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상황을 수습하던 도중 급하게 만든 치료 도구가 작동이 되자 모두 그쪽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다른 한쪽에서도 됐다며 사람을 불러모았다. 상황은 여전히 난장판이었지만 그나마 임시적으로 돌아가는 도구가 곳곳에서 생기고 아예 망가진 잠금장치를 부숴 창고에서 응급약들을 꺼내는데 성공한 이들이 열심히 뛰어다니며 상황과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수습됐다기 보단 부상자들이 힘이 빠져 비명을 지를 힘도 없어보였다. 부상자들을 부축하던 이들도 꽤 지쳐보여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상황을 지켜보던 치트는 빨간 머리카락이 한 올도 보이지 않자 살짝 눈을 찌푸렸고 골목에서 나와 땀을 닦으며 숨을 고르는 퍼블리에게 다가갔다.

갑작스런 사고가 정말 당황스럽네요.”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물병을 건네며 능청스레 말을 건 치트는 용사가 보이지 않는다며 걱정스런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물병을 건네받아 마시던 퍼블리는 아까 용사가 열심히 뛰어다니던 모습을 떠올리며 고개를 돌렸다. 치트의 말대로 멀리 뛰어갔는지 용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퍼블리가 신경 쓰는 건 용사가 아니었다.

“...이상해요.”

맞아요. 이상합니다. 도심 한가운데서 이런 일이 터지다니.”

전자기펄스라는 게 도구, 그러니까 기계들을 먹통으로 만드는 거죠?”

그렇습니다.”

그럼 왜

이어지는 퍼블리의 말에 치트는 눈을 살짝 크게 떴다가 아주 잠깐 눈가를 휘어보였다.

그렇군요. 정말 이상하네요~”

동조하며 의심스럽다는 듯이 입가로 올린 손은 웃음을 참느라 일그러진 입매를 교묘하게 가리고 있었다. 기대가 섞인 눈빛을 알아채지 못했는지 퍼블리는 심각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자신처럼 잠깐 쉬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저기 실례합니다.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런데요.”

으어...? . 물어보세요.”

다름이 아니라

퍼블리가 묻는 말에 묵묵히 듣고 있던 상대의 표정이 일순 찡그려졌다가 이 도시가 초행인 듯 싶어보이는 행색에 다시 펴졌다.

어딨는지는 저도 모르죠. ”

지금같은 상황엔 더 도움이 될텐데 왜...”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사실 알고 싶지도 않아요.”

?”

도시가 처음인데다가 접할 기회가 없어서 모를 수도 있는 거 알겠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그런 얘기 안 하는 게 좋아요.”

그치만 지금은!”

상대는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았는지 가봐야겠다며 자리를 벗어났다. 이런 반응은 의외였는지 당황한 퍼블리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찾아가 물어봤다. 그러자 대답은 달라도 반응은 비슷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모르겠네요.”

오랫동안 못보긴 했는데 관심없어요.”

어딘가 있겠지.”

없어도 상관 없잖아?”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해결해.”

이런 반응들에 퍼블리의 표정이 더더욱 굳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보다가 힐끗 퍼블리의 반응을 보던 치트가 말을 얹었다.

정말 이상하네요. 이런 위급상황에서도 저런 반응이라...”

“...날아다니는 물고기들도 전부 기계였던 거예요?”

그렇습니다. 기술이 꽤 좋아졌어요. 하늘을 헤엄치며 불을 뿜는 물고기도 그렇고 노래하면서 춤추는 인형도 기계였죠.”

전부요?”

. 전부.”

떨어져서 부숴진 물고기들과 급하게 뛰느라 밟혀 부숴진 인형들이 길거리에 깔려 있었다. 하나같이 속은 작은 나사나 톱니바퀴, 전선으로 이루어져 이리저리 흩뿌려져 있었다. 진짜 물고기나 작아진 사람이었으면 꽤 끔찍하게 보였을 광경이었다.

물고기와 인형들을 뜻모를 눈으로 바라보던 퍼블리는 문득 치트에게 물었다.

마법사님, 그러니까 패치 마법사님은 어디계셔요?”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잠깐 만났지만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네요.”

사실 이 소란 속에서 치트가 가장 먼저 찾고자 했던 게 바로 패치였다. 패치라면 이런 상황을 절대 그냥 두지 않고 상황을 진정시키고 해결하기 위해 효율적으로 움직였을 텐데 지금 패치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까지 도시가 아닌 공간에서 페르스토와 함께 있는 패치는 당연히 현재 상황을 알 리가 없었지만 이 둘도 그런 패치의 상황을 알 리가 없었다.

치트는 퍼블리와 대화하면서도 사람들 사이로 빨간 머리카락을 샅샅이 찾아보고 있었고 퍼블리도 패치에 대한 얘기를 꺼낸 시점부터 패치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발견한 건 가라앉은 분위기 가운데 유일하게 해맑게 웃으며 뛰어다니는 용사였다.

용사님!”

우웅?”

여기로 오라는 손짓에 용사는 순순히 둘에게로 왔다.

용사님 혹시 패치 마법사님 보셨어요?”

빨간칭구?”

.”

요기 없엉!”

지금 여기 말고 다른 데서는 못 봤어요? 사람들 부축했을 때 못 보셨어요?”

없엉!”

용사는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당연하게도 이 셋 중에선 흩어진 이후로 패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담 여기서 먼 도시 구역에 있겠군요. 치료소가 여기 한 군데 뿐만이 아니니...”

아니야, 없엉!”

용사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단호하게 없다고 했다. 많이 뛰어다니느라 여러군데 돌아다녔겠거니 싶어 치트가 패치가 어디 있는지에 대해 물어봤다. 그리고 대답은

몰랑!”

치트는 더 이상 용사에게 묻지 않았다. 대신 퍼블리가 이렇게 물었다.

다른 모든 구역에도 없어요?”

없엉!”

도시 내에 없어요?”

없엉!”

정말로요?”

정말!”

확인 차 묻는 말에도 단언하는 용사에 퍼블리의 표정이 묘해졌다. 고민이 사라지고 기묘한 상황을 목격한 표정이었다.

고마워요! 일단 저 어디 좀 갔다 올게요!”

그렇게 말한 퍼블리는 어디론가 뛰어갔고 치트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잠깐 눈을 떼니 용사도 어디론가 가버려 혼자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기대했던 상황은 아니지만 예상한 상황도 아니었으니 처음은 이걸로 만족해야겠죠?”

대답은 없었지만 치트는 이 침묵이 마음에 들어보였다.

 

열심히 뛰어간 퍼블리가 멈춰선 곳은 바로 공중에 떠있는 건물 아래였다. 달려오는 내내 계속해서 밀려오는 의문에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지금 당장 해볼 수 있는 일은 이거였다.

페르스토가 건넨 비행장치를 꺼낸 퍼블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장치를 자세히 살펴봤다. 딱딱함은 느껴지지만 내부가 반짝이로 이루어져 있는 투명한 물건이었다. 나사나 톱니바퀴 같은 부품은 보이지 않았다. 등을 더듬어 장치를 붙인 퍼블리는 제 발이 땅에서 떨어지는 걸 느꼈다. 이 장치는 기계가 아니었다.

처음 붙여서 날아올랐던 때보다 안정적이게 날아오른 퍼블리는 곧장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난장판이 되어버린 길거리와 달리 똑같았다. 가운데에 있는 마법진도 멀쩡했다.

페르스토가 말한 걸 떠올리며 마법진에 다가가 문을 두드리듯 똑똑 두 번 두드리자 마법진에 빛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동했을 때만큼 환한 빛이 아니었다. 까만 밤의 반딧불이 빛같은 빛이 은은하게 주위를 감쌌고 동시에 마법진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빛나는 게 끝났을 때 쯤, 들은대로 그 자리엔 꽃이 하나 나타났다.

새하얗게 부풀어오른 국화 한송이.

퍼블리는 바로 앞에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이곳엔 마법사가 없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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