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의 사건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인 사람들은 이번 신전에서 내세운 상금이 굉장히 꺼림칙하게 느껴졌고 진상을 그나마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대놓고 표정을 구겼다. 얼굴에 철판을 깔은 사람들은 상금에 욕심을 부렸지만 그 중에서도 조금 양심의 가책이라는 걸 느낀 이들도 있었고 방금 나무에 매달아놓은 사람처럼 이름만 알고 자세히 모르는 사람들은 거리낌이 없었다. 그리고 마을 안에는 저런 사람들이 모두 있었다. 최소 한 명쯤은 납치 시도를 하거나 대놓고 끌고 가려고 하는 사람이 마을에 있다는 얘기였다. 그 쯤 되면 패치에겐 차라리 야영이 더 편했다.

홀로 밤을 보내고 불편한 곳 없이 일어난 패치는 마저 길을 걸었다. 당장의 목적지는 없었지만 움직이지 않고 한 군데 머무르면 아예 성기사단들이 몰려올 테니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마법서점을 발견하게 되면 변신마법이 있는 마법서를 살 거라는 목표를 세우고 야영흔적들을 지웠다. 가급적 낮에만 잠깐 마을을 들르고 해질녘에는 밖으로 나와 야영할 자리를 찾는 식으로 흔적을 최소한으로만 남기거나 아예 지우니 쉽게 못 찾아내는지 근 며칠간은 성기사를 포함한 신관들이 패치를 찾지 못했다. 신을 믿는 이들이 신탁이 내려온 이상 쉽게 포기할 리가 없지만 사람들은 언젠가 지치기 마련이었다. 거기다 단순히 신전으로 데려가면 상금을 준다고만 발표했으니

갑자기 할 일이 많아졌군.”

변신 마법서와 더불어 꼼꼼히 흔적을 지우며 종교 측에 내려온 신탁이 무엇인지 파고들기가 추가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패치는 변신 마법서를 살 이유가 없어졌다. 거기에다 신탁 내용에 대한 뒷조사를 하지 않아도 정확한 내용을 알게 됐다.

 

오랜만임다?”

알고 있는 공격 마법을 난사하지 않음으로써 패치는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했다.

자넨 왜 여기있나?”

~ 그렇게 거리 두는 말투 너무 싫어요~? 예전처럼 친근하게 말해줘요.”

패치는 다시는 술에 입도 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신전엔 전부 눈도 없고 판단력도 없는 이들만 모였나? 마법사 하나 잡아 가둔 대사제를 최소한의 처벌도 없이 놔두다니.”

오우! 눈치가 빨라요~”

눈치 빠르다고 감탄하기 이전에 여전히 대사제들이 입는 옷을 입고 있는 자신을 보게.”

패치의 행적을 뒤쫓기 힘들어졌다는 걸 눈치 챈 종교 측은 이대로 추적이 완전히 끊기기 전에 강수를 뒀다.

패치가 신전으로 안 오니 저를 보내지 뭡니까.”

부족함을 고쳐나간다고 외치는 종교 측은 자잘한 엿을 꾸준히 보내다가 결국 이렇게 큰 엿을 보냈다. 패치는 주위를 돌아보며 다시 한 번 인내심을 발휘했다. 여긴 마을 안의 사람 많은 가게 안이었다.

패치는 짜증과 분노를 비롯한 기타 감정들이 들끓어도 주변에 사람이 많으면 말이 이렇게 차분하게 나갈 수 있구나 싶은 생각으로 머릿속을 환기시켰다. 하지만 패치의 생각에 틀린 부분이 있었다. 차분한 게 아니라 싸늘한 거였고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둘 사이에 흐르는 기세가 만만치 않은 걸 눈치 채고 얼른 자리를 피해 가게 내에서 끝과 끝인 자리로 간지 오래였다.

단 둘이 얘기할만한 자리로 옮길까요?”

패치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 무언가를 준비해둔 사람이나 그 자리로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허락한 걸로 알겠다며 팔을 잡아 끌 테지만 상대도 패치처럼 그렇게 물은 이후론 아무 말도 안 하고 빙긋 웃고 있기만 했다. 반응을 보려던 패치는 답을 내놓지 않으면 정말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모습에 고민에 빠졌다.

단 둘이 얘기할만한 자리가 어디지?”

허락임까?”

두 번 말하게 만들지 말게.”

뭐가 그리 좋은지 계속해서 웃는 대사제는 창문 너머 맞은편의 식당을 가리켰다. 얼핏 보니 사람이 별로 없고 각각의 탁자들이 제법 띄엄띄엄 떨어져있어 조금 작은 목소리로 얘기하면 옆에 들리지 않을 법 해 보였다.

그럼 가실까요?”

덤덤하게 속으로 평가하고 있는 패치의 반응이 긍정적으로 보였는지 바로 그렇게 물어보자 패치는 아무 대답도 없이 먼저 밖으로 나갔다. 그런 반응을 예상하기라도 한 건지 대사제 또한 아무 말 없이 뒤따라 나갔다.

~ 전망 좋은 창가자리군요.”

창가자리를 고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옆이 창문이니 옆자리에 탁자가 하나 없는 셈이었고 문보다 더 확실한 도주로였기 때문이었다.

신탁 내용이 뭐지?”

여전히 돌직구를 쏘시네요.”

신전에서 그토록 싸고도는 자네까지 왔다면 그만큼 신탁이 중요하단 거겠지.”

신을 믿는 이들에게 신탁만큼 중요한 건 없잖슴까?”

자네한텐 아니지.”

패치는 어느새 제 옆에 놓인 찻잔을 들어 손잡이를 톡톡 두드렸다.

자네가 대체 뭘 가지고 있기에 날 감금시켜도 신전에서 싸고도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자네는 신전에 비해 우위에 있는 입장이라는 거지. 그런 자네가 신전에서 중요시 여기는 신탁 때문에 나왔다는 건 자네에게도 그 신탁이 중요하다는 거고.”

흔들리는 차를 한 모금 넘긴 패치는 눈을 동그랗게 뜬 대사제를 지켜봤다. 분노와 짜증은 식당 안으로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가라앉았고 신탁에 대한 궁금함이 떠오른 덕분에 싸늘함도 가셨다. 패치는 이렇게까지 자신을 괴롭히는 신탁 내용을 굳이 뒷조사하지 않고 대놓고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찻물처럼 흘려보내고 싶진 않았다.

역시 패치는 눈치가 빨라요. 안 그래도 빨리 알려드리고 싶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볼이 살짝 눌리게 손 위로 얼굴을 괴어본 대사제는 예쁜 웃음을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제 이름 불러주실래요?”

그리고 곧바로 날아오는 얼음 가시를 피하기 위해 바로 고개를 숙여야했다.

웃기지도 않은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신탁 내용이나 말해.”

가라앉았던 짜증이 바로 올라와 다시 싸늘함도 돌아왔다. 패치는 눈가를 찌푸리며 대사제를 째려봤지만 까만색만 보이는 머리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 그 아래에 있는 표정을 볼 수 없었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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