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어이없다는 눈으로 쏘아보는 상대에 전달역할을 맡게 된 홀리는 식은땀을 흘리며 속으로 왜 자신이 이 역할을 맡아야하는지와 더불어 이대로 죽는 게 아닌가하는 불안을 애써 가라앉히고 있었다.
인간들의 사회를 이루는 데 대표적인 세 가지는 마법, 기계, 종교였다. 마법과 기계는 생활에 밀접한 데다 각각의 능력 원리에 마찰을 빚는 경우가 많아 갈등의 골이 꽤 깊은 편이었다. 하지만 두 세력 간의 갈등의 골도 잠시 덮어둘 일이 생겼다.
종교 내부에서 지도자가 바뀌었는지 신의 은총 아래서 모든 이들을 포용한다는 뜻을 세운 채 갈등에 관여를 하지 않고 관조적인 입장을 취하던 종교계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세력 외엔 전부 배척하는 성향을 띠기 시작한 걸 계기로 종교계는 나머지 두 세력의 공공의 적이 되어버렸다. 내세우는 뜻은 표면적으로는 같았지만‘신의 은총 아래서’이 부분을 해석하는 게 바뀌었다.
즉, 신의 은총 아래는 자신들 종교계를 뜻한다는 거였고 종교계 내부에선 모든 이들을 포용하지만 종교에 속하지 않은 외부 세력들은 이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태도였다. 물론 대놓고 이런 주장을 외친 게 아니었다. 다만 눈에 띌 정도로 그 태도가 보였을 뿐이었다.
여기까지였으면 누구나 다 알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고 쉬쉬하는 행동을 취했을 분위기였다. 종교계가 공공의 적, 특히 마법 세력과 대놓고 서로 경계할 정도의 사이가 된 사건이 하나 있었다. 최근에 들어서도 여전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유명하면서도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사건의 시작은 이제 막 성인이 된 신관이 대사제의 직위에 오른 것으로 이는 종교계 내부에서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꽤 많은 덕을 쌓고 오랜 수행을 거쳐야 앉을 수 있는 게 대사제의 자리였는데 수습기간도 거치지 않고 성인이 되자마자 그 자리에 앉으니 내부에서 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이 젊은 대사제가 벌인 일로 인해 종교계뿐만 아니라 그 외의 모든 사람, 특히 마법 세력이 큰 충격에 휩싸였다.
바로 어떤 마법사에게 마력구속구를 채워놓고 소유하려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마법 세력은 즉시 항의를 넣어 이 대사제를 비난하고 이런 사람을 대사제로 뽑은 종교계를 비판했다. 그 대사제가 누구인지 밝히라는 목소리들도 많았지만 종교계는 오히려 이 대사제의 정체를 숨기는 건 물론, 사건 자체를 덮으려고 들었다. 이에 마법 세력뿐만 아니라 기계 세력과 더불어 자급자족 하는 소수민족들 또한 크게 분노하며 종교계에 등을 돌렸다.
그 마법사는 어떻게든 탈출했는지 신전에서 굉장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얼굴을 드러냈고 동시에 신원이 밝혀졌지만 여전히 이번 사건을 일으킨 대사제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신탁이 내려왔습니다.”
그 마법사가 바로 홀리를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쏘아보고 있는 상대였다. 같은 대사제지만 홀리는 그 사건의 대사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연관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게 종교계 전부가 공범이나 마찬가지였다. 몇 년이 지난 일이라 해도 사과조차 하지 않았는데 다짜고짜 찾아와 신탁이 내려왔으니 신전으로 와달라고 요청한다면 그에 대한 대답으로 제 목이 잘려 돌아가도 할 말이 없는 상황에 처한 홀리는 이미 죽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얼굴색이 창백했다.
“...내가 누군지 알고서도 그런 말을 하는 건가?”
“시, 신탁은 절대적입니다!”
“그건 자네들에게 절대적이지 나에겐 해당사항이 아니네만.”
“저희와 신은 별개입니다! 신께선 저희의 부족함을 일깨워주시고 저흰 그것을 고쳐나가는 사람입니다!”
“안 고치고 덮어두려는 사건의 산증인이 바로 나일세.”
“부디 저희가 아닌 신의 말씀을 들어주시길 간청합니다!”
다시 한 번 어이없는 눈빛이 쏘아져왔지만 홀리는 차마 눈도 못 마주치고 식은땀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사실 홀리는 그 사건에 대한 이야기만 알지 그 안의 자세한 상황은 물론이고 뒷이야기도 잘 모르는 축에 속했다. 마력구속구에 당한 채 신전으로 끌려온 마법사는 절대 얌전히 있지 않았다. 마법을 못 쓰게 하려고 채운 마력구속구이건만 대체 어떻게 마법을 쓸 수 있던 건지 마법으로 신전에 제대로 된 깽판을 쳤다. 건물 벽체를 무너뜨리는 건 기본이요 중요 예물 또한 한 줌의 파편으로 만들어 놓는 걸 시작으로 신전 내부를 난장판으로 만들어 놨다. 거기에 한 술 더 떠 단순히 부수는 것만으로 그만두지 않고 어디서 찾아냈는지 성배에다 성수를 담아 선반처럼 층이 나눠져 있는 투명상자를 허공에다 만들어내 그 안에 애매하게 걸쳐 넣어 놨다.
상자를 완전히 열면 안의 투명한 층들이 무작위로 움직여 성배가 튕겨나가게 설계해놓아 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반만 열거나 아주 조금 열면 성배가 기울어져 성수가 그대로 쏟아지게 걸쳐놔 성배를 제외하면 다른 모든 그릇에 담으면 즉시 사라지는 성수의 특성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다시 만들기 까다로운 데다 귀한 성수고 예배에 반드시 필요해 신관들은 발만 동동 굴렀다. 물론 이런 일을 벌인 마법사는 알 바가 아니었다.
“신탁 또한 내 알 바가 아니지.”
“이런 무례한 녀석을 봤나! 그래봤자 한낱 인간, 그것도 마법사 주제에 그딴 말을 지껄이다니! 그 누구도 신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다!”
속을 긁는 말을 일부러 꺼내자마자 존대도 때려 치고 고함치는 홀리는 곧이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조용히 하늘을 날았다. 신관들이 모두 입는 하얀 옷이 날아가면서 펄럭이자 지나가다가 그 모습을 본 여행자들이 우스갯소리로 천사 날개는 천으로 되어있다며 더 멀어져 안 보일 때까지 농을 주고받았다.
“거기 청년! 자네가 방금 천사 만든 마법사 맞지?”
“천사는 모르겠고 사람 하나 날려 보낸 마법사라면 날세.”
“젊은 청년에 왜 늙은이 말투를 쓰고 있어? 아무튼 재밌는 광경 보여준 답례로 좋은 정보 하나 주지. 우리 여행 목적이라고도 할 수 있어.”
대사제 하나를 날려 보낸 붉은 머리 마법사는 흥미 없는 표정으로 돌아봤다.
“혹시 요정에 대해 들어본 적 있나?”
“요술을 부리는 난쟁이들을 말하는 건가.”
“난쟁이는 모르겠고 적당히 사람처럼 생겨서 잠자리 날개나 투명한 나비 날개 달린 게 바로 요정이지. 우린 요정을 찾고 있어.”
“요정들은 가루를 뿌려서 자기네들 사는 데랑 모습도 감춰서 살고 있다고들 하지. 우리의 목적은 바로 그 가루고. 어때, 흥미 돌지 않나?”
마법사는 전혀 흥미 돌지 않는다는 얼굴로 대답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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