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친구가 찾아왔구나. 어차피 네 소개를 받았으니 나도 내 소개를 할 참이었단다. 두 번 말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 뒤는 아까와 똑같았다. 다른 점을 굳이 꼽자면 시점이 밸러니의 시점이라 구경만으로도 굉장히 위험하고 아슬아슬했던 전투를 당사자가 되어 직접 체험하게 된 게 아까와 다른 점이었다. 그 와중에 이렇게 목숨이 위험한데도 전혀 위협을 못 느끼는 건지 여전히 해맑은 용사의 웃음이 눈에 들어왔다. 아예 공격을 맞지 않았으면 모를까 패치도 몸은 하나였으니 용사의 방어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용사도 마냥 맞고 있지 않고 오히려 패치보다 더 빠른 반응속도로 피하고 방어했지만 완전히 막아내지 못한 공격들은 맞았다. 그런데도 표정이 여전히 해맑았다.

세 번!”
패치의 외침에 따라 용사가 세 가지 마법을 날려댔다. 꽤 위력적인 불기둥 공격마법이 가장 먼저 날아왔다. 그 뒤를 이어 어째서 날리는지 모를 빛가루 마법과 축제용으로 쓰는 잘게 자른 색종이들이 흩뿌려지는 마법이 앞서 날아온 불기둥보다 더 존재감을 내뿜으며 밸러니의 시야를 가렸다.

그 뒤로 패치가 한 번, 두 번 외칠 때마다 용사는 한 가지 마법, 두 가지 마법을 날려댔는데 횟수는 외침에 따라도 날리는 마법은 무작위로 용사가 날리고 싶은 걸 날리는 것 같았다. 어떤 때는 아예 공격마법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신경을 끄기에는 거슬리는 마법도 있었고 언제 공격이 날아올지도 모르는데다가 용사는 패치의 외침이 없을 때에도 마법을 날려댔다.

“...!...저쪽...!!”

...음이 왜...!?”
저 멀리서 여러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패치가 떠난 이후로 남은 선발대 일행들이 마냥 한 자리에서 머무를 수만은 없었는지 패치와 얼음이 반짝이는 빛을 따라온 것 같았다. 보통 이렇게 되면 불리할 법 한데 밸러니는 겉은 물론이고 속으로도 전혀 동요가 없었다. 패치도 목소리들을 들었는지 용사를 데리고 뒤로 물러났고 밸러니도 잠시 동안 공격을 멈춰 그대로 대치상태가 됐다.

저쪽에 누가 있다!”
아까 갔던 마법사잖아?”
일행 쪽에서 패치를 발견했는지 가까이 다가오다가 밸러니와 그 주변에 있는 그림자 괴물들을 보고 멈췄다. 천천히 공격마법과 방어마법들을 펼치는 걸 보면 누가 적인지 제대로 알아본 것 같았다. 메르시와 흑기사단이 앞으로 나와 방어 마법을 더 강화하는 동안 아난타가 패치와 용사에게 다가왔다.

저 분은?”
이 숲 주인.”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나요?”
이제까지 우릴 대했던 숲이 대답하고 있지.”
아난타는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경계태세로 들어갔다. 그 주위에서 밸러니의 정체를 들은 다른 이들이 흠칫 어깨를 떨었다. 물론 각종 위험을 감수하고 왔을 테지만 저주의 원인을 알아보려고 했는데 아직까지 살아있는 숲의 주인인 밸러니를 직접 볼 줄은 그들도 몰랐을 거다.

많아진 적들에 숨겨진 마법진들이 빛나고 각종 소환 생물들이 튀어나와 밸러니의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물량에 기겁할 법도 한데 쓰러뜨려할 게 누구인지 명확히 알게 된 다수의 마녀와 마법사들은 이제 무서울 게 없었다. 누군가가 던진 불덩이 마법을 시작으로 소환 생물들이 날뛰기 시작했고 그대로 대치상황이 끝났다.

검은 날개, 오른쪽!”

위로 온다!”
사기가 올라갔다고 해도 지친 몸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올 리는 없었다. 마법을 쓰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지는 이들이 있었고 소환 생물들은 놓치지 않고 달려들다가 바로 옆에서 공격을 맞고 뒤로 물러났다. 공격이 아닌 방어전이 되어버렸지만 모두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고 마법을 날려댔다. 그러다가 이 방어전이 꽤 길어졌다고 느껴질 때 쯤, 갑자기 앞장서서 방어막을 펼치고 있던 이들이 옆으로 흩어졌고 그 뒤에 있었던 한 무리의 마녀들과 마법사들이 언제 그렸는지 모를 복잡한 마법진에 마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그러자 엄청난 크기의 불기둥과 번개가 마법진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방어막에 몸을 부딪혀가며 달려들던 소환 생물들은 갑자기 방어막이 사라지자 그대로 그 공격들에 뛰어드는 꼴이 되었다. 조금 떨어져 있던 이들이 공격 범위에 들어가지 않은 소환 생물들에게 공을 던졌고 맞추자마자 터지며 공 안에 들어있던 가루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가루가 불기둥이 있는 데까지 닿자 곧이어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고 물러났던 이들은 다시 방어막을 펼치며 제 몸과 뒤에 있는 이들을 지켰다.

이 숲으로 오기 전 왕국에서 했던 훈련들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직 남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승산 있다!”
이 공격으로 반 이상의 소환 생물들이 사라졌다. 기세를 몰아 아까보다 더 거센 공격과 준비된 마법들이 소환 생물들을 덮쳤고 소환 마법진까지 지우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소환 생물들이 눈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들었고 모든 이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드디어 해냈..!!”
누군가가 흥분에 차 소리쳤지만 끝을 다 맺지도 못하고 갑자기 쓰러져버렸다. 바로 옆에 있던 일행이 당황스러워하며 일으켜주기도 전에 평온한 목소리가 그 위를 덮었다.

모두 뭉쳐 있어서 수고를 덜었네.”
시간을 벌어 커다란 마법을 준비한 건 선발대뿐만이 아니었다. 소환 생물들이 방패 역할을 하는 동안 밸러니도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슬쩍 보기만 해도 눈이 어지러울 만큼 복잡한 마법진이 눈 깜빡할 새에 모든 이들의 머리 위를 다 덮을 정도로 커지면서 익숙한 하얀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쓰러지는 이들이 늘어났고 거기에 더 해, 갑자기 얼굴에 주름이 생기며 급격하게 늙어가는 이들도 나타났고 눈물 대신 피를 흘리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재빨리 저주막이를 펼치는 이들도 있었지만 빛이 더 강력했는지 저주막이를 펼쳤는데도 쓰러지는 이들도 있었다. 저 멀리서 흑기사가 쓰러지는 메르시를 감싼 채 빛을 직격으로 맞고 있었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대신 더 끔찍했다. 빛이 닿은 부분이 전부 썩어가며 퍼블리가 바다에 빠지고 그들을 처음 만났던 날, 그 때의 모습이 되고 있었다.

이 끔찍한 광경을 만들어낸 밸러니는 아무런 감흥 없이 모든 걸 눈에 담고 있었고 밸러니의 눈을 통해 이 광경을 보게 된 퍼블리는 충격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아직 쓰러지지 않은 이들 중에 패치와 용사가 있었지만 둘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얼마 안 가 피를 토하는 패치의 모습에 퍼블리는 심장이 떨어지는 듯한 충격을 받으며 기억인 것도 잊고 그만두라고 외치려고 했다.

내가 너무 늦었나...?”

굉장히 지쳐있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밸러니는 제 가슴을 꿰뚫은 날카로운 날붙이를 내려다보고 고개만 돌려 뒤를 돌아봤다. 뒤에 있는 마법사는 얼굴을 꽁꽁 싸매다시피 했지만 오히려 얼굴을 가렸기 때문에 퍼블리는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컨티뉴.”

퍼블리는 가슴 안쪽이 아릿한 게 제 자신의 충격 때문인지 아니면 밸러니가 공격 받았기 때문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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