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이제 날이 거의 저물어가니 진짜 가야겠다는 생각에 헵토미노를 바래다주고 돌아가려고 했지만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집이 관리를 안 한지 꽤 오래 된 낡은 집처럼 변하자 심상찮음을 느끼고 들어가보니 집 안에 온기는커녕 사람 사는 흔적이 아예 사라졌다.
의자와 탁자가 있던 자리는 물론이고 자잘한 선반들도 전부 사라져 휑한 모습이 폐가와 다를 바가 없었다. 불안함을 느낀 헵토미노가 덜덜 떨기 시작했고 용사는 다른 집에 들어왔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한 번 갸웃하더니 그대로 나가려했다.
“...용사님 여기 맞아요.”
“우웅? 다른 데?”
“장소가 같아요.”
방 안까지 다 살펴봤지만 가구 하나 없이 휑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이 당황스러운 건 퍼블리도 마찬가지였지만 불안을 넘어서 겁에 질린 헵토미노의 표정을 보니 애써 동요를 누르고 물었다.
“일단 오늘은 우리랑 같이 갈래?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해가 지려고 하고 있고...음...여기 있기엔 좀 그러니까...”
애 혼자 여기 둘 순 없는 노릇이라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한 효과가 있는지 헵토미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바둑이가 끙끙 울면서 주위를 빙빙 돌더니 위로하듯이 앞발을 턱! 올렸다.
퍼블리와 용사, 헵토미노가 나무 무덤으로 도착했을 땐 해는 이미 진 상태였지만 먼저 도착한 둘이 불빛을 만들어놨는지 환한 상태였다. 다만 상황이 좋지 않아보였다. 서 있는 사람은 세 명이었고 둘은 당연히 일행인 패치와 치트였지만 다른 하나는 헥소미노였다. 굉장히 분노한 모습을 보아하니 만약 사람이 한 명이거나 손에 무기가 될 만한 걸 들고 있었으면 진즉에 휘둘렀을 기세였다. 치트는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패치의 표정은 싸늘했다. 굉장히 흉흉한 기세에 섣불리 다가가지 못한 퍼블리였고 용사는 그 기세를 눈치채진 못했지만 퍼블리가 멈춰서니 덩달아 같이 멈춰섰다.
“아빠?”
앞의 둘만 보고 있던 헥소미노가 돌아봤다. 헵토미노와 제대로 눈이 마주치자 분노 가득했던 표정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새로 바뀐 표정은 공포와 혼란, 죄책감이 가득해보이는 게 꼭 죄를 들킨 사람처럼 보였다. 퍼블리는 헵토미노를 잡고 있는 손을 놔줘야하나 아니면 이대로 계속 잡고 있어야하나 고민했다.
“아빠?”
“네, 제 아빠예요.”
“우웅~ 그르믄 할무니 어디 갔는지 물어보믄 되겠당!”
이어진 용사의 말에 헥소미노의 표정이 굉장히 창백해졌다. 덜덜 떨면서 천천히 다가오더니 열 걸음 떨어진 거리에 멈춰서서 묻기를
“할머니라니...?”
“저 그동안 할머니랑 같이 살았는데요...?”
“어...디서?”
아이가 불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손가락으로 지나온 길을 가리키며
“저, 저기 숲 쪽의 큰 집에서요.”
비록 뒷모습 밖에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기색만으로도 시체보다 더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겠다고 생각한 패치는 저 앞에서 어찌할 줄 모르는 퍼블리와 용사에게 눈짓했다. 퍼블리는 알아들었고 용사는 알아듣지 못했다. 헵토미노의 손 대신 용사의 손을 잡은 퍼블리는 천천히 일행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헵토미노는 잡고 있던 손이 힘을 풀며 사라지자 흠칫 놀랐지만 바둑이를 안고 있는 데에 더 보탰고 헥소미노는 바로 눈 앞에서 그러는데도 보이지 않는 건지 신경쓰지 않았다.
“왜...? 왜 할..머니랑 살고 있었던 거야...? 너, 너를 돌봐주던 사...람들은?!”
다그치듯이 외치는 말에 겁을 먹었는지 아이가 울먹이면서 말하길
“가..갑자기 사라졌는데...”
결국 헵토미노는 울음을 터뜨렸고 헥소미노는 그런 아들을 채 달랠 정신도 없는지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가까이 다가오던 퍼블리는 패치의 옆에 파인 땅을 발견했고 그 속을 들여다보자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알고 있었나?”
“...헵토미노가 말해줬어요.”
용사가 엄마에 대해 묻자 헵토미노는 자기가 아주 어렸던 아기 때, 기어다니지도 못하고 요람 속에 누워있을 때 돌아가셨다고 대답했다. 그 대답에 헵토미노의 집에 들르기 전까지 신시어와 대화했던 퍼블리는 소름이 돋았고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오기 전까지 고민했다. 이제는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있었다.
“아, 그렇다면 설마...”
문득 떠오른 게 있는 퍼블리는 비석처럼 세워진 나무들을 둘러보고 굉장히 조심스러운 얼굴로 뒤돌아봤다. 헵토미노는 울고 있었고 헥소미노는 울고 싶어하는 얼굴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네.”
퍼블리의 심정을 눈치챘는지 냉정하게 잘라내는 말이 날아왔다.
“이미 지나버린 일들이고 지금까지는 말 그대로 이상현상이었고 저 자는 현실도피를 했을 뿐이네.”
현실도피라는 단어가 걸렸는지 움찔 돌아본 퍼블리의 표정은 울컥 올라온 화가 슬픈 표정에 아주 약간 섞였다. 하지만 어째서 그렇게 과한 말을 하냐고 따질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걸 잘 알았기에 뭐라 말하는 대신 다시 헵토미노를 돌아봤다.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는 건 강아지뿐이었다.
결국 헥소미노가 지친 얼굴로 울다 지친 제 아이를 데려가는 걸로 당장의 상황이 마무리 됐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현실이 버거웠던 건지 아니면 마주하기가 두려웠던 건지 무덤이 있는 바로 뒤쪽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가버렸다.
“...끝난 거예요?”
황망한 물음이 빈자리를 채웠다. 침묵이 긍정이라는 듯 그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용사는 관 안에 누워있는 신시어를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패치는 그런 용사를 비키게 한 후 삽을 들었다. 파헤쳐진 진실은 다시 무덤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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