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 끝나고 신성지대를 상징하는 금색 실이 박힌 하얀 망토자락이 문 너머로 사라지자마자 교실은 소란스러워졌다. 마지막 수업이었으니 빨리 나가고픈 마음에 손들은 책상 위의 짐들을 가방에 쓸어 담기 바빴으나 입은 방금 전까지 칠판 앞에서 수업을 하던 마법사에 대해 말하기 바빴다. 그건 퍼블리와 아니카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퍼블리 네가 보기엔 어떤 사람 같아?”

“그냥 엄청 친절한 사람 같은데?”

“난 저렇게 순하고 친절한 사람은 오히려 가면을 쓰고 혼자서 연극놀이를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어.”

저 안경이 가면같은 게 아닐까라며 우스갯소리를 덧붙이는 아니카의 말에 퍼블리는 이미 맴돌고 있던 마력과 함께 사라진 마법사를 보고 있는 듯이 다른 학생들이 빠져나가고 있는 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왠지 연극놀이 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


둘의 대화는 서로 가는 방향이 달라 갈라진 갈림길에서 멈췄다. 인사를 건네는 걸 끝으로 헤어지는 아쉬움에 고개가 다시 앞으로 돌아가는 게 늦어졌지만 집으로 가는 발걸음은 제법 빨랐다. 집 앞에 도착한 후 열쇠를 꺼내지도 않았는데 바로 문고리를 잡는 모습이 퍽 익숙했다. 왜냐하면 퍼블리의 보호자는 하교하는 시간엔 항상 집에 있었기 때문이다. 문고리를 잡아당기자 짧게 끼익 우는 소리는 곧이어 이어진 인사에 묻혔다.

“다녀왔습니다. 엄마!”

인사가 향하는 끝엔 목과 입을 감싸는 형식으로 변형된 옷을 입고 있는 마법사가 책을 읽고 있었다.

마법사의 표정은 겉보기엔 한결같았지만 잠깐 스쳐지나가는 미묘한 눈빛에 퍼블리는 문을 잠그고 창문 너머로 사람들이 지나가는 걸 지켜보다가 커튼을 치고는 인사보단 작은 목소리를 꺼냈다.

“이제 아빠라고 불러도 돼요?”

대답은 옷자락을 들어 올려 그 위에 새겨진 장미무늬가 대신했다.

“...저도 몇 년째 아직 적응이 안 되는 걸요. 둘이 있을 때만이라도 아빠라고 부르면 안 되나요?”

“듣는 이가 없어도 속삭이 바람은 무시하지”

“말라고 했죠.”

말을 받은 퍼블리는 물이 담겨 있는 대야에 손을 담갔다. 너무 어려서 이젠 밀가루를 부은 물보다 더 뿌연 기억 속에서부터 지금 엄마라고 부르고 있는 그는 분명히 아빠라고 불렀었고 마법사다. 그리고 자신 또한 마법사인줄 알았다. 어느 날 신기하게 차려입은 마법사의 손을 잡고 도착한 곳은 늘 놀러갔던 마을보다 더 복잡하고 제 아빠처럼 신기하게 차려입은 마법사들이 잔뜩 돌아다니는 마을이었다. 나중에 알기로는 마법사들이 아닌 마녀들이었고 신기하다고 생각했던 옷차림은 그 때의 마녀들이 흔히 입고 다니던 유행이란 걸 깨닫게 된 건 언제였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에 대해 생각이란 걸 다시 해보려고 했을 땐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에.

기억 속의 뿌연 연기를 몰아내고 돌아다니던 동안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퍼블리는 옆에 걸린 수건에 물기를 닦으며 입을 열었다.

“저희 예전 집에 늘 놀러오던 아저씨 있지 않았나요?”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지만 종이 넘기던 소리가 멈췄다.

“오늘 학교에서 마법사 한 분이 오셨어요. 어디더라...신성? 거기에서 오셨다고 하는데 마력 성질과 구조 이론이랑 역사에 대해 가르쳐주신다고 하셨어요. 그 선생님 머리색이 검은색이었는데 잘은 기억 안 나지만 예전에 늘 놀러오던 아저씨도 검은색 머리였던 것 같은데...”

“학교에서 본 그 마법사의 인상은?”

“어..엄청 동글동글해요. 안경도 동그랗고 눈도 동그랗고...이름이 아난타라고 했어요.”

“아난타?”

의아한 기색이 짙은 되물음에 퍼블리는 그저 눈을 깜빡이며 뭔가 잘못 말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니 책은 이미 곱게 덮인 채 손에서 떠나있었다. 깊이 생각에 잠긴 모습이 꽤나 심각해보였고 뭐라 말을 다시 걸기엔 애매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얼마가지 않았다.

“역사는 어디까지 배웠지?”

“밸러니의 숲 정화에서 그 때 선출된 팀 부분이요.”

“묘하게 적당한 때로군. 아마 배우고 있던 부분이 마녀왕국에서 선출된 팀에 관한 부분이겠지. 다음 아난타라고 한 그 마법사가 가르칠 부분은 마법사측의 팀과 둘 모두 있던 팀일 거다.”

말하는 내용과는 별개로 무엇이 미심쩍은지 눈썹을 찌푸리며 의자에 기대던 마법사는 다시 몸을 바로 세워 앉고는

“그 때 당시 마법사측은...”


깔깔 웃는 소리가 솟아올랐다가 가라앉는다. 그 사이로 숨을 삼키던 아니카는 여느 때처럼 신랄한 말을 입에 담았다.

“그래서 본전도 못 찾고 오히려 역사 수업을 받았다는 거네?”

말만으로도 사람의 속을 뒤집는 제 친구의 재능에 대한 감탄과는 별개로 뚱한 표정을 짓고는 아무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런 퍼블리의 모습에 아니카는 다시 터지려는 웃음을 누르며 물어봤다.

“그래서 수업 소감은?”

“보통은 이쯤에서 그만 놀리지 않아?”

“어머, 그렇게 나랑 같이 지내놓고 다른 애들 행동을 떠올리는 거야?”

“본전은 여기서도 못 찾았네.”

한숨을 쉬고는 바닥의 돌멩이를 툭툭 차던 퍼블리는 어제부터 이어져 온 답답함에 고개를 들어 멍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방금 찬 돌멩이처럼 금방 날아가고 시간이 지나면 구름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면 얼마나 좋을까. 수업. 아니카는 수업이라고 말했다.

“수업..이겠지?”

“그동안 네가 한 얘기 들어보면 그것도 수업이잖아?”

마법사는 퍼블리가 글을 쓸 수 있을 때부터 꽤나 많은 걸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론보단 실전이란 말처럼 퍼블리는 책과 설명으로 된 것보다 직접 보여주거나 경험을 살려 얘기해주는 데에 더 쉽게 받아들였다. 다만 완전한 실전이란 있을 수 없으니 최대한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론들을 설명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남는 건 별로 없었다.

“근데 생각보다 기억에 남아.”

“세상에. 드디어 네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았나보다.”

“아니카.”

“알았어. 그만 놀릴게~”

아니카의 말 덕분에 무언가가 더 가까이 다가왔다. 잡힐 듯 말 듯 한 기분에 퍼블리는 눈을 감았다. 자신은 이미 답을 알고 있기에 답답하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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