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마저 가볼까요?”

용사는 본인이 납득한 대로인지 아니면 이제 더 이상 주변에 흥미가 없어서인지 잘 따라오고 있었다. 대신 묻는 게 많아졌다.

요기 나비는 왜 색깔이 달라?”

나비도 사는 데마다 색이 달라요.”

사는 데마다 왜 달라~?”

일행 내에서 두 번째로 큰 용사는 말투는 물론이고 행동과 호기심 모두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았다. 그래서 퍼블리는 용사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혼란스러웠다. 자칫하다간 진짜 어린아이를 대하듯이 대해버릴 것 같아서 주의 깊게 말을 고르기 위해 잠시 침묵했다.

사는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색이 다르다네.”

패치가 대신 대답하자 용사의 시선이 패치에게로 돌려졌다.

숲 안쪽에 꽃밭이 있었나?”

!”

그럼 그 꽃잎과 비슷한 색을 지녔거나 숲에 사니 나뭇잎처럼 보이게 색을 가졌겠지. 숲엔 나무가 많은 만큼 새 둥지도 많으니.”

녹색 풀이 가득한 가운데 조금씩 머리를 들고 있는 꽃들 위에 화려한 색의 나비들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여기는 나무가 적지.”

용사는 이해를 했는지 더 신기하다는 눈으로 나비들을 둘러봤다. 그 이후부턴 자연스럽게 둘로 나뉘어 앞서가는 건 치트와 퍼블리였고 뒤따라가는 건 패치와 용사였다. 용사는 계속해서 물었고 패치는 조금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자신이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는 부분까지 대답했다. 간혹 가다가 나오는 어려운 단어에 용사는 그 단어가 무엇인지도 물었고 처음에 뭘 묻고 있었는지 까먹기 까지 했다. 그러다보니 패치는 용사의 곁에서 쉽게 떠날 수 없었고 떠날 생각도 없어보였다. 퍼블리는 옆에 같이 걷고 있는 치트를 힐끔 쳐다봤다. 혹시 마법사님은 일부러 이렇게 움직이게 되는 상황을 의도한 걸까.

드디어 마을이 보이네요.”

해가 완전히 저물기 직전, 마을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마을에 들어가면서 가장 먼저 찾은 건 여관이었다.

“1인실 넷으로.”

“2인실 하나에 1인실 둘도 좋습니다.”

헛소리 말고 가서 짐들이나 나눠서 정리하게. 자네가 2인실 쓸 건가?”

당연히 제가 쓰려고 물은 겁니다. 그러니까 저랑 같은 방 쓰는 게 어떻습니까?”

자네는 기억을 선택적으로 삭제하는 능력이라도 가졌나?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같이 방을 쓰자고?”

싸우지마아아앙~”

다시 터져 나오는 살벌한 기세를 진정시킨 건 용사였다. 덕분에 대화 흐름이 끊겨 진정한 패치는 다시 1인실 네 개를 말한 후 바로 돈을 내고는 열쇠를 챙겨들어 던졌다. 열쇠를 받아든 치트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짐을 챙겨들어 2층으로 올라갔다. 패치는 퍼블리와 용사에게 열쇠를 건네고 자신의 짐을 챙겨들었다.

여행에 필요한 물품은 내일 날이 밝으면 둘러보지. 혹시 당장 필요한 물건 있으면 찾아오게.”

!”

퍼블리는 열쇠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용사를 끌고 2층으로 올라갔다. 패치는 그 자리에 남아 여행 물품을 파는 가게가 어디쯤에 있는지 물었고 두 건물 지나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바로 나온다는 대답을 들었다.

하지만 오늘은 이미 해가 져서 문을 닫았을 거예요.”

해가 져도 아직은 저녁인데 빨리 닫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요즘 여행객은 물론이고 마을 들리는 사람도 적어서 그런 것 같아요.”

그 가게 주인이 오랜만에 오는 손님을 붙잡아 많이 팔아치우려고 할 게 분명하니 조심하는 게 좋을 거라며 걱정 아닌 걱정이 들려왔지만 패치에겐 의미 없는 걱정이었다. 이제껏 걸어왔기 때문에 마을을 돌아다니고픈 마음도 없어 패치는 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방은 계단과 꽤 가까운 방이었다.

씻는 곳이 방마다 딸려있는지 물이 나오는 기계와 함께 세숫대야가 구석의 칸막이 안쪽에 있었다. 아쉽게도 찬물밖에 나오지 않는 것 같았지만 겨울도 아니었으니 못 씻을 정도는 아니었다. 손을 씻고 얼굴을 씻던 패치는 문득 더운 여름에도 뜨거운 물로 씻어야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떠올렸다. 어디서 들었는지, 누가 말했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았지만 이 얘기가 떠오른 이유는 고운 옷과 따뜻한 물로 씻으면서 살아왔을 게 뻔한 사제가 과연 이 찬물로 씻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피곤하긴 정말 피곤한가보군.”

걱정은 아니었지만 이런 의문이 든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패치는 거친 손으로 물기를 닦았다.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치트를 신경 쓰고 있는 스스로에게 못마땅했다. 그 아래에 깔린 게 의심과 경계라 해도, 지금처럼 곁에 없는 순간에도 생각과 감정을 소모하는 건 불쾌한 일이었다.

침대에 걸터앉은 패치는 가지고 있는 짐들을 살펴보며 내일 사야할 게 뭔지 짚어보았다. 작은 종이에다가 목록들을 적어놓고 퍼블리에게도 뭐가 필요한지 물어보러 가야겠다 생각하며 일어나던 순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제는 문에서 들린 게 아닌 창문에서 들린 소리였다. 돌아보니 창문 너머엔

용사?!”

대체 어떻게 서 있는 건지 용사가 환하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당황한 패치가 창문을 열었고 용사는 놀리듯이 멀어졌다. 패치가 용사를 노려보며 마법도구나 기계가 있는지 살펴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비행마법을 쓸 줄 알았나?”

칭구가 해줬엉!”

그 친구가 대체 누구냐며 물으려고 하니 갑자기 창문과 벽이 사라졌다. 이것도 그 용사의 친구가 한 짓인가 싶어 더 가까이 다가가 따지려고 할 때 뒤에서 누군가가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문을 잠그지 않았나 싶어 돌아보니 옷자락을 잡고 있는 건 그림자였다. 손만 올라와 잡고 있던 그림자가 바닥에서 서서히 떨어져 똑바로 섰고 그림자 때문에 보이는 건 온통 검은 색 뿐이었다. 한 번 눈을 깜빡이니 그림자 안에서 노란 빛이 반짝이며 존재감을 키워나갔다.

일어났습니까?”

패치는 어느새 누워있었고 바로 앞에 저를 내려다보는 치트를 눈을 뜨면서 제일 처음 봤다. 고개를 천천히 돌리니 목록을 적다가 잠들었는지 쓰다만 종이가 손에 쥐여져있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치트와 눈을 마주한 패치는 치트가 뭐라 말하기 전에 딱 한 단어만 말했다.

나가.”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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