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블리는 어색한 웃음을 머금으며 노력해보겠다고 했고 패치는 아예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짐을 챙겨들었고 패치의 빠른 걸음을 선두로 마을을 나섰다. 밖으로 가는 내내 패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치트는 그저 웃고만 있었으며 퍼블리는 기쁨을 잠시 깊숙이 넣어두고 둘을 살펴봤다.

퍼블리의 입장에선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우선 먼저 서로의 태도를 보는 걸로 둘의 선, 정확히는 패치의 선을 체감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퍼블리는 넣어둔 기대감이 천천히 사그라드는 걸 느꼈고 패치는 후회가 안쪽부터 서서히 쌓이는 걸 느꼈다.

예전에 볼 때보다 더 살이 쪽 빠지셨네요. 그러니까 그 때 가만히 있었으면 이렇게 살도 빠질 일 없었을 텐데 정말 슬프네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꺼내는 걸 봐줄 패치가 아니었다. 마을에 나오자마자 온갖 마법들이 눈 아프게 쏟아졌다. 사제들이 기본적으로 쓸 수 있는 방어막이 위태롭게 막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패치는 마법만 쓰는 게 아니었다. 그대로 뛰어가 방어막을 뚫으며 물리 공격까지 감행했다. 이 난장판에 낄 수 없고 끼어들 이유가 없는 퍼블리는 엉거주춤 선 채로 이 사태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긴 다리를 열심히 움직인 덕분에 공격을 피한 치트는 그대로 날아오는 패치의 주먹을 가볍게 감싸 잡아 오히려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 끌어당겨진 패치는 그 반동을 이용해 명치에 주먹을 꽂아 넣었고 쿨럭 기침을 터뜨린 치트는 그대로 나머지 손도 잡아채고 체중을 실어 패치 위로 쓰러지면서 쓰러뜨렸다.

패치가 이렇게 작으니 쉽게 쓰러지는군요.”

안 비켜?!”

비키면 공격할 거잖슴까~”

천천히 고개를 숙이는 치트에 패치의 눈에 불이 더 크게 튀었다. 그대로 머리를 들어 박치기를 시도하려 했지만 치트의 입이 움직이는 게 더 빨랐다.

기억을 잘 더듬어보세요.”

?”

전해지지 않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눈을 감고 앞에 있는 걸 묘사해봐야 의미가 없잖습니까?”

뜻 모를 눈빛과 미소가 패치의 눈 바로 앞에 있었다. 치트가 꺼낸 말은 굉장히 의미심장했지만 우선 자신을 깔고 있는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패치는 다리를 휘둘러 치트를 제 위에서 치웠다.

쓸데없는 입 그만 놀리고 안내나 제대로 하게.”

차인 옆구리를 부여잡으며 우는 시늉을 해봤자 날아오는 건 반대쪽 다리였다. 다시 일어난 치트는 패치의 말을 충실히 들으며 옆에 바짝 섰다. 말만 충실히 들었다.

사람어깨 팔걸이로 쓰지 말고 얼른 꺼지게.”

“....”

팔이 거추장스러우니 잘라달라는 의미였나?”

“....”

침묵은 긍정으로 알겠네.”

말만 안 했지 행동으로 패치의 속을 긁어내리고 있었다. 옆에서 보는 퍼블리도 아슬아슬한 심정으로 걷고 있었다. 분명 온 사방이 멀쩡한 흙바닥인데 옆에 절벽을 둔 기분이었다. 입을 다문채로 패치의 어깨에 팔을 두르던 치트는 명치를 맞고서야 물러났다. 패치는 마음 같아선 자신이 말한 대로 하고 싶었지만 퍼블리의 눈을 존중하기로 했다.

이번에 명치를 때린 게 효과가 좋았는지 그 이후로 치트는 얌전히 있었다. 입도 열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패치 또한 먼저 말을 거는 성격이 아니었다. 침묵이 무겁게 깔리자 이런 분위기에 익숙치 않은 퍼블리는 식은땀을 흘렸다. 퍼블리는 이제 이 둘에 대한 기대보단 앞으로 만날 용사에게 기대를 걸었다. 용사라는 역할을 부여받을 정도면 이 분위기를 꽤 환기시키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아직 겪지 않은 일이지만 이런 퍼블리의 기대는 과하게 충족되었다.

저기! 두 분은 어쩌다가 만나게 되셨어요?”

아까 전해지지 않았던 내용이 그 내용일세.”

, 그럼 어쩌다가 사이가 안 좋아지신 거예요?”

그 내용도 마찬가지지.”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 이야기라도 하려고 했지만 꺼낸 주제마다 막히자 퍼블리는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냥 묵묵히 따라가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 패치가 돌연 물었다.

그러고 보니 지도제작자 지망생이라고 했나?”

? !”

마법과 기계가 충돌이 멈추지 않은 상태고 종교까지 나선 시기엔 힘겨운 직업이군. 굳이 지망하는 이유가 있나?”

예전에 지도를 보고 땅 위에 있는 모든 길을 한 눈에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갈 수 있는 모든 땅의 지도를 만들어서 합치면 멋질 것 같아서 직접 지도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둘은 순조롭게 이야기를 하며 가라앉은 분위기를 없앴다. 지도에 관한 이야기에서 자연스럽게 지냈던 마을의 이야기와 식당 딸린 여관에서의 일화까지 나왔다. 패치만큼 술버릇이 장난 아닌 사람들도 있었다는 대목에서 패치는 침묵했고 퍼블리는 침묵을 눈치 채지 못했는지 신나게 얘기했다. 한결 편안하고 웃는 얼굴로 열심히 말하던 퍼블리는 앞쪽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잠깐 말을 멈추고 고개를 바로 했다. 그러자 묘한 웃음을 머금고 있는 치트와 눈이 마주쳤고 너무 둘끼리만 대화했나 싶어 민망함을 담아 마주 웃었다.

퍼블리님이 있어서 정말 다행임다. 만약 둘만 있었다면 난리도 아니었을 겁니다.”

이미 난리가 났지 않았나 싶었지만 퍼블리는 애써 그 말을 담아두었다. 이 순간을 시작으로 대화의 흐름이 패치와 퍼블리에서 퍼블리와 치트로 넘어갔다. 소소하게 신전에선 무슨 일을 하는지와 성수로 만든 거울의 기능과 효과의 이야기에 퍼블리는 신기했는지 집중에서 들으며 궁금한 걸 물었고 치트는 성실히 대답했다. 패치는 그런 둘을 보고 있다가 그다지 끼어들고 싶은 주제가 아니었는지 말없이 걷기만 했다. 신탁이 여행을 할 생각이 없는 것과 별개로 어찌됐든 여행을 시작하면 아무리 맞지 않는 사람이 있어도 다른 자리에 서로의 관계가 잘 굴러가게 만들 사람들을 뽑아놓아 여행이 이어지게 한 걸까 생각하며 신탁의 내용을 다시 한 번 곱씹었다. 패치는 반발 가득했던 처음과 달리 나머지 용사에 대해서 꽤 궁금해졌다.

Posted by 메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