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저물어가고 있는데도 둘이 돌아오지 않자 패치의 눈썹 끝은 당연한 수순으로 치켜올라가고 있었다.

대형 정보를 물어오느라 늦는 걸수도 있잖슴까~?”

얻더라도 돌아오지 못하면 빈 손으로 오는 것만도 못하다는 걸 모르나?”

최소한의 추적 기능도 달아놨어야 했다며 표정을 찌푸리던 패치는 나무들을 쭉 훑어봤다. 네모난 나무 막대들을 이어붙인 모양새들은 이질감이 상당했다. 흙을 보니 심었다기보단 막대를 박아 놓은 모양새였다. 패치의 눈매가 가늘어지면서 치트를 돌아봤다.

차라리 용사랑 있는 게 더 나은 것 같군.”

당사자 앞에서 대놓고 그렇게 말씀하면 제 마음이 아파요~?”

왜 끝이 의문형인가? 그리고 자네 마음이 아프던 말던 내 알 바가 아니네.”

그에 치트가 매정하다는 둥 뭐라 더 말했지만 패치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단 둘이 남게 되면 늘 저러니 최대한 길게 무시하는 게 상책이었다.

둘이 약속장소에서 만난지는 꽤 된 상태였다. 패치는 이상하고 기묘한 사람을 만났었고 치트는 땅 주인을 만났었다. 그런데 둘 다 정보를 교환하지 않고 내놓지도 않았다. 지독한 눈치 싸움이었다. 일단 여기서 마냥 기다릴 수도 없고 경계심이 한 없이 0에 가까운 용사라도 먼저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패치가 북쪽으로 고개를 돌리던 때였다.

헵토미노!!”

처음 듣는 이름을 부르며 누군가가 달려오고 있었다. 여기서 처음 만났던 신시어였다. 동쪽 방향에서 달려오길래 그 쪽으로 간 퍼블리의 행방을 물어볼 수 있을까 했지만 달려오는 기세와 점점 보이는 표정이 심상치 않아 패치도 잠시 주춤했다. 그 틈을 타 달려오던 신시어가 먼저 패치에게 물었다.

혹시 남자 아기 못 보셨나요!? 아직 제대로 기어다니지도 못하는 아기인데 혹시 누가 데리고 있는 모습 못 봤나요?!”

아기?”

반문하는 패치에 본 적이 없다는 걸 눈치 챘는지 신시어는 다시 바쁘게 뛰어갔다. 패치는 뛰어가는 신시어를 잡진 않았다. 다만 가라앉아 싸늘한 시선이 그 뒤를 좇았다.

자네 집에 들렀을 때를 기억하나?”

기억 함다~ 아무리 봐도 애가 있을 법한 집은 아니었는데 말이죠.”

아기 용품 하나 없던 집. 아기를 키우지 않는 이들도 알다시피 아기를 키우는 덴 많은 수고가 든다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이상하네요? 얼핏 봤을 땐 집 안에 아기용품은 하나도 없었던데 말이죠~”

그런만큼 아기용품이 아주 눈에 잘 띄고 바로 쓸 수 있는 곳에 두는 게 편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상한 게 훤히 보이는데 정작 뭐 때문인지가 보이지 않는군.”

이상한 걸 다 대면 되지 않겠슴까?”

그걸 다 어디다 대고 말하나?”

그것도 찾아야죠~”

전형적인 말은 쉽다의 표본이었다. 패치의 눈살이 찌푸려진 것도 잠시, 문득 든 생각이 있었는지 이렇게 말한다.

생각해보니 해결 방법이 같으리란 법은 없잖나?”

, 그렇죠?”

장소만 찾아내면 끝이란 거군.”

짐작 가는 데가 있슴까?”

패치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둘이 있는 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있었다.

아직도 안 갔냐?”

땅 주인 헥소미노였다. 나타난 방향과 처음에 비해 꽤나 흥분이 가라앉은 태도를 보았을 때 치트를 만났던 게 틀림 없다고 생각한 패치는 잠시 탐색하려는 건지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금방 간다더니 언제까지 여기 죽치고 있을 거야?”

죄송함다~ 시간이 더 필요한가 봄다~”

정확히 얼마나 더 필요한데?”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는지 표정이 처음 만났을 때처럼 험악해져가고 있었다. 치트가 난감하게 웃으며 대답하려던 때였다.

그러고보니 방금 전 당신의 아내를 만났었네만.”

헥소미노의 표정이 더욱 험해졌다. 패치는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우리더러 아직 기어다니지도 못하는 아기를 보지 못했냐고 묻고 헵토미노라는 이름을 부르며 저쪽으로 뛰어가더군.”

그 말에 헥소미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으면서 패치가 가리킨 방향으로 바로 뛰어갔다. 잠시 지켜보던 치트는 패치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고 물었다.

순순히 보내주시네요?”
계속 얘기를 나눠봤자 좋을 게 뭐 있나? 보아하니 얼른 떠나지 않으면 아주 감시할 기세던데.”

패치는 그리 말하며 잠깐 여기 기다리라고 한 후 어디론가로 가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왔는데 양 손에 삽을 든 채 나타났다.

삽은 어디서 얻었슴까?”

처음부터 챙겨왔네만.”

하지만 삽이라니 보통은 잘 안 챙기는데 말이죠? 준비성이 남다르시네요~”

언젠가 자네를 묻을 때 사용할 건데 당연히 챙겨야하지 않겠나?”

치트는 하하 웃으며 농담이시죠? 물었지만 패치는 대답하지 않았다. 치트의 뒷목에 식은땀이 살짝 흘러내렸지만 삽을 들고 나무들 가까이 걸어가던 패치는 못 봤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게 한 둘이 아닐세. 도시에서는 이상한 게 무엇 때문인지 아주 명확했지만 여긴 그렇지 않지, 대놓고 이상하다는 걸 보여줬지만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고. 여기와 도시의 차이점은 방금 말한 거고 공통점은 이상한 걸 대놓고 보여주는 걸세.”

삽자루를 쥐던 패치는 이어서 설명했다.

또 차이점을 짚자면 도시는 누군가가 해결책을 알려줬고 여긴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것도 차이점이지.”

그렇게 말하며 패치는 나무 한 그루 앞에서 멈췄고

이제 겨우 두 번째긴 하지만 사람이든 물건이든 아니면 다른 무언가든 간에 어떻게든 우리에게 해결책을 전하려고 한다고 가정한다면

패치는 나무가 꽂혀있는 것처럼 심어진 흙부분을 삽으로 쿡 찌르며 말을 끝낸다.

명칭 자체가 의미와 같다고 예상해볼 수 있지.”

패치는 그리 말하며 무덤을 파내기 시작했다.

 

헵토미노! 헵토미노!!”

여보!!”

신시어를 따라잡은 헥소미노가 그대로 붙들어 멈추게 했다.

헵토미노! 내 아기 어디갔어?! 헵토미노!!”

여보, 신시어! 진정해, 헵토미노 무사해!!”

어떻게 진정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진 절대 안심할 수 없어!”

헵토미노 다른 분들한테 맡겼어! 기억 안 나?!”

우리가 멀쩡히 있고 어디 갈 일도 없는데 왜 맡겨? 맡길 이유가 없잖아! 왜 거짓말을 해?!”

거짓말 아니야!”

그럼 누구한테 맡겼는데?!”

헥소미노의 표정이 희게 질렸다. 심상치 않은 반응에 신시어가 붙잡고 자세히 캐묻기 시작했다. 그런 끝에 나온 대답은

“...요정.”

“...?”

완전히 넋을 놓은 듯한 표정으로 신시어가 툭 말을 뱉었다.

당신 제 정신이야?”

헥소미노가 고개를 푹 숙였다. 신시어가 덜덜 떠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개 들어.”

그 말에도 헥소미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결국 목소리처럼 덜덜 떨고 있는 손이 고개를 들어올렸다. 헥소미노의 표정은 한껏 구겨져 있었다. 마치 여러 감정을 전부 다 구겨넣은 듯한 모양새였다. 그 안에 담겨 있는 감정들은 슬픔, 공포, 당황, 혼란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자리를 차지하는 건 후회였다. 신시어 또한 혼란스러운 눈으로 마주하며 입을 벌린 순간

“...여보?”

 

패치는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냈다. 땅을 팠기 때문에 흐른 땀인지, 지금 막 발견한 진실 때문에 흐른 땀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는 몰랐지만 그만큼 목격한 진실은 꽤 충격적이었다. 해가 점점 저물고 완전히 어두워지기 직전, 흙이 아닌 다른 게 나타났다. 조금 더 넓게 파보니 상자처럼 보였고 완전히 흙들을 걷어내니 상자처럼 보였던 건 관이었다. 누구의 관인지 이름이 적혀있을 부분은 칼자국이 거칠게 난 상태로 지워져있었다. 하지만 누구의 관인지는 열어보는 순간 바로 알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보였던 건 죽은 이들에게 애도의 표시로 바치는 흰 국화였다. 하지만 이게 진실이 된 이상 이 국화는 마냥 애도의 표시로 보이지 않았다.

“...죽은 자가 살아 움직이다니...”

흰 국화에 둘러싸여 있는 신시어는 이제 영원히 눈을 뜰 수 없었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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