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내려가지.”

, 벌써요?”

벌써라고 하기엔 시간이 많이 늦었네. 12시가 지났지 않나.”

그건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인 퍼블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망원경에 시선을 뒀다. 그리 길지도 않은 시간동안 상황 살피고 얘기를 나누다보니 정작 별구경은 제대로 못해봤기에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그걸 눈치챈 패치도 조금 고민하는가 싶더니 먼저 내려갈테니 원하는 만큼 구경하고 오라고 했다.

! 그런데 사제님은 안 내리셔도 되나요?”

일정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내려올 걸세.”

그 일정시간이 해 뜨는 시간 때쯤이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먼저 말장난으로 약속을 어긴 건 치트였다. 굳이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구경 다 하면 내려오라 덧붙인 패치는 완전히 자리를 떴다.

원래 신던 신발은 치트와 함께 하늘에 있어서 여전히 따각따각 소리가 울려퍼졌다. 상당히 거슬렸지만 맨발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다 문득 뒤를 돌아봤다. 별구경하기 바쁜 퍼블리와 헵토미노, 망원경에 더 이상 흥미가 떨어진 건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용사와 지켜보고 있는 마키나. 유독 선명하게 보이는 일행들이었다.

이상하리만치 선명하군.”

하늘에 떠 있는 치트도 유독 선명해보였다. 오죽하면 분명 높이 떠 있느라 작아서 안 보일텐데도 패치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 근본 모를 집착에 혀를 찬 패치는 바로 뒤돌아 내려갔다.

 

진짜 정신 없네! 이런 녀석을 그동안 어떻게 감당한 거야?”

아하하...”

셋이서 열심히 제어해온 결과였다. 마법이 통했다면 상당히 수월했을테지만 마법이 통하지 않는 용사를 물리적으로 담당하는 건 결국 퍼블리였다. 마키나가 하얀 들판까지 함께 가게 되었기에 이제 물리적 담당은 둘이 되었다. 마법이 통하지 않는 거였지 기계가 통하지 않는 건 아니었기에.

네가 그동안 제일 고생이 많았네. 이녀석 붙잡느라 힘빠지고 저 둘 사이 눈치 보느라 머리 아팠을 테니.”

퍼블리는 힘은 들었을지언정 머리가 아팠던 적은 없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눈치싸움의 몫은 둘이었고 퍼블리는 어디까지나 신탁 때문에 함께한 제 3자였다. 둘의 감정에 깊이 관여할 이유는 없었다.

그보다 진짜 오래 떠있네. 혼자 떠도는 것치곤 실력이 엄청 좋은데?”

도시에선 공중에 떠있는 건물도 있던데요?”

사람이 그렇게 뭉쳤는데 공중에 떠있는 건물은 나올법하지. 그리고 그런 건 개인 마력으로 해결하지 않으니까 가능한 거야. 우리도 공중을 나는 기계의 연료를 다같이 만들어내고 그마저도 보급형이다보니 지속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 걸.”

기술에 관해선 문외한이었지만 막연하게 대단하다는 식으로 알게 된 퍼블리는 문득 페르스토가 자신에게 줬던 비행 장치를 떠올렸다. 건물을 올라간 이후로 쓸 일이 없어 깜빡하고 있었다. 때마침 간소한 물건들을 넣어놓는 가방도 가지고 있었고 그 안에 넣어뒀던 기억이 있어서 바로 꺼내 보여줬다.

그러고보니 선물로 받았어요.”

? 이거 우리 대표 작품이잖아?”

비록 간단한 기계일지라도 자기가 만든 기계까지 줬을 줄은 생각도 못했던 마키나는 잠깐 보여달라며 비행 장치를 가져가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대표 작품이 확실해. 진짜 의왼데? 최근엔 다양한 커피 종류 나오는 기계 만들더니.”

비행 장치를 한창 만지던 도중 마키나가 문득 떠올린 게 있었는지 새로운 대화를 꺼냈다.

그러고보니 보라색 머리인 사람이 마법사쪽 대표였어. 저번에 보라 곱슬머리를 지닌 사람을 알고 있냐고 물었지? 곱슬머리는 아니고 직모에다가 꽤 긴 머리인데 보라색 머리를 지닌 건 그 사람 외엔 본 적이 없어.”

, 혹시 남자였나요?”

아니 여자였어. 그보다 미안한데 이거 당분간 내가 가지고 있어도 될까? 방금 심상찮은 걸 발견했거든.”

얼굴 자체가 가려저서 표정이 보이질 않아 심상찮다는 말을 순간 인식하지 못한 퍼블리가 눈을 깜빡였다. 퍼블리의 반응에 뒷목을 긁으며 말을 고르던 마키나는 비행 장치를 내밀어 어느 한 부분을 가리켰다.

여기 홈이 파인 부분 보여? 여긴 홈이 파일 리가 없는 부분이야. 여기가 일종의 회로 연결 부분인데 이렇게 홈이 파여있으면 이물질 그러니까 먼지같은 게 들어가고 오작동이 일어나기 쉽단 말이야.”

하지만 멀쩡히 작동하는 걸요?”

그래, 그리고 이걸 만든 대표도 그걸 모를 사람이 아니지. 그렇다면 이 홈을 일부러 만들어놨다는 건데 그 이유가 뭘까?”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그걸 지금부터 알아볼려고 해. 그러니까 당분간 나한테 맡겨줄래? 대표가 여기에다 뭘 숨겨뒀는지 알아내고 싶어.”

퍼블리 또한 호기심이 들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어쩌면 인상착의가 서로 다른 페르스토의 비밀에 대해서 알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건 왜 오작동이 안 나는 건가요?”

만든지 얼마 안 됐거나 이 홈 안쪽에 뭔가 판 같은 걸 더 놓은 거겠지. 솔직히 홈을 새기지 않으면 되는 건데 굳이 그랬다는 걸 보면 대놓고 알아봐주길 바란 듯 싶어.”

하지만 전 기계에 관련해선 잘 모르는 걸요?”

만약 홈 안쪽에 판이 없다면 나중에 오작동이 일어나서 결과적으론 기계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을 거야.”

과연 보라머리 페르스토가 의도한 바는 뭐였을까. 퍼블리는 일단 마키나에게 맡기기로 했다. 하얀 들판까지 같이 가니 시간은 넉넉했고 페르스토에 대해 더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기에

마법사쪽 대표가 보라색 머리고 페르스토씨와 친하게 지냈다고 했죠? 그 분의 이름은 뭔가요?”

떠오르며 겹쳐지는 기억이 있었다. 공중 건물, 난간 너머의 야경, 페르스토라고 소개했던 남자, 매우 정교했던 마법진을 보며 만든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들었던 이름은

무토.”

이제 이름만 들어도 아는 마법사가 됐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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