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만 박혀있던 시간이 깨진 건 주위의 시선을 다시 느낀 패치가 이제 놓으라며 발을 뒤로 빼는 걸로 흩어졌다. 다만 여전히 달라붙는 주위 시선들과 패치의 발에 신겨져있는 샌들로 흔적이 남아있었다.

이상하리만치 딱 맞는군. 자네가 왜 내 발 치수를 알고 있나?”

치트는 싱글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루동안 말도 걸지 않겠다는 약속을 충실이 이행중이었다. 이런식으로 써먹는 치트에 혀를 찬 패치는 아예 무시하기로 결정했는지 완전히 시선을 돌려버렸다.

샌들을 벗고 본래 신던 걸 신으려 하니 눈치 빠른 치트는 이미 신발을 벗기던 순간부터 미리 빼돌려놓고 있었다. 표정이 더더욱 안 좋게 된 패치는 여전히 이쪽을 보고 있는 일행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왜들 그런 표정인가?”

몰라서 묻는 건 아닐텐데?”

썩 달갑지 않으니 그리 말하는 걸세.”

미묘한 표정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패치의 불편한 기색에 배려차 시선을 거두는 퍼블리와 자세히는 모르지만 퍼블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는 헵토미노, 표정이 보이지 않는데도 시선으로 말하는 마키나, 자세한 내용은 잘 몰라 아직 구경중인 사람들. 하지만 이들보다 더 패치의 속을 긁는 건 아무 말 없이 아련하게 웃기만 하는 치트였다.

신발 내놓게.”

“.....”

말을 안하기로 한 거지 못 듣는 게 아니잖나. 당장 내놓게.”

둘이 다시 실랑이를 벌이던 말던 용사는 제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있었다.

이게 모야아~?”

별을 크게 보는 도구랍니다.”

우와앙~!!”

, 잠깐...!”

어느새 망원경이 있는 쪽으로 간 용사를 보고 기겁한 마키나가 달려갔다. 다행히 용사가 망원경을 부수기 전에 끌어낼 수 있었고 동시에 본격적인 망원경의 주의사항 및 부수지 않게 다루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앙~!!!”

결국 다른 사람이 대신 망원경을 조작해서 눈에 갖다대는 걸로 그쳤다. 용사에게 시달렸던 직원인 건지 아니면 그 직원들에게 뭐라 언질을 받았었던 직원인 건지 굉장히 긴장 가득한 눈빛으로 용사를 주시하고 있었다.

사람이 붙으니 안심이군.”

“.....”

괜히 붙어있지 좀 말고 떨어지게.”

말을 안 해도 행동으로 속을 긁는 치트에 다음엔 아예 얼굴도 비추지 말라는 조건도 넣어야겠다고 생각한 패치였다. 자리를 뜨기 위해 일어나 걷는 동안 따각 따각 샌들이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사람들이 움직이고 떠드는 소리들이 가득한데도 그 어느 소리보다 크고 선명하게 들렸다.

“...저기, 마법사님.”

왜 그러나?”

혹시 둘이 서로 싸우셔서 틀어지신 거예요?”

패치의 표정이 반사적으로 찌푸려졌다.

저녀석이 일방적으로 잘못한 걸세. 그러니 서로 싸웠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지.”

...래요?”

어떻게 보였길래 그런 반응인가?”

퍼블리는 의아함 반, 호기심 반이 담긴 표정으로 아까의 상황을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뭔가 되게...익숙하면서도 어색해보였어요. ...익숙하다는 건 둘이 그렇게 같이 있는 게 엄청 익숙해보였어요.”

패치는 썩 달갑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퍼블리의 말을 곱씹었다. 한편으론 그 때의 일이 전해지지 않는 거에 대해 답답함을 느끼다 문득 깨달았다.

일행 내에서 특정한 과거는 당사자들끼리만 전해지고 그 특정함의 기준은 신탁의 여행과 관련되어있다.

여행의 목적은 이상현상의 해결이다.

특정한 과거가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도 이상현상이라 할 수 있겠군. 그렇지 않나?”

갑작스럽게 꺼낸 말에 한순간 이해가 가지 않았는지 눈을 깜빡이던 퍼블리는 뒤에서 여전히 웃는 얼굴로 천천히 따라오고 있는 치트를 발견하고 아주 예전의 말을 떠올려 깨달았다.

, 그럼 혹시...”

일단 나중...아니. 그냥 지금 관련해서 얘기해보지.”

뒤에서 따라오는 치트를 발견한 패치는 퍼블리를 데리고 빠른 걸음으로 다시 자리를 벗어났다.

일단 물어볼게 있네. 자네는 5년 전의 일을 어디까지 기억하나?”

“5년 전의 일이요?”

그 때쯤에 들려오던 큼직한 사건이나 자네 주변에 있었던 자잘한 일들 전부 생각나는대로 말해보게.”

...갑자기 그렇게 묻는다고 해도...”

아주 큰 사건이 아닌 이상 누구나 5년 전에 있었던 일을 다짜고자 생각하고 기억해보라고 하면 당황스럽고 떠오르지 않을 게 당연했다. 패치에게 맞춰 멈추지 않고 걸어가던 퍼블리는 문득 무언가 떠올랐는지

그러고보니 5년 전에

그 이후론 아무 말도 잇지 않았다. 왜 말을 하다 마느냐 물으려던 패치는 역으로 입을 다물게 됐다. 퍼블리의 입은 열심히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들리지 않았고 입모양도 이상하게 읽을 수가 없었다.

“...혹시 다른 것도 있나?”

다른 건...기억나는 게 없네요.”

내가 전에 말했지만 전해지지 않았던 녀석은 나와 녀석에 관련된 이야기였지. 자네가 이번에 전하려던 이야기는 뭐에 관련되어 있나?”

한차례 눈을 깜빡이던 퍼블리는 짧게 말했다.

지도요.”

대답을 들은 패치가 그 자리에서 멈춰섰고 동시에 따각 따각 울리던 소리가 멈췄다. 뒤를 돌아보니 치트는 멀리서 천천히 따라오고 있었다. 둘의 대화소리를 듣지 못할 법한 거리였고 주변 사람들의 자잘한 수다들 때문에 들을 수 없을 상황이었다.

방금 한 이야기 당분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용사님에게도요?”

그래.”

용사는 여전히 별을 보느라 바빴고 마키나는 직원과 함께 망원경을 살피면서 긴장하고 있었다. 둘이 멈춰있느라 바로 따라잡은 치트가 능글맞게 웃으며 물었다.

무슨 얘기들을 그렇게 재밌게 하십니까?”

자네 아까 하루동안 말 안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맞슴다~ 하루동안 말 안 했잖슴까?”

시계를 꺼내든 치트는 바늘을 가리켰다. 124분이었다.

어제, 그러니까 오늘 하루가 지나고 내일이 되었지 않습니까?”

잠시 후 용사의 망원경에 무언가 검은 것이 별들을 전부 가려버렸다. 망원경에 눈을 떼고 올려다보니 치트가 또 한 번 하늘의 별들을 가린 채 높이 떠 있었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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