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치는 굉장히 지쳐보였지만 그만큼 능숙해보였고 그나마 쉴 수 있는 때는 용사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지쳐 잠들었을 때나 여행하면서 환상마법을 연습할 겸 환상연극을 보여주는 극단 무리가 마침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환상연극을 보고 있는 용사는 눈을 빛내며 가까이 오는 환상들과 놀고 있으니 사고칠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나중엔 흥미로운 존재들도 등장했다.

이쪽이다냐!!”
빠른통과!”
전서구와 비슷한 존재들이었는데 말할 수 있는 들개들이었다.

막대기 쓰는 건 반칙이다냐!”
빠른퇴장!”

우웅?”
들개들은 총 세 마리였고 각각 검은색, 진한 갈색, 연한 갈색 털을 지니고 있었다. 그 중 갈색 들개들이 용사와 공을 차며 놀고 있었는데 용사는 막대기로 열심히 공을 치고 있었다. 물론 차면서 노는 놀이였으니 용사는 당연히 반칙이었다. 다만 놀고 있는 건 그 셋밖에 없었으니 용사가 퇴장해도 둘만 노는 건 의미가 없었다. 애초에 용사와 놀기 위해 시작한 공놀이었으니 말이다.

그럼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다냐!”

초기화!”
흙바닥에 점수로 보이는 숫자들을 지운 들개들은 다시 공을 차기 시작했다. 나머지 들개 하나는 패치와 함께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함께 있는 둘은 서로 사이가 썩 좋아보이진 않았다. 정확히는 검은 들개는 패치를 경계하고 있었고 패치는 검은 들개를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안 그래도 눈빛과 송곳니 때문에 험악해 보이는데 경계를 하며 눈가를 찌푸리고 있으니 굉장히 화난 것처럼 보였다. 저러다 싸우는 게 아닐까 조마조마해 하던 퍼블리는 공을 신나게 막대기로 후려쳐서 폭죽처럼 저 하늘 위로 쏘아 올리는 용사를 보고 진짜 걱정해야할 건 용사라는 걸 깨달았다.

검은 들개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법이 발동한 막대를 물어 막고 패치가 하늘에 있는 공에 흘러들어간 마법을 풀어내는 걸로 기억이 사라졌다.

들개들에서 대해선 못 들어봤어요.”
저들은 용사의 인연이란다. 용사의 기억에 더 많이 남아있을 자들이지.”

용사랑은 친한데...아빠랑은 별로 안 친해보였어요.”

저들은 용사를 많이 아껴. 하지만 경계심이 많지.”

하지만 아빠는 용사를 엄청 챙기지 위협하진 않잖아요? 그런데 왜...”

다행히 그에 대한 이유가 담긴 기억은 멀지 않단다. 행운인지 바로 옆으로 떨어졌었네.”
마법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기억이 나타났다. 방금 전 끝났던 기억과 이어지는지 용사는 공과 막대기를 끌어안고 자고 있었고 용사와 놀고 있던 들개들은 용사를 지켜보면서 졸고 있었다.

이봐.”
검은 들개가 부르는 소리에 패치는 그저 눈만 움직여 그를 봤다.

“GM이야 재밌으면 장땡이라는 양반이니 그렇다 쳐도 너는 절대 누군가의 뒤를 처 돌봐줄 녀석은 아니야.”
요컨대 이유가 있을 거고 그게 뭔지 말하라는 건가? 자네들은 용사와 친하니까?”
속내도 이유도 알 수 없는 녀석이 친구 곁에 처 붙어있으면 경계하기 마땅하지.”
그렇게 따지자면 자네들과 나는 친하지도 않은데 이유를 말해야할 이유가 없지 않나?”
둘의 만만치 않은 기 싸움을 질린 얼굴로 보고 있던 퍼블리는 만약 나설 수 있다면 제 아빠를 감싸고 싶으면서도 검은 들개처럼 그 이유가 궁금해 가만히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그래 말할 이유가 없다라, 그렇다면 이것만 알아둬라. 네놈이 무슨 짓을 처 하던 간에 용사 녀석에게 위협이 간다면 그 날이 바로 네 숨통이 처 끊기는 날이다.”
어련히 알아서 잘 할 것이니 숨통 끊는 자리는 다른데 알아보게.”

검은 들개의 찌푸린 눈두덩이 한차례 꿈틀거렸고 퍼블리는 조마조마하게 지켜봤지만 다행히 둘은 더 이상 말을 섞지 않았고 기억도 거기서 끝났다. 퍼블리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마법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왜 저렇게 아빠를 경계하는 거예요?”
네 아버지 성질머리는 예전에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진 않았단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 아빠는 누군가를 위험하게 할 마법사는 아니에요!”
어떤 의미론 웃는 낯을 한 채 뒤에서 몰래 흉계를 꾸미고 있는 자보단 대놓고 성격은 안 숨기고 이유는 숨기면서 원래대로라면 전혀 안 할 일을 제 할 일처럼 하는 자가 더 무섭단다. 위험하진 않겠지만.”
퍼블리는 그게 왜 무서울까 고민하다가 어쩐지 자신의 상황과 비슷한 것 같아 납득했다. 아무 말도 안 해주는 건 확실히 무서웠다. 뭘 안 할 건지는 확실히 알아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인지 모르면 상대방은 답답하거나 불안할 게 뻔했다. 퍼블리처럼.

기억이 나타나는 주기는 어차피 조금 걸으면 나타날 정도로 짧았지만 아까보다 확실히 짧아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스무 걸음을 걸으면 기억이 한 번 나타나던 게 아까였고 다섯 걸음 걸으면 나타나는 게 지금이었다. 이번 기억엔 반가운 이가 있었다.

저도 제 할 일 있다고요!! 용사도 그렇고 댁도 그렇고 어째 둘이 저 바쁠 때만 이렇게 태풍처럼 찾아 오냐고요?!”
그렇게 따지자면 자네는 늘 바쁘잖나.”
잘 알고 있구만?! 비둘기 우체부 대표가 어디 노는 자린 줄 알아요!?”
전서구는 패치를 태운 채 어디론가 급하게 날아가고 있었다. 전서구가 예전에 투덜댔던 상황이 떠올랐다. 제 아빠가 아주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타는 바람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어디쯤에 내려줬나?”
용사가 애도 아니고 언제까지 이렇게 뒷바라지하면서 살 거예요?”
패치는 그 말에 마치 사실을 읊는 것처럼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가만히 냅두면 호수가 무지개로 뒤덮이는 건 물론이고 작은 숲의 나무들에 꽃을 피워 나무 모양의 꽃밭이 생겨있겠지.”

그 말에 전서구는 반박도 더 말도 안 하고 얌전히 입을 다물며 날갯짓을 했다. 다행히 용사는 금방 찾았는데 어느 호수 바로 옆에 있었다. 정말 호수가 무지개로 뒤덮이는 건가싶어 보고 있던 퍼블리는 저도 모르게 긴장했고 전서구가 용사가 있는 데로 천천히 내려가니 다행히 용사 외에 들개들도 있었다. 다만 들개들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전서구의 등에서 내린 패치는 소란스럽게 떠들고 있는 그들에게 다가가며 한숨을 쉬었다.

또 사고 쳤나보군.”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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