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치 좋죠?”

갑자기 밖이 보이게 됐는데 어떻게 된 거예요?”

마법진을 통해 맨 꼭대기로 올라온 거죠.”

마법진이라는 말에 퍼블리는 발밑의 그림을 내려다보며 뒤로 물러섰다. 흙도 밟아온 신발 밑창이 제법 지저분할 텐데 얼룩도 하나 없었다. 신기함에 마법진을 계속 살펴보던 퍼블리는 안내자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높은 곳에서 보는 경치 보러 온 거 맞죠?”

, 맞아요.”

다시 생각해봐도 높은 곳을 고르는 안목이 좋네요. 사실 여기 말고 다른 높은 곳들도 많을 텐데 여기를 고른 이유가 따로 있나요?”

난간 가까이로 다가간 퍼블리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사람들과 물고기들이 보였다.

물고기들이 아래에서 보일 것 같아서요.”

그리고는 천천히 경치를 감상하며 종이와 펜을 꺼내들었다. 우선 먼저 보이는 걸 간략하게 그리고 다른 방향으로도 가며 고개를 들고 숙이고를 반복했다. 그럴수록 종이에 그려지는 게 많아졌다.

열심이네요?”

곧 해가 지니까 안 보이기 전에 최대한 그려놓게요.”

, 해가 져도 걱정은 마세요! 오히려 해가 진 광경이 더 볼만할 겁니다.”

오히려 낮보다 밝을 거란 말에 퍼블리는 의아해하면서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림들을 상세하게 완성하고 있을 때쯤 시야가 꽤 어둑해지더니 갑자기 밝아졌다. 해가 지니 건물 천장에 달려있는 등에 불이 들어온 거였다.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까맣게 탄 하늘을 본 퍼블리는 다시 난간 너머를 바라봤다.

!”

야경이 끝내주죠?”

불이 들어오면서 하늘처럼 까만 땅과 대비되어 도시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퍼블리는 그리던 것도 멈추고 도시의 야경을 감상했다. 안내자는 그런 퍼블리를 구경하고 있다가 종이로 시선을 돌렸다. 이 건물을 중심으로 도시를 그린 밑그림은 길이 제일 강조되어있었다.

그림 좀 봐도 될까요?”

? , .”

안내자는 종이를 주워들어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도 천천히 그림들을 뜯어보는 게 보일 정도로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퍼블리는 어쩐지 기분이 좋으면서도 조금 부끄러웠다. 완성한 것도 아니지만 저렇게 자세히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기뻤고 안내해준 사람이니 거절하는 건 아닌 것 같았고 완성한 게 아니라서 아직은 보여주기 그랬기 때문에 안내자의 반응을 살폈다.

그러고 보니 서로 소개를 안 했네요? 제 이름은 퍼블리 셔예요.”

퍼블리의 소개에 그림을 보던 안내자가 고개를 들고 씩 웃었다.

전 페르스토입니다.”

 

반짝 눈을 뜬 용사는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이제 막 해가 진 이후라 창밖의 하늘은 어둑했지만 사람들이 킨 불빛들 덕분에 낮보다 더 환해보였다. 방 밖으로 나온 용사는 복도를 둘러봤다. 사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자다시피 했으니 다른 일행들의 방이 어느 방인지는 몰랐다.

우웅~”

조용한 복도 가운데에 선 용사는 고개를 기울이며 눈을 깜빡였다. 무언가를 생각하는가 싶더니

반짝반짝 축제~!!”

일행 그 누구보다 행동력이 빠른 용사는 단숨에 밖으로 뛰어나갔다. 퍼블리가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면 벌어진 거였다. 길거리는 불빛 덕분에 환했고 아예 그 빛을 이용해 시선을 사로잡는 이들도 있었다. 그 중심에 흥겹게 춤을 추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 뒤로는 재주를 넘는 사람들도 있었다. 재밌는 광경에 용사는 당연히 그쪽으로 달려갔고 어느새 용사의 손엔 관광물품들이 가득했다.

비눗방울 피리를 열심히 불던 용사는 익숙한 뒷모습을 발견했다. 검게 솟고 뒤로 넘겨진 머리는 굉장히 눈에 띄었다. 치트였다.

우웅...”

하지만 용사는 치트를 바로 부르지 않고 침음을 흘리며 눈을 깜빡였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패치는 대화를 나눠도 상대의 이름을 잘 부르지 않았고 치트는 열심히 패치 이름을 부르고 퍼블리의 이름도 제대로 불러줬지만 본인이 본인을 스스로 부를 일이 없으니 이름을 잘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일행 내에서 퍼블리가 가장 많이 일행들의 이름을 골고루 불렀다. 용사에게 가장 많이 붙어있다시피 한 것도 퍼블리였으니 용사는 바로 퍼블리를 떠올렸다. 퍼블리는 치트를 이렇게 불렀었다.

...!”

아이고 용사님 아닙니까?”

단어가 완성되기 전에 치트가 잽싸게 달려와 용사의 입을 막았다. 도시의 길거리 한 가운데에서 사제님이라고 불렀다가 곧바로 일어날 난리가 눈에 훤했기에 치트의 뺨에 식은땀이 조금 흘렀다.

제 이름은 치트입니다. 치트.”

치투?”

치트.”

!”

앞으로는 부르려던 그 단어 빼고 편한대로 부르세요.”

퍼블리는 사제님 앞에 치트라는 이름을 꼬박 붙여 불렀지만 용사는 사제님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치트는 이름으로 불리는 걸 더 좋아한다면서 용사를 설득했고 용사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용사님이랑 단 둘이 대화하는 건 이번이 두 번째네요~?”

환각의 숲에서 처음 만난 이후론 치트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용사를 미아 방지 차원에서 자주 지켜보곤 했지만 정작 대화를 나눈 건 손에 꼽았다. 그마저도 용사님 그쪽이 아닙니다 하고 뛰어가지 못하게 잡아둔 거 외에는 대화라고 할 게 없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패치가 둘이서 제대로 대화하는 상황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자연스럽게 견제했기 때문이었고 치트 스스로도 용사가 일으키는 말썽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한 발짝 물러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가? 하며 고개를 기울이는 용사를 보며 미소 짓던 치트는 검은 색 가득한 가운데서 노란 빛을 띄우며 물었다.

그 때 빨간 머리 마법사님이 귓속말로 무슨 말을 했는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알려주지 말랭!”

해맑게 웃으며 외치는 용사에 치트는 그렇군요 하며 마주 웃어줬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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