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트는 난감한 웃음을 지었고 패치는 어차피 벌어질 일이었기에 별다른 표정변화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흐르는 냉막한 기운에 퍼블리는 헵토미노 앞에 서서 그 모습을 가렸다.

한적하다해도 엄연히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이니 적당히 사람 안 올 만한데로 옮기는 게 어떻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인가보지?”

마법사가 사제와 함께 여행할만큼 중요한 얘기죠.”

사제들이 입담으로 먹고 산다는 게 마냥 농담은 아니었나보네.”

그리 말한 마키나는 먼저 움직였다. 무슨 얘기든 간에 이렇게 셋이서 모여있는 것 자체가 상당한 시선을 끄니 사람이 없는 데로 가는 건 당연했다. 탑을 방문한 손님들이 일행들끼리 함께 조용히 쉬기 위한 방이 있었다. 숙소용으로도 쓰이는 방이어서 침대도 있었기에 의자 대신으로 앉으니 바닥에 앉거나 서 있을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앉자마자 치트가 말하길

참고로 제가 5년 전의 그 대사제임다~”

대놓고 터뜨렸다. 마키나는 이게 당황해야할지 황당해야할지 헷갈리며 어처구니 없다는 기색을 거리낌없이 풍겼다. 엄청난 폭탄을 터뜨려놓고도 싱글생글 웃는 얼굴에 질렸는지 마키나는 그대로 고개를 돌려 패치를 바라봤다. 더 상세한 뒷내용을 원하는 무언의 표현이었다. 당연하게도 패치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제대로 설명해.”

이 정도면 제대로 아님까? 보통 같았으면 그냥 사제라고 얼버무렸을 테니 진실된 이의 귀감이라고 칭찬 좀 해주십쇼~”

칭찬대신 날아오는 건 그 어느때보다 날카롭게 깎인 얼음 가시였다. 결국 치트는 신탁에 관해 설명했고 거기에 더불어 패치가 그동안 날려보낸 신관과 성기사의 수도 말했다.

어차피 저도 신탁의 주인공들 중 하나니 제가 나서서 설득해야한다 무릎꿇고 빌어야한다 말이 아주 많았죠.”

들은 말치곤 하나도 실천한 게 없군 그래.”

그야 패치가 결국 절 받아들였...죄송함다! 그러니 그 위험한 거 날리지 말아주십쇼!”

얘기를 다 들은 마키나는 떨떠름한 기색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어투로 이렇게 말했다.

전말이 어떻고 뒷내용이 있고 신탁이 내려졌든 간에 썩 좋게 보이진 않아. 어찌됐든 너흰 5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일의 당사자들이고 잘 모르는 사람이나 의심 많은 녀석들은 과연 네가 한 말들이 진짜일지 계속 의심할 걸고 심하면 너희가 서로 짜고치고 일을 벌였다고 생각할 걸.”

아주 합당한 의견이었다. 오히려 방금 말한 것처럼 둘이 짜고 친 거 아니냐고 캐묻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이는 당연히 예상한 의견이었기에 패치는 이렇게 말했다.

신탁 뒤에 뭐가 있을지 직접 뒤집어봐야 알겠지.”

그렇게 말하며 패치의 시선은 퍼블리와 용사를 향했다. 신탁이 가짜면 어째서 저 둘이 말려들어야 했는지, 만약 진짜라도 저 둘의 연관성은 영 알기 힘들었다. 신탁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내려면 저 둘에 대해서도 파악을 해놔야했다. 그게 과거든, 비밀이든.

일단 더더욱 당신네들을 지켜봐야겠어. 요정에 관련된 건 둘째치고 이 일은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일이야, 아무리 종교쪽의 신탁을 존중한다해도 이런 구성원은 지금도 솔직히 납득이 힘들어.”

그럼에도 마키나가 둘이 짜고 친 게 아니라는 걸 확신하는 이유는 대화하면서 보였던 패치의 성격이 한 몫했다. 저게 연기라면 저 마법사는 삶을 연기를 하며 살아가는 인형이리라.

패치의 시선을 본 건지 안 본 건지 얼굴을 덮고 있는 가면은 고개를 돌리지 않는 이상 시선마저 가려서 알 수 없었다. 마키나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그 뒤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동도 없이 가만히 벽에 기대 앉아있는 걸 보면 저대로 잠든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코야해~?”

거기에 대놓고 묻는 용사가 있었다. 마키나는 조금 황당한 어투로 안 잔다고 말하며 방 밖으로 나갔다. 아예 완전히 혼자 있고 싶은 듯 했다. 패치는 놀러가냐며 같이 놀러가자는 용사를 붙잡아 앉혔다.

그나저나 의외임다? 전 패치가 처음부터 같이 하얀 들판에 가자는 제안을 거절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임다.”

지금이라도 거절할 명분을 자네가 만들어보게.”

그 말에 치트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울상지으며 이미 여기 상황 다 알려진 상황에서 그걸 어떻게 만드냐 너무한다 징징대거나 역시 냉정하고 가차없다며 히죽 웃었겠지만 이번은 달랐다.

굳이 명분을 만들어야할까요?”

언제나처럼 짓는 미소였지만 어딘가 담백했다. 아니 담백하다는 표현은 너무 순화된 표현이었다. 과장이 없는 미소와 달리 눈빛을 본 패치는 가늘게 뜬 눈으로 마주봤다. 무슨 생각으로 껍데기를 살짝 벗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보게 된 패치는 당연하게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귀퉁이만 아주 살짝 뗀 주제에 아주 극적인 반응을 기대하는 눈빛에 패치는 손가락을 두 개만 펼치고 저를 보는 노란 눈과 번갈아가며 봤다. 의도를 이해한 치트는 얌전히 눈을 가렸다.

일단 우리는 여기 휴식차 들린 거니 며칠은 머무를 거고 저 쪽도 일주일 여유는 있다고 했으니 이 부분은 문제가 없네. 본격적으로 같이 가게 되면 그동안 서로 돌아다닌 방식이 다를테니 조율이 필요하겠지. 그러니 좀 더 탑을 구경하고 싶은 사람들은 지금 구경하고 오게.”

왠지 중요한 일들은 패치와 치트에게 전부 맡기는 것 같아 퍼블리는 거절했다. 용사를 막느라 쌓인 피로도 한 몫 했다. 헵토미노도 피곤했는지 침대에 앉은 이후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조오오오기까지 올라가볼 거야!”

혼자만 쌩쌩한 용사는 혼자서라도 갈 의지가 가득했다. 이미 혼자 다닐 때 여러번 난리가 났었으니 또 난리가 난다면 그 땐 쫓겨나겠다 싶어 패치는 용사를 따라가서 통제하기로 했다.

수고가 많았네.”

아하하...”

빈말로라도 괜찮다고 하기엔 꽤나 진땀 빼는 뒷수습이었다. 퍼블리는 대신에 힘내시라며 앞으로 겪을 고생에 대한 위로 섞인 응원을 건넸다. 치트는 조금 고민하는 듯 싶더니

나중에 저희 둘이 오붓한 데이...잘 갔다오십쇼~”

얼음 가시를 소환해 던질 자세를 취한 패치에게 인사말만 전했다. 또 한 번 되도않는 헛소리를 한다면 다음엔 위협으로 넘어가지 않겠다는 패치의 으름장에 그저 웃기만 했다. 문 밖으로 나가니 다섯 걸음 떨어진 데서 벽에 기대 팔짱 끼고 있는 마키나가 있었다.

잠시 산책이나 하고 오겠네.”

마키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기운 넘치는 용사는 어느샌가 저만치 뛰어가고 있었다. 앞으로 벌어질 뒷수습에 패치는 여기 온 김에 각 잡고 상식을 꽉꽉 담은 잔소리를 날릴 예정이었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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