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은 가구도 없이 휑했다. 바닥에 쓸리거나 눌려있는 흔적을 보면 원래 가구들이 있었지만 나중에 치운 것 같았다. 먼지들은 적당히 쌓여있었는데 아마 주기적으로 청소하는 듯싶었다. 조심스럽게 들어오던 퍼블리는 끼익 울리는 바닥에 흠칫 놀라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주위를 살펴보다가 다시 움직이는 걸 반복했다. 부엌에는 화덕이 있었는데 꽤 많이 사용했는지 까맣게 탄 자국이 제법 있었다. 다시 한 번 스쳐지나가는 흑기사의 웃음소리에 다시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가만히 머리를 부여잡을 시간은 이미 지나가버렸다. 혹시나 왕궁 마녀들이 다시 여기로 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화장실을 제외한 문이 두 개인 걸 보면 이 집도 방이 두 개구나라고 생각한 퍼블리는 그 중 하나의 문을 열어봤지만 처음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가구가 있었던 흔적만 남아있는 채로 텅 비어있었다. 안도인지 실망인지 모를 한숨을 내쉬고는 방에서 나오고 남아있는 방문을 돌아보며 긴장해서 덜덜 떨리고 있는 손을 토닥이고는 문고리를 잡아 열었다.
“아!”
문을 열자 눈에 들어오는 방 안의 모습에 입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를 손으로 짧게 잘라 막아냈다. 방 안은 여느 집처럼 책상과 옷장, 침대가 있었는데 그 침대 위에 누군가가 누워있었다. 발끝으로 움직이며 조심스럽게 다가가 자세히 보니 양쪽으로 갈라진 갈색 앞머리가 인상적인 아이가 잠들어 있었다. 저보다 훨씬 더 어린 듯 한 아이에 당황한 퍼블리가 뒤로 물러나다 다리가 엉켜 비틀거리다 뒤에 있던 책상과 부딪혔다.
“아으...아파라...”
부딪힌 부분을 문지르며 자고 있던 아이가 깼을까 힐끔 쳐다보니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듯이 곤히 자고 있는 모습에 안도하곤 제대로 섰다. 아픈 데를 문지르던 손을 다시 바로하려는 순간
“앗 차가! 무..뭐지...?”
손에 스쳐지나가는 차가운 느낌에 화들짝 놀라 급히 손을 올린 퍼블리는 찬 기운이 느껴지던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뒤에는 차가운 거라고 할 수 있는 건 금속으로 되어있는 책상서랍의 손잡이 밖에 없었지만 화들짝 놀라며 손을 뗄 정도로 차가울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닿은 건 말 그대로 차가운 기운이지 물건이 닿는 감촉은 없었다. 이상함에 혹시나 싶어 조심스레 손잡이로 손을 뻗었지만 닿기도 전에 손으로 달려드는 찬 기운에 바로 손을 뺐다. 그러면서도 어쩐지 익숙하게 느껴지는 이 기운이 묘해 쉽사리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퍼블리는 여전히 자고 있는 아이를 힐끔 돌아보다가 침을 삼키고 조심스럽게 다시 한 번 손잡이에 손을 뻗어 쥐었다. 제 손을 타고 오는 기운들이 마치 손톱이 얼마나 길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쥐고 살펴보는 마법사의 손 같아 더더욱 묘한 느낌에 살짝 눈썹을 찌푸리던 퍼블리는 조심스럽게 당겨봤다. 처음에는 잠겨있는 것처럼 조금 덜컹거리던 서랍이 두어번 더 당기자 조금 한차례 크게 덜컹이며 열렸다.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보며 아이를 돌아 본 후 멋대로 서랍을 뒤져보는 데에 미안하다고 속으로 사과하며 서랍 안을 살펴보니 무언가 잔뜩 글이 써져있는 종이가 가득 들어있었다. 조심스레 종이들을 꺼내자 첫 장에 크게 제목이 적혀있었다.
“장미 개발 계획?”
글씨체는 꽤나 간결한 편이어서 읽는 데 어려움은 없었지만 꽤 오래된 종이인지 종이 자체가 바래있었다. 천천히 종이를 넘기며 읽어가니 전문적인 용어가 대부분이었지만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지는 이해가 가능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장미는 대부분 자연 발생을 하니 장미를 이리저리 찾으러 다니는데 시간이 걸릴뿐더러 옮기는 과정 또한 힘드니 마녀의 힘으로 장미를 만들어 장미정원을 만들자는 내용이었다. 여기 적힌 전문용어들은 장미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내용 같았다. 퍼블리는 읽다가 이에 대해 의아해했다. 왜냐하면 퍼블리가 역사시간에 배웠을 땐 분명 세상의 자연 발생하는 모든 장미들을 전부 모아 장미정원을 만들었다고 들었으니 말이다. 애초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걸 무슨 수로 만드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전문용어들은 여전히 뜻을 알 수 없었다. 개중에는 마법주문으로 보이는 것들도 꽤 있었는데 아는 마법도 있었지만 하나의 마법주문을 구성하는 것들 중에 일부일 뿐이었다.
“영...모르겠네...아빠라면 알아보시려나?”
이 종이를 가져다주자마자 어렵지 않게 여기 적힌 마법들을 사용해 장미를 만들어내는 마법사의 모습이 상상됐다. 문제는 이게 상상만으로 멈추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게 무서운 마법사의 마법실력이었다. 다시 제 머릿속을 차지하는 사라진 마법사의 모습에 다시 기분이 가라앉은 퍼블리는 일단 일은 엄청나게 크게 저질렀는데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다시 막막해졌다. 마법사를 다시 찾으러 나가기 이전에 어떻게 여기서 나가는지가 문제였다. 왕궁 내부 길도 모르는 와중에 여기는 아예 일부 담당 왕궁 마녀들만 알곡 있다고 알려진 장미정원이었다. 빠져나갈 길이 매우 막막했다. 최악의 경우는 왕궁 마녀에게 들키는 게 아닌 여기를 빠져나가지 못해 영영 갇히는 경우인데 세상의 모든 장미를 모아오고 세상 곳곳에서 자연 발생하던 장미가 여기서 발생하게 된 이상 이곳이 얼마나 넓을지는 어림짐작만으로도 굉장했다. 우울한 얼굴로 종이에 얼굴을 묻던 퍼블리는 다 읽은 종이를 다시 차곡차곡 모아 정리하고 넣으려고 했다.
“당신은 누구죠?”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굳은 퍼블리가 뻣뻣하게 고개를 돌리자 언제 제 뒤로 왔는지 자신을 향해 손을 뻗은 채 서있는 아이의 모습에 놀라 그대로 몸을 돌리려고 했지만 그에 아이의 손에서 빛이 번쩍이기 시작했는데 맞으면 단순히 아프다고 할 순 없을 정도로 굉장히 위협적이게 번쩍이는 빛이었다.
“옷을 보면 왕궁 마녀가 아닌 것 같은데 대체 어떻게 여기 들어온 거고 그건 어떻게 연건지 말해요.”
“아니, 저기, 그....”
“하나.”
허둥거리는 퍼블리의 모습에 아랑곳 않고 숫자를 세는 모습이 굉장히 날이 서있었다. 퍼블리가 잽싸게 종이를 다시 서랍 안에 넣고 닫았지만 굳은 표정은 여전했다.
“둘.”
그리고 숫자도 멈추지 않았다.
급하게 돌아선 퍼블리와 바로 셋을 센 목소리와 함께 빛이 한차례 크게 번쩍이는 순간 퍼블리의 품에서 책이 떨어졌다.
“아!”
손을 뻗어 주우려고 했지만 바로 앞에서 위협하는 빛에 그대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동안 아이가 책을 주워들었고 퍼블리를 힐끔 보며 책을 펼쳐 넘기기 시작했다. 여전히 눈으로는 읽기 힘든 브레이니의 글씨를 차근차근 집중해서 읽어보던 아이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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