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서 들른 도시보다 더 대놓고 이상현상을 보이는 이 상황에 대해서 퍼블리는 대체 뭐라 반응해야할지 애매한 모습을 보였다. 용사는 애초에 이상하고 멀쩡하고를 구분하지 않는 듯 싶었다. 바둑이와 노는 게 더 중요해보였다.

? 할머니 오셨나봐요!”

아이 그러니까 헵토미노는 할머니가 돌아왔는지 알아보는 방법이 있는 건지 닫혀있는 현관문만 얼핏 보고도 그렇게 말했다. 문을 똑똑 두드리더니

할머니! 손님들이랑 같이 들어가도 돼요?”

그러자 안쪽에서 언듯 희미하게 그러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워낙 작아서 놓칠 뻔 했지만 다행히 헵토미노는 들었는지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들어오세요!”

실례한다는 인사말을 꺼내며 조심스럽게 들어오자 휠체어에 앉아있는 노인이 보였다. 나이가 들면 거동이 불편해진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지만 코에 꽂혀있는 산소호흡기, 손등에 꽂혀있는 호스가 휠체어 뒤에 수액과 이어져있는 모습을 보니 누워있어야 할 환자였다.

, 안녕하세요...?”

“...아가. 들어가있거라.”

노인의 말에 헵토미노는 의아해했지만 바둑이를 안고 살금살금 방 안으로 들어갔다. 심상찮은 분위기를 눈치 챈 퍼블리는 미리 용사의 입을 막았다.

외부인이 여기까지 오는 건 처음이군. 전에 왔을 녀석들은 저 무덤을 보러 가다가 그 못난 녀석에게 내쫓겼겠지.”

못난 녀석이 누구인가는 금방 떠올릴 수 있었다. 일행들을 어서 이곳에서 내쫓으려고 했던 건 바로 헥소미노였으니까.

너희들은 왜 여기까지 온 거냐? 쫓겨난 녀석들은 우드가 없으니 우드가 열렸던 나무라도 뽑아가려고 안달이 났었지만 너흰 우드는 안중에도 없구나.”

아픈 몸상태를 대변하듯 잔뜩 쉬고 가라앉은 목소리였지만 내용과 기세만큼은 창보다 더 예리했다. 퍼블리는 조금 긴장한 얼굴로 어디까지 얘기해야하나 고민했고 동시에 용사의 입을 막고 있던 손에 힘이 풀렸지만 용사가 바로 입을 열기까지 인식하지 못했다.

이상한 거 찾으랭~!”

용사에게 시선을 준 노인은 한숨같은 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퍼블리가 좀 더 상세히 설명하려던 순간 노인의 입이 열리는 게 더 빨랐다.

보다시피 그리 오래 움직일 수 없는 몸이라 가장 최근 상황은 몰라도 뭐가 어떻게 이상하고 달라졌는지는 알고 있지. 제대로 된 목적도 모르는 낯선이들에게 함부로 말할 수도 없는 얘기이기도 하니까 들을지 듣지 못할지는 너희들이 하는 말에 달려있다는 걸 알아두거라.”

경고인 듯 싶으면서도 언뜻 들으면 충고같은 말에 퍼블리의 표정에 의아함이 깃들었지만 곧이어 솔직하게 말하는 게 최고라는 걸 알아채고 여행 이야기와 신탁의 내용까지 전부 말했다. 묵묵히 듣고 있던 노인은 문득 말했다.

넌 사람의 선의를 쉽게 믿거나 아니면 속이는 것 자체가 힘들어하는구나.”

?”

네가 솔직히 모든 걸 말한다고 해도 상대방도 마찬가지로 모든 걸 알려줄 거란 생각은 하지 마라. 함부로 모든 걸 내보이는 순간 눈 뜬 채로 네 손을 벨 녀석들이 수두룩 한 걸 모르진 않을 테니.”

그렇지만 음...어르신은 제 손을 벨 생각은 없잖아요?”

그러자 노인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 표정에서 어딘가 익숙함을 읽은 퍼블리는 하하 웃으며 시선을 피했다.

그래 네 말대로 난 네 손을 벨 생각은 없다. 이용해먹을 생각도 없지. 지금 솔직히 말한 건 옳은 판단이긴 했다.”

그리고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몸이 좋지 않은 만큼 말하는데 힘이 부쳐보였다. 숨소리가 안정 되었을 때 나온 말은

무덤으로 가봐라.”

거긴 나무 밖에...”

나무만 봐서 뭘 하느냐? 상자도 뭐가 들었는지 살펴보기 위해선 열어보는 법인데 나무만 멀뚱히 보면 쉽게 찾을 답도 영원히 못 찾는 건 당연하지!”

결국 큰소리가 나오자 찔끔 놀란 퍼블리가 옆이 훤하다는 걸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용사는 어디로 갔는지 옆엔 아무도 없었다.

고 덩치만 큰 어린녀석은 헵토미노 따라 나갔다. 키도 큰 녀석이 잽싸긴 다람쥐만큼 잽싸더구나.”

방 안에 있는 게 심심했던 헵토미노는 나름 몰래 나간다고 몰래 나갔지만 못 본 건 퍼블리뿐이었다. 노인은 봤어도 모르는 척 했고 용사도 심심했는지 바로 따라 나갔다.

어쨌든 내가 할 말은 이게 끝이니 얼른 가봐라. 해질 때 가면 더 찾아보기 힘들 거다.”

노인은 그렇게 말하고 눈을 감았다.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뜻처럼 보였다. 퍼블리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나가기 전, 이제야 생각난 표정으로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고보니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잠시 기다려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결국 문을 열고 나갈 때 완전히 닫기기 직전, 작은 목소리로 말하길

펜토미노.”

대답은 제대로 들렸지만 다시 문을 열진 않았다. 퍼블리의 머릿속엔 빨리 돌아가서 지금 겪은 일들을 얘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우선 헵토미노와 같이 나간 용사를 찾는 게 먼저였다.

용사님! 어디계세요?”

확실히 어두워지면 돌아가서 다시 뭔가를 살펴보는 건 물론이고 돌아가는 것 자체도 힘들 게 분명했다. 용사가 그리 멀리 가지 않았길 바라며 돌아다니자 곧이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내 칭구들이랑 비슷해!”

정말요? 사실 아빠가 절 맡겼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안 오고 그래서 저 혼자라 너무 무서웠었는데 그 때 할머니가 나타났어요!”

둘은 흙바닥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거의 헵토미노가 자기 얘기를 하고 용사는 특유의 웃는 얼굴로 들으면서 호응하는 식이었다. 바둑이는 막대 물어오기로 체력을 다 썼는지 헵토미노의 무릎에 잠들어있었다. 퍼블리는 멀리 가지 않았다는 거에 안도하며 용사를 부르기 위해 다가갔다.

사실 아빠는 저를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절 맡긴 이후론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거든요.”

? 엄마는?”

? 엄마요?”

헵토미노의 의아함 가득한 표정과 함께 나온 말에 퍼블리는 그만 그 자리에서 멈춰버렸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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