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오...많이 놀랐나보네요.”
벽을 부술 정도로 마법을 쓴 제 잘못이라고 덧붙이는 말이 있었지만 퍼블리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모습에 난감한 얼굴로 먼지를 털어내던 아난타는 구멍 난 벽 너머에서 부르는 소리에 다시 한 번 미안하단 말을 덧붙인 후에 뚫어놓은 구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바로 앞의 파편들이 둥실 떠오르더니 구멍을 메우기 시작했고 이내 벽은 금 간곳 하나 없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들에 굳어있던 퍼블리는 다시 교실로 가는 발을 뗐다.
“여러분 점심시간에 많이 놀라셨죠? 방음 마법 실험을 하는 김에 방어 마법 실험도 겸하고 있는 터라 소란이 일어났지요. 그러니 지진이 아니니까 학교는 일찍 안 끝난답니다, 그러니 창문으로 뛰어나가지 마시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아쉬움 섞인 탄식들이 늘어진 채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첫날처럼 박수를 치며 시선을 모은 아난타의 손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책이 필수라고 할 수 있는 역사 시간은 선생도 예외가 아니었다. 몇몇 학생들이 이번엔 자습을 기대하는 건지 다른 책을 꺼내기도 했다. 물론 공부용이 아닌 베개용이었다.
“왜 제가 역사책을 들고 오지 않았을까 궁금해 하는 것 같네요. 사실 오늘 제가 가르치는 부분은 아무래도 제가 경험자라고 할 수 있으니 책은 필요 없을 거란 생각에 두고 왔답니다.”
경험담이라는 말에 눈치 빠른 학생들은 나른하게 늘어지던 몸을 바로 세워 앉았다. 오늘 수업 부분의 경험자라고 하면 과연 누구겠는가.
“저희 마법사측에서 직접 숲으로 들어간 팀은 네 팀입니다. 하늘의 현자 컨티뉴가 속한 소수정예 다섯 명중 세 명의 팀, 이 왕국의 공주님과 교류했던 흑기사단, 지금의 신성지대를 세운 책사 홀리와 철퇴로 유명한 프라이드가 이끌던 군단, 마법과 무술의 결합을 수행한 아홉 명의 격투가들이 모인 팀 전장과 분노.”
잠시 숨을 삼킨 아난타는 한탄과 같은 말을 꺼냈다.
“저는 바로 전장과 분노에 속했던 마법사이자 격투가랍니다.”
비록 점심시간 바로 뒤의 수업이었지만 자는 건 물론 조는 학생은 없었다. 수업은 책에 있는 내용을 설명하는 딱딱한 설명이 아닌 자신의 경험담을 실감나게 얘기하는 데에 큰 흥미를 느꼈고 실제로 내용은 긴장감이 돌 정도로 머릿속에 잘 들어왔다. 누구든 설명보단 이야기를 더 쉽게 받아들이기 마련이었고 그 증거가 바로 학생들의 수업태도였다.
집중해서 얘기를 듣던 퍼블리는 눈을 크게 뜨고 아난타를 바라보다가 이마를 책에다 아프지 않게 내려찍었다. 다행히 이쪽을 보고 있진 않았는지 목소리는 끊기거나 걱정스레 다가오지 않고 계속해서 얘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갑작스런 퍼블리의 행동에 아니카가 퍼블리의 머리카락이 닿지 않은 책의 윗 모서리 부분에 무슨 일이냐고 적었다. 퍼블리는 그대로 고개를 들지 않고 손만 움직여 바로 그 아래에다가 이렇게 적었다.
‘나 정말 바보 같아서.’
아니카는 우리 근육이가 또 왜 이럴까라고 적으려다가 하루종일 생각에 잠겨있던 퍼블리를 떠올리고는 손을 멈췄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퍼블리가 답을 찾은 것 같아 수업이 끝난 후에 물어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물어보기도 전에 수업을 끝내는 종이 울리자마자 퍼블리가 자리에서 뛰쳐나가다시피 일어서 문 밖으로 나가버려 본인도 거의 뛰어가다시피 따라가느라 바빴다. 교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아 발견한 퍼블리는 방금 전까지 수업 아닌 수업을 하던 아난타를 불러 세우고 있었다. 아난타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몸을 반쯤 뒤돌아 있는 상태였다가 자신을 불러 세운 상대를 보자 난감한 기색이 섞이기 시작했다. 뒤에서 아니카가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던 때에 퍼블리가 급한 기색을 갈무리하지 못하고 그대로 용건이자 질문을 내놓았다.
“혹시 패치라는 마법사를 아시나요?”
다가오던 아니카도 멈춰 섰다.
순간 시간이 늘어지는 착각이 들 정도로 긴장감이 둘을 감쌌지만 그런 게 무색하게 아난타는 의아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뇨. 처음 듣는 이름이네요.”
바로 다음 수업에 들어가야 한다며 발걸음을 재촉하는 아난타가 사라지고 조용했던 주위는 복도를 돌아다니는 학생들의 목소리와 발소리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아니카는 다시 우두커니 서있는 퍼블리에게 다가갔다.
‘그래서 너희 집에서 햇빛 쬐고 물 마시는 풀이...밸러니의 숲 정화 때 고개든 풀 같다?’
‘아까 아난타 선생님의 수업 들으면서 느꼈어. 어제 아빠의 수업이 수업 같지 않았던 건 역시 경험담이었기 때문이야!’
쓰고 지우는 소리가 제법 빨랐다. 왜냐하면 수업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필기가 많은 수업이라 이런 필담이 들키지 않는 게 다행이라고 하면 다행일 순 있겠지만 그만큼 필기해야할 걸 놓치고 있단 점에서 불행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난타 선생님한테 물어봤는데 모른다고 하셨어. 경험담인 게 분명할 텐데 왜 모른다고 하신 걸까?’
‘모르는 게 더 당연하지 않을까 우리 생각 많은 근육이?’
‘하지만 밸러니의 숲에 직접 들어간 건 네 팀이잖아?’
‘너 혹시 흑기사단이나 마법사 군단들이 많아봤자 10명 정도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지?’
그 아래에 대답은 적어지지 않았다.
퍼블리는 수업시간 뿐만 아니라 쉬는시간에도 아니카의 놀림을 받아야 했다. 그동안 생각하고 있던 밸러니의 숲의 크기에 대해서 지도까지 펼쳐들며 놀려대는 아니카를 피하는 동안 시계바늘이 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럼 이제 알아봐야 할 건 흑이냐 백이냐 아님 삼총사냐 이 셋인데.”
“삼총사는 아닐 것 같아. 엄청 눈에 띌 텐데 모른다고 했으니까.”
“내 생각엔 아마 흑일 거야. 지금의 신성한 게 백에서 바뀐 거니까.”
마지막 수업을 끝내는 종이 울리자마자 발소리와 목소리가 뒤이어서 울리기 시작했다. 그 소란을 거들며 교실 밖으로 나선 둘은 이젠 필담이 아닌 목소리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둘의 목소리는 소란을 거들면서도 묻혀서 흘러가기 바빴다. 한 바퀴 돌려 말하는 대화가 학교를 완전히 벗어나 운동장에 발을 딛기 직전 누군가에 의해서 갈라졌다.
“저기..퍼블리 학생? 시간을 뺏어서 미안하지만 잠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뒤를 돌아보니 아난타가 미안한 기색으로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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