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터지고 무너지는 소리가 복도 벽 너머서부터 들려온다. 방음 마법에 관한 실험 공지가 내려오고 일주일정도 될 즈음엔 어깨를 떨기 바쁘던 학생들은 이젠 소리가 얼마나 늦어질까 시간을 재며 내기까지 하고 있었다. 소소했던 시간재기 내기는 처음과는 달리 사람들이 모인 후엔 주머니 속에 고이 담겨있던 돈을 꺼내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모인만큼 액수가 불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이를 제재하는 역할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역할을 지닌 사람도 참가하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선도부가 이래도 되는 거야?”
“선도부니까 하는 거지. 괜한데 돈 안 빠지게 전부 학생회비로 넘기잖아?”
이것이 학생회비 면제 비밀의 일부였다. 면제라기엔 애매했지만 자율적으로 낼 것인지 안 낼 것인지 본인이 정한다라고 한다면 거의 면제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학생회비는 가을이면 다가올 축제 속의 연구 대회에서 각 학부마다 운영될 돈이나 학생들의 아이디어 작품 등 크게 투자를 하는 다양한 데에 쓰이지만 어째선지 바닥을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 물론 모든 학생들이 모르고 넘어가는 건 아니었다. 선도부나 학생회 친구를 둔다면 그림자에서 결탁된 비리라는 비밀을 알게 되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다물었다. 물론 탐탁지 않아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그들에게 오는 피해도 없었고 대부분 돈을 안 낸 학생이었기에 입이 무거워졌고 돈을 낸 학생들은 내심 아까워했으니 이런 비밀들에 만족스러워 하기까지 했다.
“그래 돈도 냈고 아까워하지도 않는 우리 퍼블리는 이러한 비리를 눈 감고 넘기지 못할 정의로운 학생인가요?”
“다른 애들한테 말해봤자 조용히 묻히게 만들 거면서! 좋진 않지만 그래도 좋은 데 쓰이는 거니까 가만히 있는 거야.”
“과연 우리 퍼블리 학생 생각대로 좋은 데에다 쓰고 있을까~?”
“안 그럼 네가 거기 한바탕 뒤집었겠지. 안 그래? 공포의 아니카씨?”
그에 주머니를 정리하던 선도부는 휘파람을 부르며 친구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감탄을 덧붙였다.
“이제 꽤 받아칠 줄도 아네? 너희 아빠한테서 배웠어?”
대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숨기는데 서툰지 꾹 다문 입과 아무렇게나 던져진 시선이 대신 답해주고 있었다. 그런 친구의 모습에 선도부는 더 골려주고픈 마음이 들었지만 정해둔 선 바로 직전이었기에 그만뒀다. 만약 저 선을 넘는다면 겨우 다시 만나게 된 친구가 또 사라져 버릴까봐 친구의 비밀 바로 앞에 선을 그려놓았다. 제 귀여운 친구는 비밀에 완전히 손을 대는 순간 이번엔 아예 볼 수도 없는 곳으로 날아가 버릴지도 모르리라.
먼저 한 발짝 물러나는 건 언제나 누군지 정해져있었다.
“그보다 마력 성질과 구조 이론 숙제는 다 했어? 늘 틀리는 부분이 있어서 계속 물어봤잖아.”
“겨우 다 끝냈어! 다행히 이번 주는 문제없어!”
둘의 대화는 교실에 들어가 자리에 앉으면서 잠시 멈췄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들어온 사람으로 인해 완전히 멈췄다. 땀을 흘리며 숨을 고르던 그는 칠판 앞에 서서 학생들을 둘러보고 손수건을 꺼내 뺨에 갖다댔다.
“아아,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교실이 많고 여러 수업에 들어가다 보니까 아직까지도 길 외우기가 힘드네요.”
동그란 안경 너머의 동그란 눈이 깜빡거린다. 검은색 곱슬머리를 단정하게 깎고 동그랗게 묶어 올린 그는 학교 내의 유일한 마법사였다. 물론 마녀왕국으로 여행오는 마법사들은 많았지만 마녀왕국의 마법학교에서 마법사를 보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그렇기에 유명해질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지만 마법사이기 이전에 전체적으로 동그란 느낌이 드는 모습처럼 그의 심성 또한 동그랗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기 때문에 더더욱 유명해졌다. 오죽하면 어린 마녀들이 모든 마법사가 그처럼 심성이 동그랄 거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그의 첫인상은 여러모로 강렬했다.
“확실히 인상적인 면으론 신성지대 마법사들이 사람을 잘 보냈어. 대표로 오는 사람의 첫인상은 그 단체들의 인상을 좌지우지 하거든.”
옆에서 속삭이는 아니카의 말을 들으며 퍼블리는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이번에 신성지대에서 온 저 선생님의 첫인상은 매우 좋았다. 다만 과연 그 신성지대의 모든 마법사가 모두 동그랗다고 표현할 정도로 온화하고 배려심이 넘칠까. 그런 생각과 동시에 귓가로 익살스러운 웃음소리와 무뚝뚝한 말투가 들려오는 것 같은 기분에 느리게 눈을 깜빡인다. 한 사람과 같다고 하기엔 추억 속에 잠겨있는 마법사들의 모습은 꽤나 다양했다. 이는 퍼블리 본인은 물론, 아니카 또한 알고 있을 사실이었고 쉬이 떠나지 않는 추억 속에서 배운 것들이다. 퍼블리같이 다른 생각에 잠겨있는 학생들을 깨우기 위해서인지 짝! 한 번 박수를 치는 소리가 크게 교실을 쓸어간다.
“지나가는 복도에서 한 번 마주쳤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수업으로 만나는 건 처음일 테니 정식으로 제 소개를 하겠어요! 제 이름은 아난타랍니다. 현재 마녀왕국과 여러가지로 교류하는 단체인 신성지대에서 학술적 교류를 위해 파견된 마법사랍니다. 여러분들을 괴롭히는 마력 성질과 구조 이론에 대해 수업하러 왔지요. 아무래도 이런 걸 알기 위해선 마법사의 마력을 직접적으로 보는 게 더 이해가 빠를 테니 이렇게 직접 오게 됐답니다. 여러분들의 도우미가 될 수도 있지만 어쩌면 더 어지럽게 만드는 못된 속삭이 바람으로 변할지 모르겠네요. 너무 원망하진 말아주세요~”
아난타라고 하는 마법사는 일주일 정도 전에 방음 마법 실험 공지가 내려올 때 함께 등장한 선생님이었다. 마법사는 하나고 수업 들어야 할 학생들과 교실은 여럿이니 일주일에 3시간 있는 마력 성질과 구조 이론 수업 중 마지막 시간에만 수업하는 선생님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두 시간은 마녀의 마력을 한 시간은 마법사의 마력에 대해 배우는 거였다. 오히려 반대여야 하지 않느냐는 말들이 나오고 있었지만 그런 말들과는 다르게 퍼블리에게 있어서 지금의 수업상황이 더 나은 상황이었다. 아니카 외엔 아무도 모를 퍼블리의 입장에선 마법사에 마력에 대해선 이미 배운 걸 넘어섰기 때문이다. 한 사람만의 속사정은 별개로 수업은 가르치는 사람처럼 매우 부드럽게 진행됐다. 다만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드는 학생들이 있었지만 집중을 모으기 위한 박수소리에 다시 깨어나기 일쑤였다. 만약 배를 채운 지 얼마 안 됐을 때 수업을 했다면 박수소리에도 모두 잠들었을 테지만 거의 모든 학교 일과의 끝자락에 자리 잡은 수업이라 잠에 들지 않고 깨어있으려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느새 시계바늘이 종이 울릴 숫자 바로 앞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벌써 수업이 다 끝나가네요. 하지만 아쉬워하지 마세요. 제가 이번엔 역사 수업도 맡게 되었답니다! 아무래도 책에 적혀있는 것보단 이렇게 마법사가 직접 마법사들의 역사를 말하는 게 더 실감나고 자세하게 알릴 수 있다는 의견이지요. 게다가 양측의 공통되고 유명한 역사가 있으니 서로의 입장과 시선이 더욱 중요하게 됐지요. 그럼 다음엔 역사 시간에 만나요, 학생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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