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가 작동되지 않아!”

누구 멀쩡한 응급 전기 충격기 작동되는 사람 있어!?”

왜 안 움직이는 거야?!”

방금 전까지 멀쩡했던 도구들이 모두 마비됐다. 비행도구는 물론이고 급한 환자를 이송하기 위한 구급 이동수단도 움직이지 않았다. 급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피해 골목길로 들어간 치트는 뒤에서 일어나는 소란도 신경 쓰지 않고 깊숙이 들어갔다. 사람들을 도우러 간 용사와 물러난 치트는 서로 이미 떨어진지 오래였다.

골목길에도 떨어진 사람들이 있었지만 길거리보단 적었다. 신음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외침과 뻗어오는 손을 피한 치트는 그런 사람들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숙이 들어왔다. 갑작스럽게 일이 터졌을 때 길거리의 조명들도 꺼진 상태라 안 그래도 어두웠던 골목은 한치 앞도 안 보일 정도로 어두웠다. 아랑곳 않고 들어가던 치트는 어느 부분에서 멈춰섰다. 무릎을 굽히며 천천히 몸을 숙인 치트는 아래로 손을 뻗었다.

역시 직접 들고 다녀야겠습니다.”

손 끝엔 주변과 마찬가지로 검은 게 있었다. 다른 거라면 주변은 빛이 없어서 어두웠다면 손 끝에 있는 건 원래부터 검은 상자였다.

 

사람들이 떨어지는 걸 보고 깜짝 놀란 퍼블리는 바로 밖으로 뛰어나왔다. 하늘을 날던 사람들 뿐만 아니라 걷고 있던 사람들도 위에서 떨어진 사람들과 부딪혀 큰 부상을 입어 상황은 꽤 심각했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난리통을 보고 있던 퍼블리는 곧 침착하게 주위를 살펴 다친 사람들에게 응급처치를 하고 부축했다.

비교적 부상이 가벼운 사람들을 근처 건물의 벽에 기대게 하고 심한 중상을 입은 사람들을 업고 치료소로 가던 퍼블리는 저 멀리 한 팔에 사람을 하나씩 들고 뛰는 용사를 발견했다.

용사님! 다친 사람 그렇게 들면 안 돼요!!”

기겁하며 외치는 퍼블리의 말을 들었는지 용사가 퍼블리를 향해 돌아봤다. 그대로 멈춰서서 빤히 바라보던 용사는 퍼블리처럼 사람을 업기 시작했다. 잠시 안도를 한 퍼블리는 숨 돌릴 틈이 없다는 걸 깨닫고 빠르게 치료소로 데려갔다. 하지만 치료소도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모두 먹통이야!”

대체 왜 이래?!”

여기 급해요! 제발!”

치료도구들도 모두 작동하지 않는지 치료소는 더 한 혼란 속에 잠겨있었다. 부상자들이 끝도 없이 밀려오는 이 상황은 도구가 멀쩡해도 부족해서 위급할 상황인데 도구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 지금은 해결되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부상자들과 당황한 사람들 사이로 정비사들이 달려와 도구들을 살펴보자 그들도 곧이어 당황하기 시작했다.

회로가 다 망가졌어!”

뭐야? 아까 터진 게 전자기펄스야?”

어떤 미친놈이야 도대체!”

당황과 분노에 찬 외침을 들은 퍼블리는 계속해서 밀려드는 부상자들을 보며 마찬가지로 혼란에 잠기기 시작했다. 용사는 자세한 상황도 모른 채 열심히 부상자들을 부축해 데려오기 바빴고 멀쩡한 도구들을 찾아다니거나 급하게 임시적으로 작동되게 부품을 뜯어 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난장판이 따로 없네요.”

골목에서 이런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치트는 등에 검은 상자를 메고 있었다. 아무런 무늬도 없이 온통 까맣기만 한 그 상자는 사람 한 명이 들어갈 정도로 꽤 컸다. 보통 상황이었다면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을 법했지만 치트를 제외한 모두가 바빴다. 그림을 구경하듯 보던 치트는 나른하게 눈을 깜빡이며 이렇게 속삭였다.

어떻게 해결하실래요? 패치.”

 

치트가 몰랐던 건 자기가 콕 집은 그 숙소 내부가 도시가 아닌 다른 공간이었다는 거였다. 내부의 소리가 외부로 새어나가지 않는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외부, 즉 지금의 도시에서 일어난 소란이 내부로 전해지지 않는다는 거였다. 패치는 그렇게 소란을 모른 채 페르스토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중간마다 빼먹는 게 많은 것 같은데 이유가 뭔가?”

저도 전부 전해드리고 싶지만 입이 잠겼는 걸요? 이게 최대입니다.”

이상하다는 건 나도 알고 있고 거기까진 알아봤네. 다만 도시가 이런 상태인 줄은 오늘 처음 알았군.”

이상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치곤 굉장히 담담해서 인식을 못하는 상탠가 싶었는데 다행이네요.”

패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페르스토의 말대로 자신의 상태는 특정 상황을 제외하면 지나치게 잔잔했다. 감정이 가라앉는 게 지나칠 정도로 순식간이었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자네의 입이 잠긴 것처럼 이것또한 이상현상 중 하나겠지.”

글쎄요. 이상현상이라기보단 원래 그런 것 같은데요?”

냉정한 것과 한순간에 인식하지 않는 건 전혀 다른 걸세.”

다시 가라앉는 감정과 인식에서 벗어나려는 주제를 붙든 패치는 혀를 차며 신탁이랍시고 찾아온 사제들과 성기사들 끝으로 치트를 떠올리고 인상을 썼다. 신탁으로 내려온 여행은 절대 평범한 여행이 아니었고 평범한 여행이 될 수 없었다.

세계의 정상화가 각각 들려야할 장소의 이상현상을 없애는 거라니.”

이 도시에 들어온 순간 패치는 이상함을 느꼈다. 용사는 모르겠지만 퍼블리는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고 치트는 어쩌면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신전에도 이상현상이 발생해서 신관들의 눈과 판단력이 엉망이 된 거라고 생각하고 싶을 정도군.”

글쎄요. 이상현상이 사람의 성격까지는 영향을 주진 않는 것 같더군요. 그리고 신전에 이상현상이 생겼다면 신전을 방문해야할 텐데 그건 솔직히 싫잖습니까?”

반사적으로 표정을 찌푸린 패치는 한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자네 말대로라면 인식에 가장 큰 영향을 줘서 보통은 저 밖의 도시 사람들처럼 이상하다는 것 자체를 못 느낀다는 건데 자네는 어떻게 이상하다는 걸 인식했나?”

그에 페르스토는 이번엔 조금 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마법의 도움을 받아 제가 존경하는 그 분처럼 머리가 보라색으로 물드니 구별하는 눈이 생기더군요.”

선글라스 속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잠시 감정과 분위기에 잠긴 페르스토는 다시 큰 웃음을 지어보이며 패치와 눈을 마주했다.

어쨌든 여기 일은 금방 끝날 겁니다. 제가 퍼블리씨께 답을 다 알려줬거든요.”

스스로 말하길 입이 잠겼다는 페르스토는 퍼블리에게 전부 맡겼고 패치는 그 말에 눈을 감았다. 이 둘은 이제 퍼블리가 다시 그 건물로 가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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