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은 순식간이었고 그에 비해 많아봐야 한 시간밖에 안 되는 시험시간은 당연히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수많은 학생들이 우울해지는데 매우 충분해지는 시간이었다. 아니카는 시험시간이 끝나자마자 교탁 위로 날아가는 시험지들을 보고 있다가 옆에서 엎어져 있는 퍼블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다른 애들은 몇 번 문제를 못 썼다거나 아는 걸 까먹었으니 좀 더 집중해서 공부할 걸이라는 후회를 하고 있는데 우리 근육이는 무슨 후회를 하고 있니?”

“...그냥 엄마한테 가르쳐달라고 할 걸...”
코앞에서 날아가는 비행신을 잡아볼 엄두가 안 났어도 신어보고 싶은 게 마녀 심리지~”

 

물론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쪽지시험 아닌 쪽지시험을 시작으로 다른 과목들의 시험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쪽지시험 이후의 후회와는 별개로 힘든 건 정말 힘든 거였는지 머뭇거리던 퍼블리는 결국 한계에 부딪혀 자진해서 교과서를 들고 마법사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남은 2주간의 시험기간이 끝나고 눈앞에 들이닥친 시험을 끝낸 학생들은 그대로 환호성인지 괴성인지 모를 소리를 내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번화가를 돌아다니던 마녀들과 가판대에 물건을 올리던 상점 주인들은 갑자기 우르르 몰려다니는 학생들에 깜짝 놀랐지만 곧이어 시험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제 할 일들을 하러 바삐 움직였다.

이젠 왕국의 모든 마녀들이 바쁠 시기였다. 시험기간이라 주춤했던 학생들도 다시 전처럼 눈에 불을 키우고는 손과 발을 바쁘게 움직이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바로 다음 주, 정확히는 닷새 후가 축제 시작의 날이다. 1년에 한 번 더위가 가장 기승을 부리는 여름 중의 사흘. 가장 성대한 축제가 열리는 기간이었다. 왕국의 모든 마녀들이 축제 준비에 열을 내고 있었고 학생들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동아리에 들어간 학생들이 가장 바빴는데 동아리에 들어가지 않은 학생들은 바쁜 친구들을 위해 기꺼이 소매를 걷고 나섰다. 동아리가 아닌 애들이 도와준다고 해봐야 필요한 준비물이나 책상들을 옮기는 게 다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다른 동아리들과 마찰을 빚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이른바 땅따먹기라는 게 있다. 각 동아리들이 축제 행사 때 쓸 수 있는 땅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지만 동아리 인원수가 많다면 자리는 턱도 없이 부족했고 그로인해 인원수로 밀어붙이는 상황이 나타나자 인원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동아리들은 제 친구들을 불러 오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 당연하게도 통제를 맡는 선도부 또한 바빠질 수밖에 없었고 그게 바로 아니카가 지금 퍼블리의 곁에 없는 이유였다. 그렇다고 혼자 있느냐면 그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도서실은 미안하게 됐어요오..”

..아니 괜찮아요! 축제 끝나고 가면 되니까...”

현재 학교 내의 유일한 마법사이자 선생인 아난타, 그렇게 한창 축제준비로 바쁜 와중에 할 일과 같이 있을 친구가 없는 둘이 만났다.

그런데 왜 여기서 이론만 가르치고 계시는 거예요? 실전 전투마법 교관으로 가면 딱 좋으실 것 같은데...”

아하하..그건 의도치 않은 거예요. 저주 때문에 걸리는 게 좀 많아요.”

저주요?”

난감하다는 얼굴로 안경을 만지작거리던 아난타는 주위를 둘러봤다. 주위는 돌아다니는 학생들이 많았지만 둘에게 직접 다가오는 학생들은 없었고 짐을 나르느라 바빠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고요하다고 느껴졌다. 마치 주변의 소리가 시간을 빼앗긴 것처럼.

이건 극비 사항인데 특별히 퍼블리 학생한테만 말해줄게요.”

..극비면 더더욱 말하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높으신 분들 엿 좀 먹어보라는 것도 있고 퍼블리 학생한테 도움이 될 거예요.”

그 말에 당황해하는 퍼블리였지만 아난타 또한 얼굴에 철판을 어느 정도 깔아놓은 유형이었는지 마치 오늘 날씨는 햇빛이 쨍쨍하네라는 어투로 태연하게 얘기를 꺼낸다.

정화 때 숲에 들어간 자들은 목표인 정화는 성공했지만 숲의 주인인 밸러니의 저주를 받았어요.”

목소리가 또렷하게 귀에 들어오고 퍼블리는 자연스럽게 듣는 데에 집중했다.

저의 저주는 자세하게 말하기엔 곤란해요. 저주가 괜히 저주가 아니니 그 저주의 내용을 상세하게 입에 담으면 들은 사람은 간접적으로 그 저주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거의 그 때부터 깨어날 때까지 계속 잠들어있던 거나 다름없던 그런 저주지요. 물론 그 저주는 개인마다 달랐고 다른 분들은 어떤 저주를 받았는지 자세히는 몰라요. 그 날 이후로 다시는 만나지 못했으니까.”

잠시 말을 멈춘 아난타는 어쩐지 반가운 기색이 담겼지만 그보다 더한 슬픔을 담은 목소리로 말을 다시 이어갔다.

어쩌면 퍼블리 학생이 말한 패치라는 마법사도 우리의 예상처럼 그 때 숲에 들어간 마법사였다면 저주는 지금도 계속 괴롭히고 있을 거예요.”

그 말에 퍼블리는 냉기가 그대로 심장을 얼려 쿵! 바닥에 떨어뜨리는 느낌을 받았다. 최대한 진정하며 숨을 고르는 동시에 소리들이 다시 몰려오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학교 내의 길목을 채우는 풀벌레 우는 소리와 그보다 더 큰 학생들의 목소리들이 주위의 고요함을 허겁지겁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퍼블리 학생. 오늘 왜 모자를 안 쓰고 온 건가요?”

방금 전까지 아무 말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대화 주제를 돌리는 아난타에 퍼블리는 바로 그 말을 붙잡아 대답했다.

모자요? ..일단 교복 세트지만 모자는 역시 걸리적거리고 모자는 자유라고 들어서...”

아뇨아뇨! 이따가 점심시간 때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안전의 축복을 걸 건데 모자랑 교복에 방어 마법을 걸어줄 예정이에요. 축제 때문에 급하게 짓는 임시 건물들이 많아 머리 위로 떨어지면 큰일이니까요.”

그에 퍼블리는 깜빡했는지 눈을 깜빡이며 짧게 아 하며 얼빠진 목소리를 내고는 머리를 더듬었다. 어쩐지 오늘따라 모자를 쓰고 오는 애들이 많았다는 게 떠오르며 곰곰이 생각에 잠기더니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머리에 방어 마법을 걸 순 없나요?”

“...머리를 보호해야하니 모자를 단단하게 하고 충격 흡수하게 만드는 원리예요. 머리에 걸어봤자 의미가 없답니다.”

그 말에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던 퍼블리의 눈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한 여름에도 꽁꽁 싸맨 옷차림만큼 먼저 눈에 들어온 모자 아래 붉은 머리.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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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는 튀어나간 말을 수습하려고 횡설수설하며 아무런 말이나 꺼내기 시작한 퍼블리였지만 오히려 더 말이 꼬여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퍼블리가 처음 꺼낸 말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던 마법사는 정신없는 퍼블리의 모습에 진정시키고자 대답했다.

끝냈어.”

?”

간신히 제정신을 붙잡은 퍼블리가 시선을 바로잡으며 반문했지만 마법사의 시선은 멀어보이는 곳에 있었다.

그 집을 떠난 그 날. 내가 끝냈지.”

그런 마법사의 얼굴엔 바로 그 날 느꼈던 냉기가 조용하면서도 간절하게 주위로 손을 뻗고 있었다.

 

거 웃어야할지 말아야할지 애매한 걸?”
애매하기 이전에 왜 웃어야할지가 들어가는 거야?”

웃고 싶은 부분은 너의 상상속의 말들과 실제로 나온 말이고 말아야할 부분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지?”

그에 퍼블리는 뚱한 얼굴로 아니카에게서 조금 떨어져 걷기 시작했지만 곧이어 어깨동무하며 붙어오는 아니카에 의미는 없어졌다. 그렇게 놀리고 툴툴대는 반응이 반복되면서 교실까지 가는 시간들을 채우기 시작했다. 다만 그런 소소한 장난과 투덜거림이 곧이어 절망으로 바뀌는 건 꽤나 순식간이었다.

다음 주에 쪽지시험 볼 거다. 이제까지 배운 부분에서 낼 테니까 부담 갖지 말고.”
대체 어떻게 부담을 갖지 말라는 거냐는 절규들이 꽤나 직설적이게 선생에게 날아들었지만 전혀 타격을 줄 순 없었다. 사실상 다음 주부터 시험기간이긴 했지만 선생의 말은 자기의 정식시험은 바로 그 다음 주 쪽지시험으로 때우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졸지에 이 과목은 시험기간이 일주일로 줄어든 파격적인 과목이 되었지만 다른 말로는 학생들의 정신을 부수는 파괴적인 과목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폭탄을 던진 선생은 특별히 자습이라며 유유히 앞문을 열고 나갔다. 다른 반에도 이 폭탄을 던지러 갔던 건지 야유와 절규와 비명소리들이 벽과 복도를 타고와 현재 다른 반의 상황을 충실히 알리고 있었다. 여파가 남은 반의 학생들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책상에 얼굴을 묻거나 실소를 흘리거나 욕을 내뱉기 바빴는데 퍼블리 또한 예외는 아니었고 첫 번째 무리에 속했다고 볼 수 있었다.

어떡해...하나도 모르는데...”

일주일의 유예가 남았잖니, 똑같거나 비슷한 애들이 많다는 거에 위안을 가져.”

“...빈말로라도 지금부터 하면 괜찮다는 말은 안 해주는 거야?”
빈말이라도 해주기엔 현실이 너무 굳건해서 말이지.”

한동안 학생들의 상태는 계속 됐다. 수업종이 칠 때마다 들어오는 선생들은 그런 모습들에 혀를 끌끌 차거나 안타까워하는 말투로 수업을 나가고 시험범위와 날짜를 공지했다. 그에 당연하게도 학생들은 더더욱 우울한 기색을 뿌리고 다녔다. 이러한 분위기가 회복된 건 점심시간 때였다.

늘 드는 생각인데 입에 뭘 물리면 어린애건 학생이건 어른이건 다 기분이 그나마 올라가나봐.”

그나마 시간이 흐른 덕도 있지 않을까? 기분이 안 좋거나 우울할 때 바로 입에 뭘 넣으면 체할 것 같은데.”

볶은 버섯을 입에 넣으며 말한 퍼블리는 다시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아무래도 갑작스럽게 일주일 정도 앞으로 들이닥친 쪽지시험이라는 시험은 제 아무리 긍정적인 마녀라고 해도 부담스러울 거다.

“...아무리 엄마라고 해도 일주일 안에 혈액특성이론을 내 머리에 전부 들어가게 하는 건 무리일 거야.”

전부는? 그럼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는 말인데 왜 그래?”
“...너무 빡세...”

요컨대 싫다는 말이었다. 잠시 상상의 시간을 가져보던 아니카는 이해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아주 어렸을 때 잠깐 보고 퍼블리한테 간간히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파악했는지 아니카는 그저 아무 말 없이 퍼블리의 어깨를 토닥였다.

점심시간이 끝난 이후에도 시험범위와 날짜 공지는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두 번 더 들은 후에야 오늘 하루 학교를 끝내는 종이 울려 퍼지고 학생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깜빡했는데 그 뒤로 어떻게 됐어?”

? 뭐가?”
어제 너희 아빠가 대답한 이후로 어떻게 됐냐고.”

해가 하늘 꼭대기에 서서 많은 땅과 공기를 달궈놓았는지 걷는데 조금 땀이 흐를 정도로 더웠다. 아니카는 요즘들어 발밑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마법을 쓰지 않고 땅에 떨어지지 않게 계속해서 공중에 띄워 차는 기술을 시도해보고 있었다. 아니카의 질문에 반문하면서 돌멩이를 보고 있던 퍼블리는 눈을 깜빡이며 어제의 기억으로 눈앞을 채웠다.

마법사는 그 이후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마주앉아 차려놓은 저녁을 먹었고 빈 그릇들을 물통으로 가져가 설거지를 하고 늘 그랬듯이 의자에 앉아 책을 읽다가 달이 가장 높은 곳으로 뛰어 올라가기 전에 방 안으로 들어가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날이자 오늘 아침엔 어제 있었던 대화가 없었던 것 마냥 일어났냐는 인사를 하고 아침을 먹은 후 자신은 늘 그랬듯이 학교를 가야했기에 가방을 들어 문고리를 잡았고 잘 갔다오라는 무뚝뚝한 인사를 받은 후 문을 나섰다. 그게 끝이었다.

그러니까 별일 없었다는 듯이 넘어갔다 이 말이네?”

. 그래서 나도 사실은 꿈이었나 싶었어.”

다섯 번째, 이번엔 힘이 많이 들어갔는지 돌멩이가 다시 차기엔 너무 멀리 날아가버렸다. 다시 땅으로 돌아간 돌멩이를 뒤로하고 둘은 멈춰있던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갈림길에 도착하기 전까지 아니카는 근육이 응원가라도 만들어야겠다며 퍼블리를 놀렸고 퍼블리는 그런 아니카에게 못됐다며 질린 얼굴을 했다. 갈림길에서 멈춰 선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입을 다물었다. 둘의 머리 위로 날아가던 비둘기우체부가 특유의 울음을 다섯 번 정도 냈을 때쯤에야 둘은 무언가의 망설임을 꾹 누른 채 서로에게 인사했다.

집에 도착한 퍼블리는 습관적으로 다녀왔다는 인사를 하려다가 아무도 없는 걸 깨닫고 그대로 멈췄다. 하지만 곧이어 어디엔가 다녀왔는지 흙이 묻은 손을 털며 들어온 마법사에게 다시 인사했다. 그에 짧게 인사를 받고 대답을 한 마법사는 손을 씻으러 갔고 퍼블리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대로 가방을 내려놓은 퍼블리는 책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놨다.

시험공부라는 명분이 한동안 맴돌던 것들을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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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는 마녀왕국의 장미 정원에만 있고 장미를 볼 수 있는 건 아기를 키울 자격을 갖추게 된 마녀가 왕궁 마녀에게 요청해서 좌표 추적도 할 수 없는 공간이동 마법으로 장미 정원에 갈 수 있으니...”

그렇게 말한 아니카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다가 천천히 눈을 뜨곤 퍼블리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밸러니 숲의 정화 때 참가한 마법사측의 네 팀. 그 중에서 이 마녀왕국의 공주님과 교류했던 흑기사단.”

퍼블리는 아니카를 보고 있지 않았다.

너희 아빠는 흑기사단원이었고 공주님에게 장미 씨앗을 받아 네가 태어났다까지 생각했고 네가 생각한 게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구나?”

퍼블리는 발끝으로 땅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런데 꼭 장미나 호수에서만 아기가 나오는 건 아니야.”

그 말에 땅을 두드리는 제 발을 보고 있던 퍼블리가 고개를 들었다.

장미 씨앗의 근원과 푸른 달을 비추는 호수의 근원은 각각 마녀와 마법사들의 마력이라고 했어. 우리가 마법을 쓸 때마다 마력들은 당연히 빠져나가고 그만큼 다시 돌아오지만 시간이 지나면 우린 늙어가고 쓴 마력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게 잡아끄는 힘이 점점 줄어들어 끝에는 자연에 모든 마력들을 맡기고 잠든다고 했어. 물론 표현은 이렇지만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늙어 죽는 거지. 그리고 늙어 죽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는 다양하게 죽어. 독초를 먹고 죽거나 무너지는 건물에 깔려 죽거나 마법 실험이 실패해서 죽거나.”

차례차례 죽는 예시를 들며 그에 맞춰 손가락을 펼치던 아니카는 곧이어 다섯 손가락 전부 쫙 폈다.

어쨌든 죽은 자들의 마력은 모두 자연으로 돌아가 바람이랑 흙에 뒤섞이고 구름에 담겨 흘러가다가 비가 내리면서 같이 내려가고 땅으로 스며들거나 공기 중에 떠돌아다녀. 그렇게 여기저기 돌아다녀서 자연이랑 다를 바 없어졌지만 기본적으로 마력은 뭉치는데 강해. 선생님들이 말하기를 특히 마녀의 마력은 뭉치려는 특성이 마법사들보다 더 강하다고 가르쳐줬으니 과거 마녀들의 마력이었던 게 뭉치면?”

펼친 손가락을 모두 접어 주먹을 쥐어본다.

바로 장미 씨앗이 되는 거지.”

열심히 경청하는 퍼블리를 보며 아니카는 더 짙게 웃었다.

우리 근육이 역시 이런 거 배울 때 자거나 딴생각했구나~? 알고 있으면 말하는 중간이나 내 말 끝나고 바로 알고 있다고 말했을 게 정상인데~”

..들었지만 잘 기억이 안 나는 거야!”

그래그래~ 어쨌든 장미 씨앗이 일반적으로 마녀가 태어나는 기준이지. 그래서 왕궁에서 장미 정원을 만든 거야. 장미 정원이 뭉치는 성질이 강한 자연 마력들이 쉽게 뭉칠 수 있게 설계된 환경이라나 뭐라나. 일단 근본적으로 아기들이 태어나는 근원은 바로 마력이다 이 말이지. 장미 씨앗 말고 태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야. 하나는 마녀와 마녀의 결혼. 이 경우엔 무조건 마녀가 태어나. 다른 하나는 마녀와 마법사의 결혼.”

결혼이라는 생소한 단어에 퍼블리는 뭐라 대답해야할지 몰랐다. 그런 퍼블리를 보던 아니카는 어쩌다가 놀러나온 시간이 수업시간이 되어버렸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저 설명하기 시작했다.

결혼이라는 건 연애를 넘어서 평생을 함께하는 거야. 연인에서 가족이 되는 거지. 예전에 너희 아빠한테도 구애하던 마법사 있다고 나한테 말했었잖아.”

구애라는 말에 검고 노란빛이 선명하게 윤곽을 드러내며 스쳐지나갔다.

하는 마녀들이 드물어서 모르는 마녀들이 대부분이야. 어차피 아기가 생겼으면 하면 왕궁 마녀에게 장미 정원으로 가게 해달라고 요청하면 되니까. 장미가 아닌 자기들만의 마력으로 아기를 태어나게 하려면 결혼 절차가 필요해. 그렇게 결혼하고 나서 요람에다가 풀이나 꽃 같은 자연물들을 담고 둘의 마력을 하루 동안 쏟아낼 수 있을 만큼 쏟아내는걸 10달 동안 반복하면 그 다음날 요람 속에 누워있는 건 넣어놓은 자연물들이 아닌 아기가 누워있다고 해. 그게 바로 결혼한 마녀 둘이 아기를 태어나게 하는 방법이지. 마법사들끼리는 모르겠고 마녀와 마법사가 결혼했을 땐 둘 중 한명의 방식을 택한다고 해. 다만 태어날 아기는 하루 동안 쏟아내는 마력이 더 많은 쪽의 아기가 태어나. 마녀가 더 많으면 마녀가, 마법사가 더 많으면 마법사가.”

열심히 경청하던 퍼블리는 의아했는지 바로 물어본다.

그런데 넌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그에 아니카는 별말 아니라는 듯이 대답한다.

그야 내가 결혼해서 태어난 마녀니까.”

 

해가 서쪽하늘을 태우면서 내려갈 때쯤에야 집 앞에 도착한 퍼블리는 이 문을 열고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혼란이 일어난 머릿속을 정리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늦게 들어온 거야 중간에 친구랑 놀다 왔다고 하면 되는 거였지만 온통 아니카가 해준 이야기들로 가득 찬 머리 때문에 무슨 말이 튀어나갈지 자신도 모를 상태였다. 퍼블리는 이리저리 튀어다니는 말들을 정리하고 가다듬기 시작했다. 고심하던 끝에 드디어 단어와 문장의 순서를 갖춘 말들은 여전히 중구난방이었지만 어느 정도 진정한 퍼블리는 다시 생각과 마음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그렇게 완전히 진정하고 나서 첫 번째로 불쑥 튀어나온 말은 이러했다.

제 진짜 엄마는 어딨어요?’

그리고 좌절했다. 저게 말이야 흙이야라며 저리 치워내기 바빴다. 문을 열자마자 저 말을 마법사에게 한다면 어쩐지 발길 하나 오지 않는 이곳에 마녀들이 옥수수 알갱이들을 씹으며 구경하러 들이닥칠 것만 같았다. 그 외에도 정화 때 아난타 선생님을 봤었는지와 공주님에게 무엇을 주고 장미 씨앗을 받았느냐라는 말들이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아무래도 진정되긴 글렀다며 그대로 문 앞에서 주저앉은 퍼블리는 그대로 무릎에 얼굴을 묻었지만 밀려오는 배고픔에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일어섰다. 심호흡을 하며 문고리에 올린 손은 여전히 머뭇거렸다. 눈을 질끈 감으며 문고리를 돌리자 낡은 문이 끼익 우는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눈을 떴다. 시계를 보고 있던 마법사는 문소리에 고개를 돌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들어오는 퍼블리를 봤고 평소보다 더 굳어있는 것 같은 마법사의 표정을 마주하며 한순간 시간이 멈춘 느낌을 받았다. 입을 달싹이던 퍼블리는 문이 다시 끼익 울면서 닫히자 퍼득 정신을 차리고 마법사를 부른다.

아빠.”

자신을 부르는 말에 마법사의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

예전에 아빠한테 구애하던 그 아저씨와는 어떻게 됐어요?”

퍼블리는 그 순간 다시 문을 열고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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