠습니다.”

패치는 예언을 들으면서 그 내용을 다시 한 번 곱씹었고 예언을 처음 듣는 퍼블리는 가장 먼저 놀라움과 당혹감을 느꼈고 그 다음엔 상상을 기반 한 기대감이 차올랐다.

정말 제가 신탁에서 말하는 사람이에요?”

그렇습니다. 성수로 만든 거울로 모습이 떠올랐으니 확실하죠.”

...”

누구라도 당신은 특별하다는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한 평생 마을 밖으로 나가지 않은 사람이나 동화책을 읽는 어린아이도 신탁에 대한 낭만이 있었다. 그러한 낭만은 퍼블리에게도 있었다. 다만 얼떨떨함이 가장 크게 자리를 잡았으니 가만히 감탄을 흘리기 바빴다.

그런데 패치께선 같이 여행할 생각이 없다고 하시네요.”

? 왜요?”

제가 예전에 한 일 때문에 미운털이 콕콕 박혔거든요~”

능청스레 말하는 모습에 패치의 표정이 절로 찌푸려졌다. 퍼블리는 그 미운털 박힌 일이 아까부터 패치가 전하려고 했지만 전혀 전해지지 않은 그 이야기라는 걸 어렴풋이 눈치 챘다. 대놓고 대사제를 못마땅해 하는 패치에게 그래도 같이 가면 안 되냐고 물을 게 못 된다는 건 퍼블리도 알고 있었다. 그런 퍼블리의 기색을 눈치 챈 패치 또한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대로 저 능구렁이 같은 녀석에게 간다면 말려드는 게 분명한데 그렇다고 내버려두기엔 퍼블리가 위험해질 게 훤했다.

“...자네에겐 빚이 있었지.”

빚이요?”

예전에 자네에게 실례를 한 이후에 부탁을 하나 들어준다고 하지 않았나.”

퍼블리는 기억을 더듬었다. 술로 인한 테러 사건 이후로 시간이 지나서 술 취한 상태가 아닌 멀쩡한 패치의 말투와 행동이 익숙해졌을 무렵에 패치가 나중에 다시 만날 때 부탁을 하나 들어주겠다고 한 후 떠난 일이 있었다.

, 혹시 제가 부탁하면 같이 가실 건가요?”

그래.”

하지만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부탁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단호한 퍼블리의 말에 패치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고 대사제 또한 묘한 표정을 지었다. 신탁을 들은 퍼블리는 사실 패치와 대사제, 이름도 얼굴도 나중에 알게 될 사람 한 명과 여행하는 상상을 떠올렸지만 한 사람이라도 그 여행 자체가 불편하다면 의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행은 모두가 즐거워야 의미가 있어요. 그러니 싫어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전 신탁이라도 이 여행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이런 상냥함과는 거리가 먼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예상치 못한 반응입니다. 지도제작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 입장에선 이만큼 좋은 기회도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 제가 지도제작자 지망생인 건 어떻게 아셨어요?”

저는 사제, 패치는 마법사니 나머지 두 개 중에 하나일 게 분명하고 가지고 계신 짐들을 보면 종이가 가득이니 지도제작자일 것 같았거든요.”

나머지 하나는 용사라는 걸 눈치 챈 패치는 의문이 들었다.

용사는 어디에 있나?”

여행에 관심이 생기셨슴까?”

틈만 나면 끌어들이려 하지 말고 묻는 말에나 대답하게. 이 마을에 두 명이나 올 줄 아는 것처럼 보였고 나한테 끈질기게 사제는 물론이고 성기사들까지 보낸 걸 보면 용사 위치는 진즉에 파악해둔 모양이던데 보통 용사를 가장 먼저 영입하려 하지 않나.”

잘 아시는군요. 하지만 저희 입장에선 갈등의 골이 깊이 박힌 분부터 어떻게 설득해야한다고 생각하더군요.”

설득의 방식이 영 글러먹었지만 따지는 걸 포기한 패치는 고민했다. 퍼블리는 누구 한 명이라도 원치 않는 여행이라면 자신도 함께하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나머지 한 명은 어떨지 몰랐다. 보통 동화에서도, 여태까지의 역사에서도 여행이나 모험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역할에 위치한 게 용사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용사가 어떤 선택을 할지 몰랐다. 하지만 높은 확률로 받아들일 게 훤했다. 누가 용사가 된다는 데 마다하겠는가. 거기까지 생각한 패치는 한숨을 쉬었다.

“...일단 용사라는 사람을 만날 때까진 동행하겠네.”

대사제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고 퍼블리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패치는 우선 용사를 만나고 판단하겠다는 생각으로 꺼낸 말이었다. 용사에게 설명할 수 있는 대로 설명하고 충고할 생각이었다. 충고를 듣고도 여행을 하겠다고 한다면 그 이후부턴 패치가 더 이상 관여할 영역이 아니었다. 상대가 납치범에 죗값도 제대로 안 치른 종교인이지만 충고를 듣고도 굳이 그러겠다는 사람의 뒷목잡고 끌고 나오는 것만큼 기력낭비가 없었다.

자네는 어쩔 텐가. 사실 이대로 떠나는 게 제일 좋을 거네만.”

저도 갈래요!”

옳은 말과는 별개로 사실 퍼블리는 여행 자체에 대한 기대가 매우 컸다. 그러니 비록 임시여도 이런 패치의 말이 굉장히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 퍼블리의 기쁨을 느낀 패치는 씁쓸한 감정을 내리눌렀다. 패치가 보기에는 이 여행 자체가 껍질만 예쁘고 속은 썩어문드러진 열매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쯤에서 사람의 진심과 수많은 말은 통한다며 놀릴 법한 대사제는 뜻 모를 눈으로 패치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마치 관찰하는 것 같은 눈빛에 패치의 표정이 당연한 수순으로 좋지 않아졌다. 기쁜 마음이 가득한 퍼블리는 이런 둘 사이의 어두운 낌새를 눈치 채지 못하고 짐을 챙겨들며 대사제에 물었다.

그러고 보니 대사제님의 이름은 뭐예요?”

대사제는 그 질문에 눈을 깜빡이며 집요한 시선을 거뒀다. 그리고는 아까처럼 눈을 곱게 접어보이더니

제 이름은 치트입니다. 역할이 아닌, 이름으로 불러주십쇼.”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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