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날이 밝았을 때 일행들은 무덤 자리를 떠났다. 다만 여기 오기 전과 달라진 게 있었는데 그건 바로 일행의 수였다. 한 명이 더 추가되어있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물고기요?”

완전한 물고기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진짜 물고기처럼 보였거든.”

나무 막대와 바둑이라는 이름의 강아지와 함께 걷고 있는 아이 헵토미노였다. 사실 아이를 일행으로 받아들일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퍼블리 또한 비밀을 알아냈을 때 어찌해야할지 곤혹스러워하기 바빴고 용사는 별 생각이 없었으며 나머지 둘은 표정만 서로 다르지 속은 냉정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가 같이 떠나게 된 건 아이 아빠 헥소미노의 부탁아닌 부탁 때문이었다.

 

“...떠날 거면 애도 데려가.”

“...처음 봤을 때부터 생각했는데 당신 제정신인가?”

제정신 박혀서 하는 소리다 이 망할 것들아...! 애 키우기 귀찮아서 하는 말 같아!? 내가 왜 그 녀석들한테 맡기기까지 했는데!!”

격앙되어 끝은 거의 비명같이 내지르던 헥소미노가 일행들을 돌아보며 다시 한 번 말했다.

묻어버리고 싶은 것들아 부탁이다...데려가!!”

알았어요.”

대답한 건 퍼블리였다. 일행들의 시선은 헥소미노에게서 퍼블리로 돌아갔다. 그걸 느꼈는지 미안한 표정을 지은 퍼블리가 다시 한 번 이어 대답했다.

저희가 헵토미노를 데려갈게요.”

저 표정을 아이가 못 본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당연하게도 직후 패치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퍼블리가 어떤 심정으로 헵토미노를 데려가겠다고 했는지는 알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굉장히 불안정해보이는 애 아빠한테 애를 그냥 두고 가기 마음에 걸렸던 거였다. 하는 말을 들어보면 이유가 있다 한들, 이미 한 번 다른 이들에게 맡기기까지 했다는 걸 봤을 때 자신들이 아니어도 다른 누군가에게 맡길 게 뻔하고 그럴 바엔 잠깐이라도 안면 있고 그 곳의 비밀도 알게 된 자신들이 데려가는 게 더 나을 거라는 생각 또한 천천히 들어왔을 게 훤했다.

다만 그런 사정과는 별개로 일행들이 하는 여행은 엄연히 목적이 있는 여행이었다. 심지어 그 목적의 결과가 연달아서 찜찜함을 남기는 중이었으니 애한테 좋은 영향을 끼칠 리가 없다는 점이 부가적인 이유였고 여행 자체가 어른들도 상당한 피로를 느끼게 하는데 애가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느냐가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어린아이치곤 체력이 꽤 되는 건지 아니면 꾹 참는 건지 같이 걷는 내내 한 번도 힘들다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럼 다른 데는요?”

아직 많이 가본 데가 없어서...”

둘은 열심히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기가 먼저 데려가겠다고 한 말에 대한 책임감인지 아니면 드디어 정상적인 말동무가 생겨서인지 퍼블리는 헵토미노에게 이것저것 얘기를 건넸고 헵토미노는 굉장히 신기해하면서 다음 이야기를 재촉했다. 주로 일행 내의 대화 담당은 퍼블리와 치트 간혹가다가 궁금해하는 용사였는데 한 명이 더 늘어서 그런지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헵토미노는 열심히 퍼블리와 대화하고 간혹가다가 덧붙여 설명해주는 치트와 대화를 하다가도 무덤에서 떠난 이후로 쭉 아무 말이 없는 패치를 힐끔 쳐다보곤 했다. 아이의 불안함을 눈치 챈 퍼블리가 원래 말이 가장 없는 분이라며 아주 작게 속삭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내내 말이 없던 패치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다음은 하얀 들판인가? 이번은 앞선 두 곳보다 거리가 꽤 되는군.”

꽤 멀긴 하지만 사막보다 더 가까운 곳이죠.”

하지만 이대로 계속 쭉 가기엔 체력 소모가 심하네.”

그렇게 말한 패치는 잠깐 생각에 잠긴 건지 덧붙이는 말이 없었다. 치트는 그나마 마을이 연달아 있는 곳을 안다며 많이 힘들어지면 거기서 쉬자고 했다. 그러다 문득 패치가 툭 한 단어를 꺼냈다.

중간탑.”

?”

들판으로 가는 길목 가운데에 중간탑이 있었던 걸로 아는데 맞나?”

맞슴다. 혹시 중간에 중간탑을 들르자는 검까?”

패치는 고개를 끄덕였고 치트는 나쁘지 않다고 말하며 다음 목표 장소는 중간탑이라고 저 멀리서 토끼를 쫓아가는 용사에게 외쳤다. 퍼블리는 일행이 된 이후 처음으로 무난하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둘을 내내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리 싫은 녀석이라고 해도 애 앞에서 평소처럼 말에 날을 세우는 건 아니라는 걸 패치는 잘 알았고 치트 또한 잘 알아서 자제하고 있었다.

중간탑은 어떤 데예요?”

헵토미노가 퍼블리를 올려다보며 물었고 퍼블리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패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아예 모르는 건 아니지만 정확히 어떻게 정의를 해야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알려진 땅을 기준으로 땅의 중간에 세워진 탑일세. 사막과 환각의 숲 사이를 기준으로 중간이지.”

그 말을 들으니 퍼블리는 새삼 자신들이 끝에서부터 출발해서 끝까지 여행하는구나 깨달은 표정이 됐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턴 학자들이 모이기 시작해서 중간탑은 지식의 탑이라고 공식적으로 이름을 정했다고들 하지만 중간탑이라고 오랫동안 불려왔으니 다들 중간탑이라고 부르니 위치를 물어볼 땐 중간탑이라고 말해야 알아들을 테니 그렇게 알아두게.”

사실 패치에게 있어서 여행하는 장소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장소였다. 학자들이 모이고 지식의 탑이라고 스스로들 붙일 정도로 책들이 가득한 탑이었다. 그래서 세 번째 이름은 도서관이었고 땅의 중간에 위치해서 그런지 소식을 전달하는 이들이 거쳐가는 장소이기도 해 네 번째 이름이 거대한 우체통이다.

평소라면 두 번재와 세 번째 이름이 목적이어서 갔겠지만 이번의 목적은 네 번째 이름이었다. 힐끔 뒤돌아보니 마침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는지 아님 처음부터 보고 있었는지 패치와 눈이 마주친 치트가 언제나처럼 미소를 지어보였다.

혹시 지도들도 있을까요?”

마을들에 없는 게 거기 전부 있는 격이니 있을 거라 예상되네만.”

퍼블리의 눈빛에 바로 기대가 서렸다. 이쯤되면 반대의 목소리를 낼 사람은 없었다. 이름만 들어봤지 제대로 가본 적이 없었기에 더더욱 기대감이 가득해보였다.

그럼 가지.”

반대는 없었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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