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주인인가?”

주인은 아니지만 주인대신 맡고 있는 관리자입니다. 그보다 유명한 사람이 여기를 방문해주시다니 영광이네요.”

그저 오늘 막 도시에 도착한 여행객일세. 숙소를 소개받아 와봤는데 며칠 묵을 손님들을 받는 숙소는 아닌 것 같아서 나갈까 고민하던 참이었네만.”

오호? 그럼 추천자는 누굽니까?”

실내에 들어와서도 벗지 않는 선글라스를 노려본 패치는 이렇게 툭 대답한다.

어느 유명한 대사제.”

이제 여기서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웃음을 내려놓은 페르스토는 선글라스를 다시 고쳐 쓰며 한숨처럼 말했다.

자세한 설명이 더 필요하네요.”

그 전에 그쪽이 어떻게 날 아는지가 더 궁금하군, 내 기억으로는 오늘을 제외하고 지난 5년간 단 한 번도 이 땅을 밟은 적이 없는데 어떻게 날 알아본 거지?”

이 도시에서 한 번도 못 본 사람이기도 하고 방금 전까지 이름이 퍼블리인 분의 길안내를 하다 왔거든요.”

그 말에 패치는 나름 납득했다. 용사를 제외하면 일행 내에서 타인에 대한 경계가 제일 적은 사람이 퍼블리였다. 아마 여기저기 구경하거나 할 때 여행 왔다며 일행 내에도 마법사가 있다며 자신에 대해 얘기한 듯 싶다며 정답에 가까운 추측을 한 패치는 상대를 쭉 훑었다.

사제들 특유의 자세나 행동 버릇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마법사인지 기계관련 전문가인지는 알 수 없었다. 사실 마법 쪽인지 기계 쪽인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종교 쪽에 잡은 손이 있느냐가 문제였다.

그보다 여길 추천해줬다는 유명한 대사제에 대해서 자세히 좀 설명해주실래요?”

나에 대해 안다면 자동적으로 알 수밖에 없는 그 유명한 대사제라네.”

제가 원하는 건 분명 서로 사이가 나쁘다 못해 최악인 사이일 텐데 여길 소개받아왔다는 터무니없는 상황의 자세한 설명입니다.”

그렇담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자네 종교와 관련 있나?”

도시가 만들어진 이후론 5년 동안 성기사의 검은 물론이고 사제의 옷자락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네요.”

종교 측과 연관이 없다고 주장하는 말에 패치는 잠시 고민했다. 여러모로 의심스럽지만 퍼블리와 만났다면 5년 동안 도시에 발 한 번 안 들이다가 이번에 여행 일행까지 만들어서 들어온 자신에 대해 기본적인 궁금함이 있을 테니 어디까지 해소하는 게 좋을까 하다가 다시 한 번 확인 차 큰 정보를 던졌다.

신탁이 내려졌네.”

?”

신탁은 다짜고짜 여행해야할 사람들을 가리켰고 그 중에 내가 포함되어있었네.”

그 말을 들은 페르스토는 손을 입가에 가져가 톡톡 두드렸다.

혹시 퍼블리씨와의 관계가?”

빚을 졌지.”

인질이군요. 그런데 그 외에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묻는 저의가 뭔가?”

패치의 반문에 씩 웃더니

실력도 굉장하다 들었는데 인질이 있어도 그냥 대사제만 끌고 가서 묻어버리면 간단하잖아요?”

무시무시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사실 패치도 그런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지만 고민할 새가 짧았다. 바로 용사를 만나러 갔고 용사가 해맑게 붙잡으면서 화해를 외쳤기 때문이었다. 여행이라는 이름의 기회를 조건으로 거래도 했으니 그러기엔 곤란했다.

복잡하게 얽힌 게 더 있네.”

고생하시는군요. 일단 제가 종교 측과 관련이 있는지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곳은 잠입한 사제는 물론이고 웬만한 기계관련 사람들도 들어올 수 없거든요.”

마법사만 들어올 수 있는 건가?”

단순히 마법사만 들어올 수 있다고 콕 집기엔...애매하군요. 특정 조건을 만족해야 들어올 수 있습니다. 거기에 마법은 어쩌다보니 덤으로 딸린 거라 생각하면 편합니다.”

조건에 대해선 자세히 말해줄 생각이 없어보였기에 패치는 더 묻지 않았다. 덤으로 딸려 있다 해도 이 숙소가 마법과 연관되어 있다면 종교 측에 가장 적대적일 마법사가 주로 이용하는 비밀스러운 곳이라서 이번 기회에 내부를 살펴보기 위해 콕 집은 게 치트의 속셈일 수도 있었다.

그렇담 이 도시에 그 대사제가 들어와 있다는 얘긴데...마법사를 감금시킨 것도 그렇고 보통 담이 아니네요.”

지금은 깐족거리기까지 하니 담이 큰 수준을 넘었다고 하려던 패치는 굳이 꺼낼 필요 없는 얘기다 싶어 도로 집어넣었다.

그럼 일단 앉을까요? 이렇게 계속 서서 얘기할 만큼 짧은 대화가 될 것 같진 않아서요.”

그러기엔 의자와 문이 가깝군.”

누군가 엿들을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저 문의 역할은 단순히 사람 가려 받는 게 아니라 일종의 통로거든요.”

페르스토는 특유의 큰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 공간은 도시와 별개의 장소입니다.”

패치는 저렇게 내내 웃음 달고 있는 사람이 또 있구나라며 조금 뜬금없는 생각을 했다.

 

용사는 신나게 뛰어다니고 치트는 그런 용사의 뒤를 따라다녔고 퍼블리는 이제 막 숙소로 돌아와 자기 방으로 들어왔다. 아직 용사가 나간 줄 모르는 퍼블리는 도시를 그려놓은 종이들을 펼쳐 길을 살펴보고 대략적인 선을 그어놓으며 본격적으로 지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 집중하고 있던 도중 갑자기 창문 너머가 환하게 빛나더니 곧이어 쾅! 커다란 폭음이 들려오자 깜짝 놀란 퍼블리는 펜을 떨어뜨렸다. 펜을 줍고 일어난 김에 무슨 일인가 싶어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민 퍼블리는 떨어지는 물고기를 봤다. 그 다음으로 마주친 건 처음 보는 사람의 당혹스럽다는 표정이었다.

다들 나는 거 질렸엉~?”

이 광경을 보고 있는 건 용사와 치트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밖에 나와 있으니 바로 눈앞에서 물고기와 사람들이 떨어졌다. 비명소리 한가운데서 용사는 떨어지는 사람을 몇 명 받아냈고 치트는 부딪히지 않게 한 발 물러났다.

아프다고 울부짖는 소리와 살려달라는 비명이 끊임없이 울렸다. 땅 위로 걸어다니느라 떨어지지 않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여 부상자들을 부축했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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