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트가 다시 일행들에게 돌아오니 모두들 짐을 다 정리하고 챙긴 상태였다. 치트의 짐은 본인이 제일 먼저 정리를 해놔서 들기만 하면 끝이었다. 치트는 묻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일행 가운데 섞여들었다. 전서구는 나흘 후 쯤에 찾아가겠다며 어디에 갈 건지 물어봤다.

다음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나?”

마을 두어개는 들려야함다.”

각 마을간의 거리는?”

특별한 일이 없다면 이틀거리임다.”

그렇담 첫 번째 마을에서 자네를 기다리겠네.”

마을 어디서 만나요? 이래봬도 시선 많이 끄는 몸이라

입구에서 만나지.”

깜빡하지 말라는 말을 듣는 걸 끝으로 일행들은 움직였다. 발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보던 전서구는 그들을 보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거 참 기묘한 조합일세...”

혼자여도 소란스러운 비둘기 마저 떠나고 도시에 남은 건 정적뿐이었다.

 

여행길은 꽤 조용했다. 도시 사람들의 상태가 어떤지 제대로 소식을 듣기 위해선 다른 길로 빠져선 안 됐고 용사도 그런 분위기를 느꼈는지 아니면 더 이상 눈길을 사로잡는 게 없어선지 웃는 얼굴로 얌전히 따라오고 있었다. 다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패치는 정말 준비성이 대단한 것 같슴다.”

저리가게.”

요즘 날씨가 맑아서 고려도 안 했는데 이렇게 우산과 우비도 준비하다니 정말 대단하심다.”

아니까 좀 떨어지게.”

비가 오니 체온도 떨어지는 것 같네요. 이렇게 붙어가면 문제 없겠죠?”

꺼져.”

그동안 비가 안 온 걸 전부 몰아서 내리는 건지 꽤 많은 양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패치는 우산과 우비를 이미 가지고 있었지만 일행들과 여행하기 전에 마련했던 건지 각자 하나씩만 가지고 있었고 우산은 퍼블리와 용사가, 우비는 패치 본인이 입고 있는 상황이었다. 우산은 세 명이서 쓰기엔 좁았고 우비는 당연하게도 1인용이었다.

저 비 맞습니다만?”

맞게

감기 걸릴지도 몰라요?”

걸리게.”

열나고 앓아누우면 곤란함다~”

곤란하지 않네.”

떼놓고 가면 된다며 덧붙이는 말에 치트는 매정하다며 우는 소리를 했지만 패치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기어이 우비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었고 한바탕 난리가 났다. 난리난 둘 말고도 퍼블리와 용사쪽도 그리 얌전하진 않았다.

용사님! 비 다 맞아요!”

오와아아아앙!!!!”

감기 걸린다고요!!”

용사는 오히려 비를 맞는 감각이 좋은지 어느 순간부터 열심히 뛰어다니기 시작했고 우산을 든 퍼블리가 재빨리 그 뒤를 따랐다. 하지만 용사는 순순히 우산 아래로 갈 생각이 없어보였다.

비가 겨우 그쳤을 때 가장 덜 젖은 건 퍼블리였고 가장 많이 젖은 게 나머지 셋이었다. 우비 속으로 파고드는 걸 두고 실랑이를 벌인 끝에 결국 우비가 찢어졌고 그 대가로 치트는 비오는 날 하늘을 날아야했다. 결국 비가 그칠 때까지 비를 전부 맞아버린 셋은 저체온증에 시달렸고 예정에 없던 휴식을 갖게 됐다.

모닥불이 따뜻함다~ 이런 게 여행의 낭만이죠.”

낭만이 다 얼어죽었군.”

~ 아직 춥슴까? 이리오십쇼. 옷이 젖었을 땐 벗은 채로 서로를 끌어안아야 함다.”

벗은 채로 하늘 날고 싶으면 언제든 말하게.”

일행 중에서 그나마 멀쩡한 퍼블리가 수건을 돌리고 불을 더 지필 장작을 가져왔다.

수고가 많네.”

우산 덕분에 비를 피했으니까요.”

그보다 불 안에 넣는 종이는 자네가 그리던 지도 아닌가?”

.”

불 아래에서 까맣게 타들어가는 종이는 페르스토가 안내하고 마법진이 있었으며 그 자리에 흰 국화가 나타난 건물에서 그린 지도였다. 그리던 시간과는 다르게 순식간에 타들어가서 재만 남아버렸다.

괜찮아요.”

조금 멍한 눈으로 보던 퍼블리는 눈을 한 번 깜빡이며 대답한다.

바로 뒤집혀버렸는 걸요.”

급하게 밑그림만 그린 지도는 제대로 완성하기도 전에 하룻밤만에 뒤집혀버린 도시 때문에 의미가 없어져버렸다. 뒤집히기 전에 이렇게 생겼다는 정보로 남기기엔 길만 간략하게 그린 밑그림만으론 의미가 없었다.

길이 전혀 달라졌는 걸요.”

대답을 들은 패치는 납득했는지 불로 시선을 돌렸다. 장작과 종이를 연료삼은 불은 당분간 꺼질 기미가 없어보였다. 하늘은 비가 그친 이후론 어둑해지고 있었다. 예정대로라면 훨씬 더 다음 마을 가까이로 갔을 텐데 비로 인해 늦어졌다. 얌전히 갔다면 좀 더 갔을 테지만 들러붙는 치트와 신나게 비 맞고 뛰어다니는 용사로 인해 거의 나아가지 못하다시피 했다.

다시 비가 안 내린다는 가정이 없으니 다음엔 빨리 가야하네.”

쉬엄쉬엄 갑시다~ 마을은 어디 안 도망감다~”

마을에 와야할 전서구가 떠나겠지.”

아직 이틀도 안 됐슴다.”

이 정도 속도면 일주일도 부족할걸세.”

다시 말싸움을 벌이는 패치와 치트였고 퍼블리는 이제 익숙하게 둘의 말싸움을 바람소리 삼아 야영준비를 시작했다. 옆에서 담요 한 장만 몸에 두른 용사가 자기도 같이 나무 세우고 싶다며 옆에 따라붙었다.

패치와 치트의 대화를 빙자한 말싸움과 협박, 협상 끝에 내일은 오늘 지체한 만큼 더 가겠다며 패치가 선언했다.

하지만 다음날 감기에 걸렸는지 열로 앓아누운 둘로 인해 더 가긴 커녕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비를 많이 맞고 모닥불도 덜 쬔 용사는 일행 중에서 가장 쌩쌩했다.

Posted by 메멤
,

웜머? 평생 숲 안에서 죽치고 앉아있을 줄 알았던 양반들이 웬일로 나와있대?”

자네 나랑 안면이 있었나? 난 자네를 처음 보는 것 같네만.”

? 그럼 아닌가...사람 잘못 봤나봐요. 하지만 이쪽은 확실히 전에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우웅~?”

용사는 고개를 기울이며 전서구를 빤히 쳐다봤다. 용사도 전서구를 아는 눈치는 아니었다.

직접 본 건 아니지만...숲에서 뒹굴뒹굴 잘 구르고 있던 거 날다가 자주 봤는데 말이지.”

용사가 있던 곳이 환각의 숲이었으니 전서구가 본 게 용사가 맞을지도 몰랐다.

환각의 숲은 직접 들어가지 않는 이상 환각에 걸리지 않는가보군.”

..? 환각의 뭐요?”

유용한 정보니 나중에 가게 된다면 그 땐 날아서 가는 게 더욱 안전하겠네.”

아니 잠깐만요. 방금 환각의 숲이라 하지 않았어요? 거 들어가면 다 실종돼서 유품도 안 나오는 위험천만한 숲? 저기요?”

환각의 숲이라는 말에 전서구가 불안 가득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했지만 그에 대해 대꾸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 그들에게 중요한 건 당장 피해를 주지 않은 환각의 숲이 아닌 지금의 상황이었다. 결국 전서구도 묻다가 지쳐 포기했다.

어떻게 안 될까? 상태만이라도 알려주면 돼.”

끄흐으으으으음...!!”

다시 본 주제로 돌아와 표정을 찌푸리며 고민하던 전서구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찝찝함의 승리였다.

고마워!”

걍 냅두면 꿈자리 사나울까봐 하는 거야!”

다음엔 불러도 안 올 거라며 외치는 말에도 상황이 해결되어서 기쁜지 퍼블리는 고개만 끄덕였다. 한숨을 쉬는 전서구를 보던 패치는 문득 이렇게 생각했다. 저 비둘기를 타고 다니면 여행이 금방 끝나지 않을까. 물론 전서구가 들었다면 꿈자리고 뭐고 본인이 사나워질 거라고 외치며 난동을 부렸을 테지만.

여전히 의문이 가득하지만 도시 여행은 여기까지로 할까요?”

! 아까 발...!”

퍼블리의 어깨를 잡는 손이 있었다. 패치였다. 아까 발견한 뼈 모양의 살상용 기계에 대해 치트에게 얘기하려던 퍼블리였지만 단호한 패치의 표정에 순간적으로 말을 멈췄다.

? 무슨 말 했슴까?”

아무것도 아닐세.”

패치는 그리 말하면서 용사를 힐끗 쳐다봤다. 용사는 전서구가 여전히 신기한지 배를 쿡쿡 찌르고 있었다.

이만 가보는 게 좋을 것 같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나머지도 전부 정상화를 해봐야 알겠지.”

, 그건 그렇겠죠?”

그렇담 얼른 짐 챙기게.”

그 전에 잠깐 가보고 싶은 데가 있는데 갔다와도 됩니까?”

그 말에 패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고요한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그 눈빛을 받은 치트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하길

저기 떠 있는 그 건물 저도 한 번 구경해보고 싶네요.”

패치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을 긍정으로 여겼는지 그럼 갔다오겠다며 전서구의 날개를 잡았다.

? 뭐요?”

저 건물까지 부탁드림다~”

아니 이 양반이 멀쩡한 비둘기를 운송수단으로 삼네!?”

사실 패치도 아까 전까진 같은 생각을 했지만 굳이 말하진 않았다. 당연한 수순으로 전서구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정으로 준 피리 때문에 공짜 소식통은 물론이고 이동수단으로 써먹힌다며 억울함과 서러움을 쏟아댔고 치트는 눈꼬리 하나 꿈틀거리지 않은 채 여전히 웃는 낯으로 사례는 드릴 테니까 부탁드린다는 말만 건네고 있었다.

이번 한 번만 해주는 줄 알아요!”

~~”

치트르르 태운 전서구는 못마땅함과 한숨 가득한 표정으로 날아올랐다. 옆에서 쿡쿡 배를 찌르는 용사가 없어서 그런지 약간의 해방감도 옅보였다. 날아가버린 전서구를 보고 용사가 눈을 반짝였다. 아무래도 돌아오면 자신도 태워달라고 조를 기세였다.

...마법사님? 왜 사제님께 말하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반응을 볼 생각이네. 이후로 자네에게 물을지, 용사에게 물을지.”

여전히 용사를 보고 있던 패치가 그리 대답했다.

정말 궁금하다면 용사에게 먼저 묻고 그 다음에 자네에게 묻겠지, 용사는 말린다해도 그대로 말해주겠지만 용사 본인의 최대 표현상으론 상세한 묘사는 하지 않을테니 그 다음엔 자네에 물을 걸세.”

만약 묻지 않는다면요?”

스스로도 뭔가 짐작 가는 게 있다는 거겠지.”

 

공중에 떠 있는 건물로 날아가던 전서구가 돌연 이렇게 말했다.

언제봐도 마법은 참 신기하단 말이지...”

마법을 본 적이 있습니까?”

여기저기 널린 게 마법인데 못 볼 게 뭐있으요? 아니 널린 건 마법도군가?”

그렇군요~”

밑에 받치는 거 하나 없이 그냥 공중에 둥둥 떠있게 만드는 마법이 참 신기하다는 둥 전서구는 쉴새없이 재잘거렸고 치트는 적당히 추임새를 넣으며 맞춰줬다. 건물 앞에 도달한 치트가 문을 열었다.

잠시 기다려주세요.”

빨랑 볼일보셔!”

금방 나옵니다~”

건물 내부는 퍼블리가 나왔을 때와 비교해서 달라진 게 없었다. 퍼블리의 설명대로 한 가운데에 새하얀 국화가 놓여있었다. 아마 그 자리에 커다란 마법진이 있었을 게 분명했다.

건물 안도 하얗고 국화도 하얗네요. 녹색 줄기가 없었다면 어딨는지 몰랐겠는데요?”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지만 치트는 아랑곳 않고 국화가 있는데로 다가가며 계속 말을 꺼냈다.

국화의 꽃말에 뭐가 있는지 아십니까? 보통 애도의 표현으로 쓰이지만 꽃말은 이렇더군요.”

등에 메고 있던 검은 상자를 내려놓고 뚜껑을 연 후 꽃을 꺾어낸 치트가 향기라도 맡듯이 가까이 가져왔다.

감사, 성실 그리고

눈을 한 번 느리게 감았다 뜬 치트는 국화를 떨어뜨리듯이 상자 안에 넣었다.

진실.”

Posted by 메멤
,

인형...이 맞나요?”

작은 칭구들처럼 딱딱행!”

아니 딱딱하다고 해서 무조건 인형은...”

용사와 퍼블리는 큼직한 파편을 모아 얼추 맞춰봤다. 그러자 어느 정도 윤곽이 보인 모습은 인형이라고 하기엔 무리였다. 굳이 따지자면 사람의 뼈같이 생겼다.

꽤 크네요...”

요기 얼굴도 있당!”

얼굴은 녹색과 검은색이 섞여있었지만 색만 빼놓고 보면 해골이었다. 일부러 이렇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은 퍼블리는 조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뼈모양으로 설계된 기계를 살펴봤다. 진짜 뼈가 아니라 다행이지만 밤에 봤다면 굉장히 놀랐을 것 같다는 감상을 하며.

빨간 칭구다!”

용사의 외침에 고개를 들어보니 언제 왔는지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둘을 보고 있는 패치가 있었다.

자네들 거기 앉아서 뭣하나?”

인형 칭구 고치고 있엉!”

골목에 떨어져 있던 기계 파편을 맞춰봤어요.”

비록 기계쪽이 아닌 마법쪽이라 해도 일행 내에서 기술자로 알려진 패치였다. 패치는 뼈모양 기계를 쭉 훑어보더니 표정을 찌푸렸다.

아무리 봐도 살상용 기계로군.”

?”

저 팔에 달린 게 무기일세. 아주 작정하고 만들었군. 일단 떨어지게, 저기 가운데 있는 건 자폭용 폭탄이니.”

그 말에 퍼블리는 군말 않고 용사의 팔을 잡아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둘이 충분히 물러났다 싶을 때 패치가 가까이 다가가 폭탄과 그 주위를 살펴봤다.

자폭하기 전에 전자기펄스가 터져서 제 기능을 못한 것 같군. 하지만 보통 튼튼해보이는 게 아닌데 뭐가 이렇게 망가뜨린 거지?”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이리저리 살펴보던 패치는 나중에 더 조사해봐야겠다며 파편들을 챙겨들었다.

폭탄까지 가져가나요?”

그냥 두면 오히려 더 위험하네. 언제 터질지 모르니 내가 상태를 고정시킨 상태로 들고다니는 게 더 낫네.”

여전히 염려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상태를 어떻게 고정시키는지 그러면 정말 안전한지에 대해 묻기엔 물어봐도 모르는 용어가 나올 거라는 걸 깨달은 퍼블리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며 신기한 눈으로 폭탄을 만지려는 용사의 손을 잡아 제지했다.

도시 사람들은 모두 집 안에 있는 듯 싶네. 들어가보니 방 안 침대에 누워있더군.”

잠깐만요, 어떻게 들어간 거예요? 전부 문이 잠겼는데...”

창문이 열린 집이 몇 있었네.”

숨을 쉬는 걸 보면 죽지 않은 게 확실했지만 모두 깨어나지 않았다. 큰 소리를 내보고 어깨를 흔들어봐도 색색 숨소리만 들려왔다. 아쉽게도 패치에겐 강제로 깨우는 마법이 없었고 마법을 걸어도 깨어날까 싶어 우선 이 상태를 전하기 위해 밖으로 나오다가 둘을 만나게 된 거였다.

깨어나지 않는 것만 빼면 큰 외상같은 건 보이지 않았네. 현상이 뒤집히면서 다친 것도 무효가 된 것 같더군.”

그나마 다행이지만...”

깨어나지 않는 것 또한 심각한 문제였다. 패치는 잠시 고민하는 듯 싶었지만 기계파편과 용사를 보고 바로 일어나 짐들이 있는 장소로 돌아왔다. 돌아와보니 치트는 침낭을 정리하고 있었다. 바로 다가간 패치가 불쑥 물었다.

정상화가 세계 전부가 아닌 일부만 되면 그 일부 구간은 고정된 상태인가?”

오우! 날카로운 질문입니다만...그건 저도 아직 모름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슴까?”

집 안을 살펴보니 사람들이 잠들어있더군. 다만 깨어나지 않던데.”

덧붙인 말에 뭐가 문제인지 알아챈 치트는 입가로 손을 가져가 생각에 잠겼다. 본인도 이런 경우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마법으로는 깨울 수 없습니까?”

강제로 깨우는 마법은 나에겐 없네.”

...이거 난감하네요. 그렇담 방법은 며칠 동안 여기서 사람들의 상태를 살펴보는 것밖에 없는데 말임다.”

며칠이 지나도 사람들 상태가 지금과 다를 바가 없으면 패치의 말대로 이곳은 고정된 상태라는 게 증명된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식량에는 한계가 있었고 다른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라는 계산 하에 구매하고 준비해논 식량이었다.
난감한 상황이네요~”

뒤따라와 둘의 대화를 들은 퍼블리는 눈을 깜빡이다가 아! 하고 박수를 짝 쳤다.

방법이 있어요!”

퍼블리는 그리 말하며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불었다. 매우 작은 크기의 피리였는지 삐 소리가 울려퍼졌다. 피리소리가 울려퍼져도 당장 바뀐 건 없었다. 소리에 놀랐는지 지붕에 앉아있거나 길거리를 돌아다니던 비둘기 몇 마리가 하늘로 날아오른 것 외엔.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하늘에서 둥근 그림자가 하나 나타나더니 점점 커졌다.

멀리도 불렀네에에에에에!!!!!!”

! 하는 소리와 함께 일행들 가운데에 무언가가 떨어졌다. 정확히는 착지했다라는 표현이 옳겠지만 소리가 소리인 만큼 여기 있는 모두가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떨어진 무언가의 정체는

웜머? 도시가 웰케 휑해졌어?!”

여기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큰 덩치의 비둘기였다.

그게 사실은...”

어제에 비해 진정된 상태인 퍼블리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했다. 마법사가 없다는 대목에서 커다란 눈을 끔뻑이며 놀라던 비둘기는 갑작스레 뒤집힌 도시의 풍경과 집 안에서 깨어나지 않는 사람들 얘기를 듣고 그 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니까 여기 죽치고 있기 힘든 상황이고 대신 내가 사람들 안색 좀 살펴달라?”

!”

그에 큰 비둘기는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본인도 바쁜 몸이고 관련 없다고 하고 싶었지만 외면하기엔 상당히 마음이 걸려보이는 표정이었다. 고뇌에 찬 신음을 흘리던 전서구는 일행들을 둘러보다가 용사와 패치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Posted by 메멤
,

“...도시 한 가운데서 노숙을 하게 될줄이야.”

원래라면 바빠서 밤을 샜어야 했을 검다.”

그 말대로 부상자들의 수가 엄청났으니 밤을 샜어야했을 거란 말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문을 두드리면서도 사람들이 전부 어디로 사라졌을까하며 퍼블리가 물었지만 둘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함부로 문짝을 뜯거나 창문을 깨기엔 엄연히 주인이 존재할 게 분명한 집에 무단침입을 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짐들이 남아있어서 다행이에요.”

건물도 사라졌으니 방을 잡은 숙소도 사라진 건 당연했다. 거기에 두고 온 짐들이 꽤 많아 그대로 같이 사라진 건가 했지만 숙소가 있었던 걸로 추측되는 자리에 짐들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놀라운 건 퍼블리가 구매했던 물건들도 그대로였다.

만약 짐들까지 사라졌다면 여행은 그대로 끝이었네.”

사라지지 않아서 정말 다행임다~”

침낭을 꺼내던 퍼블리는 까맣게 불이 꺼진 건물들을 둘러봤다. 여전히 사람들이 사라진 게 신경이 많이 쓰였는지 불안한 모습을 계속 보였다. 그런 퍼블리에게 패치가 말했다.

현상이 전부 뒤집힌 만큼 사람들이 다쳤다는 현상도 전부 사라졌으니 오히려 멀쩡한 상태일 걸세.”

그치만 사람들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거라면...”

존재가 사라지는 건 불가능하네. 죽어서도 시체가 남고 시체가 사라져도 기록이 남아. 시간이 많이 흘러 기록 또한 사라졌다해도 존재했다는 것 자체가 사실이니 없는 사람들이 되었다고 할 순 없네. 그러니 마법사가 멀쩡히 있는 상태일 때 각자마다 있었던 자리에 있을 걸세.”

침낭을 꺼내면서 페르스토가 건넨 책을 짐들 사이에 넣은 패치가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니 우리가 알아야할 건 사람들이 어떻게 됐느냐가 아니라 왜 마법사들이 없어진 건가일세.”

...잠깐 어디 떠나있던 건 아니..겠죠?”

스스로도 말이 안 된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그 외에 짐작이 가는 게 없는 퍼블리는 패치를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자세한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조금 찌푸린 표정을 짓고 있던 패치는 치트를 노려봤다.

자네는 이 일에 대해서 아는 게 아무것도 없나?”

패치의 기대에 맞추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능청 떠는 모습에 노려보던 눈이 한층 더 찌푸려졌다. 심증이 가득했으나 물증이 없었다. 단 둘이라면 진즉에 털어봤겠지만 보는 눈이 둘이나 있었다. 특히 용사가 제일 골치 아팠다.

“...어쨌든 지금은 너무 늦었으니 날이 밝으면 도시를 조사하지.”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훨씬 휑하고 줄어든 게 많지만 다른 마을들과는 차별화된 건물들과 기구, 땅 크기 자체는 달라진 게 없어 여전히 도시라고 불릴 법했다.

용사는 이미 잠들어버린지 오래라 잠꼬대까지 하고 있었고 퍼블리는 여전히 긴장이 풀리지 않았는지 잠이 안 들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몸은 피로했으니 걱정과는 다르게 금방 잠들었다.

패치~ 잡니까?”

그 둘과 다르게 피곤할 일이 없는 치트는 눈만 감은 채로 패치를 불러봤다. 대답은 없었다.

패치랑 같이 눕는 게 얼마만임까. 옛날 생각 나지 않습니까?”

이번에도 대답은 없었다.

깨어있었다면 화내면서 옛날이 5년 전의 그 빌어먹을 날이나며 뭐라도 던졌겠죠?”

여전히 대답은 없었고 치트는 그 말을 끝으로 더 말을 걸지 않았다. 잠깐 뜬 눈 사이로 노란 빛이 빨간 뒤통수를 훑어보다가 다시 눈꺼풀 아래로 사라졌다. 여기서 유일하게 감지 않은 푸른 눈이 날카롭게 빛을 내고 있었다.

 

가장 먼저 일어난 건 용사였고 그 다음은 패치와 치트였다. 동시에 일어난 게 기분이 나빴는지 패치는 간이세면대에서 빠르게 씻고 도시를 둘러보러 갔다. 가장 마지막에 깬 건 당연하게도 퍼블리였다.

, 몇 시예요!?”

좀 더 주무십쇼~ 어제 엄청 바빴잖슴까?”

다시 잠들기엔 마찬가지로 어제 함께 바빴지만 여전히 밝고 쌩쌩한 얼굴로 뛰어다니는 용사가 있었다. 퍼블리는 하하 어색하게 웃으면서 패치는 어디 갔냐고 물었다.

일이 있으면 워낙 다 처리하시려는 분이니까 일어나자마자 씻고 바로 도시를 돌아보러 갔습니다.”

부지런하시네요...”

부지런함을 빼면 상상이 안 가는 분이잖슴까~”

저도 이제 잠이 다 깼으니 산책할 겸 돌아다녀볼게요.”

마찬가지로 간이세면대에서 씻은 퍼블리는 겉옷을 챙겨입고 도시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직은 아침이라 그런지 밝긴 했지만 낮처럼 환하진 않은 도시는 조금만 더 어둡거나 안개가 깔려있다면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겼을 정도로 조용했다. 사람들이 없어져서 당황했지만 밤에 제대로 봤었다면 유령도시처럼 보였을 법 했다.

문을 두드려봐도 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창문 너머를 살펴보면 가려져있거나 꽉 닫힌 방문들과 텅 빈 거실만 보였다. 사람들의 존재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라해도 걱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퍼블리의 머릿속엔 아직도 창문 너머로 떨어지면서 눈이 마주쳤던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

계속 길을 걷던 중 퍼블리는 발에 뭔가가 밟히자 고개를 숙였다. 딱딱하면서도 둥글 게 생긴 게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면 밟고 그대로 미끄러졌을 법하게 생겼다.

이게 뭐지?”

주워서 보니 손가락 두마디만한 길이에 원통형이고 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금속이었다. 신기하게도 다른 금속들처럼 회색이 아닌 검은색으로 되어있었다. 퍼 리가 둥근 금속이 있던 자리의 옆골목을 돌아보니 무언가의 파편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엔

용사님?”

?”

뭘 들고 계신 거예요?”

꽤나 큼직한 파편들을 용사가 들고 다니고 있었다. 초록색과 검은색이 섞인 파편들은 부숴지기 전엔 기계였다는 걸 추측할 수 있게 거의 금속으로 되어있었다.

인형 칭구!”

, 인형이요?”

근데 뿌서졌엉!”

그렇게 말하며 용사는 양팔에 가득 끌어안다시피 든 채로 다른 파편들을 주우려고 했다. 그러다보니 이미 들려있던 것들이 팔 사이로 빠져나와 바닥을 뒹굴게 됐다. 왜 잘게 부숴졌는지 알 것 같은 퍼블리는 옆에서 줍는 걸 도왔다.

Posted by 메멤
,

! 됐나보군요.”

어떻게 아는 건가?”

제가 마법도구를 줬거든요. 한 쌍을 이루는 도구라 하나가 작동하면 다른 하나도 작동을 합니다.”

마법이 모두 사라졌다고 하지 않았나?”

존경하는 분이 그만큼 대단하다고 다시 말해두죠.”

페르스토는 그리 말하며 책을 하나 건넸다. 패치는 바로 받지 않았다.

뭔가?”

제가 여기 자리잡기 전부터 있던 책입니다. 저는 펼칠 수도 없어서 말이죠.”

그 말에 패치는 책을 받아 펼쳐봤다. 처음부터 끝까지 넘겨봐도 전부 백지였다. 다시 돌려주려다가 펼치지도 못해봤다는 페르스토의 말에 책을 받아들였다.

그럼 얘기는 여기서 끝내지.”

패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록 차도, 따뜻한 풍경도 없는 대화였지만 둘은 만족스럽게 대화를 마쳤다.

다음에 만나게 된다면 모든 게 정상화된 세계이길 바라야하나요?”

만나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겠지.”

패치는 그리 말하며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은 페르스토는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을 올라갔다. 고요한 2층은 여전히 싸늘했지만 인기척이 돌고 있었다. 아무도 없던 방 중 하나의 문을 열고 들어간 페르스토는 침대로 다가갔다. 창백한 낯을 지닌 사람 하나가 누워있었다.

“5년 만에 돌아온 걸 축하해요.”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고 색색 숨소리만 들려왔지만 페르스토는 굉장히 기뻐보였다.

 

“...언제부터 정상화의 뜻이 황폐화였지?”

땅 위에 아예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패치가 마지막으로 본 도시의 모습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황폐해보였다. 건물들이 있긴 있었지만 높은 건물들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사라져있었고 길목마다 둥둥 떠서 널려있던 전구들마저 사라져 골목만큼 어두운 길거리는 굉장히 조용했다. 패치는 손에 빛을 띄워 주위를 밝혔다. 길거리에는 아무도 없었고 모든 건물엔 불빛이 나지 않았다.

이 상황을 어찌해야하나 싶어 애매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볼 때 저 멀리서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와 패치는 그쪽으로 걸어갔다.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왔는데도 아무도 없었다. 다른 데로 갈까 하던 중에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법사님!”

공중에 떠있는 건물에 문을 열어놓고 어쩔줄 몰라하는 퍼블리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기서 안 내려오고 뭐하나?”

, 그게...올라올 때 썼던 비행 장치가 있었는데 지금 작동이 안 돼요!”

퍼블리는 손에 든 걸 흔들어보이며 외쳤다. 얼핏 보면 유리덮개로밖에 안 보이는 게 손에 들려있었다. 패치가 위로 손을 휘젓자 퍼블리의 주위가 반짝이기 시작하더니 몸이 공중으로 뜨더니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나도 둥실둥실!”

언제 왔는지 뒤에서 나타난 용사가 공중에서 내려오고 있는 퍼블리를 보며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노는 거 아니네.”

둥실둥실!”

집중해야하니 좀 비키게.”

둘이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 퍼블리가 땅 위로 완전히 내려왔다. 표정에 당황스러움이 가득한 게 위에서 전부 둘러봤을 테지만 순식간에 모습이 바뀐 도시가 굉장히 낯선 듯 싶었다.

여기들 모여있었슴까?”

용사의 목소리를 듣고 온 건지 치트도 조금 떨어진 데서 모습을 드러냈다. 치트를 본 패치의 눈썹 끝이 조금 올라갔다. 치트가 메고 있는 검은 상자에 시선이 가 있었다.

자네 등에 메고 있는 건 뭔가?”

이것저것 보고 있던 중에 마음에 쏙 들어서 말임다.”

사람 하나 들어갈 만큼 큰 상자를 마음에 쏙 든다는 이유로 등에 메고 다닌다는 말에 자연스럽게 패치의 눈이 가늘어졌다.

분명 아까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무슨 일이 있었나?”

그 전에 패치는 어디 있었습니까?”

치트의 질문에 말을 돌리려는 건가 싶어 다시 한 번 눈썹 끝이 올라간 패치는 옆에서 마찬가지로 궁금해하는 퍼블리의 표정을 발견하고 참았다.

잠깐 알아볼 게 있어서 도시 밖으로 나갔다 왔네. 나 없는 새에 도시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어 그게 그러니까...우선 이 도시에 마법사가 없었어요!”

퍼블리는 여전히 당황한 상태라 설명 순서가 뒤죽박죽이었지만 열심히 얘기했다. 마법과 기계가 합쳤다고 한 이 도시는 알고보니 마법은커녕 마법에 관련 된 도구도 없었고 길거리에 나와있던 건 전부 기계였다는 거였다. 하늘을 날게 하던 장치와 물고기들 전부. 그러던 중 갑자기 하늘 위로 무언가가 쏘아올라가 터졌고 하늘을 날던 사람들과 물고기가 모두 떨어져 순식간에 부상자가 불어났다는 얘기였다.

터진 건 전자기펄스고?”

! 그런 이름이었어요.”

당연한 수순으로 패치는 치트를 돌아봤다. 하필 자신들이 도시에 들어온 날에 터진 것도 이상했고 마법도 없이 기계만 가득한 도시에서 그 누가 전자기펄스 폭탄을 만들거나 들고 다니겠는가. 이 도시를 뒤져서라도 증거를 찾아야하나 고민하던 순간 퍼블리의 말에 고민을 멈췄다.

그래서 꽃에다 마법사가 없다고 하고 나와보니 사람들이 전부 사라졌어요!”

사람 뿐만 아니라 건물이나 기구들도 전부 없어졌더군.”

눈 깜빡하니까 전부 사라졌엉!”

계기가 있었다고 해도 이는 이해의 범주 밖에 있는 현상이었다. 한순간에 건물도 사람도 사라지는 게 말이 되는가.

그보다 저희 급한 게 있습니다.”

치트의 말에 모두가 돌아봤다. 난감한 웃음을 지으며 말하길

만약 저 건물 안에도 사람들이 없다면 저희 이대로 또 노숙을 해야함다.”

그 말에 용사를 제외한 모두가 급하게 불이 꺼진 건물들의 문을 두드려야했다.

Posted by 메멤
,

정신없이 상황을 수습하던 도중 급하게 만든 치료 도구가 작동이 되자 모두 그쪽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다른 한쪽에서도 됐다며 사람을 불러모았다. 상황은 여전히 난장판이었지만 그나마 임시적으로 돌아가는 도구가 곳곳에서 생기고 아예 망가진 잠금장치를 부숴 창고에서 응급약들을 꺼내는데 성공한 이들이 열심히 뛰어다니며 상황과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수습됐다기 보단 부상자들이 힘이 빠져 비명을 지를 힘도 없어보였다. 부상자들을 부축하던 이들도 꽤 지쳐보여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상황을 지켜보던 치트는 빨간 머리카락이 한 올도 보이지 않자 살짝 눈을 찌푸렸고 골목에서 나와 땀을 닦으며 숨을 고르는 퍼블리에게 다가갔다.

갑작스런 사고가 정말 당황스럽네요.”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물병을 건네며 능청스레 말을 건 치트는 용사가 보이지 않는다며 걱정스런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물병을 건네받아 마시던 퍼블리는 아까 용사가 열심히 뛰어다니던 모습을 떠올리며 고개를 돌렸다. 치트의 말대로 멀리 뛰어갔는지 용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퍼블리가 신경 쓰는 건 용사가 아니었다.

“...이상해요.”

맞아요. 이상합니다. 도심 한가운데서 이런 일이 터지다니.”

전자기펄스라는 게 도구, 그러니까 기계들을 먹통으로 만드는 거죠?”

그렇습니다.”

그럼 왜

이어지는 퍼블리의 말에 치트는 눈을 살짝 크게 떴다가 아주 잠깐 눈가를 휘어보였다.

그렇군요. 정말 이상하네요~”

동조하며 의심스럽다는 듯이 입가로 올린 손은 웃음을 참느라 일그러진 입매를 교묘하게 가리고 있었다. 기대가 섞인 눈빛을 알아채지 못했는지 퍼블리는 심각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자신처럼 잠깐 쉬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저기 실례합니다.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런데요.”

으어...? . 물어보세요.”

다름이 아니라

퍼블리가 묻는 말에 묵묵히 듣고 있던 상대의 표정이 일순 찡그려졌다가 이 도시가 초행인 듯 싶어보이는 행색에 다시 펴졌다.

어딨는지는 저도 모르죠. ”

지금같은 상황엔 더 도움이 될텐데 왜...”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사실 알고 싶지도 않아요.”

?”

도시가 처음인데다가 접할 기회가 없어서 모를 수도 있는 거 알겠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그런 얘기 안 하는 게 좋아요.”

그치만 지금은!”

상대는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았는지 가봐야겠다며 자리를 벗어났다. 이런 반응은 의외였는지 당황한 퍼블리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찾아가 물어봤다. 그러자 대답은 달라도 반응은 비슷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모르겠네요.”

오랫동안 못보긴 했는데 관심없어요.”

어딘가 있겠지.”

없어도 상관 없잖아?”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해결해.”

이런 반응들에 퍼블리의 표정이 더더욱 굳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보다가 힐끗 퍼블리의 반응을 보던 치트가 말을 얹었다.

정말 이상하네요. 이런 위급상황에서도 저런 반응이라...”

“...날아다니는 물고기들도 전부 기계였던 거예요?”

그렇습니다. 기술이 꽤 좋아졌어요. 하늘을 헤엄치며 불을 뿜는 물고기도 그렇고 노래하면서 춤추는 인형도 기계였죠.”

전부요?”

. 전부.”

떨어져서 부숴진 물고기들과 급하게 뛰느라 밟혀 부숴진 인형들이 길거리에 깔려 있었다. 하나같이 속은 작은 나사나 톱니바퀴, 전선으로 이루어져 이리저리 흩뿌려져 있었다. 진짜 물고기나 작아진 사람이었으면 꽤 끔찍하게 보였을 광경이었다.

물고기와 인형들을 뜻모를 눈으로 바라보던 퍼블리는 문득 치트에게 물었다.

마법사님, 그러니까 패치 마법사님은 어디계셔요?”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잠깐 만났지만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네요.”

사실 이 소란 속에서 치트가 가장 먼저 찾고자 했던 게 바로 패치였다. 패치라면 이런 상황을 절대 그냥 두지 않고 상황을 진정시키고 해결하기 위해 효율적으로 움직였을 텐데 지금 패치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까지 도시가 아닌 공간에서 페르스토와 함께 있는 패치는 당연히 현재 상황을 알 리가 없었지만 이 둘도 그런 패치의 상황을 알 리가 없었다.

치트는 퍼블리와 대화하면서도 사람들 사이로 빨간 머리카락을 샅샅이 찾아보고 있었고 퍼블리도 패치에 대한 얘기를 꺼낸 시점부터 패치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발견한 건 가라앉은 분위기 가운데 유일하게 해맑게 웃으며 뛰어다니는 용사였다.

용사님!”

우웅?”

여기로 오라는 손짓에 용사는 순순히 둘에게로 왔다.

용사님 혹시 패치 마법사님 보셨어요?”

빨간칭구?”

.”

요기 없엉!”

지금 여기 말고 다른 데서는 못 봤어요? 사람들 부축했을 때 못 보셨어요?”

없엉!”

용사는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당연하게도 이 셋 중에선 흩어진 이후로 패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담 여기서 먼 도시 구역에 있겠군요. 치료소가 여기 한 군데 뿐만이 아니니...”

아니야, 없엉!”

용사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단호하게 없다고 했다. 많이 뛰어다니느라 여러군데 돌아다녔겠거니 싶어 치트가 패치가 어디 있는지에 대해 물어봤다. 그리고 대답은

몰랑!”

치트는 더 이상 용사에게 묻지 않았다. 대신 퍼블리가 이렇게 물었다.

다른 모든 구역에도 없어요?”

없엉!”

도시 내에 없어요?”

없엉!”

정말로요?”

정말!”

확인 차 묻는 말에도 단언하는 용사에 퍼블리의 표정이 묘해졌다. 고민이 사라지고 기묘한 상황을 목격한 표정이었다.

고마워요! 일단 저 어디 좀 갔다 올게요!”

그렇게 말한 퍼블리는 어디론가 뛰어갔고 치트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잠깐 눈을 떼니 용사도 어디론가 가버려 혼자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기대했던 상황은 아니지만 예상한 상황도 아니었으니 처음은 이걸로 만족해야겠죠?”

대답은 없었지만 치트는 이 침묵이 마음에 들어보였다.

 

열심히 뛰어간 퍼블리가 멈춰선 곳은 바로 공중에 떠있는 건물 아래였다. 달려오는 내내 계속해서 밀려오는 의문에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지금 당장 해볼 수 있는 일은 이거였다.

페르스토가 건넨 비행장치를 꺼낸 퍼블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장치를 자세히 살펴봤다. 딱딱함은 느껴지지만 내부가 반짝이로 이루어져 있는 투명한 물건이었다. 나사나 톱니바퀴 같은 부품은 보이지 않았다. 등을 더듬어 장치를 붙인 퍼블리는 제 발이 땅에서 떨어지는 걸 느꼈다. 이 장치는 기계가 아니었다.

처음 붙여서 날아올랐던 때보다 안정적이게 날아오른 퍼블리는 곧장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난장판이 되어버린 길거리와 달리 똑같았다. 가운데에 있는 마법진도 멀쩡했다.

페르스토가 말한 걸 떠올리며 마법진에 다가가 문을 두드리듯 똑똑 두 번 두드리자 마법진에 빛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동했을 때만큼 환한 빛이 아니었다. 까만 밤의 반딧불이 빛같은 빛이 은은하게 주위를 감쌌고 동시에 마법진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빛나는 게 끝났을 때 쯤, 들은대로 그 자리엔 꽃이 하나 나타났다.

새하얗게 부풀어오른 국화 한송이.

퍼블리는 바로 앞에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이곳엔 마법사가 없다.”

Posted by 메멤
,

도구가 작동되지 않아!”

누구 멀쩡한 응급 전기 충격기 작동되는 사람 있어!?”

왜 안 움직이는 거야?!”

방금 전까지 멀쩡했던 도구들이 모두 마비됐다. 비행도구는 물론이고 급한 환자를 이송하기 위한 구급 이동수단도 움직이지 않았다. 급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피해 골목길로 들어간 치트는 뒤에서 일어나는 소란도 신경 쓰지 않고 깊숙이 들어갔다. 사람들을 도우러 간 용사와 물러난 치트는 서로 이미 떨어진지 오래였다.

골목길에도 떨어진 사람들이 있었지만 길거리보단 적었다. 신음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외침과 뻗어오는 손을 피한 치트는 그런 사람들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숙이 들어왔다. 갑작스럽게 일이 터졌을 때 길거리의 조명들도 꺼진 상태라 안 그래도 어두웠던 골목은 한치 앞도 안 보일 정도로 어두웠다. 아랑곳 않고 들어가던 치트는 어느 부분에서 멈춰섰다. 무릎을 굽히며 천천히 몸을 숙인 치트는 아래로 손을 뻗었다.

역시 직접 들고 다녀야겠습니다.”

손 끝엔 주변과 마찬가지로 검은 게 있었다. 다른 거라면 주변은 빛이 없어서 어두웠다면 손 끝에 있는 건 원래부터 검은 상자였다.

 

사람들이 떨어지는 걸 보고 깜짝 놀란 퍼블리는 바로 밖으로 뛰어나왔다. 하늘을 날던 사람들 뿐만 아니라 걷고 있던 사람들도 위에서 떨어진 사람들과 부딪혀 큰 부상을 입어 상황은 꽤 심각했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난리통을 보고 있던 퍼블리는 곧 침착하게 주위를 살펴 다친 사람들에게 응급처치를 하고 부축했다.

비교적 부상이 가벼운 사람들을 근처 건물의 벽에 기대게 하고 심한 중상을 입은 사람들을 업고 치료소로 가던 퍼블리는 저 멀리 한 팔에 사람을 하나씩 들고 뛰는 용사를 발견했다.

용사님! 다친 사람 그렇게 들면 안 돼요!!”

기겁하며 외치는 퍼블리의 말을 들었는지 용사가 퍼블리를 향해 돌아봤다. 그대로 멈춰서서 빤히 바라보던 용사는 퍼블리처럼 사람을 업기 시작했다. 잠시 안도를 한 퍼블리는 숨 돌릴 틈이 없다는 걸 깨닫고 빠르게 치료소로 데려갔다. 하지만 치료소도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모두 먹통이야!”

대체 왜 이래?!”

여기 급해요! 제발!”

치료도구들도 모두 작동하지 않는지 치료소는 더 한 혼란 속에 잠겨있었다. 부상자들이 끝도 없이 밀려오는 이 상황은 도구가 멀쩡해도 부족해서 위급할 상황인데 도구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 지금은 해결되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부상자들과 당황한 사람들 사이로 정비사들이 달려와 도구들을 살펴보자 그들도 곧이어 당황하기 시작했다.

회로가 다 망가졌어!”

뭐야? 아까 터진 게 전자기펄스야?”

어떤 미친놈이야 도대체!”

당황과 분노에 찬 외침을 들은 퍼블리는 계속해서 밀려드는 부상자들을 보며 마찬가지로 혼란에 잠기기 시작했다. 용사는 자세한 상황도 모른 채 열심히 부상자들을 부축해 데려오기 바빴고 멀쩡한 도구들을 찾아다니거나 급하게 임시적으로 작동되게 부품을 뜯어 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난장판이 따로 없네요.”

골목에서 이런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치트는 등에 검은 상자를 메고 있었다. 아무런 무늬도 없이 온통 까맣기만 한 그 상자는 사람 한 명이 들어갈 정도로 꽤 컸다. 보통 상황이었다면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을 법했지만 치트를 제외한 모두가 바빴다. 그림을 구경하듯 보던 치트는 나른하게 눈을 깜빡이며 이렇게 속삭였다.

어떻게 해결하실래요? 패치.”

 

치트가 몰랐던 건 자기가 콕 집은 그 숙소 내부가 도시가 아닌 다른 공간이었다는 거였다. 내부의 소리가 외부로 새어나가지 않는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외부, 즉 지금의 도시에서 일어난 소란이 내부로 전해지지 않는다는 거였다. 패치는 그렇게 소란을 모른 채 페르스토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중간마다 빼먹는 게 많은 것 같은데 이유가 뭔가?”

저도 전부 전해드리고 싶지만 입이 잠겼는 걸요? 이게 최대입니다.”

이상하다는 건 나도 알고 있고 거기까진 알아봤네. 다만 도시가 이런 상태인 줄은 오늘 처음 알았군.”

이상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치곤 굉장히 담담해서 인식을 못하는 상탠가 싶었는데 다행이네요.”

패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페르스토의 말대로 자신의 상태는 특정 상황을 제외하면 지나치게 잔잔했다. 감정이 가라앉는 게 지나칠 정도로 순식간이었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자네의 입이 잠긴 것처럼 이것또한 이상현상 중 하나겠지.”

글쎄요. 이상현상이라기보단 원래 그런 것 같은데요?”

냉정한 것과 한순간에 인식하지 않는 건 전혀 다른 걸세.”

다시 가라앉는 감정과 인식에서 벗어나려는 주제를 붙든 패치는 혀를 차며 신탁이랍시고 찾아온 사제들과 성기사들 끝으로 치트를 떠올리고 인상을 썼다. 신탁으로 내려온 여행은 절대 평범한 여행이 아니었고 평범한 여행이 될 수 없었다.

세계의 정상화가 각각 들려야할 장소의 이상현상을 없애는 거라니.”

이 도시에 들어온 순간 패치는 이상함을 느꼈다. 용사는 모르겠지만 퍼블리는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고 치트는 어쩌면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신전에도 이상현상이 발생해서 신관들의 눈과 판단력이 엉망이 된 거라고 생각하고 싶을 정도군.”

글쎄요. 이상현상이 사람의 성격까지는 영향을 주진 않는 것 같더군요. 그리고 신전에 이상현상이 생겼다면 신전을 방문해야할 텐데 그건 솔직히 싫잖습니까?”

반사적으로 표정을 찌푸린 패치는 한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자네 말대로라면 인식에 가장 큰 영향을 줘서 보통은 저 밖의 도시 사람들처럼 이상하다는 것 자체를 못 느낀다는 건데 자네는 어떻게 이상하다는 걸 인식했나?”

그에 페르스토는 이번엔 조금 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마법의 도움을 받아 제가 존경하는 그 분처럼 머리가 보라색으로 물드니 구별하는 눈이 생기더군요.”

선글라스 속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잠시 감정과 분위기에 잠긴 페르스토는 다시 큰 웃음을 지어보이며 패치와 눈을 마주했다.

어쨌든 여기 일은 금방 끝날 겁니다. 제가 퍼블리씨께 답을 다 알려줬거든요.”

스스로 말하길 입이 잠겼다는 페르스토는 퍼블리에게 전부 맡겼고 패치는 그 말에 눈을 감았다. 이 둘은 이제 퍼블리가 다시 그 건물로 가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

Posted by 메멤
,

여기 주인인가?”

주인은 아니지만 주인대신 맡고 있는 관리자입니다. 그보다 유명한 사람이 여기를 방문해주시다니 영광이네요.”

그저 오늘 막 도시에 도착한 여행객일세. 숙소를 소개받아 와봤는데 며칠 묵을 손님들을 받는 숙소는 아닌 것 같아서 나갈까 고민하던 참이었네만.”

오호? 그럼 추천자는 누굽니까?”

실내에 들어와서도 벗지 않는 선글라스를 노려본 패치는 이렇게 툭 대답한다.

어느 유명한 대사제.”

이제 여기서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웃음을 내려놓은 페르스토는 선글라스를 다시 고쳐 쓰며 한숨처럼 말했다.

자세한 설명이 더 필요하네요.”

그 전에 그쪽이 어떻게 날 아는지가 더 궁금하군, 내 기억으로는 오늘을 제외하고 지난 5년간 단 한 번도 이 땅을 밟은 적이 없는데 어떻게 날 알아본 거지?”

이 도시에서 한 번도 못 본 사람이기도 하고 방금 전까지 이름이 퍼블리인 분의 길안내를 하다 왔거든요.”

그 말에 패치는 나름 납득했다. 용사를 제외하면 일행 내에서 타인에 대한 경계가 제일 적은 사람이 퍼블리였다. 아마 여기저기 구경하거나 할 때 여행 왔다며 일행 내에도 마법사가 있다며 자신에 대해 얘기한 듯 싶다며 정답에 가까운 추측을 한 패치는 상대를 쭉 훑었다.

사제들 특유의 자세나 행동 버릇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마법사인지 기계관련 전문가인지는 알 수 없었다. 사실 마법 쪽인지 기계 쪽인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종교 쪽에 잡은 손이 있느냐가 문제였다.

그보다 여길 추천해줬다는 유명한 대사제에 대해서 자세히 좀 설명해주실래요?”

나에 대해 안다면 자동적으로 알 수밖에 없는 그 유명한 대사제라네.”

제가 원하는 건 분명 서로 사이가 나쁘다 못해 최악인 사이일 텐데 여길 소개받아왔다는 터무니없는 상황의 자세한 설명입니다.”

그렇담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자네 종교와 관련 있나?”

도시가 만들어진 이후론 5년 동안 성기사의 검은 물론이고 사제의 옷자락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네요.”

종교 측과 연관이 없다고 주장하는 말에 패치는 잠시 고민했다. 여러모로 의심스럽지만 퍼블리와 만났다면 5년 동안 도시에 발 한 번 안 들이다가 이번에 여행 일행까지 만들어서 들어온 자신에 대해 기본적인 궁금함이 있을 테니 어디까지 해소하는 게 좋을까 하다가 다시 한 번 확인 차 큰 정보를 던졌다.

신탁이 내려졌네.”

?”

신탁은 다짜고짜 여행해야할 사람들을 가리켰고 그 중에 내가 포함되어있었네.”

그 말을 들은 페르스토는 손을 입가에 가져가 톡톡 두드렸다.

혹시 퍼블리씨와의 관계가?”

빚을 졌지.”

인질이군요. 그런데 그 외에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묻는 저의가 뭔가?”

패치의 반문에 씩 웃더니

실력도 굉장하다 들었는데 인질이 있어도 그냥 대사제만 끌고 가서 묻어버리면 간단하잖아요?”

무시무시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사실 패치도 그런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지만 고민할 새가 짧았다. 바로 용사를 만나러 갔고 용사가 해맑게 붙잡으면서 화해를 외쳤기 때문이었다. 여행이라는 이름의 기회를 조건으로 거래도 했으니 그러기엔 곤란했다.

복잡하게 얽힌 게 더 있네.”

고생하시는군요. 일단 제가 종교 측과 관련이 있는지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곳은 잠입한 사제는 물론이고 웬만한 기계관련 사람들도 들어올 수 없거든요.”

마법사만 들어올 수 있는 건가?”

단순히 마법사만 들어올 수 있다고 콕 집기엔...애매하군요. 특정 조건을 만족해야 들어올 수 있습니다. 거기에 마법은 어쩌다보니 덤으로 딸린 거라 생각하면 편합니다.”

조건에 대해선 자세히 말해줄 생각이 없어보였기에 패치는 더 묻지 않았다. 덤으로 딸려 있다 해도 이 숙소가 마법과 연관되어 있다면 종교 측에 가장 적대적일 마법사가 주로 이용하는 비밀스러운 곳이라서 이번 기회에 내부를 살펴보기 위해 콕 집은 게 치트의 속셈일 수도 있었다.

그렇담 이 도시에 그 대사제가 들어와 있다는 얘긴데...마법사를 감금시킨 것도 그렇고 보통 담이 아니네요.”

지금은 깐족거리기까지 하니 담이 큰 수준을 넘었다고 하려던 패치는 굳이 꺼낼 필요 없는 얘기다 싶어 도로 집어넣었다.

그럼 일단 앉을까요? 이렇게 계속 서서 얘기할 만큼 짧은 대화가 될 것 같진 않아서요.”

그러기엔 의자와 문이 가깝군.”

누군가 엿들을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저 문의 역할은 단순히 사람 가려 받는 게 아니라 일종의 통로거든요.”

페르스토는 특유의 큰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 공간은 도시와 별개의 장소입니다.”

패치는 저렇게 내내 웃음 달고 있는 사람이 또 있구나라며 조금 뜬금없는 생각을 했다.

 

용사는 신나게 뛰어다니고 치트는 그런 용사의 뒤를 따라다녔고 퍼블리는 이제 막 숙소로 돌아와 자기 방으로 들어왔다. 아직 용사가 나간 줄 모르는 퍼블리는 도시를 그려놓은 종이들을 펼쳐 길을 살펴보고 대략적인 선을 그어놓으며 본격적으로 지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 집중하고 있던 도중 갑자기 창문 너머가 환하게 빛나더니 곧이어 쾅! 커다란 폭음이 들려오자 깜짝 놀란 퍼블리는 펜을 떨어뜨렸다. 펜을 줍고 일어난 김에 무슨 일인가 싶어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민 퍼블리는 떨어지는 물고기를 봤다. 그 다음으로 마주친 건 처음 보는 사람의 당혹스럽다는 표정이었다.

다들 나는 거 질렸엉~?”

이 광경을 보고 있는 건 용사와 치트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밖에 나와 있으니 바로 눈앞에서 물고기와 사람들이 떨어졌다. 비명소리 한가운데서 용사는 떨어지는 사람을 몇 명 받아냈고 치트는 부딪히지 않게 한 발 물러났다.

아프다고 울부짖는 소리와 살려달라는 비명이 끊임없이 울렸다. 땅 위로 걸어다니느라 떨어지지 않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여 부상자들을 부축했다.

Posted by 메멤
,

혹시 왜 알려주지 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그것도 아직은 알려주지 말랭!”

철저하게 정보가 새는 걸 막은 패치에 치트는 역시나 하면서도 아직이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그렇담 저는 언제 알 수 있습니까?”

다 물어보면!”

이로써 패치가 용사에게 질문을 했고 그 질문은 여러 개라는 걸 추측한 치트는 조금 고민하다가 지금은 이 정도로 만족스럽다고 생각했다.

퍼블리님은 어디 계십니까?”

~ 한 새에 없어졌엉!”

잠든 새에 나갔다는 걸 알아들은 치트는 지금 용사를 감당해야하는 건 자기 혼자라는 걸 깨달았다. 치트는 미묘하게 굳은 웃음을 지으며 용사를 바라봤지만 용사는 대화가 끝난 후 신나게 달려가기 바빴다. 까르륵 웃으면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는 용사를 지켜보던 치트는 하늘을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해가 졌는데도 물고기들이 선명하게 모습을 보이며 불을 뿜고 있었다.

여기엔 과연 얼마나 머물러 있으려나요?”

처음이니까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네요?

 

이만 돌아갈게요.”

야경을 충분히 감상한 퍼블리는 그렇게 말하며 난간에서 멀어졌다. 페르스토도 그림을 충분히 감상했는지 종이들을 돌려줬다. 내려가려면 다시 마법진 위로 가야한다는 말에 퍼블리는 다시 한 번 신발바닥을 살펴봤다. 얼룩이 묻지 않는다 해도 정교하고 정성스런 마법진을 밟는 건 만든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마법진을 만든 사람은 누구예요?”

그 질문에 페르스토는 잠깐 말이 없었다. 마법진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더니 다시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한다.

무토.”

이름만 들어선 모르는 사람이지만 퍼블리는 더 묻지 않았다. 그냥 무토라는 마법사가 만들었구나 싶어 그렇구나하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패치를 떠올렸다.

저희 일행 중에도 마법사님이 있는데 이 마법진을 보면 저만큼은 아니어도 신기해할까요?”

“...마법사가 일행이라고요? 혹시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패치라고 하셨어요.”

퍼블리는 스스로 말하고도 놀라 움찔했다. 당사자도 아닌데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신상을 말한 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름을 들은 페르스토는 굉장히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 이름을 들을 줄이야. 여러모로 다른 사람과 엮이지 않는 걸 원하는 분일 텐데 같이 여행하는 일행이라니 놀랍군요?”

혹시 서로 아시나요?”

아뇨. 5년 전 사건으로 인한 유명인이잖습니까?”

퍼블리는 하하 어색하게 웃는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본인도 알고 싶었지만 알 수가 없었다.

...떤 대사제님께서 미운털을 제대로 박았다고만 알고 있어요.”

굉장히 축소된 채로 알고 계시는군요. 사실 진실인지 아닌지는 저도 모르겠지만 이 도시가 만들어지게 된 계기를 제공한 사건이었으니 사람들은 진실 여부가 어찌됐든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겠죠.”

여기서 그 대사제도 일행 중 한 명이라고 한다면 단순히 놀랍다는 감탄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느낀 퍼블리는 더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 외에도 환각 마법 분야에서 굉장한 실력도 갖추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며 관심을 표했지만 더 이상 멋대로 말하긴 그랬던 퍼블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마법진을 통해 내려온 그들은 출입문을 열고 등에 다시 비행 장치를 달아 안전하게 내려왔다. 해가 진 이후로 시간이 지난 지 조금 되었는데도 길거리의 사람들은 돌아갈 생각이 없어보였다. 여전히 복잡한 길을 보고 있던 퍼블리는 등에서 장치를 떼어내 페르스토에게 건넨다.

돌려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가지세요.”

? 그치만...”

오랜만에 길게 대화해서 즐거웠습니다. 그에 대한 선물이라고 생각하십쇼. 이 도시에 며칠 있으실 거라고 했으니 아까 그 건물로 다시 가려면 비행 장치는 있어야 하니까요.”

그렇다고 해도 이 장치의 값이 단순히 껌이나 사탕 값 수준이 아니라는 걸 아는 퍼블리는 머뭇거렸다. 페르스토 입장에선 정말 상관이 없었지만 퍼블리의 양심은 누구보다 컸다.

그렇담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겠습니까?”

부탁이요?”

간단합니다. 우선 도시를 먼저 둘러본 후 이상하다고 느꼈다면 다시 저 건물로 가셔서 마법진을 손으로 두 번 두드려주세요. 그러면 꽃이 하나 나타날 겁니다. 그 꽃에 대고 이렇게 말해주세요.”

퍼블리에게만 들리도록 작게 속삭인 말에 깜짝 놀란 퍼블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말이 지금 제일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하하! 그렇게 따지면 이 세계 자체가 이상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걸로 되나요? 차라리 값을 드릴게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페르스토는 행여나 비행 장치를 돌려줄까 싶어 빠르게 사라졌다. 퍼블리는 난감한 표정으로 장치를 만지작거리다가 종이들을 넣어놓은 주머니를 고쳐들고 길을 걸었다.

 

2층까지 올라가본 패치는 이곳과 이곳을 콕 집은 치트에 대해 더더욱 의문이 들었다. 2층에도 방들이 있었지만 돈 받고 손님을 재우는 장사적인 숙소라기 보단 살펴보면 볼수록 특정 단체들이 자체적으로 지내는 숙소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만약 여기에 공구상자나 마법도구들이 있거나 건물 옆에 연구소가 있다면 연구원들이 지내는 숙소가 아닐까 싶었지만 모든 방은 침대와 책상만 딸려 있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2층에서 내려온 패치는 이대로 돌아갈까 아니면 수상한 게 있나 조금 더 탐색해볼까 고민했다. 만약 추측한대로 특정 단체가 사용하는 숙소라면 이건 무단침입이었다. 하지만 문을 잠그지 않고 그대로 둔 것도 이상했기에 어찌해야할지 선택해야했다.

그러던 순간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 손님이 오셨군요?”

들어온 건 방금 퍼블리와 헤어지고 온 페르스토였다.

Posted by 메멤
,

경치 좋죠?”

갑자기 밖이 보이게 됐는데 어떻게 된 거예요?”

마법진을 통해 맨 꼭대기로 올라온 거죠.”

마법진이라는 말에 퍼블리는 발밑의 그림을 내려다보며 뒤로 물러섰다. 흙도 밟아온 신발 밑창이 제법 지저분할 텐데 얼룩도 하나 없었다. 신기함에 마법진을 계속 살펴보던 퍼블리는 안내자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높은 곳에서 보는 경치 보러 온 거 맞죠?”

, 맞아요.”

다시 생각해봐도 높은 곳을 고르는 안목이 좋네요. 사실 여기 말고 다른 높은 곳들도 많을 텐데 여기를 고른 이유가 따로 있나요?”

난간 가까이로 다가간 퍼블리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사람들과 물고기들이 보였다.

물고기들이 아래에서 보일 것 같아서요.”

그리고는 천천히 경치를 감상하며 종이와 펜을 꺼내들었다. 우선 먼저 보이는 걸 간략하게 그리고 다른 방향으로도 가며 고개를 들고 숙이고를 반복했다. 그럴수록 종이에 그려지는 게 많아졌다.

열심이네요?”

곧 해가 지니까 안 보이기 전에 최대한 그려놓게요.”

, 해가 져도 걱정은 마세요! 오히려 해가 진 광경이 더 볼만할 겁니다.”

오히려 낮보다 밝을 거란 말에 퍼블리는 의아해하면서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림들을 상세하게 완성하고 있을 때쯤 시야가 꽤 어둑해지더니 갑자기 밝아졌다. 해가 지니 건물 천장에 달려있는 등에 불이 들어온 거였다.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까맣게 탄 하늘을 본 퍼블리는 다시 난간 너머를 바라봤다.

!”

야경이 끝내주죠?”

불이 들어오면서 하늘처럼 까만 땅과 대비되어 도시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퍼블리는 그리던 것도 멈추고 도시의 야경을 감상했다. 안내자는 그런 퍼블리를 구경하고 있다가 종이로 시선을 돌렸다. 이 건물을 중심으로 도시를 그린 밑그림은 길이 제일 강조되어있었다.

그림 좀 봐도 될까요?”

? , .”

안내자는 종이를 주워들어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도 천천히 그림들을 뜯어보는 게 보일 정도로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퍼블리는 어쩐지 기분이 좋으면서도 조금 부끄러웠다. 완성한 것도 아니지만 저렇게 자세히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기뻤고 안내해준 사람이니 거절하는 건 아닌 것 같았고 완성한 게 아니라서 아직은 보여주기 그랬기 때문에 안내자의 반응을 살폈다.

그러고 보니 서로 소개를 안 했네요? 제 이름은 퍼블리 셔예요.”

퍼블리의 소개에 그림을 보던 안내자가 고개를 들고 씩 웃었다.

전 페르스토입니다.”

 

반짝 눈을 뜬 용사는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이제 막 해가 진 이후라 창밖의 하늘은 어둑했지만 사람들이 킨 불빛들 덕분에 낮보다 더 환해보였다. 방 밖으로 나온 용사는 복도를 둘러봤다. 사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자다시피 했으니 다른 일행들의 방이 어느 방인지는 몰랐다.

우웅~”

조용한 복도 가운데에 선 용사는 고개를 기울이며 눈을 깜빡였다. 무언가를 생각하는가 싶더니

반짝반짝 축제~!!”

일행 그 누구보다 행동력이 빠른 용사는 단숨에 밖으로 뛰어나갔다. 퍼블리가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면 벌어진 거였다. 길거리는 불빛 덕분에 환했고 아예 그 빛을 이용해 시선을 사로잡는 이들도 있었다. 그 중심에 흥겹게 춤을 추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 뒤로는 재주를 넘는 사람들도 있었다. 재밌는 광경에 용사는 당연히 그쪽으로 달려갔고 어느새 용사의 손엔 관광물품들이 가득했다.

비눗방울 피리를 열심히 불던 용사는 익숙한 뒷모습을 발견했다. 검게 솟고 뒤로 넘겨진 머리는 굉장히 눈에 띄었다. 치트였다.

우웅...”

하지만 용사는 치트를 바로 부르지 않고 침음을 흘리며 눈을 깜빡였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패치는 대화를 나눠도 상대의 이름을 잘 부르지 않았고 치트는 열심히 패치 이름을 부르고 퍼블리의 이름도 제대로 불러줬지만 본인이 본인을 스스로 부를 일이 없으니 이름을 잘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일행 내에서 퍼블리가 가장 많이 일행들의 이름을 골고루 불렀다. 용사에게 가장 많이 붙어있다시피 한 것도 퍼블리였으니 용사는 바로 퍼블리를 떠올렸다. 퍼블리는 치트를 이렇게 불렀었다.

...!”

아이고 용사님 아닙니까?”

단어가 완성되기 전에 치트가 잽싸게 달려와 용사의 입을 막았다. 도시의 길거리 한 가운데에서 사제님이라고 불렀다가 곧바로 일어날 난리가 눈에 훤했기에 치트의 뺨에 식은땀이 조금 흘렀다.

제 이름은 치트입니다. 치트.”

치투?”

치트.”

!”

앞으로는 부르려던 그 단어 빼고 편한대로 부르세요.”

퍼블리는 사제님 앞에 치트라는 이름을 꼬박 붙여 불렀지만 용사는 사제님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치트는 이름으로 불리는 걸 더 좋아한다면서 용사를 설득했고 용사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용사님이랑 단 둘이 대화하는 건 이번이 두 번째네요~?”

환각의 숲에서 처음 만난 이후론 치트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용사를 미아 방지 차원에서 자주 지켜보곤 했지만 정작 대화를 나눈 건 손에 꼽았다. 그마저도 용사님 그쪽이 아닙니다 하고 뛰어가지 못하게 잡아둔 거 외에는 대화라고 할 게 없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패치가 둘이서 제대로 대화하는 상황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자연스럽게 견제했기 때문이었고 치트 스스로도 용사가 일으키는 말썽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한 발짝 물러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가? 하며 고개를 기울이는 용사를 보며 미소 짓던 치트는 검은 색 가득한 가운데서 노란 빛을 띄우며 물었다.

그 때 빨간 머리 마법사님이 귓속말로 무슨 말을 했는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알려주지 말랭!”

해맑게 웃으며 외치는 용사에 치트는 그렇군요 하며 마주 웃어줬다.

Posted by 메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