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은 교실에 도착할 때쯤에 얘기를 마쳤고 교실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1교시를 담당한 선생이 들어왔고 수업이 시작됐다. 떠드는 소리가 잠잠해지는 건 칠판을 두 번 두들길 때쯤이었다. 곧이어 교실을 채우는 건 수업 내용을 담은 말과 사각거리며 종이가 빽빽해지는 소리였지만 퍼블리의 머릿속은 아직까지도 무거운 안개로 채워져 있었다.

“자 그래서 오늘 배울 약새풀이란, 음...이걸 설명하기 전에 너희들 역사 어디까지 배웠지? 이거 이해하려면 밸러니의 숲 정화를 알고 있어야 하는데.”

맨 앞줄에 앉아있던 학생이 전반적인 건 배웠다며 답했고 익숙한 단어에 퍼블리는 초점을 다시 현실에 맞췄다.

“그래 그럼 알겠네. 밸러니의 숲을 정화하게 된 이유는 숲 자체가, 즉 저주의 영역이 점차 확장되었기 때문이라고 했지? 약새풀도 이 저주의 산물이다. 가장 오래됐지.”

손을 한 번 슥 움직이자 금빛 가루가 따라가듯이 반짝이더니 곧이어 온통 새하얗고 빽빽해 보이는 풀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바로 약새풀이다. 진짜는 너무 귀해서 가져올 순 없고 이렇게나마 환영영상 마법으로 담아 와서 보는 게 최선이다. 나중에 재료 쪽으로 가는 애들은 진절머리 나게 듣고 보게 될 풀이지만. 이 풀은 밸러니의 숲에서만 자라고 채집할 수 있는 풀이고 재배가 불가능한 풀이지. 그리고 이것도 가르쳐줬는지는 모르겠는데 알아두는 게 좋을 거야. 바로 이 풀이 저주의 영역이 넓어진다는 증거가 돼서 정화 작전이 세울 수 있게 만든 고마운 풀이지.”

분명 밸러니의 숲에서만 볼 수 있었던 풀은 숲에서 조금 떨어져있는 들판에서 발견된 덕분에 저주가 숲에서만 그치지 않고 점점 숲 바깥으로 나온다는 증거가 됐다. 선생의 말을 빌려 고맙다고도 할 수 있는 풀은 저주가 정화됨과 동시에 더 이상 자랄 수 없게 되어버렸다.

“밸러니의 저주가 섞인 마력을 양분삼아 자라기 때문에 저주가 정화되어 사라졌으니 당연하게도 이 풀은 정화에 성공한 순백의 날 이후로 그 어디에서도 자라지 않게 됐고 남아있는 약새풀들은 가격이 엄청나게 올랐지. 원래도 저주가 가득한 숲에서 자란 터라 채집하기 힘들어서 비쌌는데 지금은 그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가격이다. 그런데 저주를 먹고 자라는 풀이 왜 그렇게 비싸냐, 그건 이 풀은 태우면 냉기를 뿜어대기 때문이다. 마법사들은 흔히 앞뒤 안 맞는 말을 지적할 때 약새풀 태우는 소리한다고들 하지. 바로 약새풀의 이런 특성에서 유래한 말이다.”

손과 함께 마법을 거둔 선생은 칠판에 방금 전까지 설명한 약새풀의 특성과 용도 및 가지고 있는 의의에 대해 적기 시작했다. 퍼블리는 방금 전까지 봤던 약새풀을 잊을 새라 그리기 시작했고 아니카는 눈을 반쯤 감으며 칠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칠판을 반쯤 채운 선생은 뒤돌아 학생들을 쭉 훑어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말하는 건 무조건 시험문제 낼 거니까 깨어있는 기특한 녀석들은 자는 녀석들 깨우지 말고 들어. 이 풀은 저주를 양분삼아 자랐다는 거에 걸맞게 매우 무서운 풀이다. 이 풀을 먹게 되면 체내의 마력이 얼어붙게 되고 내버려두면 점점 속도가 빨라져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마력이 전부 얼게 된다면 그건 이미 얼음덩어리나 다름없어. 방법은 하나밖에 없지. 전부 다 얼어버리기 전에 얼어붙은 부분을 떼어내 부수는 거야. 마력은 마법을 쓰면서 소모되는 게 당연하고 또 그만큼 휴식을 취하면 돌아오기 마련이지만 그렇게 임의로 떼어내 부순 마력은 돌아오지 않아.”

영원히.

덧붙인 말과 그 내용의 심각성에 비해 설명하는 목소리는 그다지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먼 곳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너무나도 가벼웠다.


점심시간이었지만 퍼블리는 또다시 생각에 잠겨있느라 아무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 웬일로 아니카 또한 그랬는데 평소와는 달리 젓가락으로 휘젓고 있는 밥을 먹을 생각은 않고 그저 눈을 반쯤 감은 채 바라보고 있었지만 초점은 흐리지 않았고 오히려 뚫을 기세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아니카는 옆에 앉아있는 퍼블리를 흘끗 바라보다가 눈을 감고는 밥을 입에 넣기 시작했다. 그렇게 점심시간이 반쯤 흘러갔을 때 선도부 한 명이 찾아왔다.

“아침에 압수물품 관리하는 애가 깜빡 존 덕분에 이렇게 황금 같은 시간에 다른 애들 찾아오는구나~”

그렇게 아니카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선도부 학생을 따라갔고 퍼블리는 먼저 교실에 가 있기로 했다. 원래라면 운동장 두 바퀴는 돌았을 테지만 지금 필요한 건 역시나 답답한 안개를 몰아낼 시간이다.

마녀로 변장한 마법사는 퍼블리의 엄마이자 아빠였고 많은 걸 가르쳐줬지만 정작 본인에 대한 건 가르쳐 준 적이 없었다. 어린 날엔 물어볼 생각도 들기 전에 마을로 놀러가는 일이 잦았고 마녀왕국으로 온 이후엔 직설적이고 말동무가 되어줬던 아니카와 익살스럽고 아빠가 보고 싶을 때마다 놀아주던 GM이 보고 싶어서 울고 떼쓰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마 그 때쯤에 한 번 물어본 적이 있었다. 왜 마녀왕국에 왔냐고. 다만 그건 보고 싶은 사람들을 왜 못 보게 하느냐는 원망이 섞인 외침이었을 거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니카와 다시 만나게 됐고 혹시나 잘못 본 걸까봐 두려운 마음에 눈을 맞춘 순간부터 있는 힘껏 끌어안고 눈물을 펑펑 쏟아내기 바빴다. 그 때의 아니카는 매우 보기 드물게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당황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부분은 어쩌면 어느 날부턴가 만날 수 없었던 마법사 친구가 사실은 자신과 똑같은 마녀였다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횡설수설 말을 하는 모습에 진정하라며 토닥이던 손길은 이제 더 이상 멀리가지 않는다며 늘 등굣길에서 인사와 함께 흔들며 안심시켜주고 있었다.

아니카는 퍼블리를 다시 만난 이후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퍼블리 또한 다시 만난 이후로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궁금했지만 만약 사정을 정확히 알게 되면 마법사가 또다시 어디론가 떠나고 헤어짐을 반복할까봐.


“으악!?”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굉음과 흔들림이 상념을 깨부쉈다. 지진이 일어난 줄 알았는지 복도에 있던 학생들은 괴성이라고 할 수 있는 비명을 지르며 교실 안으로 뛰어 들어가 책상 아래에 몸을 숨기거나 가방을 챙겨 창문을 통해 학교 밖으로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 학생들은 지진으로 학교가 일찍 끝나야한다며 외치고는 뛰쳐나간 이들을 따라갔다. 물론 그런 학생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들과 선도부에 의해서 다시 학교 안으로 돌아왔고 더 이상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직 복도를 걷던 퍼블리는 그대로 굳어 움직이지 못했는데 열 걸음 정도 앞에서 벽이 날아갔기 때문이다. 먼지 연기 사이에서 언뜻 무언가 빨간색이 보였지만 연기 사이를 헤치고 나타난 건 단정히 묶었던 곱슬머리가 산발이 된 채 동그란 안경을 고쳐 쓰는 마법사 선생이었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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