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보이는 건 마녀 둘이었다. 하나는 연한 녹색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짙은 회색 머리카락이었다. 둘이 다가와 함께 무언가를 얘기하고 즐겁게 웃는가 싶더니 진지한 얼굴로 종이를 가리키며 마법을 쓰기 시작했다. 거기에 밸러니도 손을 뻗으며 함께 했지만 무언가 잘 안 됐는지 녹색머리 마녀의 표정이 나빠졌다. 그리고 마법이 다 끝났을 땐 마녀들은 인사를 하며 떠났고 다음날 또 찾아왔다.

인상 깊었던 걸 떠올리는 건지 기억은 금방 흘러갔다. 꽃을 구경하고 풀을 캐고 자주 찾아오는 마녀들을 반기면서 무슨 마법을 쓰는 게 밸러니의 일상이었다. 간혹 마법을 쓰는 도중에 캐온 풀이나 씨앗, 열매를 던져 넣기도 했는데 풀이나 씨앗이 타버리거나 열매가 녹아내리는 모습을 보면 공격마법을 발전시키거나 만들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너무 성과가 없는데?”
거기 실패 목록에 녹색양털풀도 추가해. 어젯밤에 한 번 해봤어.”
회색머리 마녀가 바로 수첩을 꺼내 적었다.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실패를 하자 밸러니가 한숨을 내쉬었고 동시에 퍼블리는 무언가 가슴 안쪽이 살짝 눌리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밸러니가 느꼈을 답답함이었겠지만 완전히 전해지지는 않는 듯 싶었다.

어디서나 흔히 볼 법한 풀은 물론이고 이름도 모를 괴상하게 생긴 열매도 실패 목록을 피해가진 못했다. 갈매기가 물어다 준 씨앗마저 타버리는 모습에 녹색머리 마녀는 머리를 헤집다가 깍지를 끼고 낮게 깔린 목소리를 내며 진지한 분위기를 내기 시작했다.

이건 웬만하면 안 쓰려고 했건만.”

너 또 귀한 거 발견해서 비싸게 팔아먹을려고 숨겨뒀냐?”
뭔진 모르겠지만 순순히 내놓아라.”
회색머리 마녀와 밸러니의 협박 섞인 재촉에 녹색머리 마녀는 뿌듯함 조금과 아까움 대부분인 얼굴로 씨앗 하나를 꺼냈다. 씨앗만 봐서는 무슨 씨앗인지 모르니 둘은 다음 말을 기다렸다.

장미씨앗이다.”
둘이 놀라워하고 당황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회색머리 마녀가 말을 더듬으며 진짜냐고 묻자 녹색머리 마녀가 확신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밸러니는 미심쩍은지 눈을 가늘게 뜨고 씨앗을 노려보고 있었다. 일단 장미씨앗이든 아니든 재료 하나라도 더 필요한 상황이었으니 밸러니도 쓰는 데에는 딱히 반대하지 않았고 회색머리 마녀는 긴장 가득한 얼굴로 녹색머리 마녀는 기대 가득한 얼굴로 씨앗을 바라봤다. 장미씨앗 위로 마법이 쏟아졌고 씨앗이 하얗게 변하면서 은은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드디어 성공한 건가 싶어 벅차고 들뜬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지만 곧이어 타버리는 씨앗에 기대도 타버리는 게 고스란히 보였다.

실패 목록, 장미씨앗.”
그건 그냥 쓰지 말자. 혹시라도 나중에 누가 보게 된다면 우리 저 땅굴에 갇히는 걸로 안 끝나.”
그래도 이거 꽤 버텼으니까 한 번 해볼 만하지 않아?”
장미씨앗 찾아다니자고?”
발견되는 건 아직 봉오리가 열리지 않은 장미거나 이미 시들어버린 장미가 대부분이라 장미씨앗을 찾는 건 굉장히 까다롭고 어려웠다. 그러니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는 녹색머리 마녀의 의견은 기각되었다.

네가 찾아온 건 정말 대단하긴 한데 우리는 그렇게 찾아낼 자신은 없다. 대신 이거라도 더 조사해보자.”
밸러니가 씨앗이 타고 남은 재를 조심스럽게 집으며 말했다. 다른 것들과는 다르게 꽤 버텼으니 재라도 쓸모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런데 그 재는 쓸모 있는 걸 넘어서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을 일으켰다.

뭐야? 분석 마법이 안 통해!”
하도 마법을 쏟아 부어서 항마력이 높아졌나?”

아니 이건 항마력이 높아진 게 아닌 것 같은데?”
항마력은커녕 오히려 마력이 더 잘 들어가고 있는 현상에 셋은 혼란스러워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마력이 잘 들어가는 게 아니라 마력이 그 앞에 방해물이 없다는 듯이 그대로 통과하고 있었다. 즉 마법을 튕겨내는 게 아니라 마법을 흘려보내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 엄청난 현상에 셋은 흥분했지만 기록하지 않았고 다른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비록 싹도 트지 않았지만 마녀를 탄생시키는 장미씨앗을 실험재료로 쓴 걸 좋게 봐줄 이들이 없는 건 물론이고 이 현상의 파급력이 불러올 미래는 어쩌면 장미들의 소멸일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 현상을 나타나게 한 재료가 바로 장미씨앗이었으니.

그로부터 시간은 며칠 정도가 아니라 달단위로 휙휙 넘어가고 있었는데 모두 그 손가락 한마디도 안 될 정도의 재를 붙들고 마법을 쓰기 바빴다. 그리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 같기도 했는데 마법이 그대로 통과해서 흘러나가니 만드는데 꽤 어려움이 있어보였다. 겨울이 두 번 지나가고 봄이 세 번째로 찾아왔을 때 쯤 밸러니는 완성해낸 무언가를 소중히 쥔 채 두 마녀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드디어...”
재를 중심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이후로 계속 셋이 함께 있었던 오두막에서 조금 걷다보니 볕을 꽤 잘 밭고 있는 땅이 나타났다. 거기서 멈춰선 밸러니는 조심스럽게 쥐고 있던 손을 폈다. 그러자 손에서 하얗고 은은한 빛이 나고 있는 씨앗이 있었다. 밸러니는 그대로 무릎을 굽히고 앞에서 녹색머리 마녀가 미리 파낸 땅에 씨앗을 넣었다. 그 위로 흙을 덮으니 빛도 덮어지고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두 마녀는 굉장히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흙을 덮은 자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마 밸러니도 같은 표정을 지었을 거다. 그러다 갑자기 기억이 바뀌었다.

마녀 둘은 어디로 갔는지 밸러니 혼자만 서 있었다. 기억이 바뀌기 전과 후의 장소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러자 바로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기억이 바뀌기 전 씨앗을 심은 자리에 무언가가 자라있었다. 은은하게 빛나는 흰색 봉오리가 눈에 띄었고 퍼블리는 그게 무엇인지 눈치 챘다.

하얀 장미?”
아직 피지 않은 하얀 장미 봉오리를 내려다보던 밸러니는 그대로 뒤돌아 걸었다. 그러자 익숙한 오두막이 보였는데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했다. 그냥 오두막처럼 보였던 바뀌기 전의 기억과는 달리 아무도 살고 있지 않는 빈집처럼 느껴졌다. 밸러니는 문을 열어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퍼블리는 힘이 살짝 빠지는 걸 느끼고 지금 밸러니의 상태는 굉장히 무기력하단 걸 알아챘다. 바로 앞의 탁자에 익숙한 수첩이 눈에 들어왔다. 회색머리 마녀의 수첩이었다. 수첩을 눈에 담던 밸러니는 눈을 한 번 깜빡이고 고개를 들어 멍하니 천장만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Posted by 메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